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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연재수 :
2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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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글자수 :
1,06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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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1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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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사로잔_두 번째 봉인

DUMMY

고사나의 웃음소리는 머릿속을 후벼 파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그러나 최면 가루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제단 위에서는 요귀가 날뛰었고, 제단 아래에서는 백사귀파들이 칼을 휘둘렀다. 그들을 상대하는 이들 모두 신녀의 송곳 같은 웃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순치와 누리예가 신음을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고사나의 손짓에 이끌린 사람들이 긴 막대를 하나씩 들고 몰려왔다. 신녀가 주문을 외우자 나무막대는 창과 칼이 되었다.


“신녀님은 우리를 위해 오신 분이오. 함부로 대한다면 용서하지 않겠소.”

“썩 물러가시오!”

노인과 젊은이 나눌 것 없이 신녀를 둘러쌌다. 힘센 장정들은 아순치와 누리예에게 검을 겨눴다.


“너희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크크크.”

고사나가 휘잇 이빨 사이로 바람을 불자 장정들이 고함을 치며 달려들었다.


그들은 막무가내로 달려들었지만, 아순치와 누리예는 공격할 수 없었다. 신녀를 잡기 위해 사람을 칠 수는 없었다.


급기야 두 사람은 사널리 사람들에게 에워싸였다. 고사나는 이미 사람들에 싸여 사라진 뒤였다.


“신녀가 빠져나갔군요.”

아순치가 이를 갈았다.


고사나가 도리울 바깥으로 사라지자 사람들은 최면에서 풀려났다. 무기를 만들었던 주문도 사라져 그들의 손에는 막대기만 들려있었다.


“뭐야?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그들은 자신이 잡은 막대기와 마주 선 무사를 번갈아 보았다.


“이크!”

사람들은 막대를 집어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아순치는 그들을 바라볼 여유도 없었다. 나루뫼의 고함이 들렸다.

“아치! 뒤를 조심해!”


백사귀가 아순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부채 계로를 곤봉처럼 휘둘러 상대의 칼을 쳐낸 다음 정확히 머리를 내리쳤다. 백사귀는 쓰러지면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간다!”

누리예가 백사귀들을 상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녀의 무기는 사람의 것이기에 상처가 깊어도 금방 아물었다.


백사귀들은 잠시 주춤거렸으나 서서히 원래 모습을 찾아갔다.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피투성이 상처가 아무는 모습은 괴물과 흡사했다.


부성주 차믜도 닥치는 대로 검을 휘둘렀지만, 점점 뒤로 밀려 나갔다.


아순치가 부채를 활짝 펼쳤다.

“계로!”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자 도리울에 남아있던 백사귀파와 병사들이 뒤로 밀려났다. 구르고 뒹굴며 구석까지 날아갔다.


다친 병사들은 쉽게 일어나지 못했으나 백사귀들은 곧바로 일어나 비척비척 다가왔다.


백사귀들은 사방에서 뛰어왔다.

부채로 바람을 만들자니 공격할 수가 없었다. 아순치는 부채를 접어 곤봉으로 삼았다.

‘찬, 제발 빨리 끝내라.’


그사이 야우밀이 가진 가시덩굴은 주공과 모얀에 의해 하나씩 잘려 나갔다.


사병대의 대장 부럼은 이미 덩굴에 붙잡혔다. 찔린 상처에서 피가 흘렀고, 가시 끝의 독 때문에 정신은 몽롱해졌다.


주공을 휘두르며 해무찬이 거대한 오소리를 노려보았다.

“반귀의 힘이 이렇게 셌나?”

“정귀가 능력을 줬을 거야. 빨리 반파홍귀를 불러내자.”


해무찬은 남은 두 개의 덩굴을 한 번에 상대하며 야우밀의 시선을 한곳으로 몰았다.


“지금이야!”

사로잔은 모얀을 치켜들었다. 오소리의 머리 위로 뛰어올라 위에서 아래로 정확히 심장을 찔렀다.


야우밀의 몸에서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


“반파홍귀님!”

외마디 절규가 지나가고 심장이 폭발했다. 야우밀은 용암이 터지듯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두 사람은 요귀의 파편을 피해 제단 아래로 뛰어내렸다.

대장 부럼도 넝쿨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검을 찾았다. 출혈이 심해 어지러웠지만, 검을 지지대 삼아 간신히 일어섰다.


도리울은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하늘의 성물을 가진 아순치와 나루뫼가 바람처럼 움직였지만, 쓰러지는 병사들이 더 많았다.

비명과 고함, 신음이 드넓은 도리울을 채웠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누리예도 부상을 입고 몸을 가누지 못했다.

부성주 차믜도 힘껏 검을 휘둘렀지만 백사귀파들은 상처를 입고도, 팔다리가 부러지고도 끼기긱 다시 일어섰다.


“가자, 백사귀들을 해치워야지.”

해무찬의 뒤를 이어 사로잔도 제단에서 뛰어내렸다.


제단 위 허공이 꿈틀거리며 거대한 흐름이 만들어졌다.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공에서 썩은 나뭇가지가 하나둘 튀어나오더니 서서히 거대한 나무귀신이 드러났다. 썩은 나무토막이 얼기설기 엮인 몸은 반은 이끼로 덮이고 반은 말라비틀어졌다.


나무귀신은 사로잔의 얼굴 바로 앞까지 몸을 구부리고 네 개의 눈을 깜빡였다.


“반파홍귀!”

소벌도리 빛의 사원에서 보았던 바로 그 나무귀신이었다.


“드디어 만났구나. 사로잔. 처음이자 마지막이군. 아니, 두 번째인가. 마지막인 건 똑같지만. 크크.”

순식간에 나뭇가지가 긴 끈처럼 수많은 갈래로 펼쳐지며 사로잔의 머리 위를 덮었다.


“네가 없으면 미사랑은 부활하지 못해. 이 세계는 내 것이다.”

그중 하나가 창이 되어 그녀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감히 나를 방해해?”


심장 가까이 들이닥치는 찰나, 번쩍 빛이 쏟아졌다.

반파홍귀의 나무창은 제단 아래로 날아가 반 토막으로 부러졌다. 땅에 닿자 곧 썩은 나뭇가지로 돌아갔다.


“너는 내가 상대하마.”

한울이 사로잔을 막아섰다.


“한울! 드디어 왔구나.”

사로잔이 외쳤다.

그를 보자 가슴에서 목구멍으로 뜨거운 응어리가 울컥 올라왔다.


“아랑누를 불러야 해! 그 애가 갈피를 갖고 있어.”

사로잔이 장검 모얀을 잡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찬! 나루뫼를 불러줘. 네가 아치를 도와.”

“알았어! 사로, 성공해야 해. 반드시!”

해무찬은 곧바로 나루뫼를 향해 뛰었다.


사방으로 뻗은 가지가 수십 개의 팔처럼 허공을 가르며 바람을 찢었다.

가지 하나가 사선을 그을 때마다 도리울의 병사뿐만 아니라 백사귀파도 나뭇잎처럼 나가떨어졌다.


사로잔은 애타는 마음으로 아랑누를 불렀다.

모얀을 잡고 정신을 집중했으나 저편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무슨 일이야? 지금 이런 순간에!’


모얀을 잡은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제발, 제발, 아누, 빨리.’


나루뫼는 백사귀의 공격을 피하며 제단으로 다가왔다. 아랑누와 공간을 잇기 위해서였다.

‘정귀가 사라지면 백사귀파는 모든 힘을 잃는다. 반파홍귀를 없애는 게 먼저야.’


요귀의 정기가 서린 나뭇가지는 창이 되어 사방에서 쏟아졌다.

한울이 반파홍귀의 공격을 쳐내며 소리쳤다.

“내가 다리가 되겠소.”


“미쳤습니까? 천계로 못 돌아갑니다. 내가 합니다.”

나루뫼가 제단 위로 뛰어올랐다.


“자네는 목숨을 내놔야 하지만, 난 여기 남는 것뿐이니 내가 하는 게 맞아. 내 마음이 이르는 곳에 남겠네. 자네는 저들을 도와주게.”

한울이 사로잔에게 돌아섰다.


“아랑누를 소환하겠다.”

한울이 장검 모얀에 손을 올리고 영력을 집어넣었다.


그의 몸에서 연한 초록빛이 돋아나오며 팔을 타고 모얀으로 빨려 들어갔다.


*


나루뫼는 백사귀파를 상대하는 아순치와 해무찬에게 시선을 돌렸다.


해무찬의 목소리가 제단까지 들렸다.

“아치! 바람벽을 만들어. 내가 백사귀를 제압할게.”

“좋아. 너와 나루뫼라면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아순치가 부채로 바람을 일으켰다. 백사귀들이 거센 바람에 엉거주춤 밀리는 사이 해무찬이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루뫼도 검을 고쳐 잡았다.

‘한울이 천력을 희생한다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곳이다.’


그도 바람벽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두 사람의 검은 백사귀들을 가루로 만들며 종횡무진 앞으로 나아갔다.


누리예는 상처 난 몸으로 망연히 서서 바람벽을 바라보았다.

‘뭐지. 저건?’


검으로는 찔러도 죽지 않던 백사귀들이 부채에 맞아서 가루가 되었다. 겨우 부채 하나로 도리울을 가릴만한 바람을 일으키다니.

‘거대상단 소단주, 정체가 뭐지?’


아순치가 누리예를 불렀다.

“대장님! 안쪽의 병사들을 꺼내주세요.”


바람벽 안쪽의 병사들은 일어서지도 못하고 끙끙거렸다.

“최대한 몸을 낮추고 포복 자세로 나오면 됩니다. 백사귀들이 공격하기 전에 빼내야 해요.”

“좋아요. 갑니다.”

누리예는 재빨리 바람벽으로 다가갔다.


포복에 가까운 자세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등에 느껴지는 바람은 폭풍보다 강했다. 그녀는 허리를 더 낮추고 기다시피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병사들이 그녀의 손짓에 따라 땅에 바짝 엎드렸다. 바닥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해무찬과 나루뫼가 백사귀를 상대하는 동안 성주원 병사와 의정관 사병들은 바람벽을 빠져나왔다.

누리예는 부상이 심한 병사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데도 온몸이 땀에 젖었다.


*


한울의 몸에서 돋아난 연한 초록빛 기운을 타고 허공에 황금빛 구멍이 드러났다.

구멍은 점점 커져 문이 되었고 그곳으로 아랑누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공중에 그대로 멈춰 섰다. 무슨 일인지 알아내기 위해 영력을 집중했다.


흰 지팡이를 잡고 의연하게 떠 있는 아랑누를 보자 반파홍귀는 거대한 몸을 떨었다.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나를 왜! 내가 왜!”


썩은 나무 조각을 모두 들썩이며 끼기긱 기괴한 소리를 만들었다.

“왜 나를 없애려 하지? 날 만든 것도, 날 이끈 것도 사람이야! 왜 나를!”


그는 수백 개의 나뭇가지를 모두 창으로 만들어 섬뜩한 요귀의 기운을 실었다.


아랑누는 손을 내밀어 반파홍귀의 기운을 더듬었다.

“알아. 미사랑도 기회를 주려 했지. 그래서 소멸시키지 않았어. 하지만, 넌 봉인에서 풀리자마자 그 믿음을 배신했어. 이제 다시는 못 나올 거다.”


흰 지팡이를 높이 쳐들었다.

“사로, 공격해!”


사로잔이 모얀을 잡고, 한울도 자신의 검을 잡았다.

지금 한울은 너나족 사람과 마찬가지였지만, 남은 천력을 모두 쏟았다.


반파홍귀 역시 강렬한 힘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촘촘한 가시가 바람에 섞여 휘몰아쳤다. 멀리 도리울 입구에 있던 사람들도 제대로 설 수 없었다.


아순치도 가시 돋친 바람에 맞아 휘청거리며 부채를 놓쳤다. 바람벽은 순식간에 풀어졌다.

해무찬과 나루뫼도 제단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반파홍귀는 자신의 몸을 다섯 개로 나누었다. 나뉜 몸이 점점 커졌다.

“사람의 힘으로 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겨우 이 정도 영력으로?”


사로잔이 힘겹게 발을 옮기는데 아랑누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한울이 날 소환했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는 너른벌의 무사와 다를 바 없어. 네가 지켜야 해.‘

’알았어. 이번에는 내가 한울을 지킬게.‘


’힘이 다섯으로 나뉘었으니 지금이 기회야. 한꺼번에 공격해.‘

그녀의 말을 듣고 사로잔이 외쳤다.

“모두 한 번에 공격한다!”


하늘의 성물을 가진 네 명의 무사가 반파홍귀의 분신을 향해 뛰어들었다. 한울도 함께 뛰어올랐다.


아랑누가 눈앞으로 지팡이를 던졌다.

흰 지팡이는 반파홍귀의 가시창을 쳐내며 그녀를 위한 방패가 되었다.


아랑누가 품에서 갈피를 꺼냈다.

“요귀여, 인간세에서의 생은 끝났다. 암흑성 미사랑의 이름으로 너를 여기 봉인한다!”


그녀의 주문을 따라 갈피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반파홍귀가 소리쳤다.

“난 억울하다! 살려고 버둥거렸을 뿐이다!”


눈부신 빛이 도리울을 채웠다.

누구도 눈을 뜰 수 없었다. 빛의 폭발은 소리도 삼켜버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얀 공간이 사로잔에게 펼쳐졌다.


그 공간에 한울이 혼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천력을 소모한 그는 어느 때보다 작아 보였다.


그의 몸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사, 인간세에 살고 싶다고 했지?‘


그것은 한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부드럽고 다정했다.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도 낯익었다.


사로잔의 몸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너야말로. 나와 함께라면 뭐든 좋을 거라고 했잖아? 불평 안 하는 거다.‘

그녀의 몸에서 나왔으나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사로잔이 눈을 떴을 때 도리울에는 반파홍귀도, 아랑누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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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아랑누_갈림길 22.08.03 62 0 12쪽
194 아랑누_비밀의 책 22.08.03 60 0 10쪽
193 아랑누_루월상단 운여 22.08.03 48 0 11쪽
192 사로잔_작은 소망 22.08.02 50 0 12쪽
191 사로잔_용신의 출현 22.08.02 50 0 10쪽
190 사로잔_또 하나의 계획 22.08.02 50 0 13쪽
189 사로잔_핏빛 도리울 22.08.02 44 0 10쪽
» 사로잔_두 번째 봉인 22.08.01 45 0 13쪽
187 사로잔_위혼제 22.08.01 77 0 12쪽
186 사로잔_한밤의 회담 22.08.01 48 0 10쪽
185 사로잔_새로운 다짐 22.08.01 6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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