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마마마마바 님의 서재입니다.

죄악과 위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마마마마바
작품등록일 :
2018.11.09 16:08
최근연재일 :
2019.08.25 20: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987
추천수 :
17
글자수 :
175,388

작성
19.08.05 20:00
조회
42
추천
1
글자
9쪽

막간 1

DUMMY

메이헴. 황무지의 유일한 마을이자 엠브리오 구석에 있는 마을. 낮에는 타는 듯이 뜨겁고, 밤에는 시체처럼 차갑다. 입술을 덮어주는 것은 물기가 아닌 모래뿐이다. 황무지와 붙어있고 황무지 너머 동쪽으로는 프리기스 왕국과의 국경, 남쪽으로는 아레드 왕국과의 국경과 가까워 치안도 불안했다.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살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지하수가 흘러 우물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흔한 재료인 모래로 쌓아올린 집들은 모래상자같이 생겼다. 그 상자들은 우물 주변으로 갈수록 촘촘히 모여 있어 멀리서 우물가를 보면 우물은 보이지 않고, 커다란 모래언덕만 보였다.

우물가는 사람들로 붐비었다. 우물 주변의 집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우물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놓여있었다. 그 안쪽은 원형으로 트여있어 광장을 이뤘다. 중앙에 놓인 우물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항아리에 물을 길어가고 있었다. 대부분 나이든 이들이었다.

원형 광장 테두리 한쪽 구석에는 마을에 한 명뿐인 상인이 흙집을 개조하여 만든 상점에서 물건들을 자랑스레 펼쳐놓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상인이 소유한 식당이 있었다. 바깥에는 나무를 잘라서 만든 차양의 그늘 아래에 의자 여러 개와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쉬거나, 음식을 주문해 먹거나, 한잔 하면서 상점 주인과 수다를 떨 수 있게 해놓은 것이었다. 보통은 주민들이 이용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이방인 둘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둘 다 후드를 뒤집어쓴 차림이었다.

“주인장 여기 술 병 더 주시오.”

상인이 볼 때 오른쪽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그는 덥수룩한 수염과 헝클어진 긴 머리에도 불구하고 남자다운 굵은 선의 근사한 얼굴 덕에 지저분해 보이지 않았다. 검은 수염과 검은 머리는 구릿빛 피부와 잘 어울렸다.

“칼슨. 언제까지 마실 생각이지?”

왼쪽에 앉은 남자가 칼슨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이름은 아드리언이었고, 흰 피부, 어두운 금발에 소름끼치게 파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술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가끔씩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한곳을 뚫어지게 보고 다시 시선을 돌리기도 하였다.

“물론 이 쓰레기 같은 곳에서 나갈 때까지지.”

칼슨은 말을 내뱉고, 상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급히 말을 이었다.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오.”

“괜찮습니다. 제가 사는 데지만 빌어먹을 곳이죠.”

상인이 술 한 병 넘겨주고 테이블 앞에 선 채, 손을 저으며 말했다. 칼슨은 후드를 벗고는 머리를 긁었다.

“여긴 너무 더워. 머리를 밀어버리는 상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오.”

“자르면 되지 않나요?”

“싫소.”

칼슨이 긴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는 바람 새는 소리가 섞인 웃음소리를 내며 큰 소리로 웃었다. 술 냄새가 났다. 눈치를 보던 상인은 예의상 따라서 웃었다.

“덥긴 덥군요. 그야말로 마녀가 날뛰는 날이네요.” 상인이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말했다.

“하. 그나마 마녀가 탑에 갇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오.” 칼슨이 말했다.

“그렇고말고요.” 상인은 적당히 맞장구 치고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저는 이렇게 더울 때면 북쪽에서 장사하던 시절을 상상하곤 합니다.”

“오 얼마나 북쪽 말이오? 초목이 우거진 곳? 아니면 짧고 퍽퍽한 풀이 자라는 곳?”

칼슨이 활기차게 말했다. 그는 뒤에 놓인 테이블에서 의자를 끌어다가 빈자리에 놓고 상인에게 자리를 권했다. 상인이 앉자 칼슨은 아드리언이 손도 대지 않고 있던 술잔을 건넸다. 상인은 고마워하며 받았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었다. 상인이 마시려 하자 칼슨이 자기 잔을 들고 흔들었다. 상인은 그와 잔을 맞부딪혔다. 항아리 잔이 맞닿으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 너머에 있는 바람이 코를 베어가는 곳,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곳이죠.”

상인은 잔을 쭉 들이켜고는 입을 닦으며 말했다. 칼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따라서 입에 털어 넣었다.

“부럽구려. 나도 여행을 좋아하는데 거기까지 가보진 못했소.”

“거기 뿐 아닙니다. 동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한센 성에도 가보았죠.”

“오. 한센 성! 어렸을 때 한번 보긴 했는데, 볼만했던 기억이 나는군.”

“멋지다마다요. 동부인들은 한센 성보다 멋진 곳은 없다고 입을 모아서 이야기하지요.”

“흠. 그래도 왕궁에 비할 바는 못 되지 않겠소?”

“저는 왕궁은 가보지 못했답니다. 그 주변은 아무나 장사할 수 없으니까요. 하하 한센 성보다 멋질 거라니 꼭 가보고 싶군요.”

“나는 한센 성에 가보고 싶군.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갈 수가 없게 되었으니.”

“무슨 일을 하십니까?”

칼슨은 히죽거렸다. 그는 상인에게 가까이 와보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의자에서 몸을 떼고 반쯤 일어서서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비밀이오.”

칼슨은 그 말만 하고 의자에 다시 앉았다. 옆에서 금발 남자가 상인을 빤히 보고 있었다. 상인은 괜히 물었다 싶어 재빨리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뭐 이런 것도 다 옛날이야기죠. 위-대하신 왕의 전쟁이 끝난 후로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아요.”

상인은 조롱하듯이 왕의 위대함을 늘려 말했다. 그는 무난하게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주제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소문에 밝은이들은 모두 왕과 그의 실패한 전쟁을 비난했다. 특히나 동부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곧 칼슨의 표정이 굳자 상인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 어떻게 왕의 탓이겠소.”

“왕이 시작한 전쟁 아닌가요? 마녀의 심기만 안 건드렸어도 이겼을 거라고 하기는 하던데요. 그렇다고 마녀의 탓도 아니잖아요?”

상인은 자신이 손님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알고는 조금 더 밀어붙였다. 잘하면 일찍 내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이방인 손님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어려운 문제요. 책임이라는 게 말이오. 그리 쉽게 나눠지는 게 아니니까.”

“자네는 취하면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는군.”

보다 못 한 아드리언이 끼어들었다.

“그게 싫거든 돌아가면 되는 거 아니냐? 애초에 우리 일은 끝났는데 왜 여기 남아있는 거야.” 칼슨이 말했다. 그는 바로 상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소? 일을 끝내면 집으로 가야지.”

“그렇죠. 맞는 말씀이네요.”

상인은 칼슨의 편을 들었다. 창백하고 무뚝뚝한 아드리언은 도무지 정감이 가질 않았다.

“몇 번을 말해야겠나. 우리 일은 아직 안 끝났어. 확인이 되지 않았으니.”

“그런 거 일일이 확인하면 집에는 언제가나? 그냥 가자고.” 칼슨이 언성을 높였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자네도 다리에 칼을 박아 넣던가.”

“하하하. 자네가 하는 농담은 언제나 재밌다니까. 그렇지 않소?”

칼슨은 웃음을 터뜨렸다. 상인은 이해가 되지 않아 적당히 그렇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가 보기에는 아드리언이 농담한 것 같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아드리언이 손을 들어올렸다. 상인은 싸움이 일어나려나 싶어 무엇부터 안에 들여놔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금발 남자는 칼슨을 툭툭 치고 칼슨의 뒤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상인도 궁금하여 고개를 내밀고 쳐다봤다. 멀리 흙집들 사이에서 키 크고 마른 남자가 보였다. 그는 후드가 달린 망토를 뒤집어쓰고 두리번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걸음걸이가 불안한 것이 어딘가 아픈 것 같았다. 남자의 옆에는 마을에서 본적 없던 여자가 있었다. 칼슨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단단하게 굳었다.

“좋아. 살아있다니 신기하군. 그나저나 도둑놈 같은 꼴을 하고 다니는구먼.”

칼슨이 중얼거렸다.

“도둑놈만 못한 놈이니 높게 쳐준 셈이네.”

아드리언이 말을 받았다. 칼슨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것 같이 보이자 아드리언은 그의 어깨를 붙잡고 급히 속삭였다.

“소동을 일으키기에는 장소가 좋지 않아. 이런 곳에는 눈도 귀도 많다. 어디 소속이든 말이야.”

“흥, 운 좋은 녀석.”

칼슨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다시 표정을 부드럽게 해 실실 웃으면서 상인에게 말했다.

“만나서 즐거웠소. 이제 일하러 가봐야겠소. 언젠가 왕궁도 보고 시원한 북쪽도 다시 보기를 기원하리다.”

그는 은화 세 닢을 꺼내어 하나하나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건 술값이고, 이건 이야기값이고, 이건 기분이오.”

그들은 싱글벙글하고 있는 상인을 뒤로하고 조용히 마른 남자를 따라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죄악과 위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6.기억(3) 19.08.25 33 0 16쪽
30 6.기억(2) 19.08.24 13 0 10쪽
29 6.기억(1) 19.08.24 12 0 16쪽
28 막간5 19.08.23 14 0 7쪽
27 5.성(5) 19.08.22 11 0 10쪽
26 5.성(4) 19.08.21 17 0 10쪽
25 5.성(3) 19.08.20 21 0 16쪽
24 5.성(2) 19.08.19 18 0 13쪽
23 5.성(1) 19.08.18 16 0 12쪽
22 막간 4 19.08.18 16 0 3쪽
21 4.도시(5) 19.08.17 17 0 13쪽
20 4.도시(4) 19.08.16 15 0 17쪽
19 4.도시(3) 19.08.15 15 0 22쪽
18 4.도시(2) 19.08.14 15 0 17쪽
17 4.도시(1) 19.08.13 20 0 16쪽
16 막간 3 19.08.13 18 0 4쪽
15 3.성길(3) 19.08.12 21 0 15쪽
14 3.성길(2) 19.08.11 17 0 12쪽
13 3.성길(1) 19.08.10 15 0 13쪽
12 막간 2 19.08.10 29 0 8쪽
11 2.마을(5) 19.08.09 19 0 13쪽
10 2.마을(4) 19.08.08 16 0 14쪽
9 2.마을(3) 19.08.07 22 0 11쪽
8 2.마을(2) 19.08.06 28 1 13쪽
7 2.마을(1) 19.08.05 34 2 15쪽
» 막간 1 19.08.05 43 1 9쪽
5 1.탑(5) +2 19.08.04 59 2 11쪽
4 1.탑(4) 19.08.03 54 2 12쪽
3 1.탑(3) +2 19.08.02 76 2 17쪽
2 1.탑(2) 19.08.01 77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