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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님의 서재입니다.

죄악과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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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작품등록일 :
2018.11.09 16:08
최근연재일 :
2019.08.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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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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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88

작성
19.08.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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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 2

DUMMY

동부의 성길은 전쟁 전에 성과 성 사이를 연결해 주던 큰 길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난 후에는 국경 근처에 성들이 큰 피해를 입어 모두 버려졌기에 자연스럽게 길 또한 버려지게 되었다. 데릭은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으로 가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버려진 길이니 아무도 없을 것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산을 통과하는 길이었기에 완만한 기슭을 따라 만들어졌다고 해도 편안한 길은 아니었다. 게다가 버려지고 난 후에는 산에서 떨어지는 돌들을 아무도 치우지 않아 더 험해져 있었다. 길에는 풀들이 허리보다 높이 자라 있었고, 양 옆으로는 한때 통행자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던 키 큰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일행은 조용한 길을 묵묵히 걸었다. 가장 앞에서 데릭이 힘차게 걷고 그와 좀 떨어져서 댄과 앨런이 번들거리는 얼굴을 닦으며 걸었다.

“빨리 좀 걸어라 종잇장 같이 말라가지고 비실비실 하구먼.” 데릭이 댄을 보면서 말했다.

“미안.” 댄과 나란히 뒤쳐져서 걷고 있던 앨런이 대답했다.

“아니 너한테 한 이야기는 아니야. 저 놈한테 한 거지. 힘들면 말해 업어줄게.”

“괜찮아. 걸을 수 있어.”

“앨런도 저렇게 열심히 걷는데 너는 뭐하는데? 빨리 안 오냐?”

데릭은 댄에게 계속 면박을 주었다. 댄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노려보았다.

“가잖아. 애초에 너무 빨리 걷고 있어.” 댄이 말을 내뿜었다.

“빨리 걸어야지. 갈 길이 멀다고.”

“어디로 가는 건데? 아니 그리고 뭐 땜에 급한 건데?”

“물론 길 끝으로 가는 거지. 당연한 거 아니냐.”

데릭이 멈추지 않고 걸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어디로 갈 건데.”

“글쎄다 네가 그렇게 기어오면 아무데도 못 갈 거 같은데.”

“봐, 이래서 너를 못 믿겠다는 거야. 알려주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댄이 데릭을 노려보며 말했다.

“믿지 말던가.”

데릭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댄은 데릭의 뒤통수를 한동안 노려보다가 뻐근한 다리를 애써 움직였다.

“둘이 그만 좀 싸우면 안 될까?” 앨런이 작게 말했다.

“저 놈이 믿을만한 모습을 보인다면 안 될 것도 없지.” 댄이 사납게 말했다. 그러다가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걸 깨닫고 덧붙였다. “미안해. 너한테 화낼 일이 아닌데.”

“괜찮아.”

“힘들지 않아?”

“내가 물어야 하는 거 아니야? 몸은 괜찮아?”

앨런이 작게 웃으며 되물었다. 댄도 웃었다. 하기야 앨런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빠르게 건강해지고 있었다. 몸도 안에서보다 많이 움직였고, 식사도 충분히 했다. 그녀는 자유의 공기를 듬뿍 마시고 거기서 활기를 얻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으로 자신을 존중해주고, 자신을 죽이려고 하지 않는 이들과 함께 있었다. 이는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안심하지는 못했다. 그녀가 탑에서 보였던 모습과 그 이후에 메이헴에서 보였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종류의 일은 깊은 흉터를 남기는 법이다. 때문에 댄은 그녀를 주시하고 작은 상처의 흔적이라도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몸은 괜찮아. 너와 노인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 댄이 대답했다.

노인이란 단어를 뱉을 때 목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그들을 속이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를 그렇게 죽게 놔둬서는 안 되는 거였다. 댄은 다시 데릭을 보았다. 뻔뻔하게도 아무렇지 않은 듯 당당히 걷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겠지. 대체 그 할 일이라는 게, 그 의무라는 게 뭔지. 댄은 앨런이 뭐라고 해도 데릭에 대한 의심을 멈출 수 없었다.

“진짜 저 사람이랑 같이 갈 생각이야?” 댄이 앨런에게 작게 물었다.

앨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만한 사람이야.”

“너도 봤잖아. 노인을 죽이는 거. 그래놓고 왜 그랬는지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그래도....... 좋은 사람이야. 나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했겠지. 저 사람이 없었으면 난 탑에서 죽었을 거야.”

“수상하지 않아? 의뢰를 받았다고 하던데 내가 봤을 때는 이상한 거 같아.”

“뭐가?”

“너를 지켜주라는 의뢰를 받았다는데 그럴 거면 탑에서 빼내 주는 게 낫지 않겠냐는 거지.”

앨런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빼내주는 건 위험하니까 그랬겠지.”

“그것만 있는 게 아니야. 그때 탑에 저놈이 왔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무슨 소리?”

“계단 쪽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아마 저놈의 동료가 함정을 고치는 소리였겠지.”

“나도 알아. 몇 번 들은 적 있어.”

앨런이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걸 알고도 저 사람을 믿어?”

“오해일 거야. 함정을 고치는 게 아니라, 하나씩 없애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댄의 말에 앨런이 입을 다물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야 걷고 있는 건 맞냐? 왜 앞으로 나가질 않냐?”

데릭이 한참 앞에서 소리쳤다. 덕분에 댄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네가 뭐라고 하던 저 녀석은 못 믿겠어.”

댄이 걸음을 재우치며 다시 말을 꺼냈다. 그 사이 데릭은 더 멀어져, 완만하게 휘어진 길에 나무에 가려져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둘이 좀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계속 같이 갈 거잖아.”

“글쎄.......”

“아직도 우릴 떠나고 싶어?”

앨런은 댄이 말을 흐리는 걸 보고 물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는 아무 의미 없어. 나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그것만이 의미가 있어.”

“그게 뭔데?”

댄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건....... 말 못해.”

“너도 비밀이 있네. 내 생각에 사람들은 모두 비밀 한 두 개 쯤은 가지고 있는 거 같아. 그리고 숨기는 게 있더라도 난 너를 믿어. 너도 아저씨를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앨런이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말했다. 댄은 고개를 저었다.

“나를 믿지 마. 저 사람도 믿지 말고.”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야. 이것만은 약속해줘. 나를 절대 믿지 마.”

평소와는 다른 강한 눈길에 앨런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각자 생각에 잠긴 채 계속 걸었다. 데릭은 아직도 머리털하나 보이지 않았다. 보채는 사람이 없자 걷는 속도는 서서히 느려졌다. 선선한 바람이 달아오른 얼굴을 식혔다.

“야 이제 슬슬 여기서 기다리는 것도 지치는데 빨리 좀 걸어라.”

데릭이 멀리 있는 나무 뒤에서 다시 튀어나오며 말했다. 댄은 잠깐의 휴식을 뒤로하고 다시 이를 악물고 걷기 시작했다. 멀리서 오르막의 끝이 보였다. 데릭은 거기 서서 쉬다가 이따금씩 그들을 재촉했다.

“빨리 와 봐야할게 있으니까.”

댄과 앨런은 언덕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땀을 닦았다. 저 아래에 산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푹 파인 분지가 있었다. 움푹 파인 아랫부분에만 안개가 가득한 것이 물웅덩이 같기도 했다. 그들이 걷고 있는 길이 그 분지의 가장 낮은 곳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곳으로 통하는 길에는 안개 때문인지 풀이 자라지 않아 길에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뭐가 문젠데?” 댄이 물었다.

“잘 봐봐.”

조금 기다리자 안개가 움직이면서 통나무집들의 형체가 얼핏얼핏 드러났다.

“아래에 마을이 있어.” 데릭이 말했다.

“버려진 마을인가 보네.” 댄이 말했다.

“그렇겠지. 하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고.”

데릭은 그렇게 말하고 앞서서 다시 출발했다. 그때 그의 눈에 흐릿한 형체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안개 속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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