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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님의 서재입니다.

죄악과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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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작품등록일 :
2018.11.09 16:08
최근연재일 :
2019.08.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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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88

작성
19.08.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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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성(1)

DUMMY

1.

대략 200년 전, 왕이 바닥난 국고와 넘쳐나는 빚에 허덕이다가 군사력을 축소하며 동부의 방호를 한센에게 위임한 이후에, 즉 한센가가 공작으로 봉해진 이래로, 그 어떤 한센도 그저 공작에 만족하지 않았다. 첫 한센 공작은 대공의 꿈을 꾸었고 그 다음 한센은 왕의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동부의 군사는 국경을 견고히 지킨다는 명목 하에 대를 거듭하며 점점 불어났고 한센의 의욕적인 정복전쟁 끝에 국경선은 동쪽으로 밀려갔다. 그 덕에 지금 동부 공은 많은 지역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왕가는 고집스럽게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지금 한센가는 실질적으로 대공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동부는 왕가로부터 독립된 영지였고 그 주인은 한센이었다.

지금 한센 가의 17대 공작, 카일 한센은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주의, 그것도 공작의 영지 근처에서의 합의되지 않은 군사행동. 귀족들의 공포와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일은 심지어 협회가 지배하는 도시에서 일어났다. 이것만으로도 왕을 압박할 수 있었다. 더 좋은 건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한센 공작은 종이에 글을 계속 써내려갔다.

“기회로군.”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찰스 한센이 말했다.

“아직도 여기 있었나? 조용해서 나간 줄 알았는데.”

카일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카일은 찰스를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형으로서 물려받을 직위를 포기하고 한량같이 살면서 인생을 허비하는 한심한 인간. 이렇게 자기 관심 가는 일이 있을 때마다 기어 나와서 참견해대는 꼴이 성가셨다. 게다가 더 화가 나는 것은 그가 마치 직위를 양보한 것처럼 군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공작자리는 귀찮을 뿐이라고 말해온 주제에.

그가 껄끄러운 것은 단지 기분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찰스는 기사 서임을 받고 전투 경험도 있는 터라 동부의 나이든 귀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덕분에 자기편인 영주들을 쉽게 늘려 나갔다. 그의 간섭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럴 수 있나. 이런 중요할 때야 말로 가족의 지지가 필요한 거 아닌가?”

찰스가 익살스럽게 말했다.

“필요 없으니 방으로 돌아갔으면 좋겠군.”

찰스는 카일의 말을 무시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어떻게 할 생각이냐? 영주들을 구워삶기에는 아직 부족할 텐데? 꼬장꼬장한 북부 영주 중에 네 얘기를 들을 사람이 있을까?”

찰스가 말했다.

“편지는 나중을 위해서 써두는 거다. 아직은 상황을 더 봐야지.”

“잡아온 놈들이 어떤 정보를 주는 지가 중요하겠군.”

찰스의 말에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일단 놈들의 정체를 알기 전에는 잘 대접하는 게 좋을 거다.”

찰스가 조언했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러 온 거라면 나가라.”

“영 불안해서 말이야. 심문은 어떻게 할 거냐. 네 심문관은 적정선을 잘 못 지키지 않냐?”

“직접 감독하지. 동부로 기어들어왔다는 왕실 근위대는 어떻게 됐나?”

카일이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말했다.

“숲속으로 들어갔다더군. 그 이후로는 쥐떼들로부터 연락이 없어.”

“에드워드의 실력에 의문이 생기는군. 어쨌든 놈들을 잡던 못 잡던 포로들로부터 정보만 빼내면 왕궁을 압박할 수 있겠지.”

“글쎄....... 난 잘 모르겠다.”

찰스가 말했다.

“무슨 뜻이지?”

“그럴듯한 명분이 없어.”

“왕궁 놈들이 군사를 이끌고 말도 없이 기어들어왔다는 걸로는 부족한가?”

카일이 비꼬듯이 말했다.

“그거야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나 먹히는 거고. 저 아래에 있는 놈들한테는 아니지. 전쟁 끝나고 저 아랫놈들을 구슬려서 꽤 이득보지 않았냐? 동부에서 한센가의 위용이 유지되는 게 그 덕분 아니겠어? 그걸 이어가려면 괜찮은 명분이 필요해.”

찰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허, 어차피 명분은 눈속임일 뿐이야. 허울이고 구실일 뿐이지.”

“저 아래에서는 명분이 전부야. 저들은 그걸 믿으니까.”

“흠.”

카일이 생각하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하하. 감이 떨어졌군. 가끔씩 성 밖으로 산책도 나가고 그래라.”

카일이 인상을 쓰자 찰스가 재미있다는 듯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나무들이 가득한 숲속. 나뭇가지로 대충 지어진 임시 움막 안에서 작은 말소리들이 새어나왔다. 좁은 움막 안에는 4명의 사람들이 묶여있는 한 남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빨리 입을 열어 쓰레기 같은 놈아. 무슨 의리를 지키겠다고 이러는 거냐?”

칼슨이 말했다. 그의 앞에는 퉁퉁 부은 얼굴로 입술에서, 그리고 손에 난 상처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댄이 있었다.

“네가 아는 걸 다 털어놔라. 놈들은 어디로 가는 거냐? 그 나이든 놈의 목적은 뭐지? 그 여자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

댄은 입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등 뒤로 양 손이 묶였고 다리도 허벅지에서 한번 발목에서 한번 묶여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럴 수 있었다고 해도 그를 둘러싼 놈들을 모두 때려눕히고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생각하지 말고 대답이나 해라. 놈의 목적이 뭐냐?”

칼슨은 그렇게 말하고 옆에 남자에게 고개를 까딱했다. 그러자 남자는 날카로운 송곳으로 댄의 손가락 사이를 찍었다. 댄은 이를 악문 채 작게 신음하며 몸부림쳤다. 남자는 아랑곳 않고 송곳을 돌리며 상처를 넓혀 나갔다.

“말해.”

칼슨이 말하자 송곳이 멈췄다.

“그 애는 내버려둬. 나를 잡았으니 된 거 아니냐. 그 애는 그냥 둬.”

댄이 가쁘게 숨 쉬며 힘겹게 말했다. 칼슨은 댄의 탁한 눈을 번갈아 느릿하게 보았다.

“허. 네놈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모르나보군.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아나?”

칼슨은 쪼그려 앉은 채 씩 웃고 나서 댄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는 일어나서 움막 밖으로 나갔다.

“죽지 않는 선에서 계속 조져봐.”

움막 밖에 있던 남자에게 지시했다.

“칼슨님. 저 녀석 이대로 두면 죽을 겁니다.”

남자가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치료를 해 줘야지.”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상처가 곪았어요. 약을 주지 않으면 죽을 겁니다.”

“약은 가지고 있나?”

“네, 있습니다.”

칼슨은 잠시 약의 가치와 댄의 가치를 저울질해 보았다. 댄을 인질로 쓸 수 있다면 약을 내주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치료해줘. 고문도 멈추지 말고.”

칼슨이 말을 마치자 남자는 천막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를 따라 한명이 더 들어갔다. 댄은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가 놀랐다. 천막 안에 들어온 사람은 그가 아는 사람이었다. 레너드. 옛 전우. 그를 보며 댄은 눈을 크게 떴다. 댄은 그가 검에 찔리는 걸 봤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지금 여기서 히죽거리며 댄을 보고 있었다.

레너드와 같이 들어온 남자가 댄의 상태를 살폈다. 남자는 약초를 상처들에 바르고 토끼다리풀을 달인 물을 먹였다. 그동안 댄은 레너드를 계속 노려보았다. 레너드는 마주 노려보고는 픽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칼슨은 다른 죄수에게로 향했다. 다른 간이 오두막에 묶여있는 윌렛은 댄보다는 깔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칼슨을 보자마자 적의로 불타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도 해야 할 일을 하는 중이지.”

칼슨이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네 노력은 높이 산다만. 네놈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되었어. 놈들은 한센 손에 넘어갔다. 만족하냐?”

“네가 꾸물댄 탓이지. 병력만 좀 더 있었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너는 마녀를 만나고도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해.”

“흥. 또 그 소리냐 쫄보새끼.”

두 사람이 이야기 하는 사이에 다른 병사가 오두막으로 들어왔다. 그는 칼슨을 보며 말했다.

“아드리언님이 도착했습니다.”

나가자 금발 남자가 변함없이 굳은 얼굴로 주위를 뜯어보고 있었다.

“아드리언.”

“칼슨, 무슨 일이지? 이놈들은 뭐냐. 이 근처에서 어슬렁대더군.”

아드리언은 머리가 부서진 시체를 양손에 하나씩 붙잡고 있었다.

“동부의 쥐떼들인가 보군. 약간의 문제가 생겼었거든. 아쉽군. 사로잡았으면 쓸모가 있었을 텐데.”

칼슨이 시체를 보며 말했다. 그가 손짓하자 병사들이 시체를 끌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저런 놈들은 입을 열지 않아. 그나저나 문제라니, 저 놈도 그 문제 때문에 데리고 있는 거냐?”

아드리언은 댄이 들어있는 움막에 고갯짓하며 물었다. 칼슨은 그간의 사정을 짧게 요약하서 전했다. 아드리언은 잠자코 들었다. 그는 마녀가 한센성으로 끌려갔다는 것을 듣고 표정이 더 굳었다.

“그럼 한센성으로 가야겠군.”

아드리언이 말했다.

“그건 너무 위험해. 놈들은 우리가 누군지 알거야.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어.”

“그래. 한센 성에 들어가면 전쟁이 일어날 수 있지. 놈들이 마녀를 가지면 전쟁이 일어나고. 둘 중에 고르라면 일어날 수 있는 쪽이 나아.”

“놈들은 자기들이 뭘 잡은 지도 모를 거다.”

“시간문제야. 곧 알아내겠지.”

아드리언이 신중하게 말했다.

“마녀가 그 전에 스스로 탈출할 가능성도 있어.”

“그것도 문제야. 한센이 비밀을 알게 될 테니까.”

“음....... 듣고 보니 그렇군.”

칼슨이 반박할 말을 생각하다가 포기하고 동의했다.

“그래. 우리는 한센성으로 들어가야 해.”

아드리언은 그걸로 끝이라는 듯 확실히 말했다.

“놈은 어쩌죠?”

구석에서 주위를 경계하던 크리스가 댄이 있는 오두막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드리언은 고민되는지 말이 없었다.

“놈이 마녀를 꺼낸 거 같은데. 인질로 쓸 수 있지 않겠냐?” 칼슨이 말했다. 아드리언도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여 병사 둘을 시켜 댄을 끌고 따라오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출발하기 전에 아드리언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윌렛을 보았다.

“지시에 잘 따라주길 바란다.”

그는 말을 마치고 조약돌을 주머니에서 꺼내 바닥에 뿌렸다. 그리고 곧장 돌들을 묶여있는 윌렛에게 날렸다. 돌들은 윌렛의 머리에 바로 부딪히지 않았다. 대신 그의 머리 주위를 돌면서 스치듯 때리고 지나갔다.

“난 해야 될 일을 했을 뿐이야.”

윌렛이 소리쳤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겠지.”

아드리언이 싸늘하게 말했다. 윌렛의 얼굴은 돌과 부딪혀 엉망이 되어갔다. 이마가 움푹 파이고 곳곳에 피가 터져 나왔다. 아드리언은 조약돌을 계속 돌리면서 숲에서 커다란 바위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얼굴을 감추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윌렛의 위로 바위를 내다 꽂았다.

“다시 말하지만 지시를 잘 따라줬으면 좋겠다.”

아드리언은 혹여나 시체가 발견될까봐 작은 돌멩이를 잔뜩 들어다가 바위 주변을 덮었다. 다른 병사들은 굳은 표정으로 그걸 바라보았다.

댄까지 포함해서 그들 13명은 아드리언의 지시에 따라 조용히,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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