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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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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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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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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딱히 바라는 것은 없고.

DUMMY



분위기가 자꾸 이상하게 흘러간다.

이것은 전형적인 백도 무림인들의 수법임에 틀림없었다.

적당한 칭찬과 금칠로 사람을 띄워놓고 계속 이용해먹는 것이지. 나는 이미 백리연이나 임강에게 톡톡히 당하지 않았던가?


나의 마음이 봄철 버드나무처럼 부드러운 탓에 그동안 이 수법에 홀라당 넘어갔지만, 앞으로는 절대 넘어가 줄 생각이 없었다. 황급히 두 손을 내저으며 크게 외쳤다.


“소용습니다, 아무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저를 띄워주셔도 앞으로 제가 백리세가를 위해 싸우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의 선언에 달아오르던 분위기는 갑작스레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임풍과 백리담이 눈썹이 정수리에 닿을듯이 치켜 올라갔다. 무언가 큰 오해가 있겠다 싶어 다시 두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제가 그렇다고 단혈맹 편에서 싸우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번에는 부득이하게 몇몇 친구분들과의 인연 때문에 끼어들었을 뿐, 앞으로는 어떤 편에서든 싸우고 싶지 않다는 뜻이지요. 아무리 저보고 싸우라고 등을 떼밀어도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임풍 단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군. 우리가 언제 자네보고 또 싸워달라 했는가? 우리는 그저 자네의 활약에 감사하고 경탄하고 있을 뿐이야. 적들을 상대로 이렇게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니, 이제 그대의 이름은 널리널리 강호에 퍼져나가게 되겠지. 아직 별호가 없다면 이 참에 정하는 것도 좋을 것 같군! 어디보자. 뭐가 좋을까···”


임풍이 뺨을 긁적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정말 내 별호까지 만들어질 판국이다. 게다가 이 단순한 사내의 머리 속에서 나올만한 별호들이래야 뻔하지 않겠는가.


“큰일날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은 절대 바라는 바가 아니오. 무인으로서의 명예나 명성같은 것은 저에게는 다 필요없단 말입니다”


“그럼 도대체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맞습니다!”


나는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린 뒤, 검지와 엄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였다.


“말로만 하는 칭찬이나 감사인사는 저에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확실하게 금전적으로 보답해주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절도있고 단호한 나의 자세를 본 백리담과 임강, 조승지, 대식이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임풍은 충격을 먹었는지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호인들이 모두 모인 앞에서 저렇게 노골적으로 돈타령을 하는 녀석은 처음 본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백리담이 중얼중얼거리는 사이, 백리연과 백리율 가주가 바쁘게 눈빛을 교환했다. 흠흠 헛기침을 한 백리율 가주가 입을 열었다.


“돈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네. 우리 세가에 머물기만 해도 부족하지 않게 대접을 해줄 터이니. 이것은 자네에게 무엇을 더 바래서가 아니야. 지금까지 그대가 우리를 도와준 것에 대한 응당한 보상이라네”


“....!!!!”


백리율 가주의 말을 들은 대식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재빠르게 나에게 달라붙은 그가 나의 옷깃을 강하게 붙잡으며 속삭였다.


“됐습니다. 됐어요! 대 백리세가의 가주께서 도련님에게 정식으로 식객으로 와줄 것을 요청한 겁니다. 도련님, 이제 우리는 대박 터진거에요!”


하지만 나는 또 한번 대식의 기대를 져버려야 할 것 같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자, 사색이 된 대식이 다급히 내 옆구리를 찔러댔다.

백리연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띈 채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고, 백리담 가주는 이유를 듣겠다는 듯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아무리 저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고 하시더라도, 백리세가에 남아있게 되면 혹여라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제가 어찌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밥을 얻어먹고 용돈을 받았으니 양심상 또 싸워야하고, 싸우다보면 또 더 강한 놈이 나타나고··· 결국 언젠가는 저보다 더 강한 녀석을 만나서 얻어터지겠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말을 하다보니 입이 바짝 마르는 것만 같았다. 침을 꿀꺽 삼켜보았지만 아직도 흙먼지와 피의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사방에 즐비한 시체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자니, 나의 생각에 더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것들을 다시 겪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안전하게, 제가 좋아하는 장사나 하면서 돈을 벌고 싶을 뿐이죠”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던 임풍이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참으로 세상 모르는 소리를 하는군. 칼부림이라는 것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더욱 더 높은 경지에 올라가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야.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뛰어난 재능과 무예를 지닌 젊은이가···”


임풍의 말은 예전에 백리연이 했던 말과도 비슷하고, 괴창 사평이 했던 말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무림 속에서 칼밥을 먹고 사는 자들은 정사를 가리지 않고 모두 비슷한 사고방식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던 백리율 가주가 입을 열었다.


“우리같은 이들에게 강호와 삶을 분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이 소협과 같이 추구하는 길이 완전히 다른 자에게 우리의 사고 방식을 강요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다”


“맞습니다. 무엇보다 은인(恩人)의 의지를 존중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죠”


백리율 가주의 말에 동조한 백리연이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아무튼 그대가 원하는 것은 일시불이라는 거겠죠. 맞나요?”


일시불(一時拂).

이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하며 아름다운 말인가!

나는 허리를 깊게 숙이며 그녀의 지혜로움에 찬사를 보냈다.


“맞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일도 왠만하면 모두 잊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까 남궁세가 분들에게 얘기했듯이, 반강을 무찌른 것도 우리 훌륭하신 백리담 공자나 임강 공자의 공적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리끼리 입을 맞출 수는 있지. 하지만 오늘 자네의 활약을 목격한 것은 우리 뿐이 아니야. 이곳에서 살아 돌아간 사파세력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분명 누군가는 자네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네”


“그러니 저는 이곳을 더더욱 빨리, 그리고 멀리 멀리 떠나보겠습니다”


“......”


더이상 나를 설득한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백리율 가주가 빙그레 웃었다. 아버지의 시선을 받은 백리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에게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떠날 때 떠나더라도, 백리세가에 며칠이라도 머물다 가시는 것이 좋겠어요. 설마 이 초대까지 거절할 생각은 아니겠지요? 우리 허총관님과도 나눠야 할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으세요?”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계속 백리세가에 남아 있어 달라는 것이 아닌 이상, 그녀의 초대는 도저히 거절할 만한 명분을 찾기가 어려웠다. 어찌되었든 백리세가 쪽으로 돌아가야 호인청에게 받기로 약속된 임강 호송 대금까지 모조리 받아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백리세가의 후원에서 대식이 홀로 먹어치워버렸던 월병과 연과자가 아른거리기도 하고···



***



백리율 가주와 백리연 남매들은 휘하 무인들을 지휘해 인근에서 노숙할 준비를 했다.

잘 준비를 모두 마친 뒤에도 나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이어졌던 전투의 흥분 때문일수도 있고, 내가 알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몰랐다.


자리를 벗어나 칠흙같이 어두운 평야를 거닐었다.

영문도 모르고 내 뒤를 따라걷던 대식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까지도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잠깐이지만 좋은 꿈을 꾸었습니다. 저 먼 곳 산골에서 자라난 이 촌놈이 백리세가에서 떵떵거리며 호사를 누리는 아주 행복한 꿈이었죠···”


나는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


내 발걸음이 멈춘 곳은 남궁세가 녀석의 검에 찔려 죽은 색목인의 시체가 있는 곳.

캄캄한 밤이었지만 그 거대한 몸집을 알아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그를 비롯한 수많은 사파인들의 시체들은 당연하게도 그 누구도 수습해주는 이가 없다. 모두가 쓰러졌을 때의 모습 그대로 땅에 널부러져 있었다.


땅에 떨어져있는 병장기를 하나 붙잡고 색목인의 시체 옆의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내 행동에 당황한 대식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다가 그 또한 나를 따라 땅을 파헤쳤다. 삽도 아닌 뾰족한 것으로 땅을 파헤치자니 끝도 없었다. 땀이 구슬같이 떨어졌다.


“잠이 잘 오지 않는 것이냐?”


저 멀리 뒤쪽에서 굵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누구인지는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임풍 단주가 어디서 났는지 모를 커다란 독을 어깨에 멘 채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민머리가 희미한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내 발치에 있는 시체를 확인한 그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모로 어처구니 없는 녀석이군”


그는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성큼성큼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무 병장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든 그가 땅을 파헤치기 시작하자, 나나 대식이 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땅이 움푹 패이기 시작했다. 그의 도움으로 순식간에 커다란 구덩이가 만들어지고, 우리 셋은 나란히 색목인의 몸을 들어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흙을 덮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검을 꽂고 나니, 초라하지만 무덤이라고 할 만한 것이 만들어졌다. 가만히 색목인의 무덤을 바라보는 나에게 임풍이 물었다.


“설마 모든 시체들을 다 묻어줄 생각은 아니겠지?”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이 수많은 시체들을 어찌 두 세명의 힘으로 묻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 정도로 품이 넓은 사람이 아닙니다. 고작해야 맞서 싸웠던 이를 기억할 뿐이오”


“다행이군. 아마 모두의 무덤을 만들어주려면 밤을 꼬박 새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임풍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어쩌면 그는 내가 하자고 했으면 정말 이 밤을 지새워서라도 함께 무덤을 만들었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들의 무덤을 만들어 주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너의 행동을 보니 정말 강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강호인이 아니라고”


“그렇다고 돈독 오른 용병이나 장사치가 어울린다는 말도 아니다”


임풍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이곳 강호인들은 어찌 이렇게 삶과 죽음이 가볍단 말입니까. 저는 그저, 잠깐이나마 스쳤던 이의 죽음에 좀더 예를 차리고자 할 뿐입니다”


“좋은 말이다. 이 녀석은 비록 적이지만 훌륭한 무인이었지. 그렇게 죽어서는 안되는 인물이었어”


임풍이 잠시 옆에 놓아두었던 독을 번쩍 들었다.


“마침 잘 되었군. 따라와라”


나와 대식은 눈을 마주친 뒤 임풍의 뒤를 따라갔다. 그를 왜 따라오라고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 그의 말을 거절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도와 색목인의 무덤을 만들었던 것처럼.


대충 보아도 엄청난 무게의 독을 들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간 그가 정신없이 잠들어있던 임강과 조승지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그들이 엉금엉금 기어나왔다.

우리 넷을 거느린 채 한참동안 산을 오르던 임풍은 달빛을 잘 받는 바위 위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다.


영차- 독을 바위 위에 내려놓은 그가 뚜껑을 열어제끼자, 아찔한 술의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표국을 뒤졌더니 이런 근사한 물건이 나오더군. 오늘 같은 밤에는 사나이들끼리 술 한잔 해야하지 않겠느냐?”


임풍이 껄껄 웃었다.

쩌렁쩌렁한 그의 웃음소리가 밤 하늘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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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삼, 오 (三, 五) +1 24.06.26 492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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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숲에 부는 바람. +1 24.06.22 709 18 12쪽
» 딱히 바라는 것은 없고. +1 24.06.21 785 17 12쪽
46 금칠 +1 24.06.20 817 22 12쪽
45 이젠 신물이 난다. +1 24.06.19 907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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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남궁세가 (1) +1 24.06.17 930 20 12쪽
42 피의 냄새 +1 24.06.16 940 21 11쪽
41 하얗고 붉은 것들 +4 24.06.15 969 19 12쪽
40 알량한 자비심을 버리고 +2 24.06.14 975 20 12쪽
39 격전 +2 24.06.13 983 21 12쪽
38 날카로운 검 끝에 +2 24.06.12 955 23 12쪽
37 주인이 되어주마 +1 24.06.11 985 21 12쪽
36 반강 (4) +2 24.06.10 1,039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4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8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1 27 13쪽
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5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1 22 12쪽
30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37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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