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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님의 서재입니다.

죄악과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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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작품등록일 :
2018.11.0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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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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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88

작성
19.08.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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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성길(1)

DUMMY

1.

어떤 것들은 묻히지만 어떤 것들은 그렇지 못한다. 댄의 죄가 남아 그를 괴롭히는 것처럼, 그곳에는 전쟁이 남기고 간 비참함이 있었다.

곳곳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소곤대는 목소리 속에서는 살의가 담겨있었다. 이곳의 주민들은 모습을 잘 숨기고 있었으나 그 증오는 숨기지 못했다. 헐벗음과 굶주림, 온갖 박탈들이 낳은 자연스러운 증오였다. 상대가 누구인지 구별하지 않는 무차별적인 증오이기도 했다.

일행은 아무 말도 없이 걸었다. 앨런은 저들의 행동이 궁금했지만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무거운 공기가 그들 모두를 짓누르고, 목을 억죄고 있었다. 빨리 그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작은 소리도 크게 울려서, 자신의 발소리에도 흠칫 놀라고는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달려서 뛰쳐나가고 싶었으나 두려움에 그럴 수도 없었다.

일행이 도착한 분지의 마을은 유령 마을이라도 되는 양 어두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양 옆으로 늘어선 낡은 나무 오두막들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안개가 자욱해, 낮에도 해가 들지 않는 마을에서는 모든 것이 눅진하게 썩어갔다. 길에는 풀 한포기 없었고 양 옆으로 능선을 타고 꽤 올라가야 나무로 이루어진 숲이 나왔다.

“목이 타는구만. 여기서 뭔 일이 있었던 거야.”

데릭이 속삭이듯 말했다. 뭐라 덧붙이는 사람이 없자 말이 침묵에 먹혀 사라졌다. 앞이 흐릿해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지도 몰랐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눈앞에 길에만 집중하며 걷고 또 걸었다. 주위로 고개를 돌리면 악의가 뛰쳐나와 그들을 붙잡을 것 같았다.

오르막길이 시작되어 일행은 점점 지쳐갔다.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밤을 보내는 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긴장은 어깨위에 무거운 짐이 되어 그들의 걸음을 더 힘들게 했다. 사방에서 내리누르는 그 팽팽한 것들은 일행을 쪼그라들게 하고 있었다.

간간히 들리는 동물의 소리도 위안이 되기는커녕 소름만 끼쳤다. 동물들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기척만 들렸다. 일행은 까마귀 소리가 들릴 때면 깜짝 놀라서 잠시 멈춰 섰다. 날벌레들이 어찌나 많은지 얼굴에 계속해서 부딪히는 느낌이 났다. 중얼거리는 소리, 윙윙거리는 소리, 까악 소리가 죽음이 연주하는 협주곡처럼 울려 퍼졌다.

일행의 시야에 처음으로 사람이 들어왔다. 처음 발견한 것은 데릭이었다. 그는 댄을 툭툭 두드린 후에 앞을 가리켰다. 다리 하나로 서 있는 나이가 삼십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아주 말라 있었고 한쪽 다리가 허벅지에서 잘려나가 있었다. 절단면이 매우 거칠어서 잘 안 드는 날붙이로 억지로 뜯어낸 것처럼 보였는데, 생긴 지 얼마 안 된 상처인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벌레들이 그의 상처 주변을 날아다니며 배를 양껏 채웠다. 남자는 벌레를 쫓을 힘이 없거나 의지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쏟아져 내려오는 피만 아니었다면 서있는 시체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일행은 그를 경계하며 멀찍이 떨어져 길을 통과했다. 주변의 환경과 더불어 그의 모습은 공포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러나 걷다보니 공포는 가라앉았고 옳은 일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남자를 지나친지 꽤 지난 후에 앨런이 작게 말했다.

“내 생각에 의미 없을 것 같은데.”

데릭이 대답했다.

“상처를 잘 묶어주면 살 것 같은데.”

댄이 속삭였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아냐 됐다. 우리는 누굴 도울 상황이 아니야.”

데릭이 속삭였다. 그들은 자리에 멈췄다.

“도와주자. 그 사람도 살고 싶겠지.”

앨런이 말했다.

“의미 없는 짓 하지 마.”

데릭이 말했다.

“어떻게 이게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있어?”

앨런이 실망했다는 듯이 말하자 데릭은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은 이미 포기한 것처럼 보이잖아.”

“그야 아무 방법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겠지.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앨런이 말했다. 데릭은 그 말에 대해 생각하는 지 잠깐 멈춰있었다.

“응급처치정도만 해주고 가던 길 가자. 이 정도면 됐지?”

데릭이 한숨을 쉬며 말하자 앨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남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가까이 가니 심한 악취가 풍겼다. 땀에 쩐 냄새와 오물의 냄새가 섞여서 풍겨왔다. 일행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봐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댄이 먼저 말을 건넸다.

남자는 반응이 없었다. 댄은 남자의 다리에 손을 휘저어서 날벌레들을 내쫓고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말해보세요.” 댄이 말했다.

어깨를 흔들어 봐도 남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저 그의 손을 따라 종이처럼 펄럭일 뿐이었다. 데릭이 나서서 남자 앞에 섰다. 그는 남자의 눈앞에서 손바닥을 흔들었다. 남자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일단 좀 옮겨서 치료부터 하지. 들어.” 데릭이 말했다.

데릭은 남자의 남은 다리를 붙잡았다. 댄이 남자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기울여 눕히면서 들어 올리자 데릭도 남자의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들은 남자를 가까운 집 앞으로 데려 갔다. 적당한 굵기의 통나무를 잘라서 쌓아 만든 집은 여기저기 썩어 있었고,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데릭이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문 좀 열어 주쇼.”

대답이 없었다. 데릭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불쾌한 냄새가 확 끼쳐왔다. 곰팡이에서 나는 텁텁한 냄새가 가득했고 나무 썩는 냄새도 코를 찔러 들어왔다. 안에 있는 가구들은 천천히 썩고 있는 중이었다. 나무로 투박하게 만들어진 그것들은 낡고 갈라지고 습기가 가득 차 있었다. 군데군데 하얀색 점이 박혀있기도 했는데 모두 애벌레였다.

그들은 남자를 침대에 뉘였다. 침대에서 쉬고 있던 날벌레들이 날아올랐다. 누렇고 이곳저곳 찢어진 시트가 잠깐 동안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놀란 애벌레들이 발버둥 쳐서 그런 것이었다. 데릭과 댄은 얼굴에 주름을 가득 만든 채 시선을 교환했다.

댄이 남자의 다친 다리를 위로 향하게 들어 올렸다.

“뭐 묶을 거 없어?”

댄이 말했다. 데릭이 침대 시트를 찢으려다가 애벌레 하나를 찌부러뜨리고는 포기했다. 앨런은 데릭의 봇짐에서 천 옷 하나를 꺼내 찢으려고 했다. 옷이 질겨 잘 찢어지지 않았다.

“그거 새 옷이라고. 이런데 쓸 순 없어.”

데릭이 말했다. 앨런은 데릭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말이 심하네.”

댄이 말했다.

“말이 심하다고? 이런다고 저 사람이 살 거 같냐?”

“몰라. 그래도 해봐야지.”

댄이 말했다. 앨런은 피를 멈추고 상처를 깨끗하게 하는 약초들을 짐에서 꺼내어 짓이겨 절단부에 발랐다. 댄은 앨런에게 천 옷을 받아 들고 칼로 찢었다. 절단 부에 천을 감고 묶었다. 남자가 처음으로 소리를 내며, 짧게 고통을 표현했다. 데릭은 뒤로 물러나서 팔짱을 낀 채 관망했다.

“정신이 드십니까?”

댄이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남자는 그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누구요?”

“이 마을을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남자는 댄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제발 나를 도와주시오. 세상에, 외지인이라니....... 죽을 때까지 못 볼 거라 생각했건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댄이 재차 물었다. 남자는 듣지 않았다.

“제발, 내 동생, 내 동생을 찾아주시오. 내 동생이 사라졌소. 찾아주시오!”

남자는 쉬지 않고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내 동생이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는데. 사라져버렸소. 제발 도와주시오.”

남자는 말하면서 손에 힘을 주었다. 당황한 댄이 손을 빼려고 하자 남자는 양손으로 댄의 손을 붙잡았다.

“우리를 버리지 마시오. 도와주시오!”

남자는 목이 잠겨있어 소리를 크게 내지 못했다. 할 수 있었다면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다시 우리를 버리려 하는 거요? 당신들은 우리를 충분히 버려두었소. 도와주시오!”

남자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눈을 부릅뜨고 마구 지껄였다. 남자는 다른 사람들을 호소하듯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앨런에게 시선을 멈추었다.

“거기. 나를 그런 식으로 보지 마시오. 내가 너무 불쌍해서, 너무 착해서 이때까지 살아남은 줄 아시오? 착각하지 마시오. 우리는 가장 역겹고 비열한 사람들이라 살아남았소.”

남자는 속사포처럼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니 나를 그렇게 보지 마시오!”

남자는 댄의 손을 놓고 앨런에게 손가락질 하면서 말했다. 앨런은 당황하여 시선을 돌렸다.

“진정하시죠.”

댄이 남자의 손가락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남자는 아까의 노기는 사라진 채 고개를 숙이며 손을 맞잡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내 동생은 아니오. 그 녀석은 죄가 없소. 내가 거짓말을 했으니 그 녀석은 죄가 없는 거요. 제발 내 동생을 찾아주시오. 그 녀석은 내 모든 것이오.”

댄은 남자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알았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세요.”

“저 사람을 도울 생각이냐?”

데릭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남자는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제발 도와주시오. 당신들이 마지막 희망이오. 제발.......”

“돕고 싶어.”

앨런이 먼저 대답했다. 여전히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였다. 그녀는 댄을 바라봤다. 댄은 아직 결정이 서지 않았다.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야겠습니다.”

댄이 말했다. 남자는 다시 댄을 보았다. 그는 기운이 빠졌는지 침대에 몸을 맡겼다.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댄이 물었다.

“전쟁 후에 전염병이 돌았소. 떠날 이들은 모두 떠났지. 남은 이들은 나갈 방법이 없거나 그럴 용기가 없었소. 여기는 햇빛도 잘 들지 않아 농사짓기도 힘든데 밖으로 나가는 것도 밖에서 들어오는 것도 힘들어지니 먹을 것은 점점 부족해 졌소. 버섯으로 연명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전염병이 지나간 후에도 살아남기는 더 힘들어져갔지.”

댄은 남자가 더 말하기를 기다렸지만, 남자는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댄이 더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그게 다요. 뭐가 더 있겠소. 보다시피 이 꼴이 되었지.”

남자가 말했다.

“다리는 누가 그런 겁니까.”

“다리는 괴물들이 가져갔소.”

“괴물들이라니 무슨 소립니까.”

“보면 알 거요.”

“시간 낭비 하지 마. 빨리 가야 한다고. 우린 이 사람을 충분히 도와줬어.”

데릭이 말했다.

“내 동생은 아직 젊소. 이런 곳에서 고생만 하다가 갈 녀석이 아니요. 제발 동생을 찾아주시오.”

“이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런 데서 시간을 보낼 수 없어. 전에 말했듯이 우린 진짜 위험한 상황이라고.”

“그냥 잠깐 찾아보는 거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아.”

앨런이 말했다.

“꼬맹아. 너는 상황이 어떤지 몰라서 그래. 빨리 가야한다고.”

“설득을 하고 싶다면 우리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게 먼저지.”

댄이 끼어들었다.

“그건 곤란하다고 말했을 텐데.”

데릭이 댄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앨런 말대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댄이 말했다. 그는 곧바로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동생을 찾는 걸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남자는 댄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데릭은 댄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뭐하는 짓이야. 뭐가 최선인지 모르겠어?”

“물론 이게 최선이지. 앨런에게는 이게 필요해.”

댄도 작게 말했다.

“어디부터 찾아보면 됩니까?”

댄이 남자에게 물었다.

“나를 부축해 주게 안내해 주겠네.”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댄의 그의 팔을 잡아 자신에 목에 두르고 몸을 잡아 일으켰다. 목덜미에 닿는 팔의 끈적한 촉감에 털이 곤두섰다. 남자는 낑낑대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중심을 잡았다. 남자와 댄을 앞세워 거리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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