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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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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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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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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27,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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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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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봉황대기 50 - 대명고 vs 서운고 (2)

DUMMY

(수정중 글이 너무 길어져서 두 화로 나눕니다.)


Chapter 50


차에서 내려 땅을 밟을 때의 기분이란, 마치 질식 직전에 산소의 소중함을 아는 것과 닮아 있었다.

“흑흑, 내가 살아서 이 땅을 밟는 구나.”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들어선 수원 구장은 그래도 사람들이 제법 차 있었다. 물론 그래 봐야 1, 3루 쪽에 조금 들어서 있는 정도였다.

‘그래도 고교 야구에서 이 정도면 훌륭하지.’

팝콘과 맥주를 한아름이나 사 들고 한수연과 1루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경기는 이제 4회. 한창 분위기가 달아올라 있을 무렵이었다. 현재 스코어는 아직 0대 0. 대명고와 서운고 모두 2안타로 팽팽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기 검은 유니폼이 대명고야. 하얀 유니폼은 서운고고. 지금은 4회 말이니까 서운고가 공격하겠다."

"서운고? 이름이 뭐 그래."

"........"

그나저나 이 기집앤 날도 더운데 왜 이렇게 딱 붙어 앉은 거야. 땀나게 시리. 속으로 투덜거리는데 때마침 서운고 클린업 트리오가 등장했다. 3번 김지수가 당찬 모습으로 타석에 올랐다.

어디보자, 대명고 선발은 누구냐....... 전광판을 훑어보는데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어? 대명고 투수가 못 보던 이름인데? 등번호를 보면 2학년 인데...... 왜 봉황대기 3차전에서 2학년을 쓰지?"

"대명고에서 2학년을 쓰면 안돼?"

"그건 아니지만. 대명고처럼 투수력이 강한 학교는 굳이 2학년을 안 써도 되거든. 무명인 걸 봐선 대단한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봉황대기에선 3학년들이 나오는 게 통례야."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만큼 3학년들에게 기회를 주는 취지도 있었고 무엇보다 대명고 3학년은 선수진이 튼실하기로 유명했다. 왜 2학년이 나왔지?

"플레이!"

심판의 구령과 함께 4회 말이 시작되었다. 신성주는 자신있는 폼으로 공을 뿌렸다. 터업, 김지수가 볼 코스로 빠진 초구를 눈으로만 보냈다. 전광판엔 134km가 표기되었다.

"134....... 꽉 찬 볼 코스로 들어온 걸 봐선 제구력도 좋고 134km면 느린것도 아니지만 대단할 것도 없는데? 종속도 아직 미숙하고."

변화구가 많은 맞춰 잡는 스타일의 투수인가? 그때 신성주가 다시공을 뿌렸다. 그 순 간 김지수의 발이 슬쩍 앞으로 나가며 배트가 바람같이 날았다!

따악!

"오! 안타다!"

"안타야? 저게 안타야?"

내야에 바운드 되기는 했지만 1, 2루 간으로 절묘하게 빠져 나가는 안타 코스였다! 서운고 응원단이 벌떡 일어나며 함성 지를 준비를 했지만 맥이 빠져버렸다.

터업!

"아웃!"

대명고 2루수 임혁! 대명고 클린업 트리오 5번 타자 임혁이 마치 짐승처럼 날아 빠져나가는 공을 캐치했다. 그리고 튕기듯이 일어나 1루로 송구. 김지수는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벤치에 돌아왔다.

"안타라며? 왜 심판은 아웃이라고 하는데?"

"........"

뭐라 해 줄 말이 없었다. 이 기지배를 정말 어쩌냐. 명색이 광진고 야구부 코치에 감독실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야구 룰도 모르면 대체 어쩌잔 거냐.

그리고 그 이후로도 한수연은 생전 야구 처음 보는 사람인 양 온갖 질문 세례를 퍼부어댔다.

따악!

"파울!"

"저게 왜 파울이야? 담장 넘겼으니까 홈런 아니야?"

"그건....... 파울 라인 밖으로 떨어 졌으니까 그렇지."

"뭐 그런게 다 있어?"

그런게 있단다. 그러니까 제발 닥치고 야구나 좀 보렴. 네 논리대로 치자면 한 시합에 홈런이 10개 20개씩 터진단다.



투수가 아직 무명인 2학년인 만큼, 서운고의 방망이는 매섭게 그라운드를 때렸다. 김지수는 수비의 파인플레이로 인해 범타로 물러났지만 장태인은 달랐다.

"흐아압!"

따아악!

검은 빛의 배트가 공간을 찢어발기듯이 거칠게 휘둘러졌다. 순백이 어둠에 잠식 되듯, 하얀 공이 미트로 쏘아지다 배트에 먹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오, 설마!"

"나이스! 좋다 장태인!"

서운고 벤치에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높게 뻗은 공이 그대로 벡 스크린에 작렬했다. 투웅! 벡 스크린에 얻어 맞는 순간 서운고 벤치에 일제히 일어서 루를 도는 장태인에게 달려갔다.

"이야, 대단한데....... 어림 잡아도 비거리 120m 이상! 프로로 가도 되겠어. 나무 배트로 저렇게나 쳐 내다니."

역시 명문고 4번 타자는 달랐다. 그때 공원에서도 보았고 황금 사자기에서도 보았지만 여전히 감탄하게 되는 저 벽력같은 스윙! 우리 팀 그 누구에게도 없는 파괴력이 저 배트에 있었다.

"저건 홈런이야? 뒤에 맞고 다시 그라운드로 떨어졌는데?"

"........"

일일히 다 맞장구 쳐 주자니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한수연의 말은 제껴두고, 아무튼 대단한 녀석이었다. 강진철 만큼의 정교함은 없지만 그걸 뛰어넘고도 남는 파워와 운동 신경이 녀석 주위에서 보석처럼 빛났다.

그 이후로도 서운고의 공격은 계속 됐다. 바로 서운고의 자랑, 굴지의 타선! 어디 하나 구멍이 없는 묵직한 타선이야 말로 서운고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따악!

"또 쳤다! 오한경의 장타!"

오한경은 여전히 투박하게 휘둘렀지만 감이 좋았다. 낮게 들어오는 직구를 능숙하게 올려 치는 모습에서 베테랑 다운 면모를 보였다.

"차합!"

신성주는 분투했지만 아직 그가 서운고 타선을 막기엔 부족했다. 대명고 명물의 슬라이더가 날카롭게 뻗었지만 서운고 6번 타자는 여유롭게 잡아냈다.

따악!

다시 득점! 그리고 다시 장타였다. 오한경이 홈으로 쇄도하고 6번 타자는 2루에 안착했다. 팽팽하게 유지되어 오던 균형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벌써 2대 0. 이러다간 준결승전 상대가 서운고가 되는 건 아닌지?

"이상하네......."

"뭐가 그렇게 이상한 게 많아? 네가 응원하던 서운고가 이기면 좋은 거 아니야?"

"아니 나야 뭐 한 번 싸워본 상대가 올라온다면 좋지. 하지만, 대명고가 너무 무력하게 무너지는데? 대체 왜 3학년들이 코빼기도 안 비치지? 자랑하던 중심 타선도 임혁 외엔 안 보이고."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단체로 부상을 입었을 리도 없고.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신성주는 다시 얻어 맞아 총 3점을 빼앗긴 채로 강판되었다. 대명고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와 선수 교체를 선언했다.

"드디어 바꾸나보다!"

그런데 교체는 투수 한 명의 교체가 아니었다. 교체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졌다. 투수, 타자 할 것 없이 연속적으로 교체되고 있었다.

"뭐, 뭐야? 이렇게 한꺼번에 교체를 하다니......"

감독의 손짓이 이어질 때 마다 대명고 올스타들이 당당한 걸음 걸이로 그라운드에 나섰다. 투수는 신성주에서 정태현으로 교체 되었다.

'청룡기 결승전에서 등판했던 투수군. 광주제일고에게 무너졌었지.'

하지만 그때는 상대가 광주제일고였을 뿐이다. 그렇게 외치는 것 처럼 정태현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서운고 타선을 공략해 나갔다.

쐐애애액!

대명고 명물 칼날 슬라이더! 신성주가 던진 것과는 궤도도 스피드도 달랐다. 서운고 7번 타자는 맥을 못 추고 헛 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스트럭 아웃!"

청룡기 결승전의 힘 없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140km에 이르는 매서운 공에 칼날 슬라이더와 크게 휘는 커브! 단 세 구질의 조합으로 서운고는 차차 무너져 갔다.

"아웃! 쓰리 아웃 체인지!"

드디어 5회가 시작되었다. 서운고 선발 투수는 우리를 골탕먹였던 언더 임재훈. 1학년 이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포텐셜을 가진 투수였다.

"임재훈이라면 대명고 상대로도 제법 버텨 낼 거야."

"아! 나 저 꺽다리 알고 있어. 황금 머시기에서 나온 투수지?"

"...... 그래."

하지만 교체 이후 대명고의 움직임은 판인하게 달라져 있었다.

따악!

따아악!

연속되는 안타! 임재훈은 절박한 얼굴로 그 특유의 커브와 싱커를 남발했지만 대명고는 과연 능숙했다. 그때의 광진처럼 절대 미숙하게 물러나지 않았다.

"차합!"

타석엔 대명고 3번 타자 임혁이 올라서 있었다. 임재훈은 그 특유의 긴 팔로 와인드업하며 그라운드를 쓸었다. 손 목의 움직을 따라 일어나는 모래먼지, 쏘아진 싱커!

쐐애액!

우리에겐 재앙과도 같았던 싱커가 매섭게 꽂혀들어갔다. 타자의 몸쪽으로 절묘하게 떨어지는 싱커! 하지만 임혁의 배트는 싱커보다 한 박자 빨랐다.

따아악!

싱커가 채 제대로 떨어지기도 전에, 꽃이 만개하기도 전에 거칠게 날아온 광풍이 그것을 찢어 발겼다. 포탄이라도 쏘아 내듯 터져나간 타구가 외야를 뚫었다.

"이럴..... 수가......"

임재훈은 마운드에서 힘이 풀린 듯 주저 앉았다.

압도적! 주전 맴버가 등장한 대명고의 힘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그들의 마크 청동 사자처럼 장중했고 거칠것 없었다.

"이미 끝났다."

서운고 벤치엔 패배감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그런 분위기가 여실하게 느껴졌다. 굳은 얼굴, 떨어진 고개. 이미 전의를 상실해 있었다.

"다들 뭐 하는 거야! 정신 차리고 막아!"

주장 장태인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서운고 선수들은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시 시합에 몸을 뭍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미 임재훈으로는 무리였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흠뻑 젖은 유니폼. 거친 숨만 토해내는 임재훈에게선 더 이상의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잦아든 응원 소리, 사인을 낼 생각도 못한 채 굳어버린 감독.

"뭐가 이렇게 한 순간에........"

한수연의 말 처럼 한 순간에 끝났다. 교체 이후 시합은 한 순간에 기울어져 버렸다. 서운고 쪽으로 슬금슬금 기울던 저울추가 대명고 쪽으로 맹렬하게 가라앉았다.

따아악!

휘몰아치는 안타, 외야로 뻗는 강렬한 타구. 회를 거듭할 수록 공격이 끝나질 않았다. 우리가 그토록 고전했던 임재훈이었건만 대명고 앞에선 그저 고양이 앞의 쥐나 다름 없었다.

“막아아!”

장태인은 처절하게 소리쳤지만 내야를 빠져나가는 공을 그 혼자 어찌 다 잡으랴. 녀석의 분투도 헛되게 대명고와의 점수차는 한 순간에 벌어졌다.

“9대……3.”

기세 오른 대명고의 움직임은 마치 폭풍같았다.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서운고가 맥을 못 추며 흔들렸다.

“이길 수 있어! 정신 차려 이 자식들아!”

어느새 경기는 9회 말까지 치닫았다. 이미 서운고 관중석은 싸늘하게 죽어 버렸고 서운고 벤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장태인 만이 필사적인 각오로 타석에 섰건만 대명고에선 마지막 숨통을 끊을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다.

"투수 교체!"

"드디어 나왔다!"

방어율 0.00, 환상의 기록의 소유자. 대명고의 수호신. 김광호의 등장이었다.

'김광호!'

193cm를 넘는 장신, 그리고 그 큰 몸에서 넘치듯이 흘러나오는 패기! 김광호는 마운드에 선 것 만으로도 그라운드를 사로잡았다. 모든 것이 김광호를 축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자 간다!"

그 순간 난 꿈에도 그리던 공을 보았다.

온 몸의 힘을 한 곳에 모은 와인드업, 손 끝에서 터져나온 강렬한 페스트볼!

쐐애애액!

터업!

눈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김광호의 공이 미트에 꽂혀 있었다. 전광판엔 148km, 가공할 구속이 떠올랐다. 좌완이면서도 148km를 상회하는 강속구가 쏘아지자 그야말로 전광석화. 아무도 대응하지 못했다. 심지어 장태인 마저.

그리고 난 그 순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뭔가 느껴졌다 저 공에서. 내가 그토록 바래왔던, 꿈꿔왔던 '무언가'가 김광호의 공에 있었다.

'저거다. 저 공! 김광호와 백일현에게 있고 나에겐 없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내 짧은 혀로는 평생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차합!"

쐐애애액!

불길이 치솟을 만치 회전하던 공이 앞을 가로막는 바람을 사정 없이 찢어발기며 미트에 꽂혔다. 그야말로 압도적! 공이 지나온 궤적을 따라 대기가 흔들리고 아지랑이마저 피어올랐다.

"이렇게....... 허망하게......."

장태인의 입에서 절망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태인은 혼신의 힘을 다해 배트를 휘둘렀지만 단 한 번도 공에 스치지 못했다. 이미 공은 미트에 꽂혔고, 심판은 무정하게 주먹을 들어올렸다.

"스트럭 아웃! 게임 셋!"

저 장태인의 심정을 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절망, 허탈 그리고 울분. 저 얼굴에 드러난 믿을 수 없다는 표정. 그리고 김광호의 공.

손이 떨렸다. 아직 마운드에 서지도 않았건만 오른팔에 감각이 사라지며 미세하게 떨려왔다.

‘젠장…….’

비참함이 밀려왔다. 저 공을, 저 팀을 꺾을 자신이 나질 않았다. 아니, 저 팀과 맞붙는 게 그저 두려웠다.

이 빌어먹을 새가슴. 빌어먹을 오태오.

눈을 질끈 감았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 경기장 밖으로 달려갔다. 지금이라면 늦지 않을 것 같았다.



“잠깐! 잠깐만!”

다급한 음성에 버스에 오르려던 발걸음이 멈췄다. 급하게 달려나간 곳에 다행히도 서운고 맴버들이 아직 자리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늦지 않았구나.

“오태오…….”

팀의 가장 후미에서 걷던 장태인이 나직하게 읉조렸다.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언제나 자신감에 차 있던 장태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잠시, 잠시 얘기좀 하죠.”

“……그러지.”

서두도 없고 용건도 없었다. 그저, 그저 장태인과 만나야만 한다는 생각에 달려왔지만 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로 하진 않았지만 장태인과 나는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서로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버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자 장태인이 입을 열었다.

“보러 왔었군.”

“……다음 상대는 서운고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말에 장태인은 환하게 웃었다. 어딘지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웃음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네가 백상고를 꺾었다는 소식을 듣고, 준결승에서 다시 한 번 제대로 붙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이 꼴이군.”

“장태인 선배.”

자조 섞인 말에 무언가 위로의 한 마디라도 건내려 했지만 장태인은 묵묵히 손을 저었다.

“결코 만만치 않을 거다. 아니, 네가 상상하는 그 어떤 대명고보다 강할 거다.”

“…….”

“더 할 말은 없나?”

나는 침묵을 지켰다. 꼭 물어 보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과연 이 질문을 하고 후회하지 않을까. 더 작아지는 내 자신을 보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럼 이만 가 보지.”

“자, 잠깐만요!”

일어서는 장태인을 보며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눈을 꽉 감았다. 역시 물어야겠다. 묻고, 그리고 극복하고 싶었다. 어느새 멈춰버린 내 한계를, 이 새가슴을, 김광호와 백일현이 가진 것을.

“선배! 내, 내 공은 어땠습니까. 난 어떤 투수였죠?”

혼란스러웠지만 꼭 묻고 싶었다. 김광호의 공을 직접 본 장태인의 눈에 난 어떤 투수로 비쳤는가. 장태인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더니,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아주 재밌는 놈이었다.”

“……예?”

내가 기대했던 답과는 전혀 달랐다. 난 이런 걸 물으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다시 물으려는 순간에 선배가 말을 이었다.

“처음에 공원에서 만났을 땐 괜찮은 녀석이라 생각했다. 감히 날 삼진으로 잡다니. 그것도 너무 손쉽게. 그땐 솔직히 화도 치밀고 자존심도 상했었지. 그래도 실력은 괜찮은 녀석이라고 봤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정학을 당하고 돈이 없어 끌려 나갔던 녹양 공원에서의 3타석 승부. 그때의 짜릿한 삼진이 아직도 손 끝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황금사자기에서는 실망했다. 내가 기대했던 녀석이 고작 이 정도였나, 허탈했었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해도 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팀, 부족한 실력들. 답답함을 느끼고 독불장군처럼 날뛰고 있었지.

“그리고 응암고 때, 똑똑히 깨달았다. 넌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 더 멋진 녀석이었다고. 네가 살아난 7회, 그 타석에 서 있는 것이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보러…… 오셨군요.”

“그래. 보러 갔었지. 후회 없이 경기장을 나왔다. 그리고 널 다시 한 번 이기기 위해 준결승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 왔었다.”

“…….”

어떤 기분일까 이건. 적에게 인정 받은, 복잡하고도 미묘한 심정이었다. 대명고와의 경기를 보고 맥이 빠졌던 것이 아주 오래 전 일 같았다. 가슴이 힘차게 뛰었다. 어느새 떨리던 오른 팔은 차분하게 진정되었다.

“경기는 보러 가마.”

그 말을 남기고 장태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련하게 떠나는 선배의 모습은, 정말 못 볼 사람처럼 멀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 있던 말이 터져나왔다.

“선배! 우리는 꽤 괜찮은 라이벌 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 역시."

“프로에서 기다려 주세요. 곧 따라 가겠습니다!”

어쩌면 참 당돌한 말 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배는 말 없이 주먹을 들어올린 채 떠나갔다.

서운고 유니폼을 입은 주장 장태인의 마지막 뒷 모습은 가는 순간 까지도 당당했다.


작가의말

너무 분량이 긴것 같아서 두 화로 짤랐습니다.
수정도 했구요.
음....... 그래도 기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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