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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1 님의 서재입니다.

중세 판타지에서 과학적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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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1
작품등록일 :
2022.10.3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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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11.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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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곰과 여우와 돼지(1)

DUMMY

자철석(Magnetite).

이곳 말로는 ‘사랑돌’ 혹은 ‘피에르 원석’.


팔면체의 스피넬 구조를 가진 산화광물로, 자연 상태의 광물 중에 가장 강력한 자성을 띠는 물질.


순수한 자철석은 약 72%의 철을 함유하고 있으며 이는 지구 기준으로 모든 광물 가운데 최고치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그 자체가 최상급의 철광석이다.

하지만 이 일대에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와, 내 이야기를 들은 프란츠 자작 및 몇몇 측근들밖에 없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우습게도 돌이 품위가 지나치게 높아서였다.

마치 맛 좋은 광천수에 불과한 릴리의 생명수가 지나치게 좋은 효험 탓에 만병통치약으로 오해받았던 것처럼.


오라클의 검색결과에 따르면 중세 유럽에서는 붉은 스피넬을 루비, 푸른 스피넬을 사파이어와 같은 물질로 취급했다 한다.


그리고 고품위 자철석의 모양은 영락없는 검은 스피넬.


물론 실제 스피넬과는 달리 불투명하고, 진짜 보석인 그것에 비해서는 심미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자석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이곳 사람들에게 ‘서로를 끌어당기는 예쁜 돌’은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사랑돌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자철석은 발견되고 한동안 사랑의 증표로서 준보석 취급을 받았고 토런스의 귀부인들을 중심으로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그런 귀석으로 무기나 방어구 따윌 만들 생각은 안 했겠지.

그게 불에 닿는 순간 원래의 색과 자성을 잃어버린다고 하면 더더욱.


자철석의 화학식은 Fe3O4.


산소 중에 가열하면 약 220℃부터 화학식 Fe2O3의 붉은 산화철로 바뀌고, 575℃로 알려진 자철석의 퀴리 온도를 넘어서면 아예 자성을 잃어버린 적철석이 된다.


철을 뽑아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자철석이 철광석임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신비로운 보석이 볼품없는 돌덩이가 되는 걸로밖에 안 보이겠지.


게다가 아직 이 근방의 제철법은 철광석을 녹여서 쇳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철을 목탄불을 지핀 괴철로에 넣고 저온에서 환원반응을 일으키는 것.


그런 원시적인 제련법으로는 뜰채나 자석으로 걸러낸 사철을 쓰는 편이 철광석을 집어넣는 것보다 훨씬 쉽다. 웬만한 품위의 철광석은 넣기 전에 철이 많이 함유된 부분을 선별하고 넣기 좋은 크기로 소결하는 공정을 거쳐야하니까.


거기에 사철이 풍부한 해안가나 강가가 가깝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곳에서 철의 표준은 사철인 것이 당연했다.


그러니 귀부인들 사이에서 유행이 식고, 같은 자석뿐만 아니라 철도 끌어당기는 성질이 발견된 이후, 자철석으로 이곳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은 그것을 주머니에 넣어 봉한 다음 긴 막대기에 달아놓은 ‘사철 채취기’였다.


정작 그 안에 들어있는 자석이 최고순도의 철광석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서 말이다.


따라서 호손시가 일대의 유일한 자철광산을 발견하고 차지한다면 거기에는 두 가지의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양질의 철광석 확보.

또 하나는 사철 채취기를 만들 자철석의 유출을 막아 토런스의 사철 채취 속도를 묶어둘 수 있게 된다는 점.


어느 쪽이든 결코 놓쳐서는 안 되었다.


다음날 새벽.


-다그닥다그닥!


“으극? 윽! ”

“괜찮으십니까? 힘드시면 조금 쉬었다가... ”

“아니, 아닙니다! 시간이 촉박해요. 차라리 최대 속도로 달려서 이 고통을 빠르게 끝내주십시오! ”

“음! 알겠습니다. 보기보다 사내다운 면도 있으시군. 이랴! ”

“끼양앙아! ”


전혀 사내답지 못한 비명을 지르며 나는 릴리가 생명수를 만들어주던 해안가의 마을로 달렸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상했다.


10년 전의 대지진에 우물이 말라 식수가 모자라고, 염해까지 당해 춘경지의 1/3이 날아가 버렸다는 마을.


그나마 깎아주던 세금도 영주님이 바뀐 재작년부터 원상복귀 되어 릴리에게 줄 물값조차 마련하기 어렵다던 곳.


그런 곤경에 처한 장소라기에는, 촌장을 비롯한 마을사람 일부가 내뿜는 공기가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던 것이다.


힘겨운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는 사람들.

미래에의 희망과 기대를 잃고 죽지 못해 사는 인생들.


보육원 시절에 나는 그런 아이들을, 친구들을, 선배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비록 손으로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 엠마 같은 능력자는 아니지만, 비탄에 빠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이는 특유의 공기가 얼마나 무거운지 나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느꼈던 마을의 분위기는 그렇지가 않았다.

적어도 촌장 주변의 기류는 확실하게 달랐다. 게다가,


‘시골 촌구석의 노인이 한 푼 두 푼 모은 저금이라기에는 촌장이 내민 은화가 하나 같이 너무 깨끗했지. ’


의심은 이제 와서는 확신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 찾은 마을의 가장 큰 집에서는 놀랍게도 축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짤그랑거리는 동전 소리를 음악 삼아서.


[이야! 이게 다 얼마야? ]

[그동안 고생했던 보람이 있구먼! ]

[이게 다 촌장님의 묘수 덕분입니다요. 하핫! 하마터면 그 외국인 학자 놈 때문에 전부 망칠 뻔했는데! ]

[요놈이 말로만 듣던 ‘토런스 은화’란 말이지? 크, 원래는 요코로롬 생겼구먼! 아이구, 예뻐. ]

[홀홀. 조금만 기다리면 그쪽에서 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 걸세. 더 이상 몰래 숨어서 사랑돌을 캘 필요도, 물장수 놈들을 운반책으로 쓰면서 돈을 떼 줄 필요도 없지. ]

[정말입니까? 이거 아주 겹경사네요, 겹경사! ]


“뭐가 말입니까? ”


문 앞에 귀를 대고 서있던 나는,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스리슬쩍 들어가서 물었다.


“뭐긴 뭐야? 방금 말했잖... 히이익? ”


예상치 못한 손님의 등장에 촌장과 장정들이 숨을 삼켰다.


“하, 학자님께서 여긴 어떻게? ”

“어떻게라뇨? 어제만 해도 서로 얼굴 보지 않았습니까? 영주님을 뵙고 오는 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

“그, 그렇소이까? ”

“왜요? 제가 돌아오지 않을 줄 아셨습니까? ”

“그, 그야! 영주님의 성이 여기보다 훨씬 편할 테니... ”


나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

다 아는 얼굴들이구먼.


“아무튼 하시던 얘기 계속하세요. 뭔 경사가 났다고요? ”

“아, 아니요. 학자님께서 잘못 들으신 거요! ”

“벌써 듣는 귀가 먹지는 않았는데요. 참, 오는 길에 부탁 하나를 받았습니다. 지미 씨? ”


구석에 앉아있던, 콧볼이 밑으로 처져 멧돼지처럼 생긴 사내가 나를 게슴츠레 올려다보았다.


“뭐요? ”

“잡화점 주인이 전해 달라네요? 반품이라고. 토런스 쪽에 알아봤는데 이미 귀부인들 사이에서 유행이 끝났답니다. 아쉽지만 은화는 돌려주셔야겠네요. ”


나는 허리춤에 차고 온 묵직한 돌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내용물을 알아본 사내가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하! 그런 법이 어디 있소? 좋다고 사갔으면 그만이지! ”

“저, 저저 멍청이가! ”


촌장이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은 거래의 파토를 따질 때가 아니라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 자제를 부정해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흩뿌려진 수십 닢의 ‘토런스 은화’들로 장식된, 감히 영주님의 만찬실과도 비교할 수 있을 만큼 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중에 그 정도의 눈치가 있는 사람은 촌장뿐이었다.

적어도 지미는 아니었다.


“멍청이라고? 내가 왜 멍청이야? 저번에 알아서 잘 받아주겠다며 내가 캔 것까지 죄다 가져가더니만, 촌장 당신은 깨끗한 은화를 먹고 나한테는 뭉개진 동전 쪼가리나 던져 줬던 걸 내가 몰랐을 줄 알아? 나도 제 값 좀 받고 팔겠다는데, 그게 뭐 어때서! ”

“야, 이 저 무지렁이 자식아! 제발 좀 닥치란 말이다! ”


발을 동동 구른 촌장이 급기야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오, 오해요! 내가, 이 늙은이가 전부 설명하겠소! 저 멍청이들이 이해를 못 해서 요상한 소리들을 해대는데, 여기엔 전부 사정이... 피치 못할 사정이란 게 있다오! ”

“그건 저한테 말씀하셔서 될 일은 아닌 것 같네요. ”


나는 잡힌 손을 떼 내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들어보시겠습니까, 잭슨 경? ”

“암, 들어봐야지요! 여기 말고 신문실에서! ”

“허억? ”


철컥철컥 쇳소리를 내며 들어온 궁내관의 등장에, 탁자를 둘러싼 모두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잠시 후,

나는 잭슨의 부하들이 세워놓은 천막으로 들어갔다.


“어떻습니까? ”

“아직 좋은 소식은 없군요. ”

“촌장 패거리들은 지금도 입을 꾹 닫고 있습니까? ”

“하나 같이 노천에서 굴러다니던 돌을 주워 팔았다고 우기는 중입니다. 숨겨진 광산이나 광맥 따위는 없다고요. ”

“그 말을 믿으십니까? ”

“아니요. 반드시 있을 겁니다. 방금 도착한 파발에서 전해온 바에 따르면 공의 예상대로 그 상인 놈은 벌목권을 유예하면서까지 광산개발권만은 따내려 했다니까요. 광맥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반대였을 겁니다. 군사를 풀어 찾고는 있지만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 ”


궁내관 잭슨이 걱정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듣기로는 그 교활한 놈이 카탈리나 공국 문서보관소에서 공증인들까지 끌고 왔다 합니다. 거리를 생각하면 미리 손을 써둔 거지요. 명망 높은 학자들이라 자작님께서도 마냥 계속 세워두시기는 어려울 겁니다. 속이 타는군요. ”

“자수해서 광명 찾는 편이 차라리 나을 텐데 말입니다. ”

“그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길가의 돌을 주워 외지에 판 거야 볼기짝 몇 대 맞고 끝날 일이지만, 영주님 몰래 광산을 개발하고 채굴했다면 그건 그 자체로 극형까지 갈 수 있는 중죄니까요. 심지어 그걸 봉쇄령을 어기고 토런스에게 넘겨왔다면 반역죄로 사지를 찢어야 할 대죄입니다. 그러니 다들 목숨 걸고 입을 다물고 있는 거지요. 앤더슨 상단이 광산채굴권을 따와서 자기들을 살려줄 때까지 말입니다. ”

“그렇군요. ”


그쯤에서 나는 떠보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시간이 없으니 조금 더 ‘강하게’ 신문하시는 건? ”

“고문이라면 자작님께서 금하셨습니다. 토런스에 또 다른 명분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방식으로 얻는 진실은 거짓과 구분할 수가 없다고 하시더군요. 보시다시피 성 밖에 도는 소문과는 딴판인 분입니다. 아직 어려서 마음 약하신 면도 없지 않아 있으시죠. ”

“그런가요? 저는 반대로 강한 거라고 봅니다. ”

“그렇습니까? ”

“본인이 급할 때도 자신이 그어둔 선을 지키는 사람은 꽤 보기 힘드니까요. 생각보다 심지가 굳은 분입니다. 안심하고 끝까지 도와드릴 수 있겠네요. ”

“감사한 말씀입니다. 아무튼 앤더슨 상단 놈들이 들고 온 계약서가 공인되기 전에 광산을 찾아야 하니 저도 말을 달려 찾아보도록 하지요. ”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

“무슨 뜻입니까? ”

“광산이라면 제가 방금 찾았거든요. ”

“예? 하지만 공께선 아까부터 마을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

“네. 광산은 마을 안에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


잭슨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었다.

나는 말로 대답하는 대신에 앞장서서 걸었다.

다름 아닌 이 마을의 광장을 향해.


“북쪽입니까? 그쪽은 제 부하들이 찾아봤을 텐데? ”

“아뇨. 바로 여깁니다. ”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걸음을 멈추었다.

돌담과 짚단지붕에 두레박까지 달아 그럴듯하게 꾸며놓은 가짜 생명수 우물.


“설마 여기가 광산이란 겁니까? ”

“네. ”


나는 나무 뚜껑으로 막혀있던 우물을 열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새카만 구멍이 드러났다.

그리고,


“들리십니까? 이 소리가? ”

“아아! 바람 소리로군. ”


가짜로 만든 두레박이라기에는 지나치게 튼튼한 밧줄이 휘잉 불어온 바람에 흔들렸다.

촌장 말대로 우물이 막혀있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소리.

그가 필사적으로 태양의 우물 건설을 막으려 했던 이유.


가짜 우물은 우물이 아니었다.

갱도였다.


“자작님께 파발을 보내십시오. ‘피에르’를 찾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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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바다의 밀과 악마의 열매(2) +3 22.11.28 747 21 16쪽
39 바다의 밀과 악마의 열매(1) +1 22.11.28 811 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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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두 번째 신탁(1) +7 22.11.27 838 30 13쪽
36 신종계약(5) +3 22.11.26 863 24 13쪽
35 신종계약(4) +13 22.11.26 908 32 14쪽
34 신종계약(3) +3 22.11.25 906 24 13쪽
33 신종계약(2) +5 22.11.24 921 29 15쪽
32 신종계약(1) +6 22.11.23 951 3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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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신명재판(5) +5 22.11.21 952 31 17쪽
28 신명재판(4) +4 22.11.20 1,007 31 18쪽
27 신명재판(3) +2 22.11.20 1,017 41 11쪽
26 신명재판(2) +5 22.11.19 1,008 33 14쪽
25 신명재판(1) +4 22.11.18 1,037 36 15쪽
24 곰과 여우와 돼지(4) +4 22.11.17 1,025 35 14쪽
23 곰과 여우와 돼지(3) +5 22.11.17 1,040 37 18쪽
22 곰과 여우와 돼지(2) +5 22.11.16 1,060 38 15쪽
» 곰과 여우와 돼지(1) +4 22.11.15 1,086 42 12쪽
20 피에르의 온도(6) +4 22.11.14 1,084 37 13쪽
19 피에르의 온도(5) +2 22.11.14 1,073 38 16쪽
18 피에르의 온도(4) +3 22.11.13 1,090 37 13쪽
17 피에르의 온도(3) +3 22.11.13 1,157 42 16쪽
16 피에르의 온도(2) +3 22.11.12 1,274 39 14쪽
15 피에르의 온도(1) +1 22.11.11 1,341 3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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