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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님의 서재입니다.

죄악과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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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작품등록일 :
2018.11.0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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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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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2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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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억(2)

DUMMY

3.

그 이후로 교관에게 몇 번이나 고향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건 내 적성에 맞지 않으며, 나는 전선에서 방해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를 중부전선에 배치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레너드와 같은 부대에 배치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당시 그에게 꽤나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로가 되었다.

당시의 전선은 내가 알기로 두 개가 형성되어 있었다. 내가 가게 된 중부 전선과 남부 전선이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다. 희미한 소문으로는 남부 전선은 동부의 공작인 한센의 병력이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중부전선은 심각한 정체를 겪고 있었다. 우리와 적들은 수가 비슷했고, 두 쪽 모두 좋은 지형을 차지하고 있었다. 공격하는 쪽이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우리에게는 산이 있었고, 그들에게는 성이 있었다.

마법사들도 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한쪽이 마법사를 불러서 상대 병력에 타격을 입히면 즉시 다른 쪽에서도 마법사를 투입했다. 마법사가 양쪽 다 있는 상태에서는 서로 마법사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병력이 주가 되는 전투가 벌어졌고, 이 전투는 마법사가 기다리고 있을 상대의 진영까지 이어지지 못하므로,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결국은 양쪽 다 적당히 싸우는 형태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적당히 싸우는 형태라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이야기이지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의 싸움은 적당하지 않았다. 전투는 모두 피로 뒤덮여 있었고 적당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 모두의 운명도 또한 적당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의 분명한 상태로 있었다. 그것에는 적당함이 없었다.

전장은 공포가 지배했다. 공포는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고, 평소라면 생각하지 못할 일들을 하게 만들었다. 사방에서 위협이 번쩍였다.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저 번개는 자연이 만든 것인가 아니면 마법사가 불러낸 것인가. 눈앞에 풀숲이나 작은 나무들도 믿을 수 없었다. 우리는 신뢰할 수 없는 땅 위에 서서 적의 공포와 맞서야 했다.

마법사가 없는 전장이라고 사정이 낫지는 않았다. 그곳에서는 말을 탄 기사들이 날뛰었다. 그들은 단단한 갑옷을 입고 창이나 칼을 내키는 대로 휘두르며 돌아다녔다. 그들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말에 치이거나 칼에 베여서 죽었다. 기사들은 죽음을 두르고 다녔다. 지휘관들은 말을 노리라고 소리를 질러대었지만, 전장에 나가본 이들은 죽음에게서 떨어져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전투를 겪었다. 그만큼 많은 지휘관들을 만났다. 그 지휘관들은 대부분 돌덩이나 물보라가 날아오고 있더라도 진형을 유지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 우리는 산개 진형을 유지한 채 그 무언가가 자기 쪽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빌었다. 대체로 그런 지휘관들이 유능한 편이었다. 한번은 진형보다는 부하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긴 지휘관도 있었는데, 그와 함께한 전투는 최악의 전투로 기억에 남아있다.

전투는 항상 비인간적으로 될 것을 요구했고, 그것을 잘 받아들인 자들이 좋은 성과를 냈다. 병사들은 방패이며 검이며 갑옷이었다.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막사에서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었지만, 전장에서는 그러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오래 함께한 지휘관들일수록 점점 더 인간적이 되어갔고, 힘을 잃어갔다. 그들은 전장마다 자신의 일부를 조금씩 두고 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당연히 불만이 많았다. 이 모든 것들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이었고, 동시에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전투가 계속되며 나는 몇몇 동료들과 친해지게 되었는데, 중간 중간 쉴 때마다 이들과 모여서 시간을 보내고는 하였다. 그때마다 이들은 불만을 토해냈다.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서 불평했다. 동부 쓰레기들, 전장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 돼지 같은 왕,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귀족 놈들, 멍청한 지휘관 등등. 정말 모든 것에 대해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동부 쓰레기들이었다. 놈들은 활을 정말 잘 쐈는데 동료들은 그게 그들이 비열하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전사라면 당당히 나와서 힘 대 힘으로 붙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하기야 그렇게만 되었다면 좋을 일이었다. 활만 없었다면 우리 마법사들이 저들을 다 쓸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전장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윌리엄은 전쟁 초기에 우리 쪽 마법사들이 화살에 맞아 죽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그 뒤부터 마법사들은 호위병을 덕지덕지 붙이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었고, 화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졌다.

물론 우리 쪽도 상대 마법사에 대한 대비를 했다. 조지는 그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다. 그와 다른 몇몇은 평민이면서도 말을 탈줄 알았기에 특수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조랑말을 타고 전장을 옆으로 돌아 적의 후방으로 들어가 마법사를 죽이거나 납치해서 데려오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빠르게 움직여야 해서 무장은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위 병력과 마주할 경우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죽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다음 전투가 아니더라도 그 다음, 그 다음 다음 전투에서 죽을 거라고. 그는 늘 우울한 얼굴로 술을 마셔대었지만, 아무도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우리는 왕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다. 이건 분명 그의 전쟁일 터였는데 왜 정작 그는 전장에 있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책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전쟁을 일으켰고, 그러니 이 모든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 그때의 우리는 책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모두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책임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시 북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우리는 무거운 몸을 끌어 자기가 속한 곳으로 가야 했다.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고,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때만큼은 책임이 살아남은 다음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어찌 보면 그때 우리는 마음이 가장 편했다. 책임은 덜어지고 그 자리를 공포와 혐오와 분노가 채웠다.

나는 그때쯤에 사람이 죽는 것에 제법 익숙해져 있었다. 내 동료들이던 적이던 그 죽음에 아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그것을 담담히 바라볼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죽이는 것만큼은 할 수가 없었다.

레너드가 없었다면 나는 전장에서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내가 제압한 적들을 죽여주었다. 나를 이해해 주었기 때문에 그는 묵묵히 적들을 죽였다. 우리는 역할 분담을 잘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혼잡하고 긴박한 전장에서 우리는 잘도 해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항상 적들의 최후를 보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적들의 마지막 시선은 늘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내 위선이 역겹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내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그 이기심이 역겨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신을 타일렀다. 내가 뭘 어쩔 수 있겠는가? 하고.


한참동안 같은 곳에서 반복되던 전투는 의외의 전환점을 맞았다. 변화의 바람은 남쪽에서 불어왔다. 적은 갑자기 남부 전선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는데, 소문을 듣기로는 병력 열세에 상관없이 전선은 굳건하다고 했다. 덕분에 중부는 한산해져서 우리가 밀고 들어가게 된 것이다. 물론 수월하지는 않았다. 발목을 잡는 것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걸리적거렸던 것은 마법사였다.

이전과 달리 병력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에 마법사가 있더라도 계속 전진해서 적의 진형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병사는 우리가 더 많았고 우리도 마법사가 있었지만, 그래도 전투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적은 계속 저항했고 사방에서 별에 별 것들이 다 떨어졌다. 돌, 물, 불, 칼, 뭐 그런 것들.

지휘관은 마법사를 생포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놓고 전투를 지휘했다. 그래서 더 피해가 컸던 거겠지. 지휘관은 그 피해보다는 마법사 하나가 가지는 가치가 더 크다고 생각했다. 전력에 보탬이 되는 정도로 봤을 때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많은 피해 끝에, 어쨌든 우리는 해냈다. 부대를 4개로 나누어 4방향에서 덮쳤다. 적군 병사들의 처리는 우리 쪽 마법사와 1소대가 맡았고 나머지 3개 소대는 마법사에게 달려들었다. 2소대가 순식간에 반으로 줄긴 했다. 그래도 우리는 해냈다.

그 이후로도 몇 명의 마법사를 잡았다. 마법사들은 연령이며 성별이며 다 달랐고, 처분은 모두 똑같았다. 우선 투항의사를 묻고, 고문한 뒤에 투항의사를 묻고, 그 다음 고문해서 죽였다. 마지막 처형은 병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병사들이 진행했다. 사기진작을 위해 그랬을 것이다. 마법사들은 눈이 뽑힌 채 병사들에게 던져졌다. 자신을 고생시킨 마법사를 다양한 방법으로 죽이며 병사들은 환호했다. 마법사들은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가장 천천히 죽었다. 그들은 서서 시작했고 기어 다니면서 끝났다. 사람들은 새롭고 더 잔인한 방법을 도입할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야유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 광경은 내가 꾸는 악몽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 중 하나이다.

내가 친하게 지냈던, 같이 한숨을 쉬고 불평을 하던 사람들도 거기 섞여 있었다. 찰리는 고향에 있는 그의 아들과 비슷한 나이대인 마법사의 가죽을 벗겨내며 웃고 있었다. 말을 타던 조지가 그 마법사에게 죽었기 때문이었겠지. 조지는 그 마법사가 날린 돌덩이에 맞아 머리의 반이 뭉개져 죽었다.

나는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을 계속 보고 싶지도 않았다. 때문에 마법사가 잡힐 때마다 제발 투항하기를 바랐다. 내 바람이 자주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점차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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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3.성길(1) 19.08.10 1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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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마을(4) 19.08.08 16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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