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마마마마바 님의 서재입니다.

죄악과 위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마마마마바
작품등록일 :
2018.11.09 16:08
최근연재일 :
2019.08.25 20: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989
추천수 :
17
글자수 :
175,388

작성
19.07.31 20:00
조회
207
추천
4
글자
13쪽

1.탑(1)

DUMMY

뒤돌아보아 얼마나 멀리 왔는지 알아야 한다.

앞을 보고 길이 끊겼음을 알아,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음에.


1.

죄를 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전에도 몇 번이나 던졌던 질문이다. 늘 그래왔듯이 지금, 회색 바위산 중턱에서 생각해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청년은 빗물이 머리를 덮고 아래로 흘러가며 먼지를 닦아내듯이 죄도 그렇게 씻어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그를 비웃듯이 죄가 보였다. 그를 뒤따르는 지워지지 않는 죄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청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형태의 뒤로 후드를 덮어쓴 남자들이 보였다. 소녀와 달리 남자들은 환각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단한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 청년을 쫓아 마녀의 바위산까지 온 추적자들이었다.

청년은 내려놓았던 자루를 어깨에 걸쳐들었다. 걷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뒤따르는 것들과 멀어지려 노력했다. 젖은 돌바닥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했다. 걷기 좋은 날은 아니었다. 빗소리가 청년의 발소리도 추적자들의 발소리도 묻었다. 이따금씩 뒤로 돌아 거리를 확인했다. 아직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는 바위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디딜 곳이 마땅치 않을 때가 있어 곤란했다. 낡은 후드는 비를 막아주지 못했다. 몸이 젖어갔다. 청년은 소리 없이 웃었다. 고난이었다. 그가 원하던 것. 한때는 이러한 고난이 자신을 정화해 주리라고 믿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의 깊은 곳에 있는 어두운 부분에는 고난의 빛도 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고난을 원했다. 편안함이 죄를 더하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그는 고난을 원했다.

발을 옮길 때마다 그의 목에 걸린 죄악이 흔들렸다. 가죽끈에 메인 반지가 흔들려 손으로 쥐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손가락으로 반지의 안쪽에 새겨진 글자를 훑었다. 위선자. 반지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2.

“더는 갈 곳도 없어! 뛰어내리기라도 할 건가! 포기해!”

추적자 중 한명이 뒤에서 소리쳤다.

그 말대로였다. 이젠 더 갈 곳이 없었다. 그나마 평탄한 길은 산 정상으로 이어졌고 그 외에는 경사가 급해 걸을 수가 없었다. 그걸 알기에 추적자들은 슬슬 걸었다. 토끼몰이를 하듯이 청년을 사지로 몰아갔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빛이 얇은 구름을 뚫고 들어와 주변을 어렴풋이 밝혔다. 덕분에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새로운 것이 보였다. 지금까지 산봉우리라고 생각했던 우뚝 솟은 것이 빛 속에서 보니 탑이었던 것이다. 언뜻 본 탑은 돌로 되어 있었고, 꽤나 높아보였다. 청년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탑의 위치를 기억해두었다.

뒤쪽에서 발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추적자들이 달려왔다. 빛이 청년의 위치도 드러냈던 것이다. 청년도 달렸다. 바위가 미끈거려 몇 번이나 헛발질을 하고 자세를 고쳤다.

“순순히 붙잡혀라 자수한다면 왕께서도 선처하실 거다.”

다른 추적자가 말했다. 차가운 목소리였다.

청년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왕의 선처는 필요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소녀의 용서뿐이었다. 소녀는 죽었고, 따라서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없었다.

멀리서 산양 소리가 들렸다. 숨이 가빠왔다. 제대로 자고 먹은 지가 오래되어 몸에 힘이 없었다. 반면에 추적자들은 지치지도 않고 달려왔다. 자연히 거리가 좁혀졌다. 더는 도망칠 수 없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돌아서서 싸워야 할까?

싸운다....... 청년은 검을 붙잡은 채 옛 기억들을 떠올려보았다. 그가 배우고 익힌 것들. 의식적으로 잊으려고 노력해온 기억들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높은 바위 턱이 나와 청년은 양손으로 매달리고 다리를 걸치려고 애썼다. 두 번 미끄러지고 세 번째에 다리가 닿아 기어 올라갈 수 있었다. 잠시 아래를 보니 바로 아래에 추적자 한명, 그리고 좀 떨어진 곳에 두 명이 있었다.

청년은 바위 턱을 하나 더 올라갔다. 그 이후로는 평지여서 빠르게 움직였다. 일단은 목표를 탑으로 잡았다. 상대가 여러 명이라면 좁은 곳에서 싸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탑에는 입구가 있을 것이고 그 입구는 좁을 지도 몰랐다.

뒤에서 자루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청년은 바로 자루를 놓아버렸다. 허리띠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 뒤에 있을 추적자의 다리를 노리고 던졌다. 운이 좋아 맞췄는지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들렸다. 슬쩍 보니 추적자가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져있고 뒤따르던 추적자중에 한명이 그에게 붙어 상처를 살피고 있었다. 나머지 한명은 추격을 계속했다.

갑자기 경사가 급해졌다. 청년은 발에 힘을 주어 디디며 조금씩 올라갔다. 오르막을 다 올라가자 탑이 눈앞에 있었다. 주변처럼 회색 돌로 만들어진, 원통형에 거대한 몸집을 가진 것이었다. 입구는 기대만큼 좁았다. 청년은 바로 안으로 뛰어 들어가 주위를 훑어보았다.

정면에 피로 적힌 글자가 먼저 눈에 띄었다. 검붉은 글자로 마녀의 탑이라고 적혀있고 그 아래로 마녀에 대한 온갖 비난이 쓰여있었다. 몇몇 사람들의 이름도 적혀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청년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왼쪽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좁아서 두 명이 나란히 서면 꽉 찰 것 같은 넓이였다. 탑 입구에서 싸우다가 일이 틀어지면 저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안을 대강 살피고 나서 밖을 보고 섰다. 추적자 한명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가 뒤집어 쓴 후드 밖으로 어두운 금발이 언뜻언뜻 드러났다. 마침내 추적자가 청년 앞까지 왔다.

“도망가는 것도 지겹지 않나?”

아까 들었던 차가운 목소리였다. 추적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눈도 목소리 못지않게 차가운 파란색이었다.

청년은 대답하지 않고 허리띠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손이 떨리며 칼끝도 흔들렸다. 추적자도 대꾸하듯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추적자는 또한 망토 안주머니에서 조약돌을 몇 개 꺼내더니 바닥에 흩뿌렸다.

아직은 단 둘뿐이었다. 다른 추적자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청년은 탑에서 나와 추적자에게 달려들었다. 청년은 바로 발을 내딛으며 칼을 들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베어 들어갔다. 추적자가 아래에서 검을 쳐올려 맞대었다. 동시에 추적자 주위에 떨어져 있던 조약돌들이 위로 떠올랐고 그중 하나가 청년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청년은 뒤로 물러나며 손을 위로 들어 올려 칼끝이 아래로 가도록 검을 돌려 칼등으로 돌을 막아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상대가 마법사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칼을 끝이 앞으로 가도록 잡고 그대로 찌르며 한발 내딛었다. 추적자가 손을 들자 조약돌들이 모여서 납작한 원을 이루며 칼을 막았다. 동시에 추적자는 가로로 칼을 휘둘렀다.

청년은 팔을 비틀며 칼을 움직여 추적자의 칼을 막아냈다. 이어 매끄럽게 상대의 칼날을 타고 들어가 찔렀다. 추적자는 다시 원판의 위치를 조정해 막고는 원판에서 돌 하나를 빼내어 쏘았다. 이번에는 너무 가까워 대응하지 못했다. 돌이 그대로 청년의 쇄골에 부딪혔다.

청년은 고통을 견디며 뒤로 물러났다. 뼈에 금이 갔는지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거리가 멀어지자 추적자는 계속 돌을 날려대었다. 청년은 막으면서 뒤로 슬슬 물러나 탑으로 들어가 벽 뒤에 숨어 숨을 골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탑이 퍽 우울하게 느껴졌다. 마치 무덤 같았다. 피로 쓴 비문으로 가득한. 저 글을 쓴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곳은 마녀에게 죽은 이들을 기리는 사당인가? 딴 생각을 접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집중해야했다.

밖을 내다보니 금발 추적자는 여유롭게 탑을 향해 걸어왔고 그 앞에서 다른 추적자가 맹렬히 달리고 있었다. 추적자의 후드 밖으로 목까지 내려오는 검정 장발이 삐져나와 있었고 손에는 청년이나 금발 추적자의 것보다 두 뼘은 더 긴 검이 들려있었다.

청년은 탑 입구 옆에 서서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기다렸다. 타닥거리는 빗소리 너머로 투박한 발소리가 들렸다. 거친 발소리는 가까워지자 조심스러운 숨소리로 바뀌었다. 그것이 탑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순간 청년은 칼을 힘껏 내리쳤다.

날카로운 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추적자는 예상했다는 듯이 청년 쪽을 보면서 검을 맞부딪혔다. 손잡이가 머리 위로 가고 칼끝이 손잡이보다 높아지게 기울여서 칼날끼리 부딪혔다. 청년의 검은 내리치는 힘 그대로 추적자의 칼날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 크로스가드에 걸렸다. 추적자는 그대로 크로스가드와 칼날을 맞댄 채 검을 돌려 청년의 다리를 베었다. 청년의 허벅지에 얕은 상처가 나며 피가 흘렀다.

청년은 뒤로 물러나며 검을 빼내고 다시 휘둘러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베었다. 추적자가 뒷발을 옆으로 옮기면서 다리가 꼬아지게 하며 반대편으로 칼을 휘두르자 청년의 검은 추적자에게 닿지 않고 추적자의 칼끝은 청년의 왼팔을 긁었다. 이후에 바로 칼날끼리 부딪혀 상처가 깊게 나지는 않았다.

입구로 금발 추적자가 들어왔다. 청년은 이곳에서 더 싸우기는 힘들다고 판단하고 계단으로 달렸다. 장발 추적자가 바로 뒤쫓아 왔다. 계단에 자리 잡고 뒤돌자마자 위에서 날아드는 칼날이 보였다. 바로 검을 들어 올려 막았다. 한손으로 검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 칼날 뒤쪽에 뭉툭한 중간부분을 잡은 자세였다. 검을 공손이 바치는 사제나 신하 같은 모양새였으나 눈만은 들어 추적자를 노려봤다.

아무리 힘을 낸들 막을 수 없었다. 상처에서는 피가 계속 흘러나왔고, 팔에서는 힘이 빠져나갔다. 한 발짝씩 밀려나갔다. 계단 아래로, 더 깊은 어둠속으로 끌려갔다.

“이젠 끝이다.”

장발 추적자가 말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청년도 이 바위산에 들어왔을 때부터, 아니, 그 낡은 나무집에서 손에 피를 묻혔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추적자가 검에 무게를 실어 내리누르자 청년은 다시 한걸음 물러서게 되었다. 그때 딸깍 소리가 나면서 등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등허리부분에 화살이 박혀있었다. 고통으로 힘이 풀리자 추적자의 검이 어깨를 파고들었다. 청년의 검이 맥없이 떨어졌다.

추적자는 더 힘을 주진 않았다. 그대로 깊게 베어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청년의 검을 걷어차 아래로 날려 보냈다. 그리고는 자신의 검을 거두고 바닥에 칼끝을 대고 세운 채 가만히 있었다.

곧 청년도 그가 뭘 하는 지 눈치 챘다. 처형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추적자는 망토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읊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청년도 아는 내용이었다. 그의 죄에 대한 목록. 저들은 그가 왜 죽어야하는 지 납득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진짜 죄가 아니었다. 진정한 죄에 대해서 단죄 받고 싶었다.

청년은 우울하게 추적자를 올려다보았다. 추적자는 의기양양하게 펼쳐든 종이를 펄럭이며 읽기를 마치고 다시 접어서 망토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준비 됐나?”

추적자가 말했다. 청년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준비되었던 적이 없었다. 추적자의 목소리와 함께 과거가 흘러들어왔다. 자신만만한 행동 안에 숨겨져 있던 불안과 그걸 덮는 광기와 위선이. 그래 그때도 그렇게 묻던 남자가 있었다.

기억이 흘러 소녀에게로 이르자 청년은 이대로 처형당하고 싶지 않았다. 움츠렸던 몸을 펴고 당당히 섰다. 두렵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이 두려웠다.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죽음으로 잊히는 것들이 두려웠다.

그렇다한들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는 추적자를 똑바로 노려보며 계단의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추적자가 그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그 손은 계단 아래의 어둠만큼이나 공허하고 의미 없어 보였다. 그래, 내가 그때 내민 손처럼. 어째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바닥으로 가라앉으면서 그는 생각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노라고.

그러나 곧바로 반문했다. 하지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죄악과 위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6.기억(3) 19.08.25 33 0 16쪽
30 6.기억(2) 19.08.24 13 0 10쪽
29 6.기억(1) 19.08.24 12 0 16쪽
28 막간5 19.08.23 14 0 7쪽
27 5.성(5) 19.08.22 11 0 10쪽
26 5.성(4) 19.08.21 17 0 10쪽
25 5.성(3) 19.08.20 21 0 16쪽
24 5.성(2) 19.08.19 18 0 13쪽
23 5.성(1) 19.08.18 16 0 12쪽
22 막간 4 19.08.18 16 0 3쪽
21 4.도시(5) 19.08.17 17 0 13쪽
20 4.도시(4) 19.08.16 16 0 17쪽
19 4.도시(3) 19.08.15 15 0 22쪽
18 4.도시(2) 19.08.14 15 0 17쪽
17 4.도시(1) 19.08.13 20 0 16쪽
16 막간 3 19.08.13 18 0 4쪽
15 3.성길(3) 19.08.12 21 0 15쪽
14 3.성길(2) 19.08.11 17 0 12쪽
13 3.성길(1) 19.08.10 15 0 13쪽
12 막간 2 19.08.10 29 0 8쪽
11 2.마을(5) 19.08.09 19 0 13쪽
10 2.마을(4) 19.08.08 16 0 14쪽
9 2.마을(3) 19.08.07 22 0 11쪽
8 2.마을(2) 19.08.06 28 1 13쪽
7 2.마을(1) 19.08.05 34 2 15쪽
6 막간 1 19.08.05 43 1 9쪽
5 1.탑(5) +2 19.08.04 59 2 11쪽
4 1.탑(4) 19.08.03 54 2 12쪽
3 1.탑(3) +2 19.08.02 76 2 17쪽
2 1.탑(2) 19.08.01 77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