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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1 님의 서재입니다.

중세 판타지에서 과학적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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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1
작품등록일 :
2022.10.31 13:13
최근연재일 :
2022.12.28 22:25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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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75
추천수 :
2,527
글자수 :
469,180

작성
22.11.13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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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6
추천
42
글자
16쪽

피에르의 온도(3)

DUMMY

호손 성은 손님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했다.


열 대 넘는 마차들이 입구 앞에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고, 비슷한 숫자의 하인과 하녀들이 시녀장 엠마의 지휘 아래 숨 가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앤더슨 상단의 부단주, 로버트 앤더슨 님 오셨습니다! ”


시종으로 보이는 남자가 소리치자 앞서가던 마차가 멈추더니 로버트가 가벼운 걸음으로 뛰어내렸다.


어느새 다가간 엠마가 꾸벅 고개를 숙여보이자, 로버트가 능숙한 동작으로 그녀의 손등 위에 키스했다.


이윽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이국의 고귀한 학자이신 이미르 휴브리스 공과 그분의 시녀 릴리 누 양 오셨습니다! ”

“...시녀? ”


마차에서 내린 나는 엠마에게 따져 물었다.


“아니, 갑자기 웬 시녀입니까? 듣는 사람 민망하게. ”

“‘생명수의 소녀’라고 할 수는 없잖습니까. ”

“대충 치료사라고 하면 되지. ”

“전염병이 도는 것도 아닌데 치료사가 자작님의 만찬에 초대받는 것도 이상합니다. 쓸데없는 의심을 살 만한 일은 최대한 피해야지요. ”

“그건 그렇지만... ”

“자작님의 지시입니다. 이렇게 하면 휴브리스 님의 고귀하신 출신도 더 돋보일 것이고, 릴리 양의 정체를 숨기기에도 좋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자 릴리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인 후 엠마에게 물었다.


“근데 아까 로버트가 했던 일도 똑같이 해야 합니까? ”

“부디. ”


그녀가 하얗고 가느다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손등 키스를 하고서 발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묵으실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대기하고 있던 시녀의 안내에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자, 깔끔한 아마포로 감싼 침대 두 개가 있는 방이 나왔다.


같은 방인가?

하긴 성의 규모나 시녀라는 릴리의 위장신분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제법 폭신폭신해 보이는 침대다.

그래, 저 정도는 돼야 침대라고 할 수 있지. 속 재료는 여전히 지푸라기겠지만.


“옆방에 목욕물과 갈아입으실 옷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바로 쓰시겠습니까? ”

“오! ”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릴리 씨? 혹시 제가 먼저... ”

“후아아아...! ”


새하얀 린넨 속에 황홀한 표정으로 파묻혀 있는 그녀를 나는 굳이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어디로 가면 되나요? ”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


시녀가 오른쪽 방문을 열자, 어제 ‘태양의 우물’을 만들며 썼던 게일의 목욕통보다도 두 배는 큰 나무통이 나를 반겼다.


세라믹은 아니었지만 귀족의 욕조답게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수면 위에는 꽃잎으로 보이는 입욕제까지 떠 있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으허어! 이게 얼마만의 목욕이냐! ”


훌훌 옷을 벗고 탕 안으로 들어가 늘어진 순간, 뒤에서 불현듯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문을 닫고 나간 줄 알았던 시녀가 두 손에 타월을 든 채 문 앞에서 꼿꼿이 대기하는 중이었다.


“뭐, 뭐야! 아직 안 나가셨어요? ”

“예? 그야 목욕시중을 들어야 하니... ”

“필요 없으니까 나가세요! ”


그 말에 시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이해했다는 듯 힘차게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따로 데려오신 시녀분이 있었는데 제가 주제넘게... 지금 바로 불러오겠습니다. ”

“아니라고! 그냥 혼자서 하면 된다고요! ”


덕분에 나는 욕조에 푼 꽃잎의 다른 쓸모를 알게 되었다.

다름 아닌 모자이크 대신이었다.



* * *



갑작스런 고백이지만 나는 소시지와 햄을 좋아한다.


로테 비엔나, 의성 마눌햄, 굴비맛 후랑크...

그런 게 특식이었던 보육원 시절은 물론이고, 지금도 없어서 못 먹을 만큼 사족을 못 쓴다.


군대 시절, 반찬으로 소시지 야채볶음이 나오면 말년병장 때에도 벌떡 일어나서 식판을 잡았고, 첫 연구원 월급을 받자마자 한 아름 사와서 팬에 꽉꽉 채워 구워먹다가 여동생한테 작작 처먹으라며 등짝을 맞기도 했다.


세 판은 조금 심했다고 나도 인정은 한다.


아무튼 프란츠 자작이 준비한 만찬에서, 드디어 잡곡빵과 귀리죽 대신 밀빵과 햄, 소시지가 나왔을 때, 난 초코파이교 신자 주제에 불경하게도 진심을 담아서 할렐루야를 외쳤었다.


그리고 1분 만에 철회했다.


프란츠 영주가 나를 그의 옆자리에 앉힌 탓에 본인 다음으로 빠른 분배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내가 먹던 현대의 소시지들은 케이싱으로 콜라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돈장이나 양장을 쓰더라도 철저한 세척 및 살균과정을 거친 후에 포장한다는 것을.


하지만 이 시대의 소시지란 돼지 창자에 온갖 부위의 고기들을 잔뜩 갈아 넣은 것일 뿐이었고, 성의 요리사(만에 하나 있다는 가정 하에)는 빵 굽는 용도로도 넉넉하지 않은 밀가루를 돼지 창자 속에 치덕치덕 발라서 빡빡 닦는다는, 대한민국 막창 집 어디서나 부리는 사치를 감히 일삼지는 않기로 굳게 결심한 모양이었다.


한 마디로 똥 냄새가 났다.

돼지막창에서 나는 꿉꿉한 냄새?

그건 이거에 비하면 차라리 ‘빼브리즈’다.


그리고 햄.

오오, 햄 신이시여! 당신만은 저를 버리시지 않겠지요?

소망하며 입을 앙 다문 순간, 나는 ‘브루투스 너마저’를 외치며 스러져간 카이사르의 심정을 알았다.


그래, 안다. 그 일화가 셰익스피어의 창작이라는 것쯤은.

햄이란 게 원래 소금에 절인 고기를, 아궁이 위나 불 위쪽에 걸어놓고 훈연 건조시킨 물건이란 것도.


본질적으로 퍽퍽하고 짤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몇 년 전에 돈은 잘 받고 일은 못하는 어느 보건기구에서 햄을 1군 발암물질로 규정했다는데, 적어도 이것은 확실히 발암물질이 맞았다.

내가 방금 먹다가 걸릴 뻔했거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

나는 선조의 지혜는 무시할 게 못 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빵은... 그나마 가장 괜찮았지만. ’


‘쑥 닷컴’에서 팔던 10개당 1990원짜리 모닝빵이랑 비교하면 근소한 차이로 2마트 손을 들어주련다.


졌지만 잘 싸웠다, 빵 자식들아.


‘하아... ’


설마 ‘피에르의 온도’에서 먹었던 식은 대구 튀김이 더 맛있었을 줄이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로버트!

지금 내 맞은편에서 태연하게 식사 중인 뻔뻔한 자식!


튀김은 비싼 음식이라며 한껏 생색을 부리더니, 결국에는 자기 이야기만 하다가 대구 튀김을 식혀버리고 말았다.


어쩐지 곧 나온다 해놓고 감감무소식이더라니, 수행원이라던 가면의 여자가 로버트와 내 대화가 마무리될 즈음까지 요리를 홀딩 시켜놓고 있었던 것이다.


얻어먹는 입장에서 크게 뭐라 할 수도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김이 반쯤 빠져버린 맥주랑 대충 해치웠다.

먹을 만 하긴 했지만 당연히 기대에는 못 미쳤다.


알겠냐!

맥주랑!

튀김은 말이다!

식어버리면 극단적으로 맛이 없어진다고!

과학적으로다가!


‘후우... ’


차오른 분노게이지를 심호흡을 해서 낮추었다.


직사각형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있던 프란츠 자작이, 은 숟가락으로 주석 잔을 땡 쳐서 이목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이윽고 만찬장 안으로 시종들이 우르르 들어오더니, 개당 한갤런 크기의 나무통 수십 개를 한쪽 벽에 쌓아올렸다.


“들면서 듣게나. 귀가 빠른 장사꾼들이니 어련히 다 알고 왔겠지마는, 최근 내 영지의 어느 마을이 여신님의 축복을 받는 경사로운 일이 생겼네. 덕분이 갖가지 질병과 특히 ‘부자병’에 효과가 탁월한 ‘생명수’를 얻게 되었지. ”


사람들의 시선이 겹겹이 쌓인 물통들의 벽으로 향했다.


“다만 이틀에 한 번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만 솟기에, 그 양이 많지는 않다네. 이번 주에 준비한 것은 총 45갤런, 다음부터는 조금 늘겠지만 그래 봐야 50갤런이 한계겠지. ”


상인들의 얼굴에 탐욕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귀할수록 값이 뛰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니까.


그때 내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손을 들었다.

로버트 앤더슨이었다.


“실례지만, 각하. ”

“뭔가? ”

“소인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제 눈에는 물통이 44개 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


각하라는 호칭까지 쓰며 깍듯이 존대한 것치고는 주눅 든 기색 하나 없는 그의 말에, 프란츠 자작은 미소로 대답했다.


“아니, 제대로 보았네. 한 통은 다름 아닌 자네들의 물컵 안에 들어 있지. 먼 길을 와준 그대들을 위한 작은 성의라네. ”


그 말에 모두가 자신의 컵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알고 있던 나와 프란츠 영주를 빼고.

아니, 이제 보니 로버트 앤더슨도 아니었다.


“오, 오오오...! ”

“이, 이게 그 귀하다는? ”


-벌컥! 벌컥!


몇몇이 먼저 들이키자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이 다들 허겁지겁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특히 유독 뚱뚱하거나 마른 사람들은, 이곳이 영주의 만찬장임을 잊기라도 한 듯이 바닥이 보이도록 탈탈 털어댔다.


“오오, 과연... ”

“빗물 맛이랑은 차원이 다르군요! ”

“저, 죄송하지만 딱 한 컵만 더 주시면... ”

“저희 상단에 유통을 맡겨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요? ”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프란츠 자작이 대답했다.


“당연히 맡겨야지. 그러려고 자네들을 부른 건데. 하지만 고작 50갤런도 안 되는 물을 모두에게 나눌 수는 없겠군. ”

“저, 저희가 하겠습니다! ”

“아니,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푸홀스 상단주님께서는 린우드 남작님이랑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셔서... ”

“‘전’ 린우드 남작이겠지. 뒷방 늙은이한테 술이랑 여자 꽂아주고 돈 받아먹은 것도 친분으로 치던가? ”

“버논, 저 자식이! 박쥐같은 새끼가 지금 감히 뭐라고? ”


-땡땡!


“조용, 조용! ”


과열된 분위기를 프란츠 자작이 잔을 때려 진정시켰다.


“무릇 기사는 창칼을 다루는 솜씨로 스스로를 말하고 학자는 말과 글로 자신을 드러내는 법. 장사치인 너희들이 그 본분을 저버리고 드잡이질이나 하는 꼴을 내가 봐야겠느냐? ”

“아, 아닙니다, 자작님. ”

“잘못했습니다요. ”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너희들이 가장 잘 다루고 좋아하는 것으로 답해라. 금화를 얼마나 낼 수 있는지를 말이야. ”


단숨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프란츠 자작이 실눈을 뜨고 좌우를 바라보더니, 이내 헛웃음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럴 줄 알았지. ”


소년이 손을 들어 중간자리의 뚱뚱한 남자를 가리켰다.


“거기, 자네! 푸홀스 상단의 소단주라고 했던가? ”

“예? 예에. ”

“다 해서 금화 50닢은 어떤가? ”

“그, 금화를 50닢이나요? 그거는 너무... ”

“한 통에 1닢은? ”

“...돌아가서 단주님과 상담해 보겠습니다요. ”


그가 이번에는 맞은편의 빼빼한 사내를 지목했다.


“버논이랬던가? 웰스 상단의 부단주인 자네는? ”

“그것이, 저로서도 당장 확답을 드리는 것은... ”

“하, 이놈들이! ”


프란츠 자작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보니 네놈들이 나를 능멸하고 있었구나! ”


노기 띤 말에 상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불과 한 시간 전, 만찬이 시작되기 전에 프란츠 자작은 직접 나서서 이렇게 말했었기 때문이다.


[내 여태까지는 ‘진실의 손’을 통해 참과 거짓을 명확히 나누어서 듣고자 했으나, 여기 이국에서 오신 고귀한 신분의 학자 이미르 휴브리스 공께서 말씀하시기를 때로 참과 거짓은 애매한 법이니, 진정 현명한 자라면 그 귀로 전부 듣고 나서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 이에 나 또한 그러기로 한 것인즉, 오늘은 진실의 손 없이 너희와 이야기할 테니 가감 없이 속내를 털어 놓도록 하라. ]


“진실의 손이 없다 해서 내가 너희들의 기만조차 구별할 줄 모르는 백치로 보였느냐? 그래, 내친 김에 밝히지. 진실의 손은 원래부터 가짜였다! 너희들이 그 검은 속을 훤히 내비치도록 알량한 장난감으로 떠본 것에 지나지 않아! ”

“...! ”


좌중이 깜짝 놀란 가운데 침묵이 이어졌다.

이윽고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다.


“외, 외람된 말씀이오나 그렇다고 하심은... ”

“뭐냐? ”

“송구하지만 저희가 그동안 그것 때문에 겪은 고초가... ”

“고초? 무슨 고초? 길가에 나는 잡풀을 이국의 차라며 팔아먹으려다 볼기짝을 맞은 일? 아니면, 토런스 은화는 쌓아두고 조악한 옛 리나 은화만 쓰려다가 걸려서 추가금을 냈던 일? ”

“... ”


프란츠의 즉답에 사내는 바로 합죽이가 되었다.


“실제로 여기 모인 상단의 사자들 중에 적어도 한 번 이상 ‘거짓’ 판정을 받지 않은 자가 드물 것이다. 한데 그런 너희들 가운데 지하 감옥에 갇혀있거나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자가 있더냐? 있다면 말해 보아라! ”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쳐다보던 사람들이 이윽고 대답했다.


“...없습니다. ”

“그러고 보니 없네. ”

“없습니다요. ”

“그런데 고초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고초? ”


할 말을 잃은 그들 앞에서 젊은 영주가 덧붙였다.


“하면 이번에는 내가 묻겠다! 마을 하나도 아니고 근방의 여러 도시를 오가며 장사하는 상단의 부단주나 소단주쯤 된다는 장사꾼들이, 금화 50닢도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 벌벌 떨고 있는 꼴을 내 어찌 보아야 하느냐? ”

“... ”


이번에도 사람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맨 구석에서 빵을 집어먹고 있던 중년인을 가리켰다.


“거기 끝에! 이디어 상단의 부단주라고 했었지? ”

“그, 그렇습니다요. ”

“작년에 내가 본 사람과는 다른데? ”

“최, 최근에 바뀌었습니다요. ”

“그래? 그렇다면 왜 항의하지 않았나? ”


중년인이 이해를 못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을 말입니까요? ”

“왜 자기를 말석에 앉혔냐고 따지지 않았느냔 말이다! ”

“쇠, 쇤네가 어찌 감히 자작님께... ”

“내가 아니라면 시녀장한테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프란츠 자작이 테이블을 쿵 치더니 말을 이어갔다.


“내가 알기로 이디어 상단은, 지금 내 왼쪽에 앉아있는 앤더슨 상단과 오랜 경쟁관계였다. 규모도 비슷하고 상로 또한 거의 같았지. 그래서 내 아버님 때부터 너희들은 언제나 이웃해서 앉히거나 서로 맞은편 자리에 앉도록 하였었다. ”

“그, 그랬구만요! 몰랐습니다. 지금이라도 바꿔주신다면... ”

“네 이노옴! ”


어린 영주의 노성이 만찬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네놈이 진실로 한 상단의 부단주라면 그것조차 모르고 왔을 턱이 있느냐?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내 당장 가장 빠른 말을 달려 너희 상단에 파발을 보낼 것이니, 거짓임이 들통 난다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고초란 게 무엇인지 알게 해주겠다! ”

“주, 죽여줍... 아니, 살려주십시오! 부단주께서 요즘 너무 일이 바쁘신 관계로! ”

“그래! 이 인근의 사철이란 사철은 다 긁어모아 토런스 백작한테 갖다 바치느라 말이지? ”

“쇠, 쇤네는 시키는 대로 한 죄밖에 없습니다요! ”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다! ”


-촤랑!


프란츠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그가 테이블 위로 날선 칼을 겨누면서 소리쳤다.


“지금부터 셋을 세겠다! 만약 이 안에 스스로의 위치나 입장을 속이고 온 자가 있다면 당장 내 성에서 썩 나가거라! 한 명의 기사로서 등을 베는 취미는 없다만, 만약 셋을 센 이후에도 여전히 나를 기만한 채 꼿꼿이 얼굴을 마주할 작정이라면 그땐 내가 이 칼로 그 목을 베어버리겠다! ”

“자, 자작님! ”

“하나! ”

“오해하신 겁니다! 저 자는 몰라도 저희들은... ”

“두울! ”

“고정해주십시오! 금화, 금화를 내겠습니다! 50닢은 어렵겠지만 10닢, 아니 15닢은 어떻게든... ”

“세엣! ”

“죄송했습니다아! ”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우르르 달려 나갔다.

남은 이는 시종과 시녀들을 빼면 오직 세 명뿐.


프란츠 폰 호손 자작.

로버트 앤더슨 앤더슨 상단 부단주.

그리고 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썰렁해진 만찬장에서 푹 한숨을 쉰 프란츠가 검을 집어넣었다.


“한 명인가... 아니, 하나라도 남아있는 게 다행이군. ”


그가 로버트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볼 준비가 된 것 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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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곰과 여우와 돼지(2) +5 22.11.16 1,059 3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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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의 온도(3) +3 22.11.13 1,157 4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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