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에셀레스 패러독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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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근위기사단과 제국정보원은 그런 면에서는 가장 확실하고 쓸모 있는 조직이다.
근위기사단은 제국 최강의 무력 기관이고, 제국정보원은 제국 최고의 정보기관이니까.
특히, 충성심과 정의감과 기사도를 추앙하는 근위기사단이 정의롭지 못한 명령을 마지못해 행하는 것과는 달리, 정보를 다루는 제국정보원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공작(工作)에도 능하고, 그런 일을 마다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두 기관은 공식적인 기관이 가지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황제가 근위기사단이나 제국정보원을 통해서 어떤 일을 처리하면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그에 대한 기록이 남게 되는 것이다.
에셀레스 황태자에게 필요한 조직은 드러나면 안 되는 일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하게 처리할 수 있는 조직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근위기사단장과 제국정보원장이 자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치명적이었다.
물론 그가 황제가 되면 그들은 당연히 새로운 황제에게 충성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에게 충성하는 것과 그가 그들을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에셀레스 황태자에게는 꿈이 있다.
그가 아직 젊다고는 해도 그의 꿈은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부리다가는 그가 죽기 전에 끝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정도의 일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을 도와줄, 자신의 사람들을 원했다.
에셀레스 황태자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지금은 그에게 충성하고 있는 세 명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회의는 저녁까지 이어졌고 저녁 식사를 하는 도중에 끝났다.
어린 시절부터 어울려 지냈던 이들 가운데서 지원자를 선발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의 곁에는 자신들의 계획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은 자들, 다시 말해 한 가지 이상의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미래가 밝지는 않은, 귀족 가문의 서자·서녀들과 평민의 자녀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프레시크림을 비롯한 귀족가의 자녀들이 에셀레스에게 소개시켜 준 자들이다.
프레시크림 등은, 비록 서자·서녀라고는 하지만 황궁 출입이 가능한 귀족인 자신들의 눈에 띌 정도의 인물이라면, 출신 성분이나 지위보다는 일신의 능력을 중시하는 에셀레스도 기껍게 여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주위의 인재들을 틈나는 대로 에셀레스에게 소개해 주었었고, 그들의 예상대로 에셀레스는 그들에게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였었다.
그런 자들처럼, 권력과는 거리가 멀지만 능력이 있고 꿈이 있는 자들을 가려서 쓰자는 것이 네 명이 내린 결론의 핵심이었다.
에셀레스 황태자는 황태자가 된 것을 자축(自祝)하는 잔치를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당연히 그 대상은 일전에 논의되었던 그 사람들이었다.
잔치가 열리는 당일, 황태자궁의 입구에서는 평소보다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에셀레스 황태자와 제법 친하다고 알려진 자들이 일일이 초대장을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잔치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기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에셀레스 황태자가 엉뚱한 일을 벌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별말 없이 통제에 따랐다.
준비되었던 음식들이 거의 다 사라지고, 흥겨웠던 분위기가 조금씩 가라앉을 무렵, 에셀레스 황태자가 단상에 올랐다.
“오늘 이렇게 많이들 참석해 주어서 아주 기쁘다. 이제 슬슬 자리를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으니 잔치를 끝내기 전에 마지막 행사를 진행할 거야. 다들 안으로 들어가지.”
에셀레스 황태자의 말에 사람들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건물 입구에서 몇몇 사람들이 미리 준비해 둔 검은색 천을 사람들에게 덮어씌웠다.
이에 몇 명의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빨리 들어가라는 의미가 담긴, 에셀레스 황태자의 손짓뿐이었다.
사람들이 다 들어가자, 사람들에게 천을 덮어씌우던 자들도 스스로 천을 덮어쓰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에셀레스 황태자가 들어갔을 때, 황태자궁의 대전에서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눈이 있는 부분에 구멍은 뚫려 있지만, 그 구멍마저도 면사로 가려진 검은색 천을 덮어쓴 사람들이 제각기 친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셀레스 황태자는 그들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지금부터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웅성대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그를 쳐다보았다.
“지금부터 하려고 하는 일이 오늘 잔치에 그대들을 초대한 진짜 목적이니까,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그에 따라 잘 따라 주면 좋겠군.”
에셀레스 황태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이 안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녀!”
그의 이상한 요구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몇 명이 사람들 사이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누가 누군지 모르게 다 섞여 버렸다.
“그만!”
사람들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모든 사람들이 제자리에 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한 에셀레스 황태자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에셀레스 황태자는 자신을 위해, 보이지 않는 창과 방패가 되어 줄 사람을 구하고 있음을 밝혔다.
거부해도 불이익은 없지만, 지원(志願)하는 자에게는 그에 어울리는 충분한 대가와 지원(支援)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에셀레스 황태자가 그들에게 제시한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이 조직은 베이엔츠 제국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에셀레스 폰 베이엔츠를 위한 조직이다.
2. 이 조직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다.
3. 자원(自願)하는 자만 받는다. 거부해도 불이익은 없다.
4. 본 조직의 존재에 대해서는 함구해야 한다.
5. 기타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근위기사단과 제국정보원의 규정을 준용한다.
에셀레스 황태자는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이제 잔치는 끝났어. 본 조직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자는 내 앞으로 나오고, 그렇지 않은 자는 그대로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가면 돼.”
사람들이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세 명이 에셀레스 황태자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검은색 천을 덮어쓰고 있었지만 그 세 사람이 에셀레스 황태자의 최측근 3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 채종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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