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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1 님의 서재입니다.

중세 판타지에서 과학적으로 살아남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LEV1
작품등록일 :
2022.10.31 13:13
최근연재일 :
2022.12.28 22:25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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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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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180

작성
22.11.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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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바다의 밀과 악마의 열매(2)

DUMMY

토런스발 손님이 끊긴 후에도 언제나 1층은 손님으로 북적였던 ‘피에르의 온도’에는 어쩐 일인지 사람이 없었다.


나는 앞장선 피에르가 우리가 들어가는 동안 잠시 떼 놓았던 ‘휴업’ 팻말을 다시 거는 걸 보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식당을 닫을 생각입니까? ”

“시국이 시국인지라. ”

“그렇게나 안 좋습니까?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요? ”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긴 청어가 아닌 대구 식당인 데다, 제철이 아닐 때도 근해에서 조금씩 잡히는 녀석들로 쭉 영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작황보다는 영주님께서 내리신 명령 때문이오. ”

“프란츠 자작님께서요? ”

“음. 엄밀히 말해 식당을 닫으라고 하신 건 아니지만 마찬가지인 말씀을 하셨지. 절주령이 내려졌소. 덕분에 식당에서 더 이상 맥주를 팔 수 없게 되었고. 아무리 요리가 맛있어도 곁들일 술이 없으면 가게 매상은 확 줄어들게 마련이지. ”

“곡물을 아껴야 할 때긴 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문을 닫아버리면 피에르 씨의 생활은 어떡하고요? ”

“바로 그것이 식당을 닫는 두 번째 이유라오. 대신 영주님께서 나를 고용하기로 하셨거든. ”

“피에르 씨를요? ”

“그동안 십 년 넘게 장사하면서 물고기를 손질하는 방법에는 도가 텄으니까. 청어와 대구가 들어오는 대로 포를 만들어 성에 납품해 달라고 하셨소. 여름에 식량난이 올 경우를 대비하시는 거겠지. 절인 청어는 끽해야 두어 계절 버티지만 바람에 잘 말린 포는 보관법만 지키면 2년도 너끈하니 말이오. ”

“흠. 그렇군요. ”

“하지만 내 식당의 안줏거리로 쓸 정도면 모를까, 그런 대대적인 작업을 하면서 여길 운영하는 건 무리요. 해서 어제까지 영업하고 당분간 휴업하기로 결심한 거요. ”

“아쉽네요. 조만간 릴리랑 다시 들리려고 했는데. ”

“그러게 말이오. 오늘은 그 아리따운 아가씨는 어디 두고 지긋한 분이랑 오셨소이까? 어머님? 아니면 장모님? ”

“하하, 둘 다 잘못 짚으셨습니다. ”


나는 로브 속에서 울컥해서 당수를 움직인 앤의 옆구리를 살짝 찌르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저를 왜 부르신 겁니까? ”

“아침에 휴업 팻말을 걸어놓고 심란하던 차에 익숙한 얼굴이 보여서 말을 걸어 봤다오. 그런데 부르고 생각해보니 ‘피에르의 온도’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어울리는 손님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저번에 드린 약속도 아직 못 지켰고 말이오. ”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시겠다는 말씀 말이지요? ”

“그렇소. 본격적인 대구철까지는 아직 한 달이 남았지만, 요행히도 오늘 아침에 저 난리통을 뚫고 튼실한 녀석이 한 마리 잡혔지. 원래는 말려서 포나 뜨려고 했지만 이렇게 인연이 닿았으니 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대접하리다. 영주님께서도 다른 사람도 아닌 학자님께 드렸다고 하면 용서하실 거요. ”

“고마운 말씀이네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메뉴는 튀김으로 되겠소? ”

“당연하죠. 튀김은 항상 옳습니다. ”

“후후, 그럴 거라 생각했소. 기름을 알맞은 온도까지 달구어야 하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오. ”


그렇게 반시간 정도가 지나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황금빛 튀김들이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핫핫! 어떻소? 때깔부터가 식은 거랑은 확 다르지? 나도 한 마리 분량을 한꺼번에 튀겨 본 건 처음인데 생각보다 잘 되어서 뿌듯하군. ”

“오. 딱 봐도 맛있어 보이네요. 앉아서 같이 드시지요? ”

“아니, 아니오. 그러면 서로가 불편하지. 요리란 입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즐거워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거요. 두 분끼리 맘 편히 드시고 이따 감상이나 들려주시오. ”

“하하, 알겠습니다. 진짜 잘 먹을게요. ”

“헛헛, 그러시오. 난 잠시 시장에 다녀오겠소이다! ”


그렇게 앤과 단 둘이서 튀김의 언덕 앞에 남겨졌다.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다.


“...먼저 드시지요. 이미르 공. ”

“아, 네. 앤 공도 드세요. 아까 들은 이야기는 잊으시고요. ”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타고난 미모가 있다 한들 세월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


엄청 신경 쓰고 계시는구먼.


아무튼 나는 삼고초려 끝에 드디어 만난 따끈따끈한 대구 튀김 한 조각을 살포시 집어 입에 넣었다.


-와삭!


바삭바삭한 튀김옷에 녹아내릴 듯이 부드러운 속살.

씹는 순간 층층이 바스러지는 하얀 살결 사이로 퍼져 나오는 고소하고 풍부한 육즙.


확실히 식어빠진 저번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이 튀긴 것은 처음이라고 해서 튀김온도가 내려간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맛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서글펐다.

이걸 릴리와 승리의 축배를 들러 갔던 그날 먹었다면 얼마나 더 맛있었을까?


미각이란 참 신기한 감각이다.

음식 자체의 맛과 향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아까 피에르가 한 말마따나, 먹을 때의 마음이 어떤지에 따라서도 감상이 확 달라진다.


만약 이 튀김을 한창 승리감에 취해있던 그날 차가운 맥주와 함께 먹었다면, 술기운을 빌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느 소년만화의 명장면처럼, ‘빌어먹게 감사했습니다!’라고 주방장에게 큰절을 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 반응은, 이 세계에 온지 처음으로 그것도 무려 세 번의 도전 끝에 요리다운 요리를 맛본 것치고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아, 맛있네.

음, 괜찮네.

그냥 그 정도.


“맛있지만 그래서 더 아쉽네요. ”

“동감입니다. 맛있지만 그때보다는 못하군요. ”

“그때요? ”

“아... 내니가 아닌 앤더슨 상단에 고용된 모험가로서 뵈었던 그날 말입니다. 눈치 채고 계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

“아아, 당시에는 몰랐었지만 지금은 물론 알고 있죠. 어? 근데 그때 튀김을 드셨었습니까? ”

“열띤 대화 사이에서 모처럼의 튀김이 식어가고 있기에 아까운 나머지 몇 개, 무심코. ”

“아니. 제가 누구 때문에 식은 걸 먹었는데? ”

“...죄송합니다. ”


그러니까 이쪽과 로버트가 열심히 설전을 벌이는 동안, 당신은 그걸 지켜보며 팝콘이라도 뜯듯이 갓 나온 튀김을 집어 먹었다는 거지?


“하긴, 치트키를 세 개나 썼는데 얼마나 맛있었겠습니까? 튀김에다 공짜에다 몰래 집어먹기까지 했으니. ”

“치트키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죄송합니다. ”


고개 숙인 그녀가 같은 동작을 한 번 더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

“그건 뭐 때문에 하시는 겁니까? ”

“릴리 양 대신에 제가 여기 있어서요. 스스로의 과거에 찔린 나머지 쓸데없는 고집을 피웠네요. ”


다행히 갑옷 덕에 목숨은 건졌다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화살을 두 대씩이나 맞은 그녀다.


프란츠도 나도 당분간 요양하라고 말했지만, 앤은 고개를 젓더니 부두로 시찰을 나가는 나의 수행원을 굳이 자처했다.


은인인 내게 보답하려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프란츠에게 스스로의 충심을 어필하고, 동시에 그가 정말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지 테스트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기에 나는 그녀의 동행을 허락했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단 둘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괘념치 마세요. 덕분에 상단의 속셈도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고 릴리는 릴리대로 맡은 일이 있습니다. 녀석의 말투를 빌리자면 신의 뜻이겠죠. 앤 공 입장에서도 조나선과 오는 편이 나았을 테니 쌤쌤이고요. ”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군요. ”

“게다가 멀건 귀리죽이나 똥 냄새 나는 소시지도 잘 먹는 녀석이니 남은 거라도 갖다 주면 맛있게 먹을 겁니다. ”

“음... ”


앤의 얼굴에 살짝 불만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괜한 참견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에겐 좀 더 섬세하게 신경을 써주시면 좋겠어요. ”

“릴리 말입니까? ”

“예.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연인인데. ”

“...나 참, 저번에 게일도 그렇고 왜 자꾸 엮으시는지 모르겠네요. 릴리랑 저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

“어? 그렇습니까? ”


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되물었다.


“아니, 그게 그렇게 의외에요? ”

“예. 솔직히 그렇습니다. 안 믿기기도 하고요. ”

“어딜 봐서요? ”

“제가 그 마을 촌장집 하녀로 밀정 일을 한 지가 대략 일 년쯤 됩니다. 그 아이가 처음 물을 팔러 왔을 때부터 쭉 지켜봤지요. 가끔은 물을 빼돌려서 백작님께 보내기도 했고요. ”

“그런데요? ”

“생각해보십시오. 이제 막 혼기가 찬 아름다운 소녀가, 데리고만 있어도 은화가 떨어지는 능력을 가지고 마을에 나타났는데 세상 어느 남자가 그녀를 내버려뒀겠습니까? ”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심지어 성격조차 친절하고 성실하니, 훨씬 일찍 결혼을 하는 이곳에서는 신붓감으로 인기폭발이었을 수도 있겠다.


“많이 곤란해 했겠네요. 그 성격에. ”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

“그랬나요? ”

“네. 저도 깜짝 놀랐지요.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가슴이 두근거릴 열여섯 소녀가, 뭇 사내들의 고백을 그렇게 똑 부러지게 거절하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


의외였다.


나는 고백 받은 그녀가 말을 빙빙 돌리며 난색을 표하고, 상대방은 그걸 멋대로 그린 라이트로 착각해서 매달리는 피곤하기 짝이 없는 그림을 상상했는데.


“결혼이나 연인관계는 물론 친구조차 절대 만들지 않더군요. 가는 말은 언제나 밝고 친절하지만 오는 것은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거부하는 소녀였습니다. 오죽하면 위험을 감수하고 해안가의 외딴 집에서 따로 살았겠습니까? ”

“...생각해 보니 이상하긴 하네요. ”

“한데 그런 그녀가 이미르 공 앞에서는 곧잘 웃더군요. 말도 유독 많아지고요. 심지어는 한 말을 같이 타면서 허리 위에다 손을 올리는 것까지 허락하던데, 그게 연인 사이가 아니면 아이가 없는 부부들도 죄다 남남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

“그건 제가 그때만 해도 말을 못 타서... ”

“그렇다고 해도 다른 남자였다면 결코 허락하지 않았겠지요. 이미르 공 역시 다른 여자였다면 사내로서의 자존심을 굽히면서까지 여자 뒤에 타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테고요. ”

“그딴 자존심은 없는데요. ”


천 년 전 사고방식으로 판단하지 말라고요.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사실 앤이 한 말이 전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생명의 은인이어서일까? 이 세상에 떨어져서 처음 만난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돌이켜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남중, 남고, 공대, 군대.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나 가능한 최악의 테크트리에 휴대폰 속 여자 번호라고는 보험설계사 아줌마와 여동생 정도인 내가 어느덧 이런 오해를 받을 만큼 녀석과 가까워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연애감정이라기보다는...


“아무튼 너무 멀리 가셨습니다. 여기서는 몰라도 제 나라 기준으로 릴리는 아직 애입니다. 나이 차도 많고요. ”

“어쨌거나 이젠 공께서도 여기 살고 계시지요. 나이 차도 저와 조나선보다는 적을 테고요. ”

“아니. 비율로 따져야죠, 비율로. 됐고, 이 얘기는 그만 합시다. 솔직히 슬슬 듣기 거북하네요. ”

“제 오해였다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나를 불편하게 했다.


-벌컥!


다시 열린 식당 문이 서늘해진 공기를 갈랐다.


“후후! 어떻소? 맛이 아주 예술이지? ”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돌아온 피에르가, 여전히 수북하게 쌓여있는 튀김들을 보더니 말끝을 흐렸다.


“으음, 생각보다 별로셨나 보오? ”

“아닙니다. 여태까지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었습니다. ”

“표정이 전혀 아닌데... 평소보다 많이 드리기는 했지만 양도 너무 많이 남았고. 아침을 든든히 자신 거요? 아님 배라도 아프신가? ”

“그런 거 아닙니다. 딱히 불만은 없었어요. ”

“‘딱히’라. 아쉬운 부분이 아주 없진 않으셨단 거로군? ”


팔짱을 낀 피에르가 의심스런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요즘 토런스의 반격 탓에 받은 스트레스와 앤과 나눈 대화 때문에 피곤할 대로 피곤해진 나는, 구태여 사정을 설명하기보다는 쉬운 변명을 하는 쪽을 택했다.


“출신이 다르니까요. ”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대답이었다.

타고난 입맛이 다르다는데 뭐 어쩔 텐가?


“하긴. 들리는 소문대로라면 학자님께서는 서쪽의 대양 너머에서 오신 고귀한 분이시라지. 이쪽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

“그렇지요. 그걸 감안하면 충분히 괜찮은 요리였습니다. ”


납득은 했지만 다소 자존심이 상한 듯한 피에르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물러날 줄 알았던 그가 한동안 서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감히 고견을 구하고 싶소만. ”

“네? ”

“바쁜 분께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학자님 입장에서 내 요리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소. 동쪽이면 몰라도, 여기보다 서쪽에서 온 분을 보는 것은 오뉴월에 대구 잡기보다 어려운 일이지. 이참에 저 멀리 서역에서 오신 분의 의견을 구해보고 싶소이다. ”

“음... ”

“부탁드리겠소. 사실 이 근방에서는 내 요리솜씨를 칭찬하는 녀석들밖에 없어서, 더 높은 경지에 오르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고 헤매던 참이었거든. ”

“하하, 피에르 씨는 정말 진정한 장인이시네요. ”


나는 그의 갓 튀긴 튀김처럼 뜨거운 열정에 감탄했다.

생각해 보니 마침 전해줄 만한 팁도 있었다.


방금 먹은 그의 요리는 분명히 맛있었지만 내 세상 기준으로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여기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저 ‘잘 튀긴 튀김’일 뿐이니까.


하지만 여기에 약간의 궁합이 더 갖춰진다면 이곳에선 꽤 독특한 신메뉴가 완성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대구튀김과 딱 어울리는 채소가 있지요. 함께 튀겨 같이 먹으면 궁합이 기가 막힐 겁니다. ”

“오! 정말이오? 안 그래도 가니시(곁들임)로 쓸 만한 게 없는지 이것저것 시험해보고 있었는데. 아, 그렇지만 너무 비싸거나 귀한 재료라면 곤란합니다. ”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여기저기에서 흔하게 보이더군요. 성채의 병영에도 쌓여있었고요. ”

“음. 병사들이 간식으로 챙겨먹을 정도의 가격대라면 감당할 수 있겠지요. 기대되는군요. 그 채소가 도대체 뭡니까? ”


나는 눈을 빛내며 묻는 피에르에게 야심차게 대답했다.


“바로 ‘감자’입니다. ”

“예? 감자요? ”

“네, 감자요. 왜 교외 이곳저곳에 굴러다니는 동그랗고 우둘투둘하게 생긴 못생긴 채소 있잖습니까? 그걸 적당히 채 썰어서 함께 튀겨주면 찰떡궁합일 겁니다. ”

“... ”


피에르가 돌연 심각해진 얼굴로 되물었다.


“혹시 아까 병영 어쩌고 했던 게 마구간 얘기였소? ”

“오! 생각해보니 그쪽이네요. 잘 아시는군요. ”

“하하, 무슨 소린가 했더니... ”


왜 저러지? 생각보다 너무 허무한 결론이었나?

한동안 목석처럼 굳어있던 그가 잠시 후 심호흡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군. 무슨 말씀이신지 충분히 알아들었소. 내 실력이 그 정도 수준이다 이거지. ”

“그럼요. 피에르 씨 정도 솜씨라면 금방... ”

“나가시오. ”


그가 달군 기름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

“썩 나가시오! 솔직한 의견을 구한 것은 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모욕을 주다니? 차라리 내쫓은 죄로 벌을 받을지언정 못 참겠소! 내 식당에서 당장 나가시오! ”

“엥? 모욕이라니, 무슨 말씀을... ”

“미, 미안합니다, 피에르! 아무래도 내가 공의 심기를 거슬렀나 보군요. 진심은 아니실 겁니다. 나가시죠, 이미르 공! ”


격변한 분위기 속에서 해명하기도 전에 앤 남작이 나를 바깥으로 끌고 나왔다.


-쾅!


어찌나 세게 닫혔는지, 문 안쪽에 걸려있던 ‘휴업’ 팻말이 덜컥 사선으로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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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바다의 밀과 악마의 열매(1) +1 22.11.28 811 21 14쪽
38 두 번째 신탁(2) +5 22.11.27 810 29 14쪽
37 두 번째 신탁(1) +7 22.11.27 838 30 13쪽
36 신종계약(5) +3 22.11.26 863 24 13쪽
35 신종계약(4) +13 22.11.26 907 32 14쪽
34 신종계약(3) +3 22.11.25 906 2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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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신명재판(1) +4 22.11.18 1,037 36 15쪽
24 곰과 여우와 돼지(4) +4 22.11.17 1,025 35 14쪽
23 곰과 여우와 돼지(3) +5 22.11.17 1,040 37 18쪽
22 곰과 여우와 돼지(2) +5 22.11.16 1,060 38 15쪽
21 곰과 여우와 돼지(1) +4 22.11.15 1,085 42 12쪽
20 피에르의 온도(6) +4 22.11.14 1,084 37 13쪽
19 피에르의 온도(5) +2 22.11.14 1,073 38 16쪽
18 피에르의 온도(4) +3 22.11.13 1,090 37 13쪽
17 피에르의 온도(3) +3 22.11.13 1,157 42 16쪽
16 피에르의 온도(2) +3 22.11.12 1,274 39 14쪽
15 피에르의 온도(1) +1 22.11.11 1,341 3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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