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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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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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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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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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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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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개봉으로 (1)

DUMMY


백리세가의 고즈넉한 후원에 누워 높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날씨는 청명하고 바람은 선선하다. 아무도 나를 찾거나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다. 연과자는 질릴 때까지 먹을 수 있었고, 그 외에도 처음으로 맛본 진귀한 음식을 들자면 끝도 없었다. 신선놀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하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

둥둥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다가 불쑥 마음에 떠오르는 말을 내뱉었다.


“오늘은 정말 떠나야겠다”


옆에 앉아 책자를 읽고 있던 대식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도련님, 도대체 그 이야기만 몇번째입니까? 이 과자나 좀 더 드셔보시죠”


“......”


옆에 앉아 연신 연과자를 해치우고 있는 대식 녀석을 노려보았다. 수십일동안 얼마나 잘 쳐먹었는지 볼따구가 포동포동하다.


녀석이 팔자 좋게 읽고 있는 것은 백리세가를 재정을 책임지는 허총관이 직접 엮었다는 책자였다. 책 제목이 ‘세가 운영관리의 정석’이라나···

허총관은 세가를 수습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나와 대식에게 백리세가의 여러가지 사업들, 엮여있는 상단들, 관리하는 가게들을 소개하고 설명해주곤 했다. 그것들은 백리세가와 같은 큰 세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는 데에는 매우 유용한 정보이긴 했지만, 어떻게든 내가 그들 중 하나에 관심을 보이고 세가에 눌러앉게 하려는 의도가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금새 흥미를 잃었다. 하지만 대식은 언젠가는 자신이 허총관 같은 자리에 오르지 않겠냐며 의외로 열심히 수업에 임했다.


“아니야. 오늘은 정말 떠난다. 가자!”


벌떡 몸을 일으키며 크게 외쳤다. 대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요? 지금 바로?”


“마음 먹었을때 가야지. 이러다 정말 여기 눌러앉겠다”


“눌러 앉으면 좋은거죠. 백리세가에서 이렇게 잘해주는데 왜 굳이 떠나시겠다는 겁니까?”


“일전에 한 말을 벌써 잊었느냐? 이곳에 있으면 결국 쌈박질만 하게 될 뿐이야”


그리고 언젠가는 결국 누군가를 죽이게 될지도 모르지.

아니면 내가 죽거나.


그 말은 내 머리 속에서 맴돌 뿐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게다가 남이 주는 돈만 받아 먹어서 언제 부자가 될 수 있겠느냐?”


가슴을 당당하게 피고 품 안을 툭툭 건드리자, 믿음직한 소리가 절그럭 절그럭.


“이제 밑천도 좀 모였겠다, 크게 한탕 벌여서 제대로 돈을 벌어봐야겠다”


내가 정말 떠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은 대식이 와락 내 발목을 끌어 안았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절대 떠나보낼 수 없다는 듯이. 대식이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한끼만··· 한끼만 더 먹고 가죠. 네?”


“이시끼가 정말··· 빨리 안일어나?! 한끼만 더는 허총관님의 수법 아니냐!”


험상궂게 눈알을 부라리자 대식이 울상을 지으며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뒤쪽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떠나시겠다구요?”


우리가 드잡이질을 하는 사이, 어느새 후원에 나타난 허총관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우뚝 멈춰선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손수 챙겨오던 또다른 과자가 땅에 떨어져 있었고, 땅을 짚고 있는 지팡이가 부들부들 떨렸다. 이 노인의 아련한 표정에 얼마나 당했던가. 나는 재빨리 다가가 허총관을 부축하며 그를 다독였다.


“허총관님.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좋은 것도 많이 먹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구요. 하지만 이제는 정말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끼만 더···”


“한끼만 더 먹기를 수십번이오”


“며칠만 더 기다리시면 백리연 아가씨도 돌아오실 겁니다. 아가씨와 인사라도 나누고 떠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허총관의 말을 들은 대식이 눈을 반짝 반짝 빛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우, 그렇다면 더더욱 빨리 가야겠습니다. 총관님께서도 저를 이렇게 꼭 붙잡아놓고 계신데, 그 분이 돌아오시면 어떻게 떠날 수 있겠습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숲 속에서의 대화 이후 백리연과 마주할 일은 많지 않았다. 그녀를 포함한 백리세가의 주요 인물들이 정말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바빴기 때문이었다.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무인들의 장례를 치르고, 그들이 관리하고 있는 세가들, 우방 문파들을 추스리고, 그들을 상대했던 사파무리들을 마저 정리하는 일까지··· 정말 모든 일들이 하나 하나 까다롭고 만만치 않은 일들이었다.

거대 무림세가를 운영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다. 다른 세가였다면 대충 아래사람을 시켜서 진행할 법한 일도, 백리율 가주와 그의 자제들이 모두 직접 뛰기 때문에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떠나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하지만 이렇게 금방 그 순간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나의 굳은 의지를 확인한 허총관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저희가 준비해 놓은 선물이 있습니다”


허총관의 신호를 받은 무인이 재빠르게 어딘가로 사라졌다. 떠나는 것을 그렇게 만류하면서 미리 이별 선물까지 준비했다니 참으로 치밀한 양반이 아닌가.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태연하게 손을 내저었다.


“선물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지금까지 이것 저것 받은 것만으로도 너무 과분하오. 금자를 더 주신다면 굳이 막지는 않겠지만···”


선물을 받겠다는 것인지 안받겠다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나의 말을 들은 허총관이 껄껄 웃으며 나를 안내했다.


“사실 무엇이 되었든 금자가 최고이긴 하지요. 하지만 이번에 준비한 것은 금자가 아닙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금자가 아니라구요? 흐음···”


입맛을 쩝 다시며 그를 따라걸었다. 마침내 이별이 순간이 왔음을 깨달은 대식은 눈물을 글썽이며 이곳 저곳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백리세가의 모든 것을 눈에 담아놓겠다는 듯이.

한참을 걸어 쪽문을 통해 후원을 벗어난 허총관이 무언가를 가리켰다.


“저희가 준비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


나와 대식은 깜짝 놀라 입을 쩍 벌렸다.

그것은 두마리 준마가 이끄는 마차와 수레였는데, 고향에서부터 끌어오던 마차와 비교하면 그 크기와 화려함, 고급스러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말들의 쭉 뻗은 다리와 탄탄한 근육, 영롱한 눈동자는 또 어떠한가! 얼마 전 눈물을 머금고 떠나보냈던 늙은 당나귀들이 그야말로 환골탈태하여 되돌아온 셈이었다. 게다가 마차 뒤에 연결된 수레에는 무언가가 가득 담겨 있기까지 했다.


허총관이 쭈글쭈글한 얼굴에 미소를 띄며 물었다.


“뒤쪽 수레에는 이 지역에서 최상품으로 치는 붓과 벼루, 먹과 같은 문방사우들을 넉넉히 담았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판매하시면 좋은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마음에는 드시는지요? ”


“마음에 들다 뿐이겠습니까! 저같은 떠돌이 상인에게는 최고로··· 참으로 과분한 선물입니다. 말도, 마차도 참 기깔나는군요!”


나 답지않게 겸손을 떨자 허총관이 하하 웃었다.


“마차 내부에 비하면 외부는 검소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끌게 될까봐 외부 장식은 일부러 떼어낸 것도 많죠. 한번 문을 열어 보시죠”


“굳이 일부러 떼실 것 까지야···


본디 나란 인물은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마차 문을 벌컥 열어보았다.


“....?!?!”


허총관의 말마따나 마차 내부는 정말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오묘하게 서로 다른 빛깔을 내는 갖가지 원목과 고급스러운 천, 화려한 장식들은 마치 고관대작이나 부자집 자제들이나 사용할 법한 품위가 느껴진달까.


그런데···


“조승지, 네놈이 왜 이곳에 있어?”


마차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있던 조승지 녀석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왜긴 왜야? 이 마차는 본디 우리 조가장의 것인데”


허총관이 빙그레 웃음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사실 저희 백리세가가 준비한 것은 수레와 문방구들이고, 말과 마차 자체는 조가장의 것이 맞습니다. 조호연 장주님께서 이 소협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을 담아 지원해주셨죠”


조승지가 그것 보라는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텅텅 두드렸다. 하지만 내 질문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지원해준 건 고맙고 감사한 일이지. 그런데 왜 네 녀석이 이곳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냐 이거다”


“아, 미리 얘기할 시간이 없었군. 네가 개봉 쪽으로 간다며? 나도 그곳에 볼 일이 있어 겸사겸사 이 마차를 타고 함께 가기로 했다”


“개봉을 가는데 굳이 내 마차에 타고 가겠다고? 누구 맘대로?”


“내 마차였던 것이니까 내가 타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 그렇지 않나?”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논리란 말인가. 어이없어서 허총관을 바라보자,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슬슬 열이 받아서 목소리를 높이려던 순간, 또다시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다. 제가 늦지 않았군요!”


간촐한 짐을 짊어지고 쏜살같이 달려온 임강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마차에 올라탔다. 어이가 없어서 서로 맞은편에 떡하니 자리잡은 조승지와 임강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내 표정을 본 임강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허총관에게 물었다.


“아직 이 소협에게 말씀을 못 드렸나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던 허총관이 그제서야 멎적게 웃었다.


“사실 대략 오늘쯤 이 소협께서 떠날 거라는 말을 백리연 아가씨께서 하셨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조승지 도련님과 임강 도련님에게 전해져서, 마침 이 분들도 개봉에 볼 일이 있다고 하니 함께 합류하기로 된 거지요”


참으로 오싹한 일이었다. 나 스스로도 갈팡질팡하는 내 마음을 모르겠는데, 도대체 백리연은 내가 오늘쯤 떠날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예견할 수 있단 말인가. 무슨 점쟁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조승지 이 녀석은 그렇다고 치고, 임강 그대는 어찌된거요? 부친께서는 돌아오셨소?”


임강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버지께서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죠. 사실 제가 이곳에 합류한 것도 그때문입니다”


단혈맹과의 전투가 끝난 뒤, 숲 속에서 이어진 주량 대결에서 우리 모두를 화려하게 제압했던 것이 임풍의 마지막 모습이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내가 쓰러지고 다시 깨어났을 때에 이미 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는데, 그 뒤로는 아무도 임풍을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알고보니 제 옷자락에 짧은 글귀를 남기셨었더군요. 그것을 너무 뒤늦게 발견했습니다”


“무슨 글귀였길래?”


“혹시 모르니 무림맹에 다녀오겠다고 하셨는데··· 저로서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설마 그 단혈맹의 반강이란 자가 무림맹에서 어찌 처리되는지를 궁금해서 그런 것일려나요?”


“하, 빡빡이 아저씨 또 그 새를 못참고···”


문득 남궁세가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던 백리연의 말을 떠올렸다. 임풍은 그녀의 설명이나 해명을 제대로 듣기도 전에 제멋대로 떠나간 것이니, 그 급한 성질은 참으로 알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임풍을 생각하자 새벽 밤공기를 울리던 그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목젖까지 차올랐던 싸구려 독주의 향기까지도.

다음 번에는 조금 더 좋은 술로 대결을 신청하여 제대로 자웅을 겨뤄야 할 것이다.


“길도 엇갈릴지 모르는데 그냥 이곳에서 기다리는게 낫지 않겠소? 오금상단도 누군가 운영을 해야할 것 아니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아버지나 저나 무공수련에만 매진했기 때문에 호인청 숙부님 혼자서 상단을 이끌어도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아무튼 두 사람 모두 꼭 내 마차를 타겠다는거군”


“애초에 내 마차라니까?”


“마차도 넓은데 제 자리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깊게 심호흡을 하며 치밀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혔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한다.

진정한 상인이라면 불리한 상황도 유리하게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좋아! 까짓거 뭐 어려울게 있겠는가. 같이 갑시다!”


임강과 조승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내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공짜로 태워줄 수는 없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두 녀석을 흐믓한 미소를 띄며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협상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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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삼, 오 (三, 五) +1 24.06.26 494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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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의혹 (2) +1 24.06.24 568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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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이젠 신물이 난다. +1 24.06.19 911 19 12쪽
44 남궁세가 (2) +1 24.06.18 882 20 12쪽
43 남궁세가 (1) +1 24.06.17 931 20 12쪽
42 피의 냄새 +1 24.06.16 941 21 11쪽
41 하얗고 붉은 것들 +4 24.06.15 970 19 12쪽
40 알량한 자비심을 버리고 +2 24.06.14 977 20 12쪽
39 격전 +2 24.06.13 985 21 12쪽
38 날카로운 검 끝에 +2 24.06.12 958 23 12쪽
37 주인이 되어주마 +1 24.06.11 986 21 12쪽
36 반강 (4) +2 24.06.10 1,041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5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9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3 27 13쪽
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7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3 22 12쪽
30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39 25 12쪽
29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1) +1 24.06.03 1,251 2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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