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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님의 서재입니다.

죄악과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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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작품등록일 :
2018.11.0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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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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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88

작성
19.08.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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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마을(2)

DUMMY

댄은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그들이 단순히 자경단을 자처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돈을 뜯어먹는 양아치들이라면 다행이었으나,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생긴다. 만약 국경에서 정보를 수집해 팔고 있는 이들이라면? 아니면 근처 영주가 파견한 정보원이라면? 최악의 경우 왕궁에서 파견한 정보원일 수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리 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댄은 여기서 나갈 생각이었다. 그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게 무슨 큰 문제겠는가. 그는 대범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다시 생각은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앨런을 해치려고 한다면? 그가 혼자 빠져나가면 앨런은 어떻게 될 것인가. 댄은 무심코 앨런이 있는 이불을 바라봤다. 이불 위로 초록색 눈동자 한 쌍이 슬쩍 드러나 있었다.

“잠시 나가주시겠습니까?”

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허 이젠 집 주인을 내쫓으려는 겐가?”

노인은 다시 화가 치미는 듯이 몇 마디 더 내던지려고 했으나 참았다.

“됐네. 뭔 일인지 모르겠는데,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끝내게.”

“감사합니다.”

노인은 문을 열고 나간 뒤에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댄은 조심스럽게 침대에 다가갔다. 그리고는 이불을 확 걷어 내렸다. 앨런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있었다.

“지금까지 자는 척 했던 거야?”

“자다 깨다 했어.”

앨런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댄이 물 한 컵을 가져다주었다. 앨런은 컵을 받아들지 않았다.

“마셔.”

앨런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마시라고. 탑에서 나온 뒤로 아무것도 안 먹고 아무것도 안 마셨잖아.” 댄은 컵을 앨런의 입으로 가져다 댔다. “안 마시면 밖에 있는 노인도 불러서 강제로 마시게 할 거야.”

앨런은 눈을 뜨고 힘을 주어 그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서서히 힘을 빼고 다시 눈을 감아 버렸다.

“됐어. 안 마실 거야.”

그녀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는 건데. 뭐가 문제야.”

“그냥.”

“그때 봤던 낙서들 때문에 이러는 거야?” 댄이 짐작하여 말했다. “그런 것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좀 쉬게 해줘.”

앨런이 말했다.

“이거 마시기 전에는 안 돼.”

댄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만해. 쉬고 싶다니까.”

문이 낡은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노인이 들어왔다.

“무얼 하길래 이리 시끄러운가.” 노인은 불평을 하다가 앨런이 깨어난 것을 보고 이어 말했다. “오, 일어났나? 기분은 어떤가?”

앨런은 말이 없었다.

“자네나 자네 친구나 과묵하구만.”

“시간을 조금만 더 주면 안 되겠습니까?”

“안되지. 밖은 이제 춥다네.”

노인은 댄을 보다가 이어 말했다.

“그래 물을 좀 마시게 하게. 식사도 준비하지.”

노인은 바로 나가지 않고 앨런이 물을 마시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노인에게는 보이지 않게 댄을 쏘아보면서 컵을 받아들여 마셨다. 그러다가 사레가 들려 켁켁거렸다. 노인은 그녀가 물을 다 마시자 나가서 귀리, 당근이 들어간 스튜와 까만 빵을 가져왔다. 그는 탁자에 음식을 늘어놓은 뒤에 앨런이 침대에 앉아서 먹을 수 있게 탁자를 침대 옆으로 가져갔다.

앨런은 노인이 다른 곳을 볼 때면 수시로 댄에게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노인이 스튜를 그릇에 담아주고 딱딱한 빵을 쪼갠 뒤에 건네주자 그녀도 마지못해 음식을 들었다. 음식은 따뜻했고 반대로 식탁에는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계획대로하자면 댄은 지금 떠나겠다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그가 가버리면 앨런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까의 사내놈들도 그렇고, 앨런의 상태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댄은 음식과 함께 말을 삼켰다. 아직은 떠날 수 없었다. 답답했다. 그는 여기 머물면 안 됐다. 어디에서도 머물러서는 안 됐다. 소녀는 그를 비웃을 것이다. 그의 다짐을 조롱할 것이다. 이 따뜻한 식사를 보고, 몸의 안식을 보고, 그에게 실망할 것이다. 그는 그러면 안 되었다.

“....... 하나?”

노인의 목소리가 그를 상념에서 구해냈다.

“네?”

댄은 제대로 듣지 못해 되물었다.

“아직 젊은데도 귀가 잘 안 들리나? 두 사람은 왜 같이 여행 하냐고 물었네.”

“아.”

댄은 머릿속으로 열심히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저는 이 친구를 도시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습니다.”

댄은 완전히 거짓은 아닌 말을 했다.

“흠 그런가? 이런 때에 여행이라니 쉽지 않을 텐데.”

“그래도 해야 했습니다.”

“뭐 그런 일도 있는 법이지.”

노인은 수긍하고 빵을 크게 떼어 스프에 적신 뒤 입에 넣었다. 그는 우물거리다 삼킨 다음에 말을 이었다.

“급하지 않으면 쉬다 가게나. 깨어났다고는 해도 기력을 좀 회복하고 가야하지 않겠나?”

오늘 밤 떠날 생각이라면 이 질문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었다. 댄은 그걸 알고 있었다. 댄이 망설이자 노인이 덧붙였다.

“오늘은 날도 저물었네.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는 게 어떻겠나?”

결국 댄은 거절하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서도 이게 맞는 건지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노인은 이전에도 그랬듯이 환자들에게 침대를 양보하고 자신은 옆집에서 잤다. 댄은 앨런과 단 둘이 방에 있었다. 어둠속에 누워서 옆 침대에서 나는 숨소리를 들었다.

“자?”

댄이 말했다. 대답은 없었으나 잠든 것 같지는 않았다. 앨런은 잘 잠들지 못했고, 깊게 잠들지도 못했다.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그냥 들어만 줘. 네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 지 짐작이 가. 하지만 네가 잘못한 것은 없어.”

댄은 앨런에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앨런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그를 보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흐릿한 눈동자가 보였다.

“모든 것이 네 탓인 거 같을 거야. 하지만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정말 그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앨런이 말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달랐다. 댄은 자책했다. 어떻게 이 목소리를 잊을 수 있는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어쩔 수 없었다고?”

목소리는 그의 머리를 뚫고 들어왔다. 안을 헤집고 다녔다. 갖가지 기억들이 새어나왔다.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는 기억들. 다 같은 색이지만 단조롭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검어졌다.

“이 모든 게 그냥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고?”

숨이 점점 가빠왔다. 마지막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는 잠수하기 전에 그러듯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가득 차오르자 숨을 참았다. 생각이 점점 힘을 잃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자신이 힘을 잃는 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구 발버둥 치며 조각들을 쏟아냈다. 불과 피, 재가 날아와 굳어가는 피 위에 떨어진다. 여기저기서 붉은 빛이 터져 나왔다. 불길이 놀라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눈앞이 붉어졌다. 매끄럽고 붉은 거울, 그리고 그 안에는.......

댄은 숨을 내뱉으며 헐떡였다. 온 몸이 땀투성이였다.

“괜찮아?”

앨런이 그를 보고 있었다.

“너는 잘못한 게 없어.”

“아까 말했어.”

앨런은 걱정스레 그를 바라봤다.

“너는 잘못한 게 없어. 너는 잘못한 게.......”

그는 말을 흐렸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피로가 찾아왔다. 잠드는 게 무서웠다. 그에게는 너무 편안한 잠자리였다.


3

다음 날 댄은 해가 높이 떠오르고 나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너무 오래 잔 탓인지 곳곳이 뻐근했다. 상처가 자극받지 않게 조심해서 몸을 풀어주고 나서야 기분이 좀 나아졌다. 따뜻한 정오의 바람이 밤사이 차가워진 몸을 데워주고 있었다. 어젯밤의 감정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았다.

노인은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앞에 식사만 놓여 있었다. 옆에는 앨런이 아직도 자고 있거나, 혹은 자는 척하고 있었다.

“일어나. 좀 먹어야지.”

댄이 부드럽게 부르자 앨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다가가서 어깨를 흔들었다. 계속 흔들자 앨런은 방금 일어난 듯이 꼼지락 거리며 일어났다.

“왜.”

그녀는 연기를 계속했지만 아무리 봐도 일어난 지 오래 된 것 같았다.

“식사하라고.”

앨런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휘적거리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녀는 마지못해 수저를 들고 스프를 떠먹었다.

“너는 내가 살았으면 좋겠어?”

앨런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뭐? 물론이지. 왜 그런 걸 물어봐.”

댄은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는 스프 그릇을 내려다보면서 힘없이 미소 지었다.

“그냥.”

“괜찮은 거지?”

“응.” 앨런이 스프를 한가득 떠내며 대답했다.

댄은 식사를 하는 내내 앨런을 주시했다. 그녀는 기운 없이 축 늘어진 채 기계적으로 손과 입을 움직였다. 말로는 아니라고 해도 탑에서의 일이 마음에 크게 남아있는 것 같았다.

“정말 괜찮은 거야?” 댄이 말했다. 그는 앨런의 맞은편에 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안 괜찮아 보여서 하는 말이야.”

아무 대답 없자 댄은 재차 물었다. 앨런이 큰 반응이 없자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다 멈칫했다. 탑에서 그녀가 보이던 반응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는 팔을 붙잡는 대신 손을 앨런 쪽의 식탁 위에 올려놓는데서 그쳤다.

“잘 모르겠어.”

앨런이 그의 손을 흘낏 보고 대답했다.

“설명하려고 노력해봐. 난 너를 돕고 싶어.”

앨런은 한동안 생각을 하는 지 침묵한 채로 있었다. 댄은 그녀를 기다려 주었다.

“그냥 왠지 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내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앨런이 띄엄띄엄 말을 이어갔다. “미안 잘 설명을 못하겠어.” 그녀는 사과하며 말을 마쳤다.

“그래서 죽으려고 그렇게 안간힘을 쓴 거야?”

“그냥....... 이런 것들이, 왠지 다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것들은 의미가 있어. 나는 네가 살았으면 해.”

“알아.”

“아니 넌 잘 모르는 것 같아. 난 네가 살아있어서 정말 기쁘고, 넌 나에게 큰 의미가 있어.”

위로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댄은 정말로 그렇게 느꼈고, 때문에 그의 말은 사실처럼 들렸다.

“고마워.”

앨런이 말했다. 축 쳐져 있었지만, 목소리는 좀 밝아졌다

“어제 말했듯이 거기서 있었던 일은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네가 달리 뭘 할 수 있었겠어.” 댄이 말했다. 다시금 어제의 그 파편들이 잠깐씩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래. 달리 뭘 할 수 있었겠어.”

댄은 무의식적으로 말을 반복했다. 그는 말하면서 반지를 찾아 손에 쥐려고 했다. 그러나 허공에 헛손질을 여러 번 할 뿐이었다. 내려다보니 목에 걸려있어야 할 반지가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났다. 가죽 끈이 낡았으니 끊어져 떨어뜨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집안 곳곳을 살펴봤다.

“왜 그래?”

댄은 대답하지 않았다. 궤짝 뒤와 침대 밑까지 샅샅이 살폈지만 반지는 없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반지를 잃어버리다니. 앨런을 도운 것으로 죄가 가벼워졌다고 생각한 건가? 면죄라도 받았다고 생각한 건가? 그렇다면 착각이다. 그의 죄는 가벼워지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반지가 어디 있을지 생각하니 바로 어제의 사내가 떠올랐다. 그가 가져갔을 것 같았다. 실력이 좋다면 들키지 않고 칼로 가죽 끈을 끊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 데릭이 몇 번 가까이 다가왔었고, 그의 동료가 댄의 뒤에 있었던 시간도 길었으니 둘 중 누구라도 훔쳐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눈 여겨 보았다가 자는 사이에 가져갔을 수도 있었다.

바로 몸을 움직여 검을 허리띠에 끼우고 망토를 둘렀다. 그리고 궁금하다는 듯이 보고 있는 앨런에게 말했다.

“잠깐 일이 좀 생겨서 나갔다 올게. 쉬고 있어.”

댄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데릭이 사는 곳은 어제 들어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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