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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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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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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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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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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8,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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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4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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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2쪽

알량한 자비심을 버리고

DUMMY

단지 동률을 이루고 있었을 뿐, 딱히 반강이 나에게 밀리고 있던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더이상 일대일의 승부로 끌고가지 않겠다는 그의 의사는 명백했다. 자신이 패배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차단해버리려는 것일까.


다급히 반강에게로 뛰쳐들려 했지만, 그의 손짓 한번에 험상궂은 무인들이 빈 공간을 빽빽하게 메우며 달려들었다. 녀석이 여유롭게 발걸음을 거닐며 무인들 사이로 자취를 감췄다.


“내 주인이 되어주시겠다던 분이 어디 가시는 거지? 주인님? 주인님!”


“조금만 기다려라. 이제 더 재미있어질 것이야”


사방을 울리는 함성 속에서도 녀석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녀석의 자취를 찾아 높이 뛰어보았지만 이미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습을 감추는 것도 녀석이 가진 재주 중 하나인 듯 했다.


이 수많은 무리들을 모두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은 나에게는 없다. 이렇게 싸움이 전개되는 것 또한 나의 계산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당황한 내가 사방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


“이 버러지 같은 놈들. 내가 돌아왔다!!!”


전장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낯익은 목소리.

힘찬 기합과 함께 하늘에 솟구쳤다가 내 옆에 내려선 것은 어느새 기력을 회복한 백리담이었다. 백리세가를 상징하는 하얀 무복에 푸르스름한 검을 들고 사방을 둘러보는 모습이 늠름하기도 하다. 거 참, 그 시점 한번 절묘하기도 하지.


정의의 사도마냥 비장하게 검을 뽑는 백리담을 바라보고 있을 때, 뒤 쪽에서 나를 향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으로 고생 많았네. 부끄럽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힘을 보태도록 하지”


나는 황급히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중후한 인상의 중년인은 틀림없이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율이다. 나는 다소곳하게 두 손을 조아린 채 그에게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고생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나의 우렁찬 대답에 백리율 가주가 미소를 지었다.


“연이에게 귀에 닳도록 자네의 이야기를 들었네. 과연 그 아이의 말이 틀리지 않았구만”


백리연을 언급하는 그의 말에 나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곳 어디에도 백리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백리담이 눈빛을 번뜩이며 불쑥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우, 이제 내가 모두 쓸어버릴테니 구경이나 할 수 있도록”


그가 언제부터 나를 아우 삼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백리세가 부자가 합류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백리율 가주가 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들아. 너는 아직 저 반강이란 자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혹 그 자를 발견하더라도 경거망동하게 혼자 달려드는 일은 없어야한다. 알겠느냐?”


“네네. 하지만 아버님의 상대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아버님께서 녀석을 쪼개놓는 동안 제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잘 묶어놓겠습니다”


백리율 가주는 그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을 읽은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백리담에게로 고개를 돌린 그가 다시 한번 당부의 말을 했다.


“기력을 배분해서 싸워라. 아까 전처럼 한번에 모든 기운을 쏟아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네네. 모두 쓸어버리겠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있는걸까. 백리담의 검에는 모든 내공이 집중된 듯 범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백리율 가주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대협. 저도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임풍에게 혈도를 제압당했던 임강 또한 어느새 돌아와 나의 옆에 섰다. 제대로 싸울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것을 만회하려는 듯 이미 온 몸은 붉게 달아올라 후끈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빡빡머리··· 아니, 그대의 아버지는 괜찮은 거요? 더 돌보지 않아도 괜찮겠소?”


“다행히 위험하지는 않은 수준의 상처인 것 같습니다. 혹시 몰라 승지에게 잘 부탁해놓았습니다”


뒤쪽을 돌아보니 백리세가의 무인들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조승지가 임풍과 대식을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손에는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청강검을 두개씩이나 들고 있었다. 녀석도 나름 어떻게든 제 역할을 해내려는 모습.


좌우로는 백리세가의 가주와 소가주, 그리고 임강이 있고, 우리의 뒤로는 아직까지 살아남아 버티고 있던 백리세가의 정예무인들과 우방문파의 고수들이 있다.


왜 내가 이들 무리의 중심에서,

그것도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검 끝을 세워 우리에게로 달려드는 사파무리들을 노려보았다.

이쯤되면 내가 장사꾼이 맞긴 맞는건지 냉정한 자기 반성이 필요한 것 아닐까.


“우오오오– 모두 부숴버려라!!!”


백리담과 임강이 검과 주먹을 휘두르며 튀어나간다.

잠시 두 눈을 마주친 백리율 가주와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



싸움은 싸움꾼들에게 맡기고 나는 반강을 찾아 이리저리 헤메였다.

이 교활하고 음험한 녀석이 재미를 운운하고 사라졌으니, 어디서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바라보던 방향의 뒤쪽, 백리세가의 진형 한 축이 갑작스레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다급히 공간을 뛰어넘어 그곳에 도달하니, 희끄무레한 반강의 신형이 무인들 사이로 다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의 부채가 지나간 곳에는 이미 붉은 피와 살점이 가득하다. 기분나쁜 녀석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마치 내가 들으라는 듯이.


갓 피어난 지독한 혈향이 나의 코끝을 찌른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녀석을 쫓아 사파무리들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달려드는 무인들 틈 사이로 언뜻 언뜻 반강의 모습이 보였다. 뒤를 돌아본 그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빙긋 웃었다.


“너, 이 개새—”


사방에서 검날과 창과 주먹이 불쑥 나를 찔러온다. 그 중 위협이 될만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었지만, 나의 다급한 발길을 방해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콩나물 시루같이 빽빽한 틈을 요리조리 빠져나왔을 땐 이미 녀석의 모습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백리세가 진형 쪽을 보호하기 위해 돌아가려는 순간···


섬뜩한 기운을 느낌과 동시에 몸을 황급히 반으로 접었다. 검고 가느다란 세침이 나의 옆구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나 대신 그것에 적중당한 무인의 몸이 뻣뻣하게 굳더니 순식간에 얼굴이 까만색으로 변하여 쓰러졌다. 그 섬뜩한 광경에 화들짝 놀란 주변 무인들의 표정이 급변하며 뿔뿔히 흩어졌다.


“놓칠 것 같냐!”


세침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몸을 날리며 검을 찔렀다. 무인들 사이에 숨어있던 반강이 부채를 와락 펼쳐냈다. 검날을 비스듬히 세워 부채날을 비껴내고, 이어지는 하얀 섬광을 작은 고개짓만으로 피해내며 거리를 좁혔다.


나의 검이 그의 지척에 다다르자, 녀석이 주변에 있던 무인을 슥- 내 쪽으로 밀어냈다. 갑작스레 나를 맞닥뜨린 무인의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커졌다.


“....!!”


녀석을 베어내려면 이 무인까지 한꺼번에 베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황급히 검을 회수한 뒤 방향을 틀어 다시 한번 검을 찔러냈지만, 이미 녀석은 그 자그마한 틈을 놓치지 않고 다른 녀석들 사이로 사라지고 있었다.


“네가 말하는 재미가 고작 수하들을 방패로 삼으며 싸우는 것을 말하는 거냐? 쥐새끼마냥 숨어 싸우는 게 너의 특기냐?”


화가 치밀어 크게 외쳐보았지만 그에게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하하 웃음소리가 멀찍이 사라지고, 다시 몰려든 무인들이 사방에서 흉흉하게 날붙이들을 찔러댔다. 결국 나는 아무 소득도 없이 다시 백리세가의 진형 쪽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기력을 회복한 백리율과 백리담, 그리고 임강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싸우고 있었지만, 나머지 무인들이 싸우고 있는 영역은 점차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사파 세력들을 하루 종일 상대한다는 것은 아무리 날고 기는 정예 무인이라도 버텨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거기에 간간히 진형의 축을 무너뜨리는 반강의 급습까지.


몇번씩이나 그를 쫓는 것이 반복되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뉘엿뉘엿 해까지 져물어가는 가운데,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홀연히 무인들을 죽이고 사라지는 녀석을 도저히 잡아낼 방법이 없었다. 싸움은 정확히 반강 녀석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임풍과 대식, 부상자들을 보호하며 간간히 검을 휘두르던 조승지가 나에게 외쳤다.


“이 멍청아! 그렇게 해서 어떻게 저 녀석을 잡겠다는 말이냐. 그따위로 쓸거면 내 검이나 돌려다오!”


“뭐 임마! 니가 직접 싸워보든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서 드문드문 잔챙이나 상대하는 녀석이 할만한 말은 아니지 않은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있던 나는 버럭 신경질을 부렸다. 하지만 조승지는 전혀 물러서지 않고 나를 향해 연신 독설을 쏟아냈다.


“정신차려라, 이 물러터진 놈아. 네 놈은 내 이빨은 송두리째 뽑아놓았으면서 왜 저 놈들은 거침없이 베어내지 않는거냐? 그 알량한 자비심을 반강 녀석이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


순간 턱 말문이 막혀왔다.

영 맘에 들지 않는 녀석이긴 하지만, 조승지의 말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내가 조금 전 상황에서 반강이 밀어낸 무인을 주저없이 베어낼 수 있었다면, 아마 녀석을 수월하게 잡아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이곳이 무림이라 해도,

비록 내 손에 푸르른 검이 들려있다 하더라도,

지금 있는 곳이 피내음 가득한 전장터 한복판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죽는 것을 막아내는 행동과,

내가 직접 사람들을 베어내는 행동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향해 조승지가 쌍검을 내던지고 달려왔다. 급기야 내 멱살까지 움켜쥔 녀석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저 놈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너뿐이다. 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모두 이곳에서 죽는거야! 설마 너 혼자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는건 아니겠지? 우리가 다 죽고나면 네가 발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냐!?!”


앞니들이 있던 자리가 숭숭 비어있는 조승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선량한 장사꾼 지망생이었던 내가 이곳 전장 한복판까지 오게 된 데에는 이 녀석과의 악연이 꽤나 커다란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래놓고 나보고 모두의 목숨을 책임지라니, 참으로 뻔뻔한 녀석이 아닌가.


“새꺄. 죽긴 누가 죽냐”


조승지의 손목을 붙잡고 간단히 비틀었다.

녀석이 아야야- 이놈아 나 죽는다— 엄살을 부리며 쓰러졌다.


“애초에 백리가주가 회복될 때까지만 싸우겠다고 약속했었지. 하지만 아직까지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있잖냐. 조금만 더 기다려 봐라”


땅바닥을 뒹구는 녀석을 내버려둔 채, 휘하 무인들을 지휘하며 싸우고 있는 백리율 가주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심후한 내력, 번뜩이는 하얀 검날을 정면에서 막아낼 수 있는 적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무적이 아니고, 그의 몸 또한 수백이 아니다. 이 전장의 예정된 결말을 애써 지연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녀석을 잡으려면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잠시 두 친구를 빌려가도 되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백리율이 정신없이 싸우던 백리담과 임강을 불러들였다. 자신의 피인지 다른 사람의 피인지를 온통 뒤집어 쓴 임강은 열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맨 허공에도 연신 주먹을 휘둘렀다. 잔뜩 흥분한 것은 백리담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버님, 무슨 일입니까! 헉··· 헉··· 소자는 하루 종일도 싸울 수 있습니다!”


백리율 가주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부탁하네. 이 곳은 내가 어떻게든 버텨볼테니 걱정하지 말게”


임강과 백리담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말했다.


“갑시다”


“어디로?”


“그 재수없는 녀석을 조지러”


두 얼간이가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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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피의 냄새 +1 24.06.16 941 21 11쪽
41 하얗고 붉은 것들 +4 24.06.15 969 19 12쪽
» 알량한 자비심을 버리고 +2 24.06.14 976 20 12쪽
39 격전 +2 24.06.13 985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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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주인이 되어주마 +1 24.06.11 985 21 12쪽
36 반강 (4) +2 24.06.10 1,040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4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9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3 27 13쪽
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6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3 22 12쪽
30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38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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