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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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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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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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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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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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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
12쪽

금칠

DUMMY


나는 안색이 변한 두 명의 청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백리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달라지는 두 청년.


조승지야 그렇다고 쳐도, 만약 임강의 저 눈빛이 진짜라면 그는 친구의 정혼자를 상대로 몰래 마음을 키워온 것이 된다. 이런 것을 은밀한 삼각관계라고 하는 것일까? 만약 이 셋에 퀴퀴한 노총각- 남궁휘까지 가세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리고 나는?


‘음···’


그 때, 백리율 가주와의 은밀한 이야기를 마친 백리연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죄송해요. 저희들끼리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군요”


이야기의 당사자가 다가오자 우리는 입을 꾹 다물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백리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죠? 혹시 또 무슨 일이 생긴건가요?”


꿀벙어리가 된 모두를 대신해 내가 입을 열었다.


“별 것 아닙니다. 퀴퀴한 노총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퀴퀴···네? 노총각이요?”


백리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임풍이 풉- 헛웃음을 터뜨리며 두툼한 손바닥으로 내 등을 두드렸다. 나름 친근함의 표시로 두드린 것이었겠지만, 그 한 방 한 방에 내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가까스로 웃음을 참아낸 임풍 단주가 백리연 쪽을 슬쩍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것도 아니다. 몸은 괜찮은거냐?”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시잖아요? 저, 보기보다 튼튼합니다”


백리연이 싱긋 웃으며 팔뚝을 들어보였다. 이곳 저곳에 입은 여러 상처에도 불구하고, 처음 남궁세가의 무사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나타난 창백한 모습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까만 해도 너는··· 아무튼 괜찮다니 되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어찌된 것이냐? 왜 그렇게 남궁세가 녀석의 말을 곧이곧대로 다 들어준 것이야?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지?”


임풍 단주가 성급하게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백리연은 차분한 표정으로 그를 진정시켰다.


“단주님. 그것은 차후에 설명드릴 기회가 있을 거에요. 오늘은 모두들 많이 지치셨을테니, 일단 다들 푹 쉬는 것으로 하시죠”


임풍과 그녀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백리율 가주와 백리담이 천천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몰라도 백리율 가주, 그리고 백리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백리연은 아무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세가에 사람을 보냈으니 내일 아침이면 이곳을 수습하는 것을 도와줄 사람들이 도착할 거예요. 그 전까지는 이곳에서 진을 치고 노숙을 해야 할 것 같군요”


곧 우리들의 주변으로 무인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모두라고 해봤자 수도 없이 늘어져있는 시체들에 비하면 작디 작은 무리에 불과했다.

그가 무인들 한명 한명과 눈을 마주친 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오늘 하루, 모두들 고생했다. 고맙다. 함께 싸워주어서. 그리고··· 살아남아주어서”


소리높여 흐느끼거나 통곡하는 이는 없었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눈망울이 물기를 머금고 별처럼 빛났다.

오늘 살아남지 못한 자들은 밤하늘의 별이 되어 빛나게 될 것이다.


“가주님, 그리고 백리연 소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내내 잠잠하던 조승지가 앞으로 나서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이렇게 모두 모였을 때 꼭 이야기드리고 싶었습니다. 저희 조가장은···”


그는 처음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그 다음에는 담담히 자신이 자신이 보고 들은 것에 대하여 털어놓았다. 그의 아버지 조호연 장주의 배신, 단혈맹 무리와 괴창 사평과 협력하여 백리세가의 본가를 장악하려던 시도, 그들의 앞을 막아섰던 임강과 나···


이야기는 꽤나 길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중간에서 멈추거나 질문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한참동안 조승지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백리율 가주가 장탄식을 뱉어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호연 장주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깊게 단혈맹과 연루가 되어있을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 만약 일이 조금이라도 잘못 흘러갔다면 본가에 남아있던 식솔들을 영영 못 볼 뻔하지 않았는가”


그의 탄식을 들은 조승지가 털썩 땅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부디 아버지와 저희 세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모든 것이 저의 죄입니다. 저의 부족함입니다!”


백리율 가주는 조승지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볼 뿐 아무 답이 없었다.

임강이 재빨리 그의 곁에 다가가 함께 무릎을 꿇었다.


“가주님. 비록 조가장이 한때 잘못된 유혹에 휩쌓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 또한 단혈맹의 무리에 이용당했을 뿐, 결국 사평에게 배신당하여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습니다. 또한 승지 이 친구도 백리세가와 우방가문들을 살리기 위해 이곳 전장까지 목숨을 걸고 달려왔으니, 그의 공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조승지는 땅에 조아린 머리를 감히 들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 그리고 가문을 대표하여 용서를 구하는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를 대신해 목소리를 높여 호소하던 임강이 나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눈짓을 보냈다.


조승지는 얄밉지만 미워할 수는 없고, 괘씸하지만 나름 미안하기도 한 녀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고귀하고 뻣뻣한 무릎을 녀석을 위해 꿇는 것은 좀 아니지 않겠는가. 어찌 해야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눈치를 보는 사이, 다행히 백리율 가주가 먼저 나서 조승지와 임강을 일으켰다.


“이것이 어찌 조호연 장주만의 잘못이겠느냐. 다른 이들과 주변 문파들의 불만을 사전에 헤아리지 못한 나의 불찰이기도 하다. 우리 백리세가가 좀 더 품이 넓었다면 사파들이 단혈맹같은 세력의 꼬임에 쉽게 넘어가는 일도 없었겠지. 태평성대에 취해 늘 자중하고 경계해야 함을 잊고 있었구나”


백리율의 말에 백리연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문파를 운영했는지, 그들과 주변 문파들간에 어떤 복잡한 사연이 있는지는 외부에서 온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이들 앞에서 직접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 수 있는 조직의 수장이 또 누가 있겠는가.


백리율 가주가 조승지의 어깨에 한 손을 올렸다.


“조 장주와 좀 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봐야겠구나. 그가 마음을 열어준다면 나 또한 더이상 조가장의 죄를 묻지 않겠다. 내 너에게 약속하마”


조승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웃음과 울음이 섞여 한껏 찌그러진 얼굴이 참으로 보기 흉했다. 백리율 가주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이렇게 가문을 대표하여 앞에 선 모습을 보니 제법 사내다워졌구나. 앞으로도 더이상 네 아버지의 뒤에 숨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느냐?”


“네!!!!!”


조승지가 우렁차게 답했다.


“하지만 연이와의 정혼은 파기해야 할 것이야”


“...!!!”


약주고 병주는 백리율 가주의 화법.

조승지의 얼굴이 다시 창백해지고, 그들의 대화를 듣던 모두가 술렁였다.

백리연과 임강의 몸이 움찔하고, 대식이 내 옆구리를 세차게 꼬집었다.

조승지는 입술을 일자로 다물며 머리를 조아렸다.


“각오했던 일입니다. 이제와서 어찌 감히 약속을 지켜달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것을 처벌이나 보복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솔직히 말하자면, 아비된 입장에서 하나의 구실이 되었을 뿐이다. 애초에 당사자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선대에서 이루어졌던 약속이었으니 말이다”


백리율 가주가 자신의 딸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 딸이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연이에게는 백리세가라는 그릇조차 너무 작아. 매사에 있어 현명하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니, 나는 이 아이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삶을 살아내기를 바란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본인의 아버지가 금칠을 해대니, 평소 거침없는 성격의 백리연도 배겨내지 못하고 얼굴이 불그스레 해졌다. 백리율 가주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조승지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시 정리해주지. 그저 원점으로 돌아갔을 뿐인거다. 이 아이의 결정에 따라 아직 승지 너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이지”


“···.!!!”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조승지가 번쩍 얼굴을 치켜들었다.

사방이 칠흙같이 어두워져 가는 가운데도 그의 얼굴이 반짝 반짝 빛났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꼴을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어 불쑥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림도 없는 이야기죠. 저 녀석은 앞니도 없지 않습니까?”


조승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으르렁거렸다.


“네 녀석이 깨부수지 않았더냐!”


녀석과 내가 투닥대는 탓에 분위기가 잠시 엉망이 되어갔다. 모두가 슬픔을 잊고 잠깐이나마 웃으며 우리들의 못난 꼴을 바라보았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다시 정리된 것은, 임풍 단주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모두의 앞으로 들이밀었을 때였다. 그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자, 우리가 이 친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 너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청년 고수란 말이냐? 무슨 이유인지 아까 남궁세가 녀석들 앞에서는 몸을 사리던데, 솔직히 네가 없었으면 우리가 패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곳의 모두가 명백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란 말이다”


사람들이 총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비두사, 그리고 반강과 싸우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던 바로 그 무인들이다. 아무리 내 얼굴 피부가 두껍다 하더라도 이 뜨거운 시선들을 받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황급히 손사레를 치며 뒤쪽으로 물러나려 했지만, 임풍은 내 어깨를 손으로 단단히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어후, 아닙니다. 몸을 사린게 아니라 정말 마지막으로 반강 녀석을 무찌른 것은 백리담 공자의 검과 임강 공자의 주먹이란 말입니다. 저는 그 앞에서 광대처럼 춤이나 추고 시선을 교란시켰을 뿐이오”


“쓸데없는 소리. 자네가 아니었다면 어찌 그를 이겨낼 수 있었겠나? 우리야말로 마지막에 살짝 손을 보탰을 뿐이지”


백리담이 단번에 내 말을 잘라냈다. 나는 다급히 백리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전혀 나설 생각이 없었다. 이번엔 내가 얼굴에 금칠을 당할 차례라는 것인가.


임풍이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물었다.


“그래. 도대체 자네의 정체가 뭐야?”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저 막 고향을 떠나온 떠돌이 장사치일 뿐입니다. 저기 백리연 소저에게 물어보십시오! 거짓말이 아니라니까요?”


“그럴리가. 아무런 사문도, 배경도 없는 이가 그렇게 싸운다고? 우리 모두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저 반강 녀석을 상대로?”


백리율 가주가 입을 열었다.


“반강 뿐이 아니다. 괴창 사평 또한 수십년전 이름을 날렸던 전대의 고수인데, 자네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어찌 우리 백리세가의 식솔들이 무사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그를 막자마자 곧장 이곳으로 달려와 반강을 상대해주었으니···”


내가 바라는 것과 다르게 사람들의 시선은 더욱 더 뜨거워져만 갔다.


“제가 일찍이 말씀드렸잖아요. 이 소협은 저희 백리세가의 큰 귀인이 될 것이라고”


백리연이 싱긋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녀석이 썩 괜찮은 놈이라는 것을 알고있었지”


백리담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나를 보고 돈만 밝히는 속물 양아치라고 했던게 백리담 아니었던가?


임강, 조승지, 대식도 그에 뒤질세라 다급히 끼어들었다.


“괴창 사평을 물리친 뒤 나몰라라 떠나려는 그를 제가 설득해서 이곳으로 데려왔지요”


“내가 앞니들을 모두 희생해서···”


“제가 업어키운 도련님이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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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피의 냄새 +1 24.06.16 940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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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반강 (4) +2 24.06.10 1,039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4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7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1 27 13쪽
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5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0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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