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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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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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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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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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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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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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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2쪽

삼, 오 (三, 五)

DUMMY

남궁휘가 싱긋 웃으며 반강에게 답했다.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어 유감이군. 존경하는 선배께서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존경하는 선배?”


반강이 코웃음을 쳤다.


“이상하군. 내가 아는 선배 대접이랑은 매우 달라. 백리세가 놈들 앞에서는 나를 당장 죽이자고 목소리를 매우 높이셨던데 말이야”


하하하. 남궁휘가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다 듣고 있었군. 정말 다 듣고 있었어.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절대 자네를 빼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걸 모를리는 없을텐데, 고맙다는 인사도 한번 없군?”


“차라리 죽게 내버려두지 그랬나? 아니지. 그냥 녀석들의 포로가 되는 것이 괜찮았겠군. 대 남궁세가의 후계자가 사실은 단혈맹에게 포섭되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았으면 내 가슴이 참으로 후련했을 텐데 말이야”


가시 돋힌 반강의 말에 남궁휘는 대답 대신 미소지었다. 반강은 붉게 핏줄이 터져있는 눈을 일그러뜨리며 남궁휘를 노려보았다.


“네 병력이었으면 백리세가 놈들을 끝장내고도 남았다. 맹의 행사를 도와주기는 커녕 방해를 했으니 군사에게서 어떤 책망을 들을까?”


“모두에게는 각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내가 벌써부터 정체를 드러내며 설치고 다니면 그것이야말로 미련한 짓이지”


“......”


“그리고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승패는 결정이 나 있었어. 목숨이나 건진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남궁휘의 태연한 반박에 반강은 할 말을 잊었다. 남궁휘에게 전투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한창 전투에 몰입해 있던 그로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두 손과 발을 단단히 결박하고 있는 밧줄을 가리켰다.


“알았으니 이것이나 빨리 풀어라”


남궁휘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는 안되지”


“...!!!”


반강의 눈이 분노로 차올랐다. 풀어주려는 생각이 아니었다면 굳이 그를 빼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남궁휘는 반강의 반응을 즐기기라도 하듯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나도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자네를 구해낸 것이 아니겠는가. 내 도움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먼저 받아야 하겠어”


“대가?”


남궁휘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는 자세였다. 서열상 그보다 위라고 할 수 있는 반강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한쪽 발을 까닥이며 말을 이었다.


“전해듣기로는 네놈에게는 특이한 취미가 있다고 하더군. 희귀하고 진귀한 병장기들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은다던데··· 그 중 하나 정도는 생명의 은인에게 내어줄 수 있지 않겠나?”


반강은 그의 말이 진심인지를 파악하려는 듯 남궁휘를 찬찬히 살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여 농담을 하는 기색이라고는 없었다. 반강은 의아하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네놈의 무공이나 재력이 부족하지 않을텐데, 뭐하러 그딴 기병들에 욕심을 내지?”


남궁휘가 흐- 웃었다.


“자네와 같은 이유 아니겠나? 나는 반짝이는 모든 것들이 좋더라고”


“......”


“아무래도 어렸을 때 맺혔던 것이 많았던 것 같아. 양보를 많이 하고 자라서 그런가? 그래서 남들보다 더 욕심을 내기로 했다고 해두지. 눈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다 차지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그것이 권력이든, 재물이든 ...그리고 여자가 되었든 말이야. ”


남궁휘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반강은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눈빛을 보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비교적 최근 단혈맹에 합류한 오사(五蛇), 남궁휘는 그 또한 항상 만나보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보아하니 그는 알려졌던 것보다 더 솔직하고 탐욕스러운 인물이 아닌가. 원하는 것이 분명한 자는 상대하기가 쉬운 법이다.


“보아하니 원하는 것이 따로 있는 모양이군. 말해보게”


“다른 것은 관심없어. 내가 원하는 것은 은벽의(隱璧衣)라네”


잠시 여유를 되찾았던 반강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렸다.


“네놈이 그것을 어찌···”


“그것은 알 것 없다. 어디에 두었는지를 이야기해라. 내가 직접 물건을 챙기고 나면 그때 풀어주는 것으로 하지”


뚫어져라 남궁휘를 노려보던 반강이 피식 실소했다.


“그것은 내 소장품 중에서도 으뜸가는 물건이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물건을 다른 곳에 놓고 다닐리가 만무하지 않겠느냐”


“허튼 수작 부릴 생각하지마라. 네가 입고 있지 않은 것을 이미 확인했으니”


반강은 바닥에 누운 채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겠지. 어처구니 없겠지만 보의는 이미 빼앗겼다”


남궁휘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빼앗겼다고? 벌써?”


“그래. 네 녀석도 한발 늦었군”


정작 보의를 빼앗긴 것은 자신이면서도 반강은 고소하다는 듯이 낄낄 웃었다. 남궁휘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 녀석이 쓰러진 것과 내가 도착한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도대체 그 사이 누구에게?”


“누구긴 누구겠느냐. 나를 쓰러뜨린 놈이지”


“설마 백리담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니면 임풍의 양자 녀석?”


반강이 코웃음을 쳤다.


“그 조무래기들이··· 흥···흥! 그런 녀석들이 나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나?”


“네놈 얼굴은 염주홍단공의 주먹에 얻어맞은 흔적 아닌가?”


“...그것은 이미 내가 녀석에게 패한 다음이었어”


“그렇다면 누구지? 네 녀석을 잡은 놈은. 그 녀석을 찾아서 보의를 회수하면 되겠군”


반강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백리담이나 임강에게 패한 것으로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자존심이 강한 그로서는 정체도 모르는 젊은이에게 패배했다는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도 정체를 잘 모르겠다. 이제 갓 스무살 정도나 되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할 뿐이고, 무공을 익혔다는 것도 전혀 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맞닥드리기까지는 알 수가 없어. 백리세가와 주변 세가들을 조사할 때는 전혀 나오지 않던 녀석인데, 어느새부턴가 불쑥 튀어나와 그들을 돕고 있더군”


“거짓말 하지 마라. 정체도 모르는 젊은이가 어떻게 네 보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거지?”


“녀석의 검이 내 몸에 닿아 부러졌지. 아마 무언가 내 몸을 보호하고 있을거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성능은 확실하군. 그 자의 외모는?”


“머리는 산발이고, 눈꼬리는 째져서 족제비여우처럼 생긴데다, 신발도 신지 않고 거렁뱅이처럼 나대는 놈이었지. 스스로를 장사치일 뿐이라고 소개하더군”


그의 묘사를 듣던 남궁휘가 얼굴을 찌푸렸다. 어제 밤의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 보았지만 그런 인물을 본 기억은 없었다. 갑작스레 무언가에 생각이 미친 그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반강의 눈 앞에 내밀었다.


“혹시 이 자인가?”


자신의 눈앞에 내밀어진 종이를 본 반강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맞다. 어떻게 이 자를 그린 그림을 가지고 있지?”


“전장에 떨어져 멋대로 돌아다니던 것을 그림 솜씨가 좋길래 챙겨 놓았을 뿐이다. 이 자가 맞다니 웃기는 일이로군”


“틀림없다. 이 녀석이 맞아”


기막힌 우연에 어이없어하던 반강이 다시 한번 그림에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나저나 몇가닥 선으로 완벽하게 그 자의 얼굴을 묘사해놓았군. 대단한 솜씨다”


“대단한 실력이야”


남궁휘와 반강, 둘 모두 갖가지 귀한 물건들과 예술작품에 조예가 깊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초상화를 감상하던 남궁휘가 스르릉 검을 꺼내들었다.


“좋아. 덕분에 이 녀석을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겠군. 그에게서 내가 직접 회수하기로 하지”


반강은 마침내 밧줄에서 풀려난다는 생각에 반색했다.


“그럼 이제 날 풀어줘야지?”


“아니지. 네 녀석에게서는 다른 것이라도 대신 받아내야지. 그런데 그 전에···”


남궁휘의 신형이 번뜩였다.


콰직!


그의 검이 헛간 뒤쪽의 벽면을 파고 들었다.

다시 천천히 검을 뽑아낸 그가 검날을 유심히 살폈다.

푸르스름한 빛을 은은하게 내뿜는 그의 검에는 여전히 핏방울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띈 그가 검집에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반강은 아직까지 밧줄에 묶여있는 자신의 처지도 잊고 그의 검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좋은 검이로군”


남궁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라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최고의 물건이 제공하는 그 만족감이란... 범인(凡人)에게는 그 차이가 미미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우리같은 이에게는 하늘과 땅만큼의 거리가 있지. 금방 돌아오겠다”


남궁휘가 헛간의 문을 열고 나가자 반강이 물었다.


“못 잡은건가?”


“꽤나 실력이 있는 녀석이야. 하지만 치명상을 입었으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다”



***



헛간 뒤쪽으로 돌아간 남궁휘는 그의 검이 파고들었던 자리를 유심히 살폈다. 모래와 흙이 뒤섞인 땅은 검은 피로 흠뻑 적셔져 있었다. 이 자리에서 즉사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양이다. 하지만 그 피의 주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남궁휘는 천천히 핏자국을 따라 걸었다.


그와 반강의 말을 엿듣던 자는 여러모로 경탄할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남궁가 정예 무인들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침입했을 뿐만 아니라, 빠르고 정확하게 요혈을 노렸던 급습에도 마지막 순간 몸을 비틀어내는 감각, 작은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는 강인함까지. 게다가 명백한 치명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꽤나 멀리 도망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결코 그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숲 속으로 접어들자 곧 격렬한 전투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나무 사이를 걸어나가자, 휘영찬란한 달빛을 받으며 싸우고 있는 무인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흡사 늑대 무리와 거대하지만 외로운 곰의 싸움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가슴팍을 부여잡은 거구의 사내가 수십명의 남궁세가 무인들에 둘러싸여 격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미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사내는 시종일관 밀리는 구석이 없었다. 아무 병장기도 없이 한쪽 주먹만을 휘두르고 있을 뿐이지만, 이미 그 주먹에 당한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이곳 저곳에 널부러져 있었다.


남궁휘는 팔짱을 끼고 선 채 그들의 전투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들의 주인이 도착했다는 것을 눈치챈 남궁세가 무인들이 공세를 높였다. 하지만 거구의 사내는 흔들림 없이 단단하게 남궁가 무인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무인들을 지휘하던 남궁휘의 그림자가 황급히 그의 주인에게 다가와 목례했다.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주변을 경계하라는 임무에도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상처입은 상대방을 아직까지도 잡아내지 못하고 있으니 면목이 서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남궁휘는 그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화가 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남궁휘의 그림자가 직접 몸을 날렸다. 주변을 맴돌며 기회를 엿보던 그가 거구의 등 쪽으로 매섭게 파고 들었다. 흉흉하게 휘두르고 있는 오른주먹이 닿지 않는 반대편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훽 몸을 돌린 거구의 사내가 내내 상처를 억누르고 있던 손을 번개같이 뻗어 그림자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


커다란 손아귀로 그림자의 얼굴을 움켜쥔 사내가 활시위를 당기듯 오른주먹을 뒤로 당겼다.

그 붉은 주먹이 그림자의 얼굴을 터뜨리기 직전,

어느새 사내의 뒤에 나타난 남궁휘가 그의 뒷덜미를 잡고 땅바닥에 메다 꽂았다.


쿵—


거대한 소리가 숲 속을 울렸다.


바닥에 튕겨졌던 거구의 사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다잡은 그의 입에서 왈칵 피가 쏟아져 나왔다.


어느새 다시 멀찍이 물러난 남궁휘가 피범벅이 된 거구의 사내에게 말했다.


“이런, 누군가 했더니 당신이었구려”


임풍 단주가 핏발이 선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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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삼, 오 (三, 五) (2) +1 24.06.27 421 14 13쪽
» 삼, 오 (三, 五) +1 24.06.26 492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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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의혹 (2) +1 24.06.24 565 15 12쪽
49 의혹 (1) +1 24.06.23 648 15 12쪽
48 숲에 부는 바람. +1 24.06.22 709 18 12쪽
47 딱히 바라는 것은 없고. +1 24.06.21 784 17 12쪽
46 금칠 +1 24.06.20 817 22 12쪽
45 이젠 신물이 난다. +1 24.06.19 907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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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남궁세가 (1) +1 24.06.17 930 20 12쪽
42 피의 냄새 +1 24.06.16 940 21 11쪽
41 하얗고 붉은 것들 +4 24.06.15 969 19 12쪽
40 알량한 자비심을 버리고 +2 24.06.14 975 20 12쪽
39 격전 +2 24.06.13 983 21 12쪽
38 날카로운 검 끝에 +2 24.06.12 955 23 12쪽
37 주인이 되어주마 +1 24.06.11 985 21 12쪽
36 반강 (4) +2 24.06.10 1,039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4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8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1 27 13쪽
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5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1 22 12쪽
30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37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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