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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님의 서재입니다.

죄악과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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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작품등록일 :
2018.11.09 16:08
최근연재일 :
2019.08.25 20:00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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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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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수 :
175,388

작성
19.08.01 20:00
조회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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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1.탑(2)

DUMMY

3.

횃불이 비추는 탑의 지하실에서 여자가 계단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여자는 작은 키에 발목까지 덮는 커다란 검은 원피스를 입고 지저분한 모습에 깡마른 몰골이었다. 기다란 머리카락은 제 멋대로 뻗치거나 뭉쳐있었고 얼굴에는 검은 얼룩이 묻어있었다. 눈동자는 옅은 초록색이었으며 원피스의 색과 검은 머리와 대조적으로 피부는 놀라울 정도로 창백했다. 그녀는 잔뜩 움츠러든 채 원피스 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검과 남자가 계단에서 굴러 내려왔다. 남자의 몸은 피투성이에 이곳저곳 상처가 나 있었다.

여자는 남자가 쓰러진 것을 보고 기분이 나아졌다. 서있는 사람보다는 쓰러진 사람이 나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남자의 짙은 갈색의 머리는 목까지 자라 마구 엉겨있었고, 말라서인지 이목구비가 두드러져 보였다. 그 아래, 시선을 돌리자 깡마른 가슴이 희미하게 부푸는 것과 손발이 떨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깜짝 놀랐다. 남자가 아직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녀에겐 새로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이곳에 내려오는 사람은 쉽게 분류되었다. 쓰려져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었고, 서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살아있지만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이 내려왔다.

여자는 이 새로운 상황을 두고 고민했다. 이 사람은 여자가 도와주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돕는 게 옳은 일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가 다른 사람과 다를까? 모를 일이었다. 사실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명백해 보이는 선택 앞에서도 고민이 되었다. 안에서 잠자던 오랜 욕구가 그녀를 자극했다.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욕구.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 오랫동안 여자는 같은 행동만을 기계적으로 반복해왔다. 한결같이 끔찍한 일들을. 어쩌면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

한동안 머릿속으로 복잡한 생각을 하던 여자는 마침내 그를 돕기로 결정했다.


청년은 천천히 깨어났다. 깨어나면서 처음 느낀 것은 냄새였다. 피 냄새와 시체가 불에 타는 냄새. 두려워하던 것들의 냄새. 냄새들은 눌려있던 기억이 새어나오게 만들고 어지러운 영상을 보여줬다. 그리고 감촉이 뒤따랐다. 그에겐 너무나 따뜻했던 감촉. 그리고, 그리고, 그것이 식어가던 순간. 하얀 피부, 깨끗한 하얀 피부. 빛나는 검갈색, 매끄럽던 머리. 눈동자, 언제나 그를 증오하는, 떠나지 않는 눈동자. 다시 피, 그 매끄러움, 그것이 손에, 그의 손에.......

그는 생각을 거부했다. 환상을 거부하고, 숨 쉬는 것도 잊었던 것처럼, 그래서 그것을 벌충하려는 듯 몰아쉬었다. 눈이 떠지고 회색 돌 천장이 눈앞에 여러 개 떠다니다가 몇 번 눈을 깜빡이자 하나로 합쳐졌다. 손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바라보니 가죽 끈에 걸린 반지를 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쥐고 있었다.

청년은 몸을 똑바로 일으키려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다시 누웠다. 통증과 함께 기억이 돌아왔다. 그를 쫒던 추적자들과 어두운 탑과 좁은 계단. 그리고 함정에서 쏘아져 나온 화살에 맞아 밑으로 떨어지던 기억.

청년은 거기까지 기억해내고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그는 탑의 지하인 것 같은 작은 방에 있었다. 등과 어깨, 팔다리의 상처는 천으로 감겨있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다시 주위를 둘러보다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시선이 멈춘 곳에는 작고 마른 여자가 겁에 질린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벽이 보호해줄 거라고 믿는 듯 양쪽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 찰싹 붙어 기대고 서 있었다.

청년은 그녀를 경계했다. 이 음험한 곳에 사는 사람이다. 정상이 아닐 거라 짐작했다. 그는 마녀에 대한 전설을 믿지 않았지만, 마녀의 탑 아래, 함정이 설치된 계단과 이어진 지하실에 있게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통증을 무시하며 몸을 일으켰다.

여자는 그를 보고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살짝 벌렸다가 꾹 다물었다. 청년은 그녀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자신의 검 쪽으로 걸어갔다.

“나를 알아?”

여자가 뜬금없이 이상한 것을 물었다. 작고 희미해서 주위가 관속처럼 조용하지 않았다면 들리지 않았을 목소리였다. 청년은 멈춰선 채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두려워하며 그를 보고 있었다.

“아니. 내가 알아야 하나?”

그는 네가 마녀냐고 물어보려고 했으나 여자의 표정을 보고 관두었다.

“네가 누군데?”

퉁명스럽게 내뱉은 질문이었는데 오히려 여자는 그걸 듣고 안심하는 듯 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중간에 입을 몇 번 우물거린 거 보면 대답은 했지만 들리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었다.

“네가 이걸 덮어준 거야?”

청년은 자신의 어깨와 옆구리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더 할 말이 없어 보이자 청년은 그녀를 계속 살펴보며 다시 검을 주우려고 걸어갔다.

“잠깐.” 여자가 그를 멈춰 세웠다. “그러지 마.” 여자가 이전과 달리 분명한 소리를 내며 그에게 말했다.

“뭐를?”

“하지 마.” 여자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이거 말하는 거야?”

청년이 손으로 검을 가리키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입장에서는 무기를 든 남자가 위협적으로 느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심해. 너를 해치려는 게 아니야.”

그는 말을 마치고 대답이 없자 다시 걸어갔다.

“하지 마!”

여자가 있는 힘껏 악을 썼다. 그 날카로운 목소리가 청년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진정하라고. 난 널 해칠 생각이 없어.”

“하지 마! 안 돼! 저리가!”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청년은 원래 누워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여자의 목소리에 담긴 무언가를 무시하기가 힘들었다.

여자는 안심이 안 되었는지 그를 계속 주시했다. 그에 기분이 상한 청년이 마주 노려보자, 그녀는 시선을 돌리고 그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청년은 일어서서 모퉁이까지 걸어가 기대앉았다. 여자와 멀리 있고 싶었다. 앉자마자 잠이 밀려왔다. 잠들고 싶어 하는 몸을 억지로 깨워두고자 눈에 힘을 주고 부릅떴다. 건너편에 있는 여자에 대한 의심을 푸는 것이 먼저였다.

여자가 마녀인 것 같지는 않았다. 청년을 구해준 것은 확실하니까 그를 해치려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뭔가 숨기는 것이 있었고 그게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저기, 내 이름은 댄이야. 우리 첫 만남이 별로 좋지 않았던 거 같네. 다시 시작해보자.”

한참을 고민하다가 댄이 먼저 화해의 말을 건넸다. 여자가 대답이 없자 그는 말을 이었다.

“아까 말했듯이 너를 해칠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안심해.”

여자는 당황하며 시선을 이곳저곳으로 옮겼다. 댄은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렸다.

“여기 오래 머물 생각도 없어. 상처만 나으면 바로 나가줄게. 그전에 네가 누군지 또 여긴 뭐하는 곳인지 알려줬으면 해.”

여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나는 앨런. 여기는 내가 사는 곳.”

“여기서 산다고? 이런 곳에서?”

어느 정도 짐작한 일이었지만 여전히 놀라운 일이기도 했다. 이곳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니었다.

지하에 있는 방답게 습하고 텁텁한 공기로 꽉 차 있었고, 벽에 횃불이 걸려있는데도 어두웠다. 어딘가에서 물이 새고 있는지 벽면과 붙어있는 바닥에는 군데군데 물이 고인 곳도 있었다. 게다가 밖의 계단에는 위험한 함정도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험난한 환경들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여기 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앨런이 기대고 있는 구석 바로 앞에는 다양한 옷가지가 그녀의 무릎 높이로 쌓여있었고, 그 옆에는 굴뚝같은 것이 지상으로 뻗어있었다. 다시 그 옆으로 가면 이 지하실의 다른 모퉁이가 나오는 데 거기에는 야채며 고기가 분류되어있었다. 그리고 댄의 바로 옆에는 나무 장작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여기서 살아가기 위한 기반이자, 여기서 살고 있다는 증거들이었다.

방에는 몇 가지 안 어울리는 것들도 있었다. 바닥에 있는 구덩이와 모퉁이에 있는 잡동사니가 그것들이었다. 구덩이의 용도는 화장실로 짐작되었다. 그런데 잡동사니의 용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애매했다. 거기에는 각종 갑옷이며 농기구, 심지어는 기다란 칼 도끼 등의 병기까지 있었다.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해 보아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는 동안, 댄은 그녀가 여기 산다는 것에 놀라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앨런은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그녀는 주눅이 든 듯이 시선을 밑으로 내린 채 움츠러들었다.

“어, 그래도 나름 살만한 곳 인거 같아. 밖에 있는 형편없이 똑같이 생긴 집들보다는 나은 곳이야.” 댄이 말했다.

앨런은 그를 스치듯 훑어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는 다시 검을 바라봤다. 앨런도 그가 뭐를 보는지 눈치 채고 그쪽을 봤다.

“아까 말했듯이 나는 너를 해칠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저 검만 좀 가지고 있으면.......”

“안 돼.”

앨런이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보이자 댄도 순순히 포기했다.

“그럼 그냥 쉬는 건 괜찮겠지? 좀 피곤한데.”

앨런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시적인 합의에 이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밤새 깊이 잠들지 못하고 서로를 경계해야 했다.

왜 그녀는 이런 곳에 갇혀있는 걸까? 댄은 이전에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이런 식으로 가둬두는 것을 본 적 있었다. 이것도 그런 건가? 아니면 그녀가 정말로 마녀인 걸까? 머릿속에서 온갖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너무나 이상한 일이라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댄은 피로를 못 이기고 짧은 잠에 몇 번 빠져들었다. 그때마다 다른 꿈을 꾸었는데, 하나같이 우울했다. 한 번은 높이 타오르는 불길이 나왔고, 한 번은 빨간 핏빛으로 덮인 돌바닥, 몇 번은 그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소녀가 보일 때마다 그는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며 잠에서 깨어났고, 그에 놀란 앨런도 선잠에서 깨어났다.

그걸 보며 댄은 이 상황이 진정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 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나가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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