퀵바

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새글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71,899
추천수 :
1,423
글자수 :
308,562

작성
24.06.13 00:35
조회
983
추천
21
글자
12쪽

격전

DUMMY

번쩍!


반강의 철선이 나의 코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치사하게 기습이라니··· 라고 하기엔 아까 전의 나도 기습을 하긴 했지. 굳이 누가 더 치사한지를 따진다면 내 말을 끝까지 다 듣지도 않고 달려든 녀석에게 한 표를 줄 수 있겠다.


뒷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던 나는 그대로 물러나며 삽질을 하듯 검으로 땅을 파올렸다.

파팍!

검은 피와 함께 뭉쳐진 흙들이 사방으로 어지러이 튀어올랐다.

반강이 철선을 활짝 펼쳐 그것들을 날려보내고,

그 사이 나의 검이 그의 오른팔 궤도를 따라 파고들었다.

사평의 팔을 날려버렸던 바로 그 수법이지만, 반강의 반응은 더 빠르고 즉각적이었다.

그는 되려 철선을 든 팔을 쭉 뻗어 검과 내 팔을 뱀처럼 휘감았다.

서로의 팔이 엉켜있는 상황에서···

반강은 철선을, 나는 검날을 맹렬히 회전시켰다.

우리의 두 눈이 마주쳤다.


여기서 서로 물러서지 않는다면 나는 손목이, 녀석은 팔꿈치가 잘려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서로 영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들이지만, 각자 자신의 피 한방울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었다. 첫 수부터 공멸(共滅)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검과 부채가 서로 합의점을 찾고 물러나는 듯 하다가 벼락같이 서로를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그 순간이 얼마나 절묘하게 일치했는지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싸움에 있어서 치사하고 교활한 정도가 이렇게 비슷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반강의 부채가 온 사방에 번뜩였다. 접었을 때는 단검이자 몽둥이였으며, 펼쳤을 때는 방패이자 가림막이었다. 철로 만들어진 무거운 물건을 손목 움직임 하나로 가볍게 펼쳤다 접기를 반복하니 그것에서 펼쳐지는 변화가 무궁무진했다.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병기인지라 그것을 뚫어내는 것도, 막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제압하지 못하는 것은 녀석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까와 달리 검을 들고 있으니 녀석의 괴이한 병기들을 상대하기에는 훨씬 더 수월했다. 애초에 부채보다 검이 긴데다, 나의 속도 또한 녀석에게 밀리지 않는다. 경계해야 할 것은 오직 성급하게 승부를 보려는 마음일 뿐.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검을 찔러내니, 어느 순간 변화무쌍하게 변화하는 부채의 방어막을 뚫어내고 사뿐히 그의 지척에 다다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한 듯한 나의 반응에 반강이 흠칫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 또한 믿을 수가 없었으니···


핑!


아니나 다를까 그의 왼소매가 번뜩였다. 임풍의 목에 줄을 그어냈던 바로 그 하얀 섬광이 다시 한번 기묘한 괘적을 그리며 나의 목줄기를 물어뜯었다. 그러나 나는 줄곧 그의 왼소매를 신경쓰고 있었기 때문에 재빠르게 고개를 젖혀 그것을 피해낼 수 있었다.


내 눈 앞을 스치는 섬광의 정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새끼손가락에 감겨있는 작은 실과도 같은 병기였다. 그 비싸다는 천잠사(天蠶絲) 같은 것이려나. 평소에는 꽁꽁 숨겨놓았다가 부채로 상대방의 시선을 현혹시키거나 방심을 유도한 뒤 결정적인 순간 상대의 급소를 파고드는 것이 그의 수법인 듯 했다. 그것에서 느껴지는 서늘함과 날카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또 피해냈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유부릴 때는 아니었다. 몸을 뒤로 젖힌 탓에 자세가 불안정해지자, 반강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의 뒤를 바짝 쫓았다. 뒷걸음질 치는 것으로는 녀석을 떼어낼 도리가 없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의 철선이 나의 발목을 노리고, 그것을 피해 발이 땅에서 떨어진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하얀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뒤로 빙글 재주넘기를 하며 어찌 어찌 피해냈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숨막히는 연격.

땅에 검면을 대고 튕겨내자, 그 탄성에 힘입어 나의 몸이 훌쩍 떠올랐다. 섬광과 철선이 아슬아슬하게 나의 발 밑을 스치고 지나간다.


중력을 거스르듯 공중으로 치솟은 내가 몸을 말아 빙그르르 회전했다.


수세에 몰리고 있던 내가 펼쳐낸 다음 수는···


“하압—!”


공중에 떠오른 내가 힘찬 기합과 더불어 검을 좌(左)로 불쑥 찔러냈다.


그쪽에 무엇이 있느냐?

사실 아무것도 없다.


나를 쫓던 반강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야말로 엉뚱한 방향.


예측불허, 기기묘묘, 불가사의한 나의 한 수에 녀석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철선과 연계하여 펼쳐내려던 왼손 새끼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춘다.


그 미묘한 주저함을 놓치지 않고 나의 발차기가 벼락같이 작렬했다.


“큿!”


엉뚱한 방향으로 찔러진 검을 경계해 가슴이 열려있던 반강은 나의 기습적 발차기를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 또한 아까 전의 나처럼 고개를 젖혀 가까스로 나의 발차기를 피해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비장의 한 수가 더 남아 있었으니···.


녀석의 눈 앞으로 내 발이 스쳐지나가는 순간, 오무리고 있던 발가락을 힘주어 확 펼쳐냈다.

그러자 맨발가락 사이사이에 가득 잡혀있던 진흙들이 그의 눈으로 파고들었다.


“!!!!!!!!!”


눈을 질끈 감은 그가 꽁지에 불붙은 수탉마냥 요란하게 퍼드덕대며 뒤로 물러났다. 눈에 들어간 진흙을 독같은 종류로 생각했는지 재빠르게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눈에다 뿌려댄다. 나는 독 따위를 쓸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지만, 오해로 인해 만들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착지와 동시에 땅을 박차며 그에게로 달라붙었다.


검이 바람을 가르며 그의 빈틈을 파고드는 순간이었다.


철컥-


펄럭이던 그의 부채에서 쇳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가느다란 암기가 폭탄이 터지듯 터져나왔다.


까맣고 가느다란 세침.

녀석의 음흉한 성격을 고려해 보았을 때 독이 묻어있지 않다고 하면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단 하나에라도 적중당하면 내 생명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침이 터져나온 위치는 너무나도 가까웠다.


마냥 정신없어 보이던 상대방이 이런 수까지 펼쳐낼 줄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황급히, 그리고 못나게 땅바닥을 굴렀다. 반강은 눈을 감은 채 내가 땅을 구르는 소리를 듣고 위치를 짐작하여 연신 부채를 흔들고 소매자락을 휘둘러댔다.


피피핑–!


세침이 끝도 없이 뿌려지고 하얀 섬광이 난무했다. 비록 눈을 감고 있긴 하지만 녀석이 기회를 다시 놓칠리도 없고, 나 또한 언제까지 땅을 구를 수는 없는 일이다.


문득 화살비를 막기 위해 신나게 휘둘렀던 파초선이 생각났다.

마차 지붕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을 검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구르는 것을 멈추고 몸을 땅바닥에 단단히 고정시킨 채 손목을 가볍게, 그리고 빠르게 빙글 돌렸다.


九變無窮 구변무궁. 아홉가지 변화를 끝도 없이 일으킨다.


검이 맹렬하게 회전하고, 내 안의 내력과 주변의 공기가 함께 춤추기 시작했다.

내 손 끝이 공기의 결을 긁어냄에 따라 아홉 줄기의 와류(渦流)로 갈라졌다가,

곧 한데 합쳐져 내 몸을 축으로 삼은 거대한 소용돌이가 완성되었다.


변노인이 대충 가르쳐줬던 검술을 응용하여 살짝 변형해 본건데 의외로 효과가 있어 보인다.

이 초식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다면···


“반사!!!”


소용돌이가 녀석이 쏘아낸 세침들을, 그리고 하얀 섬광을 맹렬하게 튕겨내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반강이 다급히 소매자락과 장포를 펄럭였다. 하지만 자신이 쏘아낸 것보다 두세배는 더 강한 힘을 머금고 되돌아오는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 또한 나와 똑같이 나려타곤(懶驢打滾)

즉, 게으른 당나귀마냥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신세가 되었다.


서로 멀찍이 거리를 벌린 두 당나귀가 비로소 움직임을 멈추고 숨을 고르자···


곧 숨죽이고 우리의 싸움을 지켜보던 백리세가의 진영에서 우레와도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



반강과 나의 대결은 앞서 싸웠던 임풍과 비두사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앞선 대결이 근육과 피와 땀으로 가득한 두 사나이들간의 대결이었다면,

우리의 싸움은 두 치사한 양아치들의 대결같다고나 할까.


녀석과 나 모두 기본적으로 매 움직임에 기습과 속임수가 난무할 뿐 아니라, 암기나 흙 따위를 뿌려대고 상대방을 조롱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각자의 몸은 끔찍하게 사랑하고 아끼는지라, 수십 합을 격돌했어도 서로의 몸에 난 상처 따위는 일절 없었다. 살을 주고 뼈를 치는 일 따위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돌이켜보면 귀창 사평도 기습을 하거나 상대방을 속이고 끌어들이는 움직임이 몸에 배어있지 않았던가. 이런 음흉한 녀석들을 상대하려면 그에 발맞춰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사실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냥 원래 이런 녀석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괴이하게 싸우는 것은 우리 고귀하신 백도의 무리들께서 정색할 이야기인가?

백리세가 무인들의 열렬한 반응을 보니 다행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저 음흉한 녀석을 상대하면서 찬 밥 더운 밥을 가릴 신세는 아닐 것이다.


서생들의 표정도, 반강 본인의 표정도 썩 좋지 않았다.

새하얗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흠 잡을데 없이 단정했던 외관 또한 꽤나 흐트러져 있었다. 나는 애초에 맨발의 청춘인데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느라 상거지 같은 꼬라지였으니 몇번을 구르더라도 별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내내 고고한 백면서생 행세를 하던 녀석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


“어이, 흙맛을 보니 좀 어떠신가?”


그는 내 깐죽거림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동요하고 있을 것이다. 그 또한 아직 다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지만, 아직까지 나에게 아무 타격도 주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예상 밖의 일 일테니. 녀석이 잔뜩 무게 잡았던 것 치고 이정도면 할만한 싸움이 아니겠는가.


“......”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반강이 긴 호흡을 내뱉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부채를 접어 옆구리에 끼더니, 두 손을 들어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가다듬었다. 검을 겨누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당황하여 눈알을 데구르르 굴렸다. 지금까지 보였던 그 어떤 모습보다 더 많은 허점을 노출하고 있는 반강이다. 하지만 녀석의 성격이 워낙 교활하고 무슨 함정을 파놓았을지 알 수 없는지라, 그 적나라한 빈틈을 파고드는 결정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머리와 옷매무새를 모두 단정하게 바로잡은 그가 부채를 쫙 펼쳤다.

평정심을 찾은 그는 내가 처음 보았을 때의 완벽한 서생 나부랭이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애송이라 부른 것을 사과하마.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인정해야겠군”


그가 해야할 일은 사과 따위가 아니다.

사과해야 할 대상 또한 내가 아니다.


무슨 헛수작을 부리는가 싶어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그가 한 손을 높게 들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평야를 가득 메운 사파무리가 살기를 띄고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런!”


당황한 백리세가의 무인들이 황급히 무기를 고쳐잡았다.

일대일로 계속 승부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단지 우리의 순진한 착각이었던 것이다.


사방에서 무인들이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기 시작했다.

날붙이들로 가득한 그 파도 한복판에서,

반강은 석양 쪽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이쯤이면 많이 쉬었지 않느냐. 해가 지기 전까지 모두 사지를 찢어주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 공지 (기존 : 장사치의 무공이 너무 강함) 24.06.27 37 0 -
공지 제목변경 및 연재시간 공지 (PM 10:00) 24.06.18 475 0 -
56 개봉으로 (3) NEW +1 19시간 전 180 7 13쪽
55 개봉으로 (2) +1 24.06.29 280 7 12쪽
54 개봉으로 (1) +1 24.06.28 351 8 13쪽
53 삼, 오 (三, 五) (2) +1 24.06.27 423 14 13쪽
52 삼, 오 (三, 五) +1 24.06.26 493 12 12쪽
51 의혹 (3) +1 24.06.25 552 16 12쪽
50 의혹 (2) +1 24.06.24 567 15 12쪽
49 의혹 (1) +1 24.06.23 651 15 12쪽
48 숲에 부는 바람. +1 24.06.22 712 18 12쪽
47 딱히 바라는 것은 없고. +1 24.06.21 787 17 12쪽
46 금칠 +1 24.06.20 819 22 12쪽
45 이젠 신물이 난다. +1 24.06.19 911 19 12쪽
44 남궁세가 (2) +1 24.06.18 882 20 12쪽
43 남궁세가 (1) +1 24.06.17 930 20 12쪽
42 피의 냄새 +1 24.06.16 941 21 11쪽
41 하얗고 붉은 것들 +4 24.06.15 969 19 12쪽
40 알량한 자비심을 버리고 +2 24.06.14 975 20 12쪽
» 격전 +2 24.06.13 984 21 12쪽
38 날카로운 검 끝에 +2 24.06.12 957 23 12쪽
37 주인이 되어주마 +1 24.06.11 985 21 12쪽
36 반강 (4) +2 24.06.10 1,040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4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8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2 27 13쪽
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6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3 22 12쪽
30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38 25 12쪽
29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1) +1 24.06.03 1,251 27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