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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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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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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8
글자수 :
308,562

작성
24.05.3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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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노인 (2)

DUMMY


아무런 예고없이 쏘아진 단창이 조호연 장주의 몸을 꿰어냈다. 조 장주는 마지막 순간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지만 번개처럼 날아온 그것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장주의 몸이 뒤로 기우뚱 기울었다.

그의 몸을 꿰뚫은 단창을 두 손으로 부여잡은 채였다.


“장주님!!!”


“아버지!!!!”


놀란 무인들이 조 장주와 노인을 향해 쇄도했다. 몰려드는 무인들을 가볍게 건너뛴 노인이 조 장주의 몸에서 단창을 뽑아냈다. 분수같이 뿜어져 나온 피가 조 장주가 타고 있던 흰 말을 붉게 적셨다.


“이게 무슨 짓이냐!”


“충성심도 없고 무능한데다, 자기 주제도 모르는 조직에 대한 나의 결론이다. 박멸(撲滅)”


노인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쉭- 단창을 찔러대자, 뱀처럼 구불거리는 그것이 달려든 무인들의 몸에 동그랗고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냈다. 그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붉은 안개가 연이어 피어났다. 하지만 조가장의 무인들은 노인에게 달려들기를 그치지 않았다.


조 장주의 몸이 땅으로 떨어져내리기 전에 조승지가 간신히 그의 몸을 받아냈다. 상처를 억누르는 조승지의 손에는 아버지의 피가, 그의 얼굴에는 조가장 무인들에게서 뿜어진 피가 튀었다. 조승지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질렀다.


언덕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나는 그 참혹한 광경에 말을 잊었다. 단순히 무공의 높고 낮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주저없이, 그리고 기계적으로 창을 뻗고 회수하는 노인의 동작에는 생명에 대한 그 어떤 존중도 없었다. 말 그대로 살육전.


‘이대로라면 적기방의 참극이 되풀이될지도 모른다’


무림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결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더군다나 피해를 입고 있는 당사자는 나를 그토록 쫓아다니던 조가장 녀석들이고, 살육을 저지르는 흉수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만한 자인지도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샌가 나는 벌떡 일어나 언덕 아래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그 곳을 향해.


그런데 아뿔싸. 하필 뺏어신은 기난수의 헐렁한 가죽신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벌러덩 신발이 벗겨지며 균형을 잃었다.


못나게 몇 바퀴를 구르고 일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조가장 전력의 절반 이상을 날려버린 노인의 단창이 조승지마저 꿰어내기 직전이었다. 조승지는 조 장주의 상처를 억누르느라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도 알지 못했다.


“아···안돼!”


그 순간, 삽시간에 뒤바뀐 형세에 혼란스러워하던 임강이 몸을 날리며 주먹을 들이밀었다. 노인은 피하거나 막는 것도 귀찮다는 듯이 어깨를 튕기는 것만으로 그의 주먹을 받아냈다. 그 결과···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노인과 임강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졌다.


멀찍이 밀려난 임강이 자세를 다잡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처음으로 움직임을 저지당한 노인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임강을 바라보았다. 임강이 전력을 다해 급습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고작해야 한 발자국 밀려났을 뿐이다. 그러니 방금 전의 한 수만으로 둘 간의 까마득한 격차는 증명이 된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기죽거나 물러날 기색이 없이 노인을 가로막고 있었다.


“호오··· 염주홍권(炎州紅拳)이라. 임풍의 아들 녀석인가보군”


땅에 단창을 짚은 노인의 흰 수염이 휘날렸다. 임강은 주먹을 들어올린 채 옆으로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노인의 시야에서 조승지를 가려낸 임강이 외쳤다.


“승지. 어서 장주님을 모시고 이곳을 벗어나게”


조승지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씨익 웃었다.


“어리석군. 조가장 놈들에게 공격당하고 있던 신세가 아니었나? 살 길을 찾아 한걸음이라도 더 멀리 도망치는 것이 나았을 것을···”


임강이 짧게 답했다.


“그는 내 친구요”


멍하니 임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조승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한순간에 절반으로 줄어버린 조가장의 무인들은 감히 더 덤벼들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물러날 뿐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조 장주와 그의 앞을 막아주고 있는 것은 오직 임강 한 명 뿐이었다.


“내가 본 것은 날카로운 검 끝을 네놈들의 턱 밑에 들이밀고 있는 모습이었지. 너희 정파놈들이 이야기하는 친구란 그런 것인가?”


“사악한 무리의 꼬드김에 잠시 길을 잃었을 뿐, 이들이 진정으로 내가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외다”


“멍청한 놈. 하긴 잘된 일이다. 어차피 나는···”


대화를 이어나가는 듯 했던 노인이 불쑥 단창을 찔렀다.


펑!


공간이 갈라지며 마치 폭탄이 터지듯한 소리가 났다. 임강은 가까스로 고개를 비틀어 그의 공격을 피해냈지만 귓볼이 찢겨나가며 피가 튀었다.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그의 가슴에 또 한번 단창이 파고 들었다. 갑작스런 기습을 피해내느라 자세가 불안정했던 임강이 철판을 덧댄 팔뚝으로 단창을 내리쳤다. 조가장의 무인을 물리쳤던 바로 그 수법이었다.


그러나 노인에게는 그런 움직임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수직으로 내리쳐졌음에도 거의 변하지 않은 단창의 궤도가 기어코 임강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목적지에 다다른 단창이 그의 살점을 한웅큼 뜯어냈다.


“크윽–!”


임강은 적에게 공격을 허용하는 와중에도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그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해내며 연신 단창을 찔러넣었다. 임강이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지만, 이미 노인의 휘몰아치는 공격에 크게 휘말린 다음이었다.


“...어차피 단 한명도 살려둘 생각이 없다”


노인의 말에는 웃음이 섞여 있었다. 애초에 임강보다 무공 수위도 더 높은 그가 더 교활할 뿐만 아니라 손속에는 자비가 없으니 어찌 상대할 수 있겠는가. 삽시간에 임강의 몸 이곳 저곳이 터져나가며 붉게 물들었다.


그의 움직임이 멈춘 것은 붉은 단창이 처음으로 목표물을 잃고 허공을 찔렀을 때였다.


“....허?”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불쑥 임강을 빼어낸 내가 몇발자국 크게 뛰어 거리를 벌렸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번쩍 들려 수 장을 이동한 임강은 자신을 구한 것이 나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타박했다.


“이 소협! 왜 아직 여기 계셨던 겁니까! 제가 얼른 떠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혼내는 거요? 아니면 반가운거요? 일단 얼굴의 피나 좀 닦아내시오”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던 임강이 멎적은 표정으로 얼굴을 뒤덮은 피를 닦아냈다. 그가 몸을 추스리는동안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에 섬뜩하게 흩뿌려진 붉은 피, 그리고 비릿한 피 냄새가 내 가슴을 진탕시켰다. 중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사람이 다치는 것은 부지기수로 보았지만,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은 몇번을 보아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노인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물었다.


“너는 누구냐? 방금 그 움직임은 뭐였지?”


“...아닌데요”


“뭐가 아니라는 게냐?”


“아무튼 아닙니다”


우울한 목소리로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자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갑작스레 나타난 나를 발견한 조가장 무인들이 품 속에서 수배전단지를 꺼내들며 외쳤다.


“틀림없다. 이놈이다, 이놈!”


저놈의 수배지는 도대체 몇 장이나 있단 말이냐. 그리고 자기들의 장주나 동료들이 다 죽어가는 마당에 나를 쫓는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어이가 없어서 신경질을 버럭내며 외쳤다.


“작작해라, 이 미친 놈들아!”


노인이 껄껄 웃었다.


“조가장 놈들이 쫓던 녀석이었나 보군. 도대체 어떤 놈 때문에 일을 망쳤나 했더니, 신발 하나 제대로 챙겨 신지 않은 모자른 녀석이 아닌가”


거슬리는 가죽신을 냅다 벗어버리고 달려온 터라 발가락이 시원했다. 괜시리 나를 도발하려는 수작이 뻔히 보이는지라 그에게 꾸벅 인사하며 뒷걸음질 쳤다.


“맞습니다. 아무래도 이 모자른 녀석은 얼른 가보는게 좋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이 소협!”


임강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노인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등을 돌렸다. 그의 이목이 우리에게 쏠린 틈을 타 살금살금 조 장주를 빼내가려던 조승지와 조가장 무인들의 눈이 뎅그랗게 커졌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 어디를 도망치려고?”


무인들이 황급히 그를 향해 검을 내찔렀다. 그러나 노인이 단창을 한차례 휘두르자 무인들의 검이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갔다. 무인들의 눈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붉은 단창이 또다시 커다란 구멍을 여기저기에 만들어내기 직전, 다시 한번 노인의 앞에 불쑥 나타난 내가 맨 발바닥으로 단창을 밀어내 방향을 바꾸어 냈다. 죽음 직전에서 살아난 무인들이 어버버 땅을 짚으며 엉금엉금 기었다.


노인이 눈썹을 꿈틀하며 나에게 물었다.


“그냥 간다며?”


“글쎄요. 제 몸이 이상하네요···”


울상을 지으며 그에게 답했다. 마음은 진즉 이곳을 떠난지 오래이다. 하지만 눈 앞에 또다른 살육극이 빤히 그려지니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어찌하리.


노인의 손아귀에서 두번이나 사람들을 구해내고 나자, 그는 나를 경계하여 더이상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차분히 나를 위 아래로 흝으며 단창을 겨누는 노인.


“그렇다면 죽어야지”


“......”


왜 내가 죽어야 한단 말인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주변을 둘러보자니 정체불명의 노인, 오금상단과 임강, 조가장과 조승지 등 각기 얽히고 얽힌 사연을 가진 이들이 한데 모여있는 형국이었다. 선량하고 순진한 장사치일 뿐인 내가 이 흉악한 싸움의 한복판에 서있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두 손을 들어 짝짝 박수를 한번 쳐보인 뒤 힘차게 외쳤다.


“자, 여러분들. 내가 담대한 제안 하나를 하겠소”


“.....?”


갑작스러운 선언에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둥바둥 해봤자 고작 몇십년 사는 인생이오. 웃고만 살아도 시간이 바삐 흘러간단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싸우는 것은 우리 모두 이쯤 끝내고 깔끔히 헤어지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정적이 흘렀다.

모두들 입을 헤 벌린 채 나를 바라볼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만만한 조승지에게 한 손을 내밀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의 의중을 묻는 동작이었지만 조승지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외면했다.


“대답이 없으니 조가장은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걸로 치겠소. 오금상단은 어떻습니까?”


다음 순서가 된 임강이 답했다.


“이 소협. 이 노인은 지금 안휘성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단혈맹의 일원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미 백리세가의 영역 깊숙히 이 자가 파고 들었으니, 이대로 그를 보내게 되면 어디서 어떤 일을 저지를 지 모르는 일입니다. 이 소협과 제가 함께라면 반드시 이 자를 이곳에서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꽉 막히신 분이로군. 마지막으로 노인께서는 어떻소? 남은 인생 손주들 재롱도 보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 이제 그대에게 남은 날도 채 몇년이 안되지 않겠소?”


말해놓고 나니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것은 평화 권유인가, 살해 협박인가.


공터에 또 한번 싸한 정적이 감돌았다. 임강이나 호인청, 오금상단의 무인들, 심지어 언덕 위에 여전히 몸을 숨기고 있는 대식마저도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어대고 있었다.


노인의 눈썹이 치켜올라가며 서늘한 기운을 내뿜다가, 허공을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그의 웃음에 살기가 가득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나는 이곳의 그 누구도 살려보낼 생각이 없다. 단 한명도”


“...나도?”


“···너도”


날 향해 겨뉘어진 단창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삶을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왜 이들은 모두 한가지 길 - 죽음만을 향해 바쁘게 달려가는가.


“......”


며칠 전 내 손으로 한명 한명 묻어야만 했던 적기방원들의 시체가 문득 떠올랐다.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이유로, 나를 괴롭혔던 녀석들이라는 이유로 외면하고 떠난다면 이들은 그들과 똑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호흡을 길게 내쉬며 몸을 이완시켰다. 편안한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어깨와 무릎, 손목과 발목에서 차례로 힘을 빼고 축 늘어뜨린다. 그러자 요동치던 심장이 그 움직임을 늦추고, 흉악한 노인의 모습이 저 멀리 언덕 뒤에서 보았을 때보다 한결 작아보였다.



“제길, 그럼 어디 한번 붙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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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남궁세가 (1) +1 24.06.17 957 20 12쪽
42 피의 냄새 +1 24.06.16 967 21 11쪽
41 하얗고 붉은 것들 +4 24.06.15 997 19 12쪽
40 알량한 자비심을 버리고 +2 24.06.14 1,004 20 12쪽
39 격전 +2 24.06.13 1,013 21 12쪽
38 날카로운 검 끝에 +2 24.06.12 987 24 12쪽
37 주인이 되어주마 +1 24.06.11 1,014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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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반강 (3) +1 24.06.09 1,093 2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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