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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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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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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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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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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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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
12쪽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DUMMY


잠시 망설이던 이진평이 머리를 긁적이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거 네 검이지?”


화려한 손잡이에 날카로운 검날이 번쩍이는 검. 그것은 틀림없이 조승지가 그에게 던져주었던 검이었다. 임강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순간, 이진평이 사평을 제압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이진평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아까 전에는 아주 좋았다. 절묘한 시점이었어”


둘 사이에 언제든 끼어들 생각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던 임강과 대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지도 못한 칭찬에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


당황한 것은 조승지도 마찬가지였다. 입꼬리가 씰룩이고 광대가 승천하던 그가 재빨리 입술을 오므렸다. 검을 받아들려던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다시 검을 내밀었다.


“가져도 좋다”


이번엔 이진평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정말?”


“그래. 내가 일전에 네 것을 부러뜨리지 않았더냐”


“그거 어차피 동네 굴러다니던 싸구려검···아얏!”


대식이 이진평의 허리춤을 꽉 꼬집었다. 조승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대식과 투닥거리던 그가 조승지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거 주고 나보고 이빨 되돌려 놓으라고 할 건 아니지? 갑자기 나중에 금자 몇 냥이니 어쩌니 하면서 청구한다던지 말이야”


그와의 대화가 이어질 때마다 조승지는 조금씩 혈압이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고개를 가로젓자 이진평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번쩍 번쩍 빛나는 검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그의 목울대로 침이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한참 고민하던 그가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괜히 좋은 검 들고 설치다가 제 명에 못산다”


“도련님—!!!”


대식이 입을 쩍 벌린 채 만류했지만 이진평은 마음을 굳힌 듯 검을 불쑥 다시 내밀었다.


“정말 괜찮겠나?”


“그래. 대신 저 수배지들이나 좀 확실하게 없애다오”


조승지는 쓰게 웃으며 검을 받아들었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무공실력을 갖췄으면서도 이렇게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높은 무공을 지녔기에 멋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배지는 모두 회수하도록 하지”


이진평은 스스로 검을 떠나 보냈으면서도 못내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쉬움에 입을 쩝 다시던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임강과 호인청을 비롯한 오금상단의 무인들, 조가장 무인들의 시선이 온통 자신에게 쏠려있음을 확인하고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살육극을 일삼던 사평은 격퇴되었고, 배신을 꿈꿨던 조가장은 이제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와 조가장의 갈등 또한 어느정도 봉합이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이제 그는 후련하게 이곳을 떠날 수 있을 터였다.


“자. 장사치는 이제 정말 떠나는 것으로 하겠소. 부디 모두들 아무쪼록···”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또박또박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


그의 황당한 작별인사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조가장 사람들은 진심이 담긴 함박웃음이었고, 호인청을 비롯한 오금상단 무인들은 당혹스러움이 담긴 헛웃음이었다.


얼굴을 묘하게 찡그리며 웃던 임강이 가슴팍을 부여잡은 채 비틀거렸다. 호인청이 다급히 그를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무리하지 말고 이제 좀 쉬십시오!”


“아니오. 이제 아버님에게 가봐야지”


“이 몸으로 대체 어딜 간다는 말씀입니까?”


무언가 말을 하려던 임강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오금상단 무인들이 다급히 몰려들었지만, 임강은 손을 내저어 그들의 손길을 뿌리쳤다.


“금방 괜찮아질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답지 않게 걱정어린 표정으로 임강을 내려다보면 이진평이 한마디 거들었다.


“제발 연장자 말 좀 들읍시다. 무지막지한 백리세가 남매에, 더 무지막지한 백리가주도 함께 있지않소. 게다가 아까 그 흉측한 늙은이도 이제 없는 것 아니오. 뭘 그리 걱정하시오?”


그 때였다. 이진평이 나타난 이후 내내 침묵을 지키던 조 장주가 입을 열었다.


“사평 하나를 잡았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그는 중간 관리자 정도에 불과할 뿐이야”


“.....!!!”


누구보다 상대방의 세력을 잘 알고있을 그의 말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 감돌았다. 조 장주가 숨을 허덕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사평까지였지만, 그의 뒤에도 옛 혈교에서 악명을 떨쳤던 이들이 수없이 있다고 들었다. 어둠 속에서 전혀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인물들 또한 셀 수 없지. 그들은 백리세가에게 더이상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일거에 제압할 생각이야. 절대 섣부르게 어설픈 병력을 동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지 않군. 좋지 않아!”


이진평이 외쳤다.


“모두들 가급적 혈교인지 혈변인지 하는 놈들이랑은 엮이지 않는 것이 좋겠소. 저 먼 곳으로 도망쳐서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겠군. 예전에도 무림맹이 혈교를 물리쳤다고 하지 않았소? 이번에도 무림맹이 그들을 물리쳐주지 않을까?”


“맹은 멀고 적들은 지척입니다. 당장 우리의 친구와 가족들이 위기에 빠져있는데 어찌 나 하나의 안전만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그 몸으로 혼자 가서 무엇을 어쩔 수 있단 말이오? 그대가 보기 드문 효자에 정의감이 차고 넘친다는 것은 것은 잘 알겠소. 하지만 때로는 현실을 인정하고 한발자국 물러나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오”


임강이 쓰게 웃었다.


“소협의 말씀은 제 안위를 걱정해서 해주는 말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 몸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아버지의 곁을 지켜야겠습니다”


설득이 불가능한 임강의 강경한 태도에 이진평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인청이 말했다.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 소단주님을 절대 혼자 보낼 수는 없습니다”


“아니오. 여러 명이 가봤자 눈에만 잘 뜨이고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야. 차라리 그대들은 조가장주님을 모시고 백리세가로 돌아가 세가의 방비에 힘을 보태도록 하시오”


임강은 이진평 쪽을 슬쩍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속도를 내는 것이 좋겠어. 뛰어난 경신술과 무공을 갖추었고, 남다른 의협심을 갖춘 누군가가 도와준다면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지”


“뭔데··· 뭔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된 이진평이 질색하며 뒤로 물러섰다.


“무공이고 의협심이고 다 떠나서, 내가 아까 전에도 분명히 가지 않겠다고 선을 긋지 않았나? 왜 자꾸 아무 상관없는 나를 걸고 넘어지는거요?”


“함께 싸워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저를 그곳까지 데려다만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도 어려우시겠습니까?”


임강이 한발자국 다가서자 이진평이 한발자국 더 뒤로 물러섰다.


“어렵소. 어렵습니다. 나는 갈길이 바쁜 장사치일 뿐이란 말이오. 의협심이나 정의감 같은 것은 내가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오. 내 앞가림 하나 하기에도 정신이 없단 말이지. ”


“그럴리 없습니다. 진작에 이곳을 떠났던 분께서 다시 돌아와 우리를 구해준 것은 어떤 이유란 말입니까?”


“그건 그냥 나를 쫓는 녀석들 면상 좀 확인 하려다가···”


“대협께서는 그 뒤로도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마지막 순간까지 그에게 맞서 싸운 것은 또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임강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한발자국 또 다가서자 이진평이 또 다시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기묘한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들을 지켜보던 호인청이 눈을 빛내더니 대식에게 무언가를 속닥였다. 손가락으로는 동그란 모양을 그린 채였다. 입이 쩍 벌어진 대식이 종종걸음으로 이진평에게 다가가 옆구리를 찔렀다. 그의 귓속말을 들은 이진평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정말? 그냥 데려다주기만 해도···?”


대식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진평이 눈알을 데구르르 굴렸다. 조승지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대식, 그리고 호인청과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은 이진평이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짐짓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본디 강호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이 몸의 원칙이긴 하다만, 상황이 긴박하니 한번쯤 예외를 두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그대의 아버지에게로 데려다주는 것까지만이 조건이라면 이 몸이 동행해주겠소”


마치 황궁이나 세외의 비밀고수라도 된 것 마냥 개입의 원칙 운운하는 이진평의 말에 조승지는 기가 막힐 뿐이었다. 더군다나 이제와서 마치 정의를 위해 움직이는 척 생색내는 꼴이라니. 그러나 호인청의 은밀한 제안을 알지 못하는 임강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대협···! 역시 전 대협을 믿고 있었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소. 갑시다!”


갑작스레 부지런해진 이진평과 대식이 출발을 서둘렀다. 아직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임강을 위해 오금상단의 무인들이 재빠르게 상단의 마차를 분리해 끌고왔다. 신나게 마부석에 오른 대식이 고삐를 잡았고, 임강이 호인청 등과 인사를 나눈 뒤 마차에 올랐다.


임강을 먼저 태운 이진평과 호인청은 초승달같이 눈을 뜬 채 밀담을 주고 받았다. 조승지가 슬쩍 옆에 다가가 엿들으니, 역시 상인들끼리는 뭔가 통한다느니, 처음부터 느낌이 좋았다느니, 평소 존경해왔다느니 하는 엉텅구리같은 말들이 얼핏얼핏 들려왔다.


어찌되었든 그 거래가 끝나고 나면 그들은 곧 백리세가와 단혈맹이 맞붙는 전장 한복판으로 떠날 것이다. 고작 세 명에 불과한 그들 무리가 무엇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벌어지는 승부의 향방에 따라 앞으로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뀔 터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의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창백한 얼굴의 조 장주가 생명력을 잃은 눈빛으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 회한과 쓸쓸함이 가득했다


잠시 망설이던 조승지는 마음을 굳히고 훌쩍 몸을 날렸다. 막 닫히려는 마차의 문을 황급히 붙잡으니 이진평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곳까지 향하는 지름길을 알고 있다. 내가 길을 안내하지”


“굳이··· 하필··· 네가···?”


이진평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위 아래로 흝었다. 그 시선이 또 한번 그의 성질을 건드렸지만 가까스로 참고 또 참았다.


“친구를 돕기 위해서야. 네 녀석이 좋아서 함께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라”


“···말 한번 이쁘게 하는군”


이진평이 임강을 돌아보았다. 임강이 활짝 웃으며 그를 반겼다.


“승지, 고맙군. 어서 타게!”


난데없이 조승지가 마차에 올라타자 당황한 조가장 무인들이 웅성웅성 거렸다. 조승지는 그들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아버지를 모시고 백리세가로 가라! 나는···”


멍하니 하늘만을 바라보던 조호연 장주가 돌아보았기에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아버지의 눈빛에 무슨 감정이, 혹은 무슨 말이 담겨있을지 알 수 없었다. 허락없이 움직인 것에 대한 꾸지람일 수도 있고, 자신에 대한 걱정이나 염려일 수도 있었다.


“이랴!!!”


대식이 기운찬 목소리로 외쳤다. 마차가 다그닥 거리며 출발했다.

조승지는 멀어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외쳤다.


조가장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은 뒤 돌아오겠다고.


“앗차! 신발 챙기는 것을 깜박했다!”


이진평이 자신의 벌거벗은 맨발을 내려다보며 외쳤다. 그러나 마차를 멈춰 세우기에는 이미 한껏 신난 대식이 열심히 말들을 채찍질 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하필 조승지의 고급스럽고 때깔 좋은 가죽신에서 멈추었다.


“어이, 남는 신발 없냐?”


그의 노골적인 시선은 사실상 조승지의 신을 내놓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승지의 혈압이 드디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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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남궁세가 (1) +1 24.06.17 931 20 12쪽
42 피의 냄새 +1 24.06.16 941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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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알량한 자비심을 버리고 +2 24.06.14 977 20 12쪽
39 격전 +2 24.06.13 985 21 12쪽
38 날카로운 검 끝에 +2 24.06.12 957 23 12쪽
37 주인이 되어주마 +1 24.06.11 986 21 12쪽
36 반강 (4) +2 24.06.10 1,041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5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9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3 27 13쪽
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6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3 22 12쪽
»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39 25 12쪽
29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1) +1 24.06.03 1,251 2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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