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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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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조회수 :
326,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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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1
글자수 :
427,977

작성
11.11.05 17:46
조회
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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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봉황대기 27 - 봉황대기(3)

DUMMY

Chapter 27


강진철에겐 장타력이 없다. 이건 우리 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녀석은 배팅을 할 때 특이하게도 하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가벼운 디딤발을 딛고, 오로지 팔과 상체의 동작 만으로 공을 쳐 냈다.

'그 정도면 장타력이 없는 게 아니라 발휘하지 않는 것 아닐까?'

누구나 이런 의문이 들지만 사실 그건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튀어야 할 고교대회에서 누가 실력을 감추겠는가.

“흐읍!”

이전훈의 커브가 하늘을 날았다. 하늘로 붕 떴다가 우타자인 강진철의 바깥쪽으로 떨어지며 쑥 빠져나가는 아주 날카로운 커브였다.

“스트라이크!”

커브가 스트라이크 존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는데도 강진철의 방망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저게 바로 녀석의 패턴이었다. 초구는 절대 치지 않는다.

그 다음에 이전훈의 직구가 날았다. 이번에도 외곽 라인에 걸치는 멋들어진 스트라이크! 심판조차 판정이 어려워 두세번 머뭇거리다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안돼, 몰려버렸다!”

“진철이가 이런 대 찬스에서 못 치면 안되는데…….”

벤치의 분위기가 단숨에 식었다. 벌써 투낫싱. 강진철의 배트는 여전히 움직이기는커녕 미동도 않았다. 그리고 그때쯤 되어서야 이전훈의 얼굴에 비웃음이 깃들었다.

‘이겼다고 보고 있군.’

내 입장에서 본다면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강진철이 지금까지 진심으로 타석에 서서 삼진 당하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포수의 사인에 이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운이 감도는 그 긴장감 속에서의 와인드업, 그리고 투구!

쐐애액

공이 직선으로 뻗었다. 하지만 내 눈엔 직구로 보이지 않았다. 저 공은…….

“커터다!”

내가 던지는 것과 같은, 직구로 위장한 슬라이더!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강진철의 배트가 날았다. 녀석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잡아냈다!’

내가 속으로 환호를 외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으읏!”

앞으로 나아가려던 강진철의 스파이크가 돌부리에 걸렸다. 녀석의 몸이 휘청이며 정교했던 스윙이 난잡하게 흔들렸다.

부웅!

강진철의 배트가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다. 심판이 주먹쥔 손을 내리쳤다.

“아웃! 쓰리 아웃 체인지!”

“우와아아아!”

응암고 벤치에서 일제히 함성이 터졌다. 그리고 일어서 있던 우리팀 벤치는 단번에 기세가 죽었다. 설마, 설마 강진철이 실수할 것이라곤 생각치 못했다.

“진정 불운이군. 황금사자기에서도 4타수 4안타를 때려낸 녀석이 여기서 삼진이라니.”

서운고 투수 임재훈을 상대로 강진철의 타율은 무려 10할에 달했다. 언더 핸드, 제구력 위주로 페스트볼을 가지지 못한 투수들에게 강진철은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자, 잠깐만. 우리 쪽 히트가 0인데?”

“그게 무슨 소리야?”

태경이의 말에 바라본 전광판엔 분명 안타가 없었다. 성래는 분명히 치고 나갔을 터인데?

“에러로 판명했나.”

그랬다. 심판은 성래의 세이프티 번트를 3루수의 실책으로 기록해 버린 것이다. 이로써 응암고의 피안타는 0이었다.

“녀석에겐 불운이군.”

이때의 성래의 표정이란 마치 주웠던 십만원짜리 수표가 사실은 시덥잖은 쿠폰일 때의 표정과도 같았다. 한마디로 울상이었다.

"우리 팀의 귀중한 첫 안타가 날아갔군. 하지만 잘 했어! 판정은 에러였지만 분명 안타였으니까."

성래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려 주었다. 분명 그건 안타였다. 성래도 그걸 아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자, 어쩔 수 없다. 놓친 찬스는 놓친 찬스고 이제부터 다시 만들면 되는 거다! 광진고-!”

“파이팅!”

나에게 있어 봉황대기는 지금 시작되었다. 태경이의 글러브를 챙겨 마운드로 달려갔다. 자, 해 보자.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구렁텅이에서 올라가 보자!

“플레이!”

응암고 1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후우…….”

슬슬 문질러 본 어깨는 아직도 통증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이상하게 숨이 찼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계속해서 몸에 힘이 빠졌다.

‘제길,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돼!’

세차게 고개를 젓고 송진가루를 묻혔다. 형진이가 미트를 내밀었다. 자, 간다!

왼 다리를 크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지면을 쓸듯이 돌려 마운드를 밟고 온 몸의 원심력과 탄력을 이용해 단숨에 쏘아낸다!

“아윽!”

중간에 전해진 격통에 팔이 거칠게 떨렸지만 아슬아슬하게 잡아냈다.

쐐애액!

손끝에서 공이 빠른 속도로 쏘아졌지만 정작 내 얼굴은 밝지 못했다. 볼 끝이 참담할 정도로 죽어있었다.

“으읏?”

응암고 1번 타자는 제법 빠른 스윙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교한 맛이 없었다. 내 눈엔 한참 떨어지는 직구를 헛스윙했다.

‘구속은 얼마냐!’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보았다. 원 스트라이크, 그리고 그 옆에 찍힌 134km. 아찔한 숫자였다.

“134km? 태오가?”

“뭐지? 체인지업인가? 아니면 일부러 느리게 던진 건가?”

“그럴리가…….”

녀석들이 동요했다. 하지만 난 흔들리는 팀원들을 다독여 줄 방법이 없었다. 이게 지금 던진 최속의 페스트볼이었다.

“젠장!”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는데도 오히려 기가 죽었다. 게다가 칠 때 보다 더한 통증이 전해졌다. 직구는 이제 힘을 잃었다. 체인지업 그립을 쥐었다.

직구가 안된다면 변화구로. 직구 하나 막혔다고 저런 3류 타자에게 애 먹을 쏘냐!

“차핫!”

간신히 체인지업을 던지기는 했다만 형편 없는 체인지업이었다. 평소라면 제법 커다란 낙차를 두고 떨어지는데 반해 떨어지는 폭이 밋밋했다.

따악!

응암고 1번은 밋밋한 체인지업을 가볍게 커트해 냈다. 카운트는 몰아넣었지만 오히려 내 등엔 식은땀만 흘렀다.

‘결정구가 없다.’

모든 공에 구속과 변화가 떨어지자 정말 막막했다. 그때 형진이가 사인으로 직구를 요구했다.

‘이 상황에서 직구를?’

미심쩍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정녕 흐름을 읽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대충 감으로 때려박은 것인지.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믿는다 형진!”

노리는 곳은 외곽 낮은 쪽! 온 몸의 탄성을 살려 질풍처럼 쏘아낸 공이 곧게 뻗었다. 그리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 타자의 배트가 휘둘러졌다.

따악!

조금 만만하다고 싶은 코스를 여지없이 쳐냈다! 타구가 3루수 강진철의 위로 날았다. 강진철의 긴 팔이 들어올려졌지만 아슬아슬하게 키를 넘어 좌익수 앞에 떨어졌다.

“나이스 배팅!!”

“안타다 안타!”

응암고 벤치는 달아올랐고 우리 팀 어깨는 축 쳐졌다. 제길, 지금은 볼 위주로 가야 했던 건데……. 형진이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다시 잘 해보자!”

다시 심기일전의 기분으로 임했지만 결과는 최악에 가까웠다. 응암고 2번 타자는 정석대로 번트했다. 1루 쪽으로 구른 공을 대호가 침착하게 아웃 시켜서 원아웃 2루.

‘이번 타자야 말로 잡는다!’

필사적인 기분으로 전력을 다해 던졌지만 내 제구는 이전훈에 비해서 몇 단계는 부족했다. 3번은 다시 만만하게 들어가는 체인지업을 당겨 3루수의 키를 넘겼다.

“다시 안타다!”

따아악!

아찔했다. 타자의 방망이가 날자 여지없이 공이 걸려들었다.

“하아, 하아. 뭐, 뭐야.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고작 20구도 던지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숨이 차기 시작했다. 이럴 리가? 그 동안 체력 단련을 위해서 운동장을 정말 미친 것처럼 뛰고 또 뛰었는데 이럴 리가?

“젠장, 젠장!”

타석에 오르는 것은 상대팀 4번 타자 김수환이었다. 그리고 김수환을 본 순간 알아버렸다. 내가 왜 얻어맞고 있는 지를.

“결정구가 없다. 구속 10km가 이 정도로 큰 벽일 줄이야…….”

난 전형적인 파워 피칭을 하는 투수다. 일단 빠르고 묵직한 직구가 기본적으로 필요했다. 거기에 직구와 닮고 끝에서 휘는 커터, 마찬가지로 직구와 혼동되는 체인지업을 섞어 배합을 완성한다.

‘그런데 이 배합에서 구속이 떨어져 버리면 그건 만만한 멋잇감으로 밖에 돼버리지 않아…….’

만만한 코스도 143km로 찌르면 무서운 공이 된다. 하지만 134km로는 군침이 흐를 정도로 맛있는 공으로 변하는 것이다.

“차아!”

기운차게 타석에 선 김수환을 보며 녀석을 잡아낼 수 없는 것을 느꼈다. 팔이 아련하게 떨려왔다.

‘대수 형만 있었다면…….’

눈 앞에 미트를 대고 있는 형진이가 그저 그물 네트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대수 형이었다면 이럴 때 잠깐의 타임을 부르고 마운드로 올라와 주었을 것이다.

“지금 와서 그런 후회를 한다고 해도 뭐가 변하겠어!”

어차피 직구는 통하지 않게 된 지금, 커터를 중심으로 배합한다! 그런 생각으로 커터를 뿌렸다. 하지만 존에서 조금 어긋났고, 김수환은 미동도 않았다. 선구안이 제법이었다.

‘젠장, 젠장. 잡기 까다로운 타자다.’

그리고 동시에 마음 속에서 어두운 것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맞출까? 아니……. 여기서 만루가 되면 그야말로 바보짓이지.’

만루가 되면 오른팔이 굳어진다. 이 저주스런 징크스를 굳이 내가 직접 끌어낼 필요는 없었다.

“여기서는 맞더라도 승부다!”

나중에 되짚어 보아도 이 때의 나는 승부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잠시라도 나쁜 마음을 먹은 대가 였을까. 공을 던지는 순간 어깨가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릴리스 포인트(공을 놓는 지점)이 흔들리며 공이 타자에게 날아갔다!

“안돼!”

“으윽!”

두 비명이 교차했다. 흔들린 상태에서 날아간 공이 그대로 김수환의 머리를 노렸다. 이미 타격 폼으로 들어간 김수환은 깜짝 놀라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퍼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김수환이 오른 손을 붙잡고 쓰러졌다.

“수환아!”

“김수환!”

응암고 벤치에서 선수들이 달려 나오려고 했지만 간신히 일어선 김수환이 손을 들었다.

“아니,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지. 손에 그토록 세게 맞았는데. 나는 김수환에게 모자를 벗어 사과했다. 김수환은 괜찮다며, 땀을 뻘뻘 흘리며 1루로 걸어나갔다.

‘만루다.’

어깨의 통증이 잠시 죽었다. 시작이었다. 손가락부터 딱딱하게 굳어졌다. 손가락에서 타고 올라온 싸늘한 감촉이 손목과 팔, 팔꿈치를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안돼, 만루다!”

태경이의 말이었다. 녀석과 형진이의 낯빛이 퍼렇게 변했다. 그리고 난 또다시 외톨이의 기분을 느끼며 그라운드에 못 박힌 듯 멍하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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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1 만취in이슬
    작성일
    11.11.06 08:08
    No. 1

    쥔공 몸이 왜저럴까요
    아무리 전편들을 봐도 무리한적도
    없었는데..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인가요..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9 보초
    작성일
    11.11.06 09:12
    No. 2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월충전설
    작성일
    11.11.06 09:32
    No. 3

    뭐... 하긴 저 정신에 저 컨디션에 멀쩡하길 바란다면 도둑놈이죠. ㅡㅡ;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카이사
    작성일
    11.11.06 12:55
    No. 4

    이제 슬슬 풀릴때도 된것 같은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9 은깨비
    작성일
    11.11.07 22:39
    No. 5

    노상술님//정신적인 압박이 너무 커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겁니다. 사람의 정신이라는 게 참 나약하기도 하고 마냥 셀 수가 없죠.
    보초님//언제나 감사합니다 보초님
    월충전설님//솔직히 그렇습니다 ㅎㅎ 야구를 할 기분도 아니고 착잡하겠죠.
    카이사님//이제 거의 다 끝나가고 있습니다. 아마 다음다음화 쯔음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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