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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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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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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8,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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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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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개봉으로 (2)

DUMMY


치열한 협상 과정 끝에 개봉까지의 여정은 각자 은자 스무냥으로 결정되었다.


은자 스무냥이면 대략 금 한냥에 견줄 수 있으니, 백리연 남매가 나에게 지불했던 금자 열냥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에누리라고 할 수 있다. 못해도 금자 수 냥씩은 받아내려던 나의 주장은 중재에 나선 허총관에 의해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중원에서 널리 쓰인다는 ‘여객운송 통상비용’이란 기준을 갑자기 들이미는데 내가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허총관은 줄곧 내편인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판관같이 꽉 막힌 면모가 있다고나 할까···


사실 더 뻗대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준마들과 마차는 조가장의 것이고, 오금상단으로부터는 총관인 호인청에게 이것저것 은밀히 받은 것이 많다보니 마냥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사실 조승지나 임강이 부유한 집안의 자식이 아니었다면 은자 스무 냥은 커녕 두 세냥도 받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사람이 늘어나게 되면 곤란하게 되는 것은 나보다는 대식이다. 이 녀석들이 따로 수행할 사람을 데려온 것도 아니니, 작은 심부름에 불과할지라도 그 양이 갑자기 두세배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대식은 의외로 두 녀석이 합류한 것을 꽤나 기뻐하는 듯 했다. 임강은 그렇다치고 조승지까지 반가워하는 것은 매우 의외의 일이었는데, 둘이 쿵짝이 잘 맞는 광경을 지켜보자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따로 대식을 불러내 왜이리 조가놈의 비위를 잘맞춰주고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주변을 휘휘 둘러본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엄지와 검지를 모아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당연한 것을 왜 물으십니까. 조 공자님은 이게 많지 않습니까, 이게!”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우고 있었구나”


이제는 정말 떠날 시간이었다.

마차 창틀에 허총관이 주름이 가득한 손을 올렸다. 마차 창 너머 내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던 허총관이 입을 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제가 한 말을 기억하시겠지요. 거센 풍파가 몰아치더라도 꺾이지 마십시오. 부디 바위처럼 단단해지십시오. 종국에는 반드시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세월의 주름이 가득한 허총관의 얼굴을 가만히 마주보았다. 상인 지망생에게 하는 인사 치고는 꽤나 진지하고 비장한 인사말이 아닌가. 그의 손을 꼭 감싸쥐며 그간의 환대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바람이 불면 날아가고, 파도가 치면 잠수하면 되는 것입니다. 크게 벌어 크게 대접하러 올테니, 그때까지 총관께서도 몸 보중 잘 하고 계시오“


허총관이 소리없이 웃었다.

대식의 힘찬 구령과 함께 데굴데굴 마차가 구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떠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는지, 세가에 남아있던 무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 몸 곳곳에는 붕대와 상처들, 격렬했던 전투의 흔적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단혈맹인지 뭔지 하는 세력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아무도 모른다고 했으니, 이곳 백리세가 일대가 또 언제 전란에 휘말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쉽고 미안한 일이지만, 내 꿈을 위해서는 역시 하루라도 빨리 떠나는 것이 맞다.


무인들이 마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함께 싸워줘서 고마웠다는 이야기, 건투를 빈다는 이야기, 꼭 부자가 되시라는 이야기 등 덕담이 가득했다. 물론 얼른 다시 백리세가로 돌아오라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이전의 삶이든 이번 삶이든 이렇게 따스하고 성대한 배웅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질 뻔했다.


누군가 조승지 녀석이 그린 내 현상수배지를 마치 깃발마냥 흔들어대기 전까지는···


“저···저거 뭐야? 저게 왜 아직도 돌아다녀?!”


눈을 부릅뜨고 조승지를 돌아보았다. 녀석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조가장에 남아있던 수배지는 분명 약속대로 모두 파기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빼돌려서 소장하는 것은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어”


“내 얼굴 그림을 도대체 왜 소장한단 말이냐!?”


설마 집 안에 소중하게 붙여놓고 밥먹을 때마다 바라보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 북조선 수령님의 사진이나 초상화처럼 말이다.


“걱정하지마라. 절대 네 얼굴이 잘나거나 보고 싶어서 소장하는 것은 아닐테니”


“그러면 도대체 왜···”


임강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한 것 아니겠습니까? 승지의 글씨와 그림은 그 콧대 높은 유생들과 학자들도 높게 평가할 정도입니다”


“이 녀석이 그정도라고···?”


나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조승지를 위 아래로 흝어보았다. 녀석은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임강이 말을 보탰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저야 그쪽으로는 까막눈이라 뭘 봐도 잘 모르지만, 승지가 글 공부에 집중했으면 학문이나 관(官) 쪽으로도 대성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어르신들도 많았지요”


“내가 관직에? 생각만 해도 따분하고 갑갑하다. 그런 시시한 것에는 관심이 없어”


흥흥 코웃음을 치던 조승지가 창 밖을 바라보며 우수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은 제법 재미있는 일이지. 이 몸께서 친히 네 얼굴을 수백장씩이나 그린 것을 운이 좋은 줄 알아야 해. 나에게 초상화를 그려달라며 인근 젊은 여인들과 기생들이 수십명씩 줄을 서곤 했단 말이다”


“여···여인들?! 수십명?!”


“그래. 셀 수도 없는 여인들이었지. 그 중 나에게 미적 영감을 주는 미인은 또 얼마나 많았더냐! 하··· 참으로 좋은 시절이었다···”


“......”


그가 아련한 표정으로 쩝쩝 입맛을 다시는 것을 보니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이 몸은 촌구석에서만 자라오느라 조승지가 묘사하는 수십명의 미인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광경을 상상조차 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늙은 아버지와 변노인의 쭈글쭈글한 얼굴만 바라보며 허송세월하는 동안, 이 녀석은 분냄새 가득한 곳에서 여성들을 희롱하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쾅!


한참 조승지 녀석을 칭찬하던 임강이 갑작스레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창틀을 내리쳤다.


“승지, 자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임강의 반응이 생각보다 격렬했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라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임강은 도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이 친구도 무공 수련만 열심히 하느라 여자 근처에도 갈 일이 없었던 걸까?


“나는 그대를 친구로서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이런 부분은 항상 큰 불만이었네. 어떻게 엄연히 정혼자가 있으면서 다른 여인들과 섣불리 교류할 수 있단 말인가?”


조승지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뭐가 어때서 그래? 영웅호색이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나?”


“어이.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그건 영웅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야. 너같은 어중이 떠중이가 호색하면 그것은 그냥 색마라고 불리는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조승지는 또 나에게 쌍욕을 퍼붓거나 달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왠일로 녀석은 임강만을 노려볼 뿐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넌 좀 빠져있어봐라. 이 녀석과 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알겠다. 색마”


임강이 콧김을 내뿜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승지 자네는 도대체 반성할 줄을 모르는군. 어찌 그리 당당한가. 그대의 정혼자는 다른 이도 아니고 연 누이가 아니었던가! 그녀 보기에 부끄럽지 않나?”


“남녀사이 관계야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하는 것이지. 자네가 무슨 자격으로 참견이란 말이냐?”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


“아, 그렇지. 네 녀석은 항상 연 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 그것도 아주 어릴 때부터”


“....!”


임강의 몸이 얼어붙었다. 조승지가 뾰족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을 줄 알았는가? 친구의 정혼자를 은밀히 눈여겨보고 연모하다니 그것이야말로 색마가 아니냐?”


“나는··· 나는···”


임강은 얼굴을 붉힌 채 아무 말도 하지못했다.

그가 백리연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은 역시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그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나조차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니, 주변 사람들이 그의 마음을 눈치채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궁지에 몰린 임강을 위해 다시 한번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승지 네 녀석은 더이상 정혼자가 아니지 않느냐? 임강 공자가 백리연 소저를 은밀히 훔쳐보든, 둘이 알콩달콩 사랑을 키우든 이제 너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흥, 늙은이들이 멋대로 씌워놓은 굴레만 벗어놓았을 뿐이다. 백리율 가주님의 말 분명히 들었지? 나에게도 아직 기회가 남아있는거라고. 나와 연누이는 어려서부터 형성된 교감이라는 것이 있으니, 이 녀석처럼 몰래 훔쳐보기만 하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거는 녀석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지”


무슨 이유에선지 조승지는 계속해서 임강을 조롱하고 도발했다. 한 주먹거리도 안될 법한 녀석이 까부는데도 임강은 한마디도 못하고 합죽이가 되어 있었다. 숨겨왔던 자신의 마음을 세상 사람들 모두가, 특히 조승지가 내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아무 말 못하는 임강을 바라보던 조승지가 씨익 웃음지으며 여유있게 등을 기대 앉았다.


“순진한 녀석. 하지만 이런 순정도 오래가지는 못할거다. 개봉에 가서 한번 보라고. 이곳 촌동네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화려한 미인들이 수두룩할테니. 너도 그때 가면 연 누이는 생각도 나지 않을걸?”


“나를··· 흥, 자네와 같은 호색한과 동일하게 여기지 말게. 내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아!”


임강은 더이상 자신의 마음을 숨기거나 감추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조승지는 화를 내기는 커녕 껄껄 웃었다.


“이제야 좀 솔직해지는군. 어때, 다시 백리세가로 돌아갈까? 자네의 마음을 연 누이에게 직접 털어놓아 보겠는가? 이보게! 대식!”


“무슨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건가! 대식! 아니네. 신경쓰지말고 그냥 쭉 가면 되네”


마부석 쪽으로 넘어가려는 조승지의 옷자락을 임강이 황급히 잡아끌었다. 둘은 엎치락 뒤치락하며 드잡이질을 하는가 싶더니, 서로의 멱살을 붙잡은 채 한참동안이나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갑자기 푸하하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뭐야. 이 얼빠진 자식들은···’


녀석들을 억지로 떼어놓아야 할지 고민하던 내가 무색할 지경.


한참을 낄낄거리던 조승지가 웃음을 뚝 그치고 말했다.


“어차피 연 누이는 나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어. 백리율 가주께서는 아직 가능성을 열어놓은 듯이 이야기하시긴 했지만,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파혼을 당한 마당에 무슨 염치로 그녀를 다시 탐낼 수 있겠는가”


“......”


“물론 연 누이는 마냥 포기하기엔 너무나 대단하고 아까운 여인이네. 하지만, 상대가 자네라면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지”


“승지, 자네···!”


”하지만 긴장을 놓지 말라고. 네 녀석이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놓칠 것 같으면 내가 바로 다시 그녀를 가로챌테니 말이야”


임강과 조승지가 또다시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목소리를 높이며 투닥대던 두 얼간이가 금새 의기투합해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둘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배경도, 가진 것도, 성격도 너무 달라 도저히 친구로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그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둘이 북치고 장구치는 꼴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의기투합하는 녀석들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찬물을 끼얹었다.


“미안하지만 둘 모두 실격이야. 백리연 소저는 그대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을걸?”


두 얼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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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204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221 22 12쪽
30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63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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