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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님의 서재입니다.

죄악과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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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작품등록일 :
2018.11.0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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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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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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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마을(5)

DUMMY

댄의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몸도 따라 흔들리더니 쓰러졌다. 흔들림과 함께 환상에 빼앗겼던 감각들이 하나씩 돌아왔다. 오른쪽 옆구리와 폐가 타는 듯이 쓰렸다. 몸에 뭔가 붙어 있는 느낌도 들었다.

앨런이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옆에 쓰러져 있었다. 앞에 단검을 들고 서있는 데릭도 보였다. 앨런이 몸을 일으켜 섰다.

“아쉽군. 쉽게 갈 수 있었는데. 왜 그 녀석을 구해준거지?”

데릭이 중얼거렸다. 앨런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불을 손앞에 모아두었다.

“왜 그 녀석을 감싸지? 저 놈이 네 친구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데릭이 말했다. 앨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까부터 말했지만 우린 싸울 필요 없어. 여기서 너를 걱정하는 건 나밖에 없을 걸?”

데릭이 불덩이를 보며 말했다.

“무슨 뜻이야?”

앨런이 조용히 말했다.

“앨런, 내가 처리할게.”

댄도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데릭은 그를 보며 씩 웃었다.

“‘내가 처리할게.’ 하하 웃기는구만. 뼈다귀밖에 없는 놈이. 뭐 이 비실비실한 놈이 그 위대한 기사 리처드? 리처드 맞나? 아무튼 뭐 그런 놈 인줄 아는 거야? 역시 그런 책은 주지 말걸 그랬나봐. 네가 이런 멍청하게 생긴 놈한테 푹 빠질 줄이야.”

“아저씨?”

앨런이 놀란 눈으로 데릭을 쳐다보았다.

“이제야 알아보네.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 말이야.”

“뭐야. 이 놈이 탑에서의.......?”

댄이 묻자 앨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웬일이야. 외출을 다하고? 뭐 필요한 게 있냐?”

“가끔 바람도 쐐야지. 아저씨가 그랬잖아.”

“허. 기를 쓰고 죽이려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친한 척인가?”

댄이 투덜거렸다.

“내가 언제 이 녀석을 죽이려했냐. 너를 죽이려고 했지.”

“이제 와서 착한 척 하지 말라고, 살인자 새끼야.”

“나도 일이 이렇게 된 걸 아쉽게 생각한다. 노인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그러게 처음부터 좀 솔직하지 그랬냐. 네가 쓸데없이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됐지. 그런 점에서 네 책임도 있는 거다. 남을 비난하기 전에 네 행동부터 돌아봐라.”

“뭐 이 새끼가!”

“그래 덤벼봐. 내가 뭐 이거 하나만 들고 있다고 네가 이길 것 같으냐?”

데릭이 단검을 보여주듯이 가슴팍까지 올리고 두 손가락으로 늘어뜨려 잡고 흔들었다.

“그만들 해.”

앨런이 덤벼들려고 하는 댄의 팔을 붙잡았다. 머리로 확 몰렸던 열이 식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슬슬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데릭과 댄은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았다.

“일단 자리를 피하지. 마을을 나가서 치고받던지 하자고.”

데릭은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돌아서서 걸었다. 앨런은 댄의 눈치를 한번 보고는 데릭의 뒤를 거리를 두고 따랐다. 마지막으로 댄이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로 따라 걸었다.

“왜 마을 중심가 쪽으로 가는 거지? 마을에서 나간다면서.”

댄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중심가로 가는 거 아니야. 빈손으로 나갈 순 없잖아. 물건 좀 챙겨야지.”

데릭이 바로 대답했다. 그들은 다시 사람을 피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제 하늘은 완전히 검어졌고, 달도 없이 별들만 박혀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검은 하늘 위로 노인의 집에서 나오는 불길이 희미하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아직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없었다. 아마도 침대의 안락함과 호기심 사이에서 고민 중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다행이었다.

“노인은 왜 죽인 거냐. 그럴 필요 없었잖아.”

댄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자세히는 말 못해. 나도 그러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만 말해 두지.”

“그러고도 믿어 주기를 바라나?”

성의 없는 대답에 댄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누가 너더러 믿어 달랬냐?”

댄은 데릭과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금방이라도 놈의 수하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앨런은 두 사람 사이, 정확히 중간에 위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며 걷는 속도를 늦추거나 재우쳤다.

집에 도착하자 데릭은 댄과 앨런을 멀찍이서 기다리게 한 뒤 문을 두드렸다. 가이스가 문을 열었다. 그의 입이 열리기 전에 데릭이 먼저 말을 쏟아냈다.

“마을 밖으로 나갈 거야. 짐 줘.”

가이스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짧은 검과 보따리 하나를 줬다. 데릭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오랫동안 나가 있을 거야. 그동안 하던 일을 계속 해주길 바란다. 황무지에서 소문이 돌 때쯤 그만 두면 돼. 그때까지 보수로 이정도면 충분할거다.”

데릭은 언제 챙겼는지 노인의 집에 있던 목걸이 반지 따위의 물건들을 건네주었다. 동시에 물건들 틈 사이에 접힌 종이를 끼워 넣었다. 데릭은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속삭였다.

“그리고 이 쪽지를 정해진 곳으로 전해줘.”

가이스는 손을 움직여 쪽지를 살짝 펴고 슬쩍 눈을 내려서 쪽지에 뭐가 적혀있는지 확인하였다. 거기에는 ‘시작’ 이라는 한 단어만 적혀있었다.

“말이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하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 아, 그리고 애덤에게는 때려서 미안하다고 전해주고. 돈도 좀 더 챙겨줘라.”

데릭이 손을 내밀어 남자와 악수했다.

“대장, 몸조심해. 나중에 운 좋으면 또 보자고.”

가이스가 말했다. 데릭은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 나왔다. 문이 닫혔다.

“자 가자.”

데릭이 댄과 앨런에게 말했다. 데릭이 앞장서 걷고 댄과 앨런이 뒤따라 걸었다.

“저 남자랑 무슨 말을 한 거냐?”

댄이 물었다.

“알거 없어. 앞으로의 일에나 집중해. 우리는 동부의 성길을 따라 올라갈 거다.”

데릭이 말했다.

“그 길은 버려졌을 텐데?”

“그만큼 사람이 없어 안전하지. 너는 지금 네가 어떤 판 위에 발을 들였는지 모를 거다. 하지만 나는 알지. 우린 아주 위험한 판 위에 놓인 거야.”

“아까부터 뭔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알 필요 없어. 너는 이것만 알면 돼. 나는 네가 싫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모두 네 탓이라는 거.”

데릭이 사납게 말했다.

“그럼 앞일에 대비할 수 있게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네가 그걸 아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돼. 어차피 너 같은 놈과 같이 갈 생각도 없어.”

“하. 피차일반이야. 그래도 의심은 풀어야지. 영 찜찜하잖아. 너는 누굴 위해서 일하는 거지? 왜 앨런을 돌봐 주고 있던 거냐?”

댄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마녀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난 그 사람들에게 의뢰를 받았지. 이 마을에 머물면서 마녀에게 필요한 걸 가져다주고 탑에 들어가려는 놈들을 죽이는 게 내 역할이었고.”

“그놈들은 어떻게 앨런이 탑에 있다는 걸 알았지?”

“너한테 대답할 것은 없다.”

“어디로 갈 생각인 거지? 그건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수도 근처로 갈 생각이다. 이정도면 충분하냐?”

데릭이 대답했다. 댄은 그를 노려보았지만, 그런다고 구체적인 대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마을에서 벗어나 황무지를 걷고 있었다. 이제 마을은 멀리에 있는 주황빛 점으로 보였다. 높은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자 이제 마을 외곽에 충분히 나왔으니 헤어질 시간이다.”

댄이 말했다.

“그래 우리가 같이 갈 이유가 없지. 잘 가라.”

데릭이 말했다.

“가는 건 네놈이지. 앨런은 나와 같이 간다. 네놈은 못 믿겠어.”

댄이 말했다. 앨런은 떨어져서 둘을 보고 있었다.

“저 녀석은 그렇게 생각 안할걸?”

데릭이 앨런에게 눈을 돌리며 말했다. 앨런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저 사람은 믿을 수 있어.”

앨런이 말했다.

댄은 약간 놀라 앨런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경솔한 판단이 아닐까?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랫동안 데릭을 알아왔다. 데릭을 믿는다면 아마도 지난 세월이 그걸 보증하고 있을 것이다.

댄은 다시 데릭을 마주봤다. 데릭이 앨런을 해칠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앨런을 배려하는 그의 행동들에는 나름의 진심이 묻어나왔다. 다만 데릭의 동기는 의심스러웠다. 왜 그녀를 도왔는가? 왜 이 고단한 마을에 살았고, 무엇을 위해 외지인들을 감시했는가? 그러나 결국 앨런은 그를 믿는다. 그게 전부 아닌가.

댄은 탑을 떠나올 때의 계획을 떠올렸다. 그녀를 돌봐주던 사람에게 맡기고 떠나는 것. 계획대로 되지 않았는가. 그는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럼 내가 떠나 주지.”

댄이 말했다.

“그래. 좋은 생각이네.”

데릭이 말했다.

“댄이 떠나지 말았으면 좋겠어.......”

앨런이 어울리지 않게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그러다가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것에 당황해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리고 곁눈질로 댄을 흘끔거렸다.

“네가 같이 있어줬으면 좋겠어.”

앨런이 말했다. 댄은 그녀가 그렇게 말할 줄 몰랐기에 당황했다. 그는 떠나야 했다. 그게 그녀를 위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앨런을 실망시키는 것은 그녀를 위한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줄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녀는 그를 필요로 했다.

“내가 함께 가는 건 너에게 안 좋을 거야.”

댄이 유혹을 이겨내며 말했다. 앨런은 그의 속죄를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댄은 반지를 손에 쥐고 반지 안쪽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그래. 저 녀석은 별 도움 안 될 거야.”

데릭이 말했다. 앨런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댄을 가만히 응시했다. 전에 그랬던 것처럼 바람이 담긴 눈빛이었다. 댄은 그걸 거부하지 못했다.

마을에서 바람을 타고 목소리가 띄엄띄엄 들려왔다. 그들은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마녀가 나타났다!

댄은 앨런의 얼굴을 봤다. 간절함 사이에서 여림이 언뜻 보였다. 세상은 그녀를 산산이 부숴버릴 것이다. 그는 그런 곳에 그녀를 내놓은 것이다. 거기에는 책임이 있었다. 그저 외면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한동안은 같이 갈게.”

댄이 체념하고 말했다. 앨런이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데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6.

우물가에 있었던 수상한 남자 둘이 숨어서 불타는 집에서 댄 일행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봤어? 그 마녀인가?”

칼슨이 말했다.

“일이 점점 복잡해지는 군.”

아드리언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대꾸했다. 그는 떠나가는 마녀를 노려보다가 말을 이었다.

“잠깐 확인해볼 일이 생겼다. 혼자서 저 놈들을 따라가라. 주기적으로 위치를 보고하되 절대 혼자 나서는 일은 없도록 해.”

“집에 가는 건 아직이냐?”

칼슨이 가볍게 말했다. 아드리언이 그를 보았다.

“이제는 우리끼리 해결할 일이 아니게 됐다.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돼.”

“알았다고 진지하기는. 미행이 특기는 아니지만 잘 해보지 뭐.”

“왕궁에는 내가 연락하지. 곧 지원 병력도 갈 테니 놓치지 말도록 해. 많이는 못 오겠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 거다. 자세한 활동 지침도 그때 전달될 거다.”

아드리언이 말했다. 칼슨은 고개를 끄덕이고 움직이기 시작한 댄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던 아드리언은 황무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며칠간 걸어 다시 탑으로 돌아온 그는 주의 깊게 계단을 살폈다. 물이 찼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비릿한 물 냄새도 났다.

아드리언은 돌멩이들을 모아서 자신을 몸을 감싸도록 띄웠다. 그는 고치에 감긴 것 같은 형태가 되었다. 그 상태로 그는 계단을 내려갔다. 이따금씩 함정에서 날붙이들이 튀어나와 돌멩이에 부딪혀 떨어졌다.

내려가 지하실에 닿자 안을 살펴보았다. 생각대로였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애송이 자기가 뭔 짓을 한 건지 알까.”

아드리언은 중얼거리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손가락을 뻗어 지하실 바닥의 돌 몇 개를 걷어냈다. 그러자 흙바닥이 드러났다. 아드리언은 돌으로 바닥을 파 구덩이 몇 개를 만들었다. 그 위를 벽돌로 살짝 덮었다. 누군가 위로 지나가면 구덩이에 빠지도록. 그리고 지하실 중간에 벽을 세운 뒤에 그 벽에 아치형 입구를 내었다. 마치 벽 뒤에 뭔가 숨겨져 있을 것처럼. 마녀를 잡으러 온 이들은 저 벽 뒤에 마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달려가다가 그가 준비해 둔 함정에 빠질 것이다.

“임시방편일 뿐이야.”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지금 탑에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기 때문에 결국 살아서 탑을 나오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게 되겠지.”

그 전에 반드시 그들을 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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