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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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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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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47
추천수 :
1,424
글자수 :
308,562

작성
24.06.11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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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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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12쪽

주인이 되어주마

DUMMY

쾅! 쾅! 쾅!


거대한 충돌음이 연이어 일어났다. 살가죽과 살가죽이 마주치는 소리라고는 믿기 어려운 소리였다. 벌거벗은 임풍의 상체는 마치 화염에 휩쌓인듯 보이고, 그를 상대하는 색목인은 곳곳이 그을려 새까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무표정하던 색목인의 얼굴이 이따금씩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호흡이 가빠져온다.


“으하하핫!!”


싸움에 취한 임풍이 광기의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쓰러지기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보였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으로 더 강해지고 있는 듯 보였다. 자신을 불사조라고 표현한 것은 허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상대를 만나 더 활짝 피어나는 것일지도.


색목인의 이름이 비두사(髬頭四)라고 했던가. 군데 군데 누런 빛깔이 섞인 그의 머리카락이 풀어헤쳐져 마치 사자의 갈기처럼 보였다. 그가 내뿜던 잿빛 기운이 그을림과 어울어져 지독하게 짙어졌다. 이를 악물고 임풍의 몸을 두드리고 공격을 막아내는 그에게서 처음의 무심함과 오만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탁월한 신체조건과 높은 수준의 외공, 그를 뒷받침 하는 탄탄한 내공까지.

만약 내가 계속 맨손으로 색목인을 상대해야했다면 정말 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임풍은 단단한 바위와도 같은 상대방을 정면으로 맞부딪혀 부숴내고 있었다.


쾅!


임풍의 주먹이 색목인의 명치를 파고 들었다. 급소 부분에 파고든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색목인의 몸이 슬쩍 들리며 발이 땅바닥에서 떨어지고, 순간적으로 호흡이 멈춘 그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임풍이 왼발을 강하게 디디며 상체를 깊게 숙였다. 그의 몸 뒤쪽에서 휘둘러진 오른팔이 크고 둥근 호를 그렸다. 그것이 향하는 곳은 색목인의 정수리.


“...끝이다!”


저 주먹이 적중하게 되면 혹여나 수박이 터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끔찍한 광경을 보게될까 싶어 눈을 가늘게 뜬 순간, 색목인이 간발의 차이로 머리를 숙여 임풍의 주먹을 피해냈다. 그의 몸이 휘청이며 임풍을 와락 얼싸 안았다. 당황한 임풍이 그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임풍의 몸에 달라붙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치직—


임풍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가짜가 아니다. 색목인은 자신의 살이 불타오르면서도 그의 상체를 붙든 채 그의 균형을 무너뜨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임풍의 하체는 그 누구보다 더 단단하게 대지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승부의 축이 기울어 간다. 나는 여전히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는 백면서생 반강을 유심히 살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서생무리들과 달리 그는 무심한 얼굴로 임풍과 색목인이 싸우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임풍의 주먹이 연신 색목인의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피할 곳 없이 공격에 적중당한 그의 입에서 참지 못하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누가 보아도 승부의 향방이 명확한 상황. 하지만 색목인은 물러서거나 패배를 인정할 줄 몰랐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까지 버티게 만드는 것일까.


콰득!


섬뜩하게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임풍의 주먹이 마침내 두터운 내공과 근육을 뚫어낸 것. 버틸 힘을 잃은 색목인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임풍의 허리에 매달렸다. 치지직 살이 타는 냄새가 매캐하게 우리의 코를 간지럽혔다.


“이즈···이즈비니..”


색목인이 혼이 나간 표정으로 그의 주인 - 백면서생 반강 쪽을 돌아보며 알 수 없는 언어를 외쳤다. 서생 중 한명이 그의 말을 통역하려는 듯 허리를 숙였지만, 반강은 싸늘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서생 무리는 죄인처럼 손을 모으고 뒤로 물러섰다.


풍차처럼 주먹을 휘두르던 임풍의 손이 마침내 멈추었다. 땀과 피와 열기로 범벅이 된 그의 모습은 야차(夜叉)와도 같았다.

휙휙 사방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반강에게서 멈추었다.


“네 이 녀석, 이제 너의 차례다”


반강이 잠시 멈췄던 부채를 다시 부치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직 승부가 안나지 않았느냐.너희 둘 모두 멀쩡히 살아있는 것을”


임풍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놈은 네 심복이 아니더냐? 정녕 죽여주기를 원하는 것이냐?”


반강은 평온하게 부채를 부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임풍의 눈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좋아. 이미 피를 볼대로 본 마당에 한 명 더 데려간다고 다를게 없지”


임풍이 주먹을 다시 단단하게 쥐었다. 그의 커다란 주먹이 허리에 매달려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는 색목인의 머리를 겨누었다. 반강이 싸늘하게 웃었다.


공중에 높이 치솟았던 임풍의 주먹이 내려쳐지는 순간···


나의 관자놀이가 저릿해져오며–


반강의 모습이 뿌옇게 흐려졌다.


후욱-


주저하지 않고 땅을 박차며 뛰쳐나갔다.


세상에 온통 멈춰진 듯 보이는 가운데, 의자에서 처음으로 엉덩이를 뗀 반강이 쏜살같이 임풍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의 몸이 마치 엿가락이 주욱 늘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를 내내 예의주시하고 있었음에도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쾌속한 움직임이었다.


임풍의 주먹이 느릿느릿하게 색목인의 머리를 향해 내리쳐지는 가운데, 반강 녀석이 한가로이 흔들어대던 부채가 날카롭게 임풍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사선에서 달려든 내가 손날로 그의 부채를 걷어내려는 순간이었다.

왠지 모르게 오싹한 느낌이 들어 마지막 순간 방향을 바꾸니-

아니나 다를까, 접혀있던 부채가 갑작스레 쫙 펼쳐지며 섬뜩한 기운이 나의 손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


그냥 부채가 아니라 철선(鐵扇)이다. 그 예리한 날에 소매의 깃이 뎅겅 잘려나갔다. 손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손가락 두 세개는 쉽게 잘려나갔을지도.


방금 보여준 그의 움직임은 임풍에게 처음 다가갈 때보다 확연히 더 빠르다. 임풍에게로 온 신경이 쏠린 듯 했던 것 자체가 속임수이고, 처음부터 내가 뛰쳐들 것까지 계산하여 수를 준비하였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빙글 한바퀴를 돈 반강의 왼손에서 하얀 섬광이 뻗쳐나왔다. 철선에 온 신경이 쏠려있던 나는 그것까지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섬광이 임풍의 목줄기를 재차, 그리고 더욱 정교하게 파고들었다.


다급한 대로 임풍의 몸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하지만 그의 몸은 땅바닥에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와도 같아, 내 힘만으로 완전히 그가 피해내게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스윽—-


임풍의 목에 가느다란 선이 생겨났다.


반강의 몸이 회전하며 다시 한번 하얀 섬광을 뿌려냈다.

그런데 그것이 이번에 향하는 방향은 나도, 임풍도 아니었다.

죽음의 섬광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맥없이 고개를 떨군 채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던 색목인이었다.


애초에 녀석을 살리기 위해 움직인 것이 아니었던 건가.

그가 왜 자신의 수하를 직접 죽이려 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구렁이 삶아먹은 듯 음흉한 녀석이 살육극을 벌이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마침 임풍의 목줄기에서 푸슉- 소리와 함께 핏줄기가 솟구쳐 나왔다.

그 핏물을 손에 한웅큼 움켜쥐고 마치 암기처럼 반강 녀석을 향해 쏘아내었다.

붉은 핏방울들이 혈선을 그리며 쏘아진다.


핏방울 까짓 거 좀 맞아봤자 얼마나 아프겠나.

하지만 지금까지 반강이 보여준 말과 행동을 돌이켜 보았을 때···

이 녀석같이 고결하고 도도하게 행세하는 부류들에게는 의외로 먹힐 수도 있는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았다.

반강의 안색이 변하며 왼손의 움직임을 거두고 순식간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느려졌던 세상이 다시 원래의 속도대로 돌아왔다.


“.....!!!”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녀석이 임풍에게로 쇄도했던 것,

내가 그를 막기 위해 뛰어들었던 것,

그가 나, 임풍, 색목인에게 차례로 살수를 펼쳐낸 것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서는 찰나의 순간 이루어진 일이다.


임풍의 목과 색목인의 뒷덜미에서 피가 분수같이 뿜어져나왔을 때에는 이미 반강 녀석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의자에 돌아가고난 다음이었다.


거대한 임풍의 몸이 기우뚱- 뒤로 기울었다. 대식과 조승지가 황급히 달려와 그의 무거운 몸을 간신히 받아냈다. 아직 혈도가 풀리지 않은 임강은 눈을 부릅뜬 채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행히 임풍의 상처는 심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목이 워낙 두터운데다, 내가 조금이나마 그의 몸을 움직여낸 것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녀석들과 백리세가의 무인들에게 임풍을 맡기고 나는 재빠르게 색목인의 상태를 살폈다. 마지막 순간 반강이 손을 거둔 덕분에 아직 황천길로 가지는 않았지만 위태롭기 그지 없었다. 다급히 옷을 찢어 그의 상처를 지혈하며 반강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쎄다는 것도, 교활하다는 것도 충분히 알겠다. 그런데 왜 네놈을 대신해서 목숨걸고 싸우던 수하를 죽이려고 했던 거냐? 그게 너희들의 방식이냐?”


자신의 하얀 의복 이곳 저곳을 살피는 그에게서, 색목인의 생사에 대한 어떠한 관심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피가 묻어있지 않다는 사실에 만족한 그가 다시 철선을 부치며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내 출수를 피해낸 자는 참으로 오랜만이로군. 너의 스승이 누구냐?”


“...니미”


“...니미?”


“니 엄마한테 배웠다. 이 쓰레기같은 새꺄. 내 질문엔 대답 안해? 왜 니 수하를 죽이려고 하냐고?!”


반강이 눈썹을 찡그렸다.


“말하는 본새가 천박하기 짝이 없구나. 천둥벌거숭이같은 녀석”


“대답해라”


나의 집요한 질문에 녀석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무슨 이유가 있겠나? 어차피 녀석의 목숨은 주인인 나의 것이다. 주인된 자를 부끄럽게 했으니 죽어 마땅한 것을”


듣던 중 개같은 소리.

피가 거꾸로 치솟는 기분이었다.

얼굴이 화끈 화끈거린다.


색목인을 지혈하던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쿵쿵 땅을 굴렀다.

목소리를 한껏 높여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사파인들에게 외쳤다.


“이 개새끼를 따르는 어리석은 무리들아! 잘 들어보아라. 이게 너희들의 운명이다. 무슨 협박과 꼬드김으로 이 녀석을 따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노예같이 구르다가 결국 뒷덜미에 칼이 꽂히는게 너희들의 신세란 말이다. 알겠냐?!”


내 목소리가 쩌렁쩌렁 평야에 퍼져나갔다.

마치 임풍의 목소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여전히 사파들은 입을 꾹 닫은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반강의 허락없이는 그 어떤 말도, 행동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답답한 놈들이다. 답답한 인생이다.


“그딴 식으로 죽을 바엔, 그딴 식으로 살 바엔 차라리 산골마을에 쳐박혀서 농사를 짓거나 군밤장수나 하지··· 아이고··· 이 화상들아···이 미련한 인생들아!!!”


여전히 사방은 고요했다.

들려오는 것은 오직 어깨까지 들썩이고 있는 반강의 웃음소리.


“농사나 군밤장수라··· 참으로 골때리는 녀석이로군”


반강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른손에는 철선을 들고, 왼손은 소매 안에 감춰놓은 채 그가 웃었다.


“애송이야. 이리 오너라. 내가 너의 주인이 되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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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격전 +2 24.06.13 986 21 12쪽
38 날카로운 검 끝에 +2 24.06.12 958 23 12쪽
» 주인이 되어주마 +1 24.06.11 987 21 12쪽
36 반강 (4) +2 24.06.10 1,041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5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9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3 27 13쪽
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7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3 22 12쪽
30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39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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