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조회수 :
326,465
추천수 :
1,751
글자수 :
427,977

작성
11.10.24 02:25
조회
4,377
추천
20
글자
9쪽

봉황대기 22 - 불씨

DUMMY

Chapter 22


교장의 손에 신문이 들려있는 걸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대춧빛으로 물든 얼굴에 씩씩거리는 콧소리. 차마 마주 보기도 힘들 정도로 교장은 흥분해 있었다.

“이게 뭐야 대체! 지금 나한테 엿먹이는 거야 뭐야!”

“아니 그게……”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할 말이 있어!”

격노한 교장이 내 앞에 서자마자 따귀를 쳤다. 여기서 맞았다면 솔직히 교장이 좀 덜 흥분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워낙 통통한 교장이 치는 따귀라 느려 터져서 나도 모르게 피해버렸다는 게 문제가 되겠지.

“우웃!”

“어어엇?”

어지간히 전력을 실어서 쳤는지 교장은 빗나간 따귀에 휘청대다가 바닥에 엎어졌다. 땅딸막하고 배나온 교장이 그대로 엎어지자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끄응!”

교장은 뭐라고 소리치곤 싶은데 지금 이 상황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다고 뭐라 할 수도 없고. 괜히 화만 더 나는지 신경질적으로 일어섰다.

“이 기사에 대해서 지껄여 봐! 뭐? 학교 측의 무리한 출전? 우승을 하려면 5년이 걸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기사 그대로긴 한데……’

신문에 쓰여진 그대로였다. 광진고가 우승할 만한 전력을 갖추고, 뛰어난 감독을 선임하는데 까지.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적어도 5년은 리빌딩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진실을 말할 바보가 어딨을까.

“다 거짓말입니다.”

“뭐?”

“이 기자가 저번에 학교에 와서 쫓겨난 기자랍니다. 거기에 앙심을 풀고 이런 기사를 쓴 것 같은데…… 이거 다 거짓말입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교장실에 찾아와서 최소한의 지원만 해 준다면 잡음도 줄이고 좋은 성적도 내겠다고 한 건 바로 너였다! 너! 근데 뭐? 초전 패배? 그것도 대패?"

“그, 그건……”

교장은 흥분해 날뛰는 와중에서도 매섭게 물어왔다.

“이제 다 필요 없어!”

씩씩거리던 교장의 화가 가라앉는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정말 이 사람은 흥분이 가라앉을 때가 몇 배는 무서웠다. 빽 소리지른 교장의 숨이 진정되자 눈이 무섭게 가라앉았다.

“오늘 부로 야구부는 폐부한다!”

말리려고 했으나 교장의 말은 청천벽력처럼 터져나왔다. 그 자리에 있던 팀원들 모두와 나 역시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폐, 폐부라니……”

누군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마치 그 말에 폐부가 확정된 것 처럼 심장이 쿵 떨어졌다.

“자,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광진고 야구부가 무슨 인문계 고교 야구 서클도 아니고……”

“그, 그렇당께요. 갑작시레 폐부는 거시기 하잖어유.”

“이건 너무……”

팀원들이 중구난방으로 아우성쳤다. 하지만 화가 가라앉은 교장은 마치 작은 철탑 같았다. 녀석들이 어떤 말을 쏘아대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늘 부로 운동장에 출입 금지다. 그리고 이번 주 내로 모든 짐 챙겨서 바로 나가! 전학을 가던지 자퇴를 하던지 어디든지…….”

“잠깐!!!!”

이때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던지 순간적으로 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모조리 귀를 막았다. 교장마저도 깜짝 놀라며 귀를 틀어막았다.

“뭐, 뭐야?”

“일단, 폐부를 하시더라도 좀 차분하게 얘기를 하시죠. 감독실로 가서! 무조건 감독실로 가서 얘기하죠. 거기 코치님도 있습니다.”

“감독실?”

교장은 잠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장이 이 자리에서 아에 폐부를 선언해 버리면 정말 뒤도 없는 것. 어떻게든 교장의 마음을 돌려야 했다.

'어떡하지? 젠장, 젠장! 흐름이 나쁘다. 정말 수틀리면 힘들게 다져놓은 야구부가 폐부되어 버려. 일단 감독실로 가서 한수연을 미끼로라도 던져 봐야겠다!'

등에 식은땀이 다 흘렀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돌렸다. 교장이 한수연을 굳이 야구부에 코치로 넣은건 왜지? 그건 그냥 남아 도는 딸자식에게 뭐라도 시키려던 의도도 있지만 다른 의도도 있었다.

분명 한수연은 교육대학을 나왔다고 했다. 아마 교장은 한수연의 경력에 한 줄이라도 더 긋기 위해 야구부 코치로 가라고 했을 터.

‘일단 감독실에서 한수연을 들먹여서 폐부라는 흐름부터 바꿔야 돼. 그리고 설득하면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지금 이게 나의 생각이었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교장은 불쾌한 얼굴로 뒤따랐다. 난 마치 링 위를 오르는 복서라도 된 듯한 긴장감을 느끼며 감독실로 향했다.



감독실로 들어가자 깜짝 놀란 한수연이 보였다. 부스스한 금발 머리에 여느때처럼 상하의 세트로 된 츄리닝만 걸치고 있던 녀석이 놀라 일어섰다.

“아, 아빠?”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 제대로 된 얘기를 시작해 보지? 폐부에 대해서.”

교장은 한수연을 깔끔히 무시한 채 접객용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폐부? 이 야구부 폐부 돼? 정말?”

한수연의 얼굴에 급격하게 화색이 돌았다. 차마 내 앞이라 방방 뛰진 못하겠고, 하지만 기쁜 기색이 얼굴에 만연했다.

“일단 교장 선생님. 꼭 폐부를 하셔야 겠습니까?”

“뭐?”

나와 교장은 한수연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서로를 마주봤다.

“아깝지 않으세요? 이 설비, 이 장비에 운동장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까지. 광진고가 어딜 가도 명문고 소리를 듣는 건 야구부 덕이 크잖아요?”

“음……”

“단순히 폐부를 한다기 보다는 차라리 아예 새 단장을 해서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선수들을 빠졌지만 감독과 코치는 보충하면 되고, 지금까지의 노하우가 있으니 신입생들을 잘 키우면 3년 안에는 예전 같은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거야말로 내가 감독실로 오면서 내내 머리를 쥐어 짜 내서 생각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교장의 반응은 여일했다.

“아니,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이 이상 망신을 당하느니 그냥 여기서 과감하게 쳐 내는 게 나아! 야구부 장비는 중고로 팔고 나머지 장비들은 팔거나 기증하면 오히려 이미지만 좋아지겠지. 그리고 남는 공간엔 양궁부를 만들 거다.”

초조했다. 생각보다 교장이 완강했다. 난 잠시 고개를 한수연에게 돌려 눈빛과 표정으로 오만상을 다 썼다.

‘야! 빨리 너네 아빠 좀 말려!’

‘내가 왜? 이 야구부 없어지면 나는 완전 좋거든?’

‘너 진짜! ……너 야구부 폐부 되면 정말 끝이야 끝! 너 자퇴한 거 다 불어버리고 자폭할거야!’

한수연과 나는 그동안 정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퉜는데 온갖 욕설을 얼굴에 써 붙이고 다녔던 탓인지 이젠 얼굴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했다.

“아, 아빠…… 새, 생각해 보니까 내 커리어도 있고 아, 아무래도 폐부는 좀 미루는 게 좋다고 하네. 아, 아니 좋을 것 같네."

“뭐? 너도?"

교장은 저 철없는 것까지 반대하자 저으기 놀랬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교장 선생님! 코치님까지 저렇게 결사적으로 반대하는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시죠. 첫 시합이 아닙니까. 그 동안 애들 하나하나 손보느라 제대로 연습경기를 한 적도 없습니다. 첫 시합에선 이기는 게 이상한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심하잖아! 8:0 대패에 신문엔 이런 망신살 뻗치는 기사까지 떴다구!”

“그래서 더 좋은 겁니다. 분열된 팀, 망신살 뻗친 첫 경기! 이걸 역이용하는 겁니다. 코치도 감독도 없이 고작 부원 11명인 팀의 고교대회 우승!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이것보다 좋은 기삿거리가 있을까요?”

"끄응......"

교장은 생각보다 고민했다. 솔직히 이 정도면 넘어올 줄 알았는데 주름진 이마가 정말 완고하게 보였다.

"확실히 우승을 하면 효과가 있겠지. 우승을 하면."

"할 수 있습니다. 이 번엔 정말 자신 있습니다. 아마 내년 졸업하기 전에는 분명 광진고에 우승 깃발 하나를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그 순간에 교장이 뭔가 비릿하게 웃었다. 형용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좋아, 결정했다."

“그, 그럼?”

교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금 전의 낌새는 이상했지만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 온화하게 펴진 얼굴에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교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광진 고등학교 교장으로써 말한다. 이번 봉황대기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야구부는 폐부다! 그렇게 알아."

"그, 그런.......!"

교장의 이 한마디는 정말 살 떨리게 차가웠다. 그리고 설마 하고 쳐다본 눈에는 일말의 타협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이게 바로 어른의 대화법인가. 이득이 되지 않는 일엔 이렇게까지 차가워질 수 있는 건가.

“그런 줄 알아.”

싸늘하게 말하며 나가는 교장에게 난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덜덜 떨리는 몸으로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이럴 수가……’


작가의말

휴.... 글이 좀 늦었습니다. 그리고 두 화 올리려고 했는데 슬프게도 못 지켰네요ㅠ
이제 본격적으로 봉황대기에 접어들 겁니다. 휴, 여기까지 오느라 ㅎ힘들었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봉황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3 봉황대기 52 - 백일현 +8 11.12.23 2,786 12 8쪽
52 봉황대기 51 - 저주할거다! +12 11.12.20 2,735 14 13쪽
51 봉황대기 50 - 대명고 vs 서운고 (2) +8 11.12.18 2,760 18 17쪽
50 봉황대기 49 - 대명고 vs 서운고 +6 11.12.17 2,871 12 11쪽
49 봉황대기 48 - VS 백상고 (8) 이리의 최후 +17 11.12.14 2,993 14 14쪽
48 봉황대기 47 - VS 백상고 (7) 뿌득 +12 11.12.13 2,795 12 13쪽
47 봉황대기 46 - VS 백상고 (6) 체인지 +8 11.12.11 2,974 16 12쪽
46 봉황대기 45 - VS 백상고 (5) 더이상 못 참아 +7 11.12.10 2,891 14 11쪽
45 봉황대기 44 - VS 백상고 (4) 의문 그리고 또 의문 +10 11.12.07 3,019 17 11쪽
44 봉황대기 43 - VS 백상고 (3) 이질감 +9 11.12.05 3,112 17 13쪽
43 봉황대기 42 - VS 백상고 (2) 깨어나는 광진 +11 11.12.02 3,101 17 14쪽
42 봉황대기 41 - VS 백상고 (1) +7 11.11.30 3,194 20 8쪽
41 봉황대기 40 - 그냥 가! +11 11.11.26 3,101 18 14쪽
40 봉황대기 39 - 쌍둥이의 이야기 +9 11.11.26 3,082 16 11쪽
39 봉황대기 38 - 다음 상대는! +5 11.11.25 3,110 19 11쪽
38 봉황대기 37 -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 +6 11.11.22 3,343 16 15쪽
37 봉황대기 36 - 코피? +14 11.11.20 3,618 16 15쪽
36 봉황대기 35 - 우승이 먼 이유 +5 11.11.17 3,704 16 10쪽
35 봉황대기 34 - 들켜버린 이야기 +4 11.11.15 3,747 17 11쪽
34 봉황대기 33 - 무대의 뒤 +5 11.11.13 3,909 17 12쪽
33 봉황대기 32 - 봉황대기 (8) 막을 내린 경기 +13 11.11.12 4,131 19 12쪽
32 봉황대기 31 - 봉황대기(7) 스타의 자질 +13 11.11.11 4,002 18 10쪽
31 봉황대기 30 - 봉황대기(6) 반격의 시작 +6 11.11.10 4,000 20 14쪽
30 봉황대기 29 - 봉황대기(5) 부활의 순간 +11 11.11.08 4,139 20 9쪽
29 봉황대기 28 - 봉황대기(4) +10 11.11.07 3,762 16 11쪽
28 봉황대기 27 - 봉황대기(3) +5 11.11.05 3,802 20 11쪽
27 봉황대기 26 - 봉황대기(2) +6 11.11.02 4,060 20 10쪽
26 봉황대기 25 - 봉황대기(1) +6 11.10.30 4,346 21 8쪽
25 봉황대기 24 - 출진전야 +8 11.10.26 4,301 21 14쪽
24 봉황대기 23 - 어느 지독한 날 +7 11.10.25 4,306 1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