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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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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조회수 :
326,416
추천수 :
1,751
글자수 :
427,977

작성
11.11.02 17:07
조회
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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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0쪽

봉황대기 26 - 봉황대기(2)

DUMMY

Chapter 26


드문 드문 보이는 관객과 고작 수십 명의 선수가 채운 드넓은 수원 구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난 바로 이 순간을 좋아했다.

‘어디 수준 좀 보자!’

한 10년 정도 야구만 하고 살다 보면 가끔 직감 같은 게 발휘된다. 이렇게 나란히 세워두고 살펴보면 누굴 조심해야 할지 감이 온 달까?

내 앞에 선 이전훈은 그 중 하나였다. 뾰족하게 생긴 얼굴에 안경을 낀 인상이 꽤나 날카로워 보였다. 역시 3학년답게 내 험악한 인상에도 주눅들지 않고 팽팽하게 눈을 부딪혀 왔다.

4번 타자 김수환 역시 주목해야 할 상대였다. 머리를 빡빡 밀었는데도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고 아주 잘 생긴 녀석이었다.

‘이 둘 정도만 조심하면 되겠군.’

그때 애국가가 끝나고 심판이 외쳤다.

“자, 페어플레이를 약속하며 탈모!”

“잘 부탁 드립니다!”

서로가 모자를 벗고 외치자 드디어 시작이었다. 긴장이 발끝에서 짜르르 올라왔다. 입에서 침이 바싹바싹 마르고 몸이 가볍게 떨렸다.

“자, 초공이다!”

“가자. 광진고-!”

“화이팅!”

그 동안 죽기 직전까지 달리고 팔이 떨어져라 쳐 왔다. 아무래도 황금사자기보다 기운이 훨씬 넘치는 것이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더군다나 상대는 서운고보다 훨씬 약한 응암고! 모두의 눈에서 할 만 하다는 자신감이 전해져 왔다.

“좋아, 바로 타석으로 가라!”

“이번에는 꼭 큰거 하나 날릴 것잉께 믿으라!"

성래가 기운차게 답했다. 마운드엔 이전훈이 아주 안정적인 폼으로 투구연습을 하고 있었다. 구속은 역시나 128~130km 사이. 하지만 그 발군의 제구력 만큼은 이곳 벤치까지 전해져 왔다.

“플레이!”

성래가 배터 박스에 서자 바야흐로 봉황대기가 시작되었다. 이전훈이 송진가루를 털었다. 성래는 저번처럼 덜덜 떨지 않았다.

마침내 이전훈이 다리를 올렸다. 부드럽기 짝이 없는 와인드업, 그리고 그 손끝에서 뻗어나간 직구!

쐐액

낮은 공이 묵직하게 날았다. 탄성이 나올 만한 멋진 코스였다. 성래는 공이 미트에 꽂힐 때 까지 손도 대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미트가 입을 다물었다. 스트라이크 존 외곽 낮은 쪽 선에 걸쳐 있었다. 어지간한 투수들은 흉내내기도 힘들 멋진 스트라이크였다.

“.......대단한 제구력이다. 뛰어나다곤 들었지만 이건, 이건 고교의 수준이 아니야. 저건 프로의 제구력이다. 저런 멋진 코스를 마음대로 꽂아 넣는다고 하면 정말 치기 힘들겠어.”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이전훈은 내 말을 듣기라도 한 양 다시 똑 같은 코스로 공을 던졌다. 기회만 노리던 성래의 배트가 기쾌하게 날았다!

부웅!

하지만 기세좋게 휘둘러진 배트는 허공만을 갈랐다. 공에는 미세한 차이로 닿지 못했다.

“이, 이럴 수가?”

당황한 성래의 말이 벤치까지 들려왔다. 여기서 저 공의 대단함을 안 것은 고작해야 나와 강진철, 그리고 놀랍게도 최대호뿐 이었다.

“초구에서 공 하나만큼 바깥쪽으로 뺐다. 무시무시한 제구력이야…….”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이유를 알았다. 저런 터무니없는 제구력은 단연코 프로급이었다. 꽉 찬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하나 정도 텀으로 놀고 있었다.

“힘들겠는걸.”

벌써부터 성래의 목 언저리에 땀이 흥건했다. 녀석의 생각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다음 구는 친다! 녀석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가 긴장한 그 순간에 언뜻 이전훈이 심호흡 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녀석의 팔이 평소보다 좀더 크게 휘둘러졌다. 깔끔한 원을 그리며 이전훈의 손에서 쏘아진 공이 하늘을 날았다.

‘커브!’

태경이가 말했던 그 떨어지는 커브. 생각했던 것보다 낙차가 컸다. 아무래도 치기 힘들다! 그런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을 점령했을 때 성래의 배트가 앞으로 나왔다.

투웅

“세이프티 번트다!”

“써드!”

양 진형의 외침이 교차했다. 성래는 커브를 본 순간 못 칠 것을 알았나 보다. 녀석은 망설이지 않고 커브의 힘을 죽여 3루 쪽으로 보냈다. 그리고 난 처음으로 녀석의 전력 대쉬를 보았다.

모래먼지가 피어나는, 그야말로 질주(疾走)였다. 응암고 3루수가 빠르게 송구했지만 간발의 차로 성래의 발이 먼저 베이스를 밟았다.

“세잎, 세이프!”

“안타다! 안타!”

“내가 1번 타자 랑께!”

두 손을 번쩍 드는 녀석을 보며 피식 웃었다. 황금사자기, 봉황대기를 통틀어 녀석의 첫 안타였다. 명호가 타석에 서자 나도 헬멧을 쓰고 넥스트 서클에 섰다.

‘보자……. 무사 1루. 시작하자마자 한 대 맞았으니 좀 흔들릴까?’

흥미롭게 지켜봤지만 이전훈은 흔들리지 않았다. 3학년의 관록을 보여주듯이 오히려 쑥스럽다며 웃고 있었다.

명호는 작전대로 희생 번트를 댔다. 명호는 여전히 실력을 숨겼지만 번트 하나만큼은 기가 막혔다.

“자, 원아웃 2루! 초장부터 찬스다!”

사실 몸 속은 엉망진창이었다. 뭉개진 어깨와 뻐근거리는 근육, 피로에 찌든 몸에 정신적으로 몰아붙이는 온갖 상황까지. 걷기도 힘들었지만 애써 기운차게 웃었다.

'더이상 녀석들에게 한심한 리더이기 싫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기운 넘치는 주장이어야 했다. 커다랗게 심호흡하고 온 몸에 산소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라운드가 울리도록 소리쳤다.

“덤벼라 이전훈!”

“존댓말 써라 이 자식아!”

아 참. 선배였지.

분노한 이전훈이 세트 포지션으로 빠르게 공을 뿌렸다. 초구부터 커브! 공중으로 붕 뜬 커브가 자석에 빨려가는 쇠붙이처럼 떨어져 내렸다.

“이 따위 커브. 서운고 선발만도 못하네!”

아무리 많이 휜다고 해도 역시 속도가 대단히 빠른 것도 아니고 궤도만 익숙해 지면 얼마든지 칠 수 있다!

따악!

"아윽!"

공의 밑부분을 거세게 후려치자 공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뒤로 넘어갔다. 파울이었다. 좋은 스윙이었지만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상상 이상의 통증이 목과 어깨를 덮쳐왔다.

'배팅마저 안된단 건가.......'

휘두른 순간 어깨와 목이 움찔거릴 정도로 격심한 통증이 전해졌다. 이것만 아니었어도 정타를 칠 수 있었을 거다. 이건 그냥 뻐근하고 뭉친 수준이 아니었다.

"이거 곤란한데......."

내 실력이 반감되자 상대적으로 투수가 커다랗게 보였다. 이전훈은 빨랐다. 채 숨도 고르기 전에 투구 폼을 잡았다. 안정된 제구에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속사포처럼 공을 뿌렸다.

쐐애액

이번엔 직구! 외곽으로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는 직구에 손이 나가다가 아슬아슬하게 멈췄다.

“휴으, 정말 대단한 제구력이다."

하지만 나 또한 제구 하나로 잡을 만큼 만만한 타자도 아니었다. 강진철 보다는 못하지만 제법 배트도 정교했고 덩치만큼 힘도 있었다.

“덤벼…… 세요.”

끝에 사족을 붙이니 멋이 좀 안 살긴 했지만 이전훈에겐 충분한 도발이었다. 아까부터 폼을 유심히 살폈다. 직구와 커브의 폼이 상당히 달랐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둘과도 달랐다!

‘슬라이더다!’

이번엔 팔이 조금 낮게 돌았다. 그리고 끝에서 격하게 챈 슬라이더가 힘있게 날아들었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슬라이더!

“흐아압!"

이를 앙다물었다. 통증은 무시하고 친다! 그 일념 하나로 온 정신을 배트와 손에만 집중했다. 귀 근처로 들어올린 배트를 깎아내듯이 휘두르는 것이 타격의 정석!

힘의 8할만을 쓴다는 기분으로 가볍고 부드럽게 휘두른 스윙이 날았다. 타격의 기본이 맞아 떨어지자 날카로운 궤적이 그려졌다. 도망치던 슬라이더가 배트 끝에 걸렸다.

그 순간 신음이 흘러나올 정도의 통증이 던졌지만 입술을 깨물며 그대로 밀어쳤다!

따아악!

“잡아!”

이전훈이 거칠게 고함쳤다. 배트 끝에 걸린 타구가 쭈욱 날았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지만 밀어치기가 되어 우측 라인 근처로 날았다.

“파울인가? 페어로 떨어져라!”

“안타 나와라 안타!”

바람이 불었을까. 아쉽게도 날아가던 타구에 힘이 빠졌다. 그리고 맹렬하게 달려오던 응암고 우익수의 멋진 슬라이딩 캐치가 떨어지던 공을 낚아챘다.

“아웃!”

“성래야 달려!”

이미 3루를 밟았다가 다시 2루로 돌아온 성래가 질풍처럼 내달렸다. 우익수는 재빠르게 중계했지만 성래는 다시 3루 베이스를 밟았다.

“어떻게든 진루타는 됐군.”

“아까웠다 태오야!”

벤치로 들어가자 태경이 녀석이 손뼉을 쳐 왔다.

“공은 어땠어?”

“글쎄. 몸이 아직 다 안 풀린 것 같은데……. 공 끝이 다 살아나면 제법 무섭겠어. 하지만 아마 상위타선은 칠 만 할 거야.”

문제는 결국 나겠지. 이 통증은 예사 것이 아니었다. 반면에 이전훈은 처음부터 저토록 변화무쌍한 투구를 구사하고 있었다. 아마 3회쯤 되면 절정의 기량을 뽐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려워 지겠지.'

다만 묘한 것은, 저토록 완벽한 제구를 뽐내는 데도 이상하게 직구가 만만해 보였다는 점이다. 그 부분만은 의외였다.

“그나저나 지켜봐라. 4번 타자 나가신다.”

게으르기 짝이 없는 발걸음. 태도 하나 하나에서 묻어나는 귀찮음. 그럼에도 녀석이 타석에 서자 묘하게도 안심이 됐다.

그 분위기를 느꼈음일까. 이전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느껴졌다. 에이스 대 4번. 주인공들의 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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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99 당천포
    작성일
    11.11.02 23:00
    No. 1

    흠!! 태경!! 학교다닐때 아주 악을쓰게 만든 이름 태경!!
    싸가지 열라 없어서 싫어~~ 젠장!!
    잘 보고 갑니다.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만취in이슬
    작성일
    11.11.03 01:04
    No. 2

    좋은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1 개백수대장
    작성일
    11.11.03 10:27
    No. 3

    역시 재밌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월충전설
    작성일
    11.11.03 13:18
    No. 4

    어라.... 태오 죽기직전 아니었나요? 생각보담은 생생한것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9 은깨비
    작성일
    11.11.03 17:25
    No. 5

    흑포사신님// 헛, 태경과 그런 악연이 있으셨다니. 하지만 요기서 나오는 태경이는 좋은 놈입니다 ㅎㅎ
    노상술님//언제나 댓글 감사드립니다.
    늑대가된개님//재밌으시다니 더욱 분발해서 쓰겠습니다!
    월충전설님//뭐.... 아직은 타격이니까요 ㅎㅎ 몇가지 부분은 고쳤습니다. 언제나 댓글과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9 보초
    작성일
    11.11.03 20:06
    No. 6

    잘 보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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