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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님의 서재입니다.

죄악과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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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작품등록일 :
2018.11.09 16:08
최근연재일 :
2019.08.25 20:00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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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수 :
175,388

작성
19.08.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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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탑(4)

DUMMY

꾸준히 가까워지던 발소리가 지하실 바로 앞에서 멈추고 그 빈 부분을 팽팽한 긴장이 채웠다. 긴장과 어둠 속에서 거대한 남자의 형상이 나타났다.

남자는 댄보다 머리하나는 큰 키에 그에 어울리는 위협적인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내려오며 뭔가에 당했는지 군데군데 찢겨진 옷에서는 붉은 얼룩이 세를 넓혀갔다. 큰 몸집은 위풍당당해 보였고, 무거운 쇠 건틀릿을 낀 왼팔과 거대한 양날 검을 든 오른팔에는 힘이 들어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그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글거리는 눈으로 한번 죽 둘러보더니 이내 앨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 나를 알고 있어?”

앨런은 겁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댄은 남자도 그녀가 누군지 모를 거라 생각했다. 남자는 미친 것처럼 웃고 나서 대답했다.

“물론 알고 있다. 너는 메리라는 애를 알고 있나?”

“아니....... 모르겠어.”

앨런은 겁에 질린 채 미안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미안해하는 앨런의 태도가 사내를 더 자극한 것 같았다. 사내는 다시 한 번 웃었다. 그는 왠지 점점 덩치가 커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내는 그대로였지만 맞은편에 있는 앨런이 움츠러들고 있었다.

“그래 너에게는 그냥 네가 불태운 사람 중에 하나일 뿐이겠지. 똑똑히 기억해라 네가 집과 함께 불태워버린 아이, 내 자식의 이름은 메리였다.” 사내는 한 마디 한 마디 내던지듯이 고함질렀다.

댄은 이제야 왜 사내가 여기에 찾아온 것인지 알았다. 동시에 오해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앨런이 마녀라고 믿고 있었다. 잠깐 동안 대화로 오해를 풀고 일이 마무리 되는 상상을 했지만 사내의 눈을 보자 낙관은 사그라들었다. 그를 제압하는 것이 먼저였다. 댄은 검을 뽑아들었다.

사내는 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앨런만을 응시했다. 앨런은 이제 몸을 떨고 있었다. 사내는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갔다. 그는 이 순간을, 그녀의 두려움 하나하나를 즐기고 있었다.

앨런은 사내 쪽으로 손바닥을 향한 채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마치 사내와 자신 사이를 손바닥으로 막은 듯한 모양새였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몸짓이었다.

“가까이 오지 마!”

떨리는 손과 목소리, 흔들리는 눈동자와 배어나오는 공포심. 그 어느 것에도 설득력은 없었다.

댄은 자신이 나설 때라고 생각했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사내에게 검을 휘둘러 방어가 힘들어 보이는 왼쪽 어깨를 베어내려 했다. 사내는 파리를 쫒아내듯 왼손에 낀 건틀릿으로 간단히 쳐내고는 댄이 휘청거리는 사이에 앨런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이어 날아올 칼날을 방어하기 위해 자세를 잡고 있던 댄은 사내가 앨런 쪽으로 달리자 다급히 따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인 광경에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했다.

처음에는 열기만 느껴졌다. 모닥불이라도 피운 것처럼 앨런의 손앞으로부터 열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그 다음 천천히 붉은 빛이 소용돌이치며 손앞에 허공 어딘가를 구심점 삼아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보자마자 사내는 더 빨리 뜀박질 했다. 댄도 정신을 차리고 뛰어가려고 했지만 이제 누굴 도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던 앨런이 마녀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눈앞에 보이는 분명한 증거를 부정할 수도 없었다.

어느새 앨런의 손앞에는 사내의 머리통만한 불덩이가 있었고 불덩이는 달려오는 사내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불덩이는 사내의 놀란 표정을 비추며 그의 가슴에 붙었다. 불은 셔츠 위에 잠시 동안 달라붙어있더니 곧 맹렬한 기세로 퍼져나가 옷가지를 먹이삼아 기세를 부풀렸다.

사내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계속해서 앨런과 눈을 맞추며 나아가려고 했다. 살이 지져지는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온몸이 불길로 휩싸이자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는 앨런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의 말은 점점 알아듣기 힘들어졌고, 이윽고는 새된 비명만이 울려 퍼졌다. 그는 자리에 쓰러졌다.

사내의 몸을 감싸는 불길은 숙주가 쓰러지고 나서도 멈추지 않았고, 그의 비명이 사라지고 나서도 살아있었다. 사내가 까맣게 탄 뒤에도 불꽃은 남은 살점을 살피는 쥐떼처럼 기웃거렸다. 앨런은 아까까지와 달리 침착한 태도로 묵묵히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댄은 침착하지 못했다. 사내가 남기고 간 비명소리가 한동안 머릿속에 남아서 울려대었다. 비명소리,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 땅이 울리는 소리, 그를 깨뜨리던 바위 같은 소리들, 모든 곳에서 울리던, 결코 피할 수 없던 소리들, 그리고 그곳에서 나던 역겨운 냄새.

갑작스레 들려온 묵직한 소음이 환상에서 댄을 구해냈다. 소리가 난 곳을 보자 앨런이 시체를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댄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소리쳤다.

앨런은 평소와 다른 담담한 눈길로 댄은 쳐다봤다. 사뭇 다른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다시 시체의 발을 잡고 낑낑거리며 옮기기 시작했다.

“뭘 한 거냐고!”

앨런은 다시 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자세히 보니 침착하다기보다 어딘가 멍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뭔가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앨런은 한손으로는 시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댄은 시체를 보고, 앨런을 쏘아봤다.

앨런은 마녀이고 사내는 마녀를 죽이려고 했다. 그의 말로는 딸을 집과 함께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그 말과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정말로 죽어 마땅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으로는 그녀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다시 까맣게 불탄 형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높게 쌓아올렸던 장작과 시체가 타는 냄새도....... 동시에 추악한 얼굴도. 까만 눈, 각진 턱에 뾰족한 코를 한, 늘 화난 듯 보이는 얼굴이 그를 향해 있었다. 천천히 입이 열렸다.

‘명심해. 저 바깥에서는 마주본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네가 죽는 거야.’

댄은 환상에 사로잡히기 전에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앨런은 어느새 다시 시체의 발을 붙잡고 끌고 가고 있었다. 시체는 댄이 지금까지 화장실이라고만 생각했던 깊은 구덩이로 떨어졌고 앨런은 그 안으로 불을 계속 흘려 넣었다. 그 익숙한 듯한 기계적인 움직임이 소름끼쳤다.

“네가 마녀지?”

댄은 아직까지 본능적으로 놓지 않았던 검을 힘주어 쥐었다.

“너도 나를 죽일 생각이야?”

앨런은 계속 불을 흘려 넣으면서 멍한 표정으로 댄을 보았다. 그 표정과 담담한 말투가 손아귀에 힘이 빠져나가게 했다. 그녀의 태도는 전쟁의 기억이 떠오르게 했다. 그는 확실히 해 두고 싶었다.

“정말로 네가 그 여자애를 죽인거야?”

“나는 이 안에 들어온 사람들만 불태웠어.”

앨런은 말을 마치고 잠시 구덩이를 내려 보고 댄을 바라봤다.

“나를 죽일 생각이야?”

앨런이 재차 물어왔다. 그녀는 불을 흘려 넣는 것을 그만두고 손에 불덩이를 모아두었다.

“아니”

댄은 검을 허리띠에 집어넣었다. 앨런은 모아두었던 불덩이를 구덩이 안으로 던져 넣었다.

“네가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왜 저들이 너를 공격하지?”

“몰라.”

앨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왜 밖으로 도망치지 않았지?”

“밖에 있는 함정들 때문에 못 나가겠어.”

댄은 앨런이 마녀가 아니라면 이곳에서 사는 것이 어떻게 느껴질지 생각해보았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하기에 그들을 죽여야 하는 삶. 전장에서는 모두 그렇게 살았다.

“난 여기서 나갈 거야.” 댄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앨런이 자신을 바라보자 생각해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같이 갈래?”

앨런은 대답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너무 담담히 받아들여서 제대로 들은 건지 의심되었다. 그들은 한동안 어색하게 서 있었다. 댄이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자 앨런은 구석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무릎을 감싸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응시했다. 마치 모든 것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5.

아주 오래전 한 마녀가 살았다. 마녀는 악마와 거래를 해서 불꽃을 일으킬 수 있었으며 사람들의 뼛가루로 몸을 치장 하고 고통의 비명을 듣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오래 사람들을 괴롭히던 마녀는 결국 그들에 의해 황무지의 바위산으로 추방당했다. 마녀는 추방당한 뒤에도 그곳에 자신의 제단을 쌓아 사람들을 저주하며 불태웠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매년 바위산으로 마녀를 쫒아낸 영웅들을 기리는 축제를 열어 마녀의 저주로부터 한해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원한다.

댄은 이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해묵은 전설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불이 날 때면 마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던 고향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심지어 전쟁 중에 마녀에 대한 소문이 돌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녀 이야기를 믿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믿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확신하지 못했다. 어쩌면 전설이 사실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댄은 앨런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그녀를 꺼내주는 게 옳은 일일까?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지상에 풀어놓는 것 아닐까?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댄은 경솔하게 말을 꺼냈던 것을 후회했고, 그녀가 제안을 잊어버렸기를 바랐다.

사내가 죽은 후, 앨런은 반나절 정도 멍하니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따금씩 댄을 기대에 찬 눈으로 보았다. 아무리 봐도 제안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앨런이 축 쳐져 간절함이 엿보이는 표정으로 그를 볼 때면 그녀를 데려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댄은 불타던 사내의 모습을 분명하게 기억했고, 앨런이 뭘 했는지도 기억했다. 때문에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검을 쥐었다 놓았다 반복했다.

앨런은 안에 들어온, 즉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들만 죽였다고 했다.

앨런을 믿을 수 있을까? 그녀는 마녀다. 그 하나쯤 속이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댄은 살육을 즐기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전쟁이 그에게 가르쳐준 것 중에 하나였다. 앨런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전에 댄이 그런 식으로 믿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갔던가.

댄은 앨런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심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은 그녀가 그를 살려두었다는, 뿐만 아니라 살려주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어느 쪽이든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나아가지 않고 머문다면 환상이 점차 자신을 지배해 갈 터였다. 고민 끝에 마음을 정하고 앨런을 향해 말을 건넸다.

“내일 위로 출발하자.”

앨런이 처음으로 댄을 바라보며 어정쩡한 미소를 지었다.

“마을까지 거리가 꽤 되니까 먹을 거를 좀 챙겨줘. 준비가 다 되는대로 바로 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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