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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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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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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잔_새로운 다짐

DUMMY

성주원의 별원 회덕정은 의정관 사병들의 숙소로 바뀌었다.

회덕정 마당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황톳빛 천막이 세워졌다. 사병들은 그곳에서 훈련하면서 명령을 기다렸다.


며칠 동안 회덕정을 드나든 아순치는 타고난 사교력으로 사병대 대장 부럼의 천막에 앉게 되었다.

거대상단 소단주라는 지위와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은 이런 때 충분히 가치를 빛냈다.


가장 안쪽에 있는 천막이 대장 부럼의 자리였다. 이번에는 도리울을 둘러보고 온 해무찬도 함께였다.


해무찬은 우락부락한 부럼의 맞은편에 앉아 사병들의 품새를 살펴보았다.

언제 백사귀파와 맞붙을지 모르기에 성주원 병사뿐만 아니라 사병대의 수준도 알아야 했다.


대장 부럼은 손바닥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우리 목적은 담덕님을 찾고, 성주를 사칭한 자를 처벌하는 거요. 그런데, 아직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니!”


부럼의 거친 주름이 더 깊어졌다.

“부성주도 한통속인지 모르잖소? 우리를 여기 몰아넣고 무슨 꿍꿍이인지.”


“차믜 부성주는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편지를 보내지도 않았겠지요.”

아순치가 부채를 천천히 흔들었다. 그늘이 드리워진 얼굴 위로 감물 빛 머리카락이 한 올 두올 흔들렸다.


“사널리 사람들은 사기꾼이 성주행세를 해도 몰랐단 말이오?”

“요귀의 주술에 걸렸으니 지금도 모를 겁니다. 어떤 술수를 부릴지 모르니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합니다.”

해무찬이 정중하게 말했다.


“사널리가 아주 위험한 건 확실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요귀를 찾는 것만큼이나 위혼제를 막는 일도 중요합니다. 대장께서 도와주시면 위기를 넘길 겁니다.”

해무찬과 아순치의 부탁에 대장 부럼은 목을 가다듬었다.


“위혼제는 사널리의 일이오. 사널리의 전통이라더군. 신녀는 이곳 사람들이 믿고 따른다고 들었소. 의정관에서 그것까지는 관여할 수가 없소.”


“신녀가 그 가짜와 한패입니다!”

해무찬이 크게 대답한다는 것이 고함이 되었다.


전장에서 뼈가 굳은 부럼이 타일렀다.

“어허, 소태장군, 생각해보시오. 지금 사널리성은 타랑대귀 때문에 위혼제를 기다리고 있소. 그동안 가짜가 성주 행세를 한 것도, 그놈이 잠적한 것도 우리만 아는 일이오.

그런데, 사병대가 나서서 위혼제를 막는다면 사널리 주민들이 어떻게 나올 것 같소?”


아순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에게는 사병대가 꼭 필요했다.


*


대장 부럼이 사병들을 지도하러 자리를 옮긴 사이 나루뫼가 다가왔다. 아순치가 반갑게 의자를 내주었다.

“소사매님은?”

“큰누님은 깨어나셨네. 다루영이 있으니 괜찮겠지.”


해무찬도 고개를 끄덕여 그를 맞았다.

“솟을산 입구에 감시자들이 붙었다던데, 용케 나왔군.”

“사람의 눈을 피하는 것쯤이야.”


“찬, 도리울은 어때? 아까는 부럼 대장이 있어서 못 물어봤네.”

아순치가 해무찬을 돌아보았다.


“신녀 고사나가 제단을 감독하더군. 성주원 병사뿐만 아니라 사널리의 주민들도 나서서 일을 돕고 있으니, 큰일이지.”

“예상보다 신녀에 대한 믿음이 너무 커.”

아순치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사람들이 그렇잖소. 허황한 믿음이라도 한 번 믿으면 떨쳐내지 못하니.”

나루뫼가 코웃음을 쳤다.

“신녀의 진짜 모습을 알려줘야 해.”

해무찬이 주먹을 꽉 쥐었다.


“방법이 문제야. 방법이. 가짜 성주는 어디 숨어서 백사귀파를 부리고 있지, 위혼제는 내일 당장 시작이지, 로와도 구해야지. 타랑대귀와 유령선까지.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닌가.”

아순치는 유리구슬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로가 그랬지. 이번 위혼제에 반파홍귀가 나타날 거라고.”

“뭐요?”

나루뫼가 놀라 소리쳤다.

“자, 잠깐. 그럼, 이거 평범한 위혼제가 아니잖소?”


아순치가 부채질도 멈추고 생각에 빠져 있을을 때 누군가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도련님.”

작고 마른 남자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그를 불렀다. 두건을 눌러쓰고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여기는 삼보 차례였구나.”

아순치는 삼인방 중의 하나인 삼보와 이야기하기 위해 구석으로 걸어갔다.

이야기가 끝나자 삼보는 마당을 가로질러 밖으로 사라졌다.


“무슨 일이야?”

해무찬이 다가갔다.

“진짜 담덕의 시체를 발견했대. 지금 오고 있다는군.”


“삼 년이나 지났는데 어떻게 알지?”

“두개골 모양과 장신구로 확인했대. 아내가 준 것이라던가.”

“용케도 찾아냈네.”

“찾아낸 건지, 누군가 일부러 찾아놓은 건지 알 수 없지.”


아순치는 부채를 꼭 쥐고 해무찬을 돌아보았다.

“부성주와 얘기해야겠어. 지금 당장.”


나중에 차믜의 기억은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나 지금은 지금의 일을 해야 했다.


*


처음 아순치를 맞을 때 차믜의 생각은 단순했다.

거대상단 소단주이니 사널리성의 특산물을 거래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간단한 계산이었다. 유우대륙이 루월상단의 거점이라 해도 한 군데보다는 두 군데가 나을 테니까.


그러나 그녀의 순수한 계획은 첫 만남부터 어긋났다.


성주 담덕이 요귀였다니. 게다가 성주원 병사에 백사귀파가 섞여 있다고.

더 큰 문제는 백사귀파를 상대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이번에도 아순치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가지고 등장했다.

“진짜 담덕의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때를 딱 맞춰서?


“의정관에 편지를 썼다고 하셨죠? 언제였습니까?”

“보름 정도 지났지요.”


아순치가 부채 끝으로 턱을 두드렸다.

“여기서 의정관까지 열흘 이상 걸립니다. 거기서 출정을 준비하는 데만도 이삼일은 걸리고요.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데 다시 열흘이 걸리는데, 편지를 보름 전에 보내셨다고요?”


차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내가 편지를 보내다니! 그것도 의정관 나으리에게?’


“누가 편지를 고친 겁니다. 부성주님의 필체와 인장이 필요했겠죠. 주술을 부리면 하루 만에 의정관에 도착했겠고요.”

“누가 감히 그런 짓을!”

“신녀 고사나가 아닐까요?”


아순치의 설명에 차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고사나가 위혼제를 결정하는 자리에 때맞춰 수비대장이 도착한 것도 수상했다. 미리 약속이 되었다는 뜻이다.

산제물을 찾는 일도 회의 한번 없이 성주 단독으로 처리했다.


그뿐인가. 성주는 증패를 만들어 그것을 가진 사람만 여관에 묵도록 했다. 이백 명의 명단도 성주와 몇몇 대원이 직접 만들었다.

그렇다면 수비대장과 그 부하들이 백사귀파라는 건가.


“증패는 언제 뿌린 겁니까?”

“겹그믐제사를 준비하면서니까 온가을이 끝날 무렵이겠네요.”


“아무래도 홍광파를 불러 모은 것 같습니다. 증패를 가진 이백 명, 성주원의 병사 중 일부, 아름사원에는 몇 명인지 모르나···.”


“신녀가 요귀와 작당하다니!”

“아니, 신녀도 요귀입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차믜가 손가락으로 이마를 눌렀다.


“주민들 믿음이 강해서 신녀를 처리하기는 어려울 거요.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는.”

“가짜 성주인 반귀를 처리하고, 위혼제를 막을 겁니다. 부성주님도 도와주십시오. 의정관 부럼 대장님에게도 도움을 청해 주십시오.”


“의정관에···.”

차믜는 망설였다.


사널리의 속살을 내보이는 것 같아 지금까지 데면데면하며 부럼 대장을 피해왔다. 자신의 경력에 먹칠하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망설이던 차믜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알겠어요. 이건 사널리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니. 요귀를 처단합시다.”


아순치는 자리를 마무리했다.

반귀보다 더 강력하고 위험한 정귀가 나타날 것이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지금 그들은 백사귀파를 상대할 능력도 갖추지 못했으니.


*


담덕의 시체를 앞에 둔 의정관 사병들은 충격과 분노에 핏발을 세웠다.

대장 부럼은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담덕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울분을 삭혔다.


“이런 걸 보려고 온 것이 아니다! 이건 의정관님이 바라는 소식이 아니라고!”

부럼이 주먹으로 땅바닥을 내리쳤다.


“내 이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반드시 찾아내서 처단한다!”

고함소리가 회덕정 마당을 가득 채웠다.


‘요귀든, 백사귀파든 용서하지 않겠어.’

부드득 이를 갈았다.


*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걱정스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폭풍이 또 오는 건가. 이번에도 타랑대귀의 소행인가?


“내일 꼭 위혼제를 치러야지. 그래야 타랑대귀가 물러가지.”

“이번에는 아예 없애야 해. 다시 나타나면 안 된다고.”

“신녀님이 분명 그리 해주실 거네.”

사람들은 두런거리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어둡고 거친 바람을 뚫고 루월관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 들었다.

어제까지는 증패를 가진 사람들로 방이 없었지만, 제사를 하루 앞두고 빈방이 생겼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위혼제를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거대상단의 소단주는 장사치 나루뫼와 한 방을 얻었고, 해무찬과 다루영은 신혼여행을 온 부부가 되었다.

누리예와 사로잔은 겹그믐제사에서 복을 빌기 위해 찾아온 자매였다.


아순치와 누리예를 제외한 사람들은 변장술로 모습을 바꿔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따로 방을 얻고 밤이 깊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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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아랑누_루월상단 운여 22.08.03 45 0 11쪽
192 사로잔_작은 소망 22.08.02 48 0 12쪽
191 사로잔_용신의 출현 22.08.02 45 0 10쪽
190 사로잔_또 하나의 계획 22.08.02 48 0 13쪽
189 사로잔_핏빛 도리울 22.08.02 42 0 10쪽
188 사로잔_두 번째 봉인 22.08.01 43 0 13쪽
187 사로잔_위혼제 22.08.01 73 0 12쪽
186 사로잔_한밤의 회담 22.08.01 44 0 10쪽
» 사로잔_새로운 다짐 22.08.01 6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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