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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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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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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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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27,977

작성
11.12.1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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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봉황대기 49 - 대명고 vs 서운고

DUMMY

Chapter 49


야구의 묘미는 이긴 경기 뒤의 뒷풀이에 있지만 이번만은 경우가 달랐다. 이긴 직후였건만 모두가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다.

“짐 챙겨서 바로 학교로 복귀한다. 학교 도착하고 바로 연습 시작 할 테니 버스에서 쿨 다운 시작해!”

이미 시합이 끝났다고 해서 이전처럼 느긋하게 지낼 수 있는 상황이 못됐다. 승전보를 울리기도 전에 도망치듯이 경기장에서 나왔다. 이미 다음 시합은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허겁지겁 버스에 올라서야 겨우 숨을 돌렸다.

“오늘 정말 수고했다. 내 대신에 멋지게 승리한 태경이도, 그리고 너희들 모두. 백상고를 이긴 건 우리 팀 최고의 사건이지.”

“우리가 드디어 인정을 받는 건가?”

“하하하! 또 신문에 나오겠다!”

기쁨의 환성을 터트리는 녀석들에게 난 함지박한 웃음을 띄운 채 폭탄을 투하했다.

“그리고 다음 시합은 3일 후야. 상대는 서운고 아니면 대명고.”

“…….”

짧은 한 마디에 버스 안은 액화 질소가 한 바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환성을 내지르던 자세 그대로 굳어 꽤 민망하게 보이는 녀석들도 몇몇 있었다.

“대, 대명고라고?”

“대명고 아니면 서운고?”

백상고가 신흥 강자 이른바 늑대나 표범처럼 전략적인 맹수라면 대명고는 전통의 강자. 광주제일고와 더불어 고교대회 최강의 서러브레드, 고귀한 혈통의 진골 맹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 그리고 무엇보다 대명고는 대 투수 전략을 세우기가 극악한 학교라구.”

제아무리 명문이고 강호고 상대 투수의 구질과 구속, 폼만 연구해 온다면 못 칠 것도 없다. 오늘 백상고가 내 공을 신나게 두드려 댔던 것도 그와 같은 이치다.

반면에 대명고는 한 시합 내내 최소 두어 번 투수를 바꾸는 데다 누가 나올지 예측하기도 힘든 로케이션을 짜 놓고 있어 한 마디로 대비책이 없었다.

“서운고는 한 번 겪어 봐서 알겠지만 정말 굴지의 타선을 보유하고 있는 학교고. 알겠냐? 신나는 건 좋지만 신나 있을 시간은 없다. 그 기분 그대로 가져가서 연습에 몰두한다!”

녀석들이 조용히 주먹을 들어올렸다. 앞으로 3일, 빠듯하게 다가온 준결승이 실감 나지 않았지만 이기고 싶다는 열의만은 같았다.

3회전 첫 날이 저물자 준결승으로의 2개고 진출이 확정됐다. 일단 백상고를 꺾은 우리 광진고! 신 광진의 활약이라 가히 떠들썩 할만 했지만 아쉽게도 빛이 바랬다. 바로 상마고를 ‘순살’해 버린 광주제일고 때문이었다.

“괴물 같은 자식.”

아침 일찍부터 오로지 스트레칭과 어깨 이완 운동에만 매진했다. 옆집에서 몰래 가져온 오늘자 스포츠 신문엔 2면을 독차지한 광주제일고와, 상대적으로 조그맣게 실린 광진고가 있었다.

신문엔 ‘순살(瞬殺)’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상마고 입장에선 진정 치욕스런 패배였으리라. 지금까지 2, 3선발을 돌리며 백일현을 아껴오던 광주제일고에서 드디어 최강의 맹수를 경기장에 풀어놓았다.

고교 최강의 투수 백일현. 살기마저 흐르는 150km 강속구에 광주제일고 초중량급 타선. 이미 경기 시작 전부터 상마고는 전의를 상실해 있었다. 완봉으로 틀어 막힌 상마고가 7회를 못 버티고 쓸쓸히 퇴장해 나간 것은 이미 예상된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대명고 대 서운고의 시합인가.”

언론은 제법 시끌시끌 떠들어 대고 있었다. 최강의 방패 대명고와 명창 서운고의 대결. 문구 만으로도 제법 흥분되지 않는가.

깔끔하게 아침 스트레칭을 마치고 학교 길에 올랐다. 어제는 제법 정신 없는 하루였다.

“설마 교장이 직접 나올 줄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폐부가 어쩌니 뭐니 했던 교장이 가장 싱글벙글한 얼굴로 맞아주었다. 심지어 어제는 회식이었다.

“아이구우! 우리 오선수. 잘했어. 아주 자알했어!”

교장은 그 기름기 흐르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띄우고, 무려 내 엉덩이까지 두드려 주었다(물론 불쾌했다). 어제는 아직 신문에 나지 않았지만 교장은 아는 기자에게 연락 받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한다.

“어? 태오다. 주장 주제에 지각이다 임마!”

운동장에 들어서자 태경이 녀석이 가장 먼저 반겨주었다. 녀석은 어제의 활약이 어지간히 기뻤던지 아침부터 몸에 에너지가 넘쳤다.

“너 내가 공 던지지 말랬지!”

“아, 안 던졌어. 그냥 쥐고 있었던 거야.”

누가 봐도 던지고 있었구만 뭘. 태경이나 나나 한 경기를 뛰면 어깨를 보존해야 하는 투수다. 일주일에 일곱 경기씩 뛸 수 있는 야수가 아니었다.

“더 이상 던지지 말고 나랑 같이 스트레칭과 쿨 다운이나 해. 그리고 저녁엔 마사지 시켜 줄 테니까 딴 곳으로 새지 말고.”

“마사지? 정말?”

솔직히 고딩이 스포츠 마사지를 받기엔 좀 가격이 부담이었지만 3일 뒤에 겨루게 될 대명고와의 승리보다 비쌀 순 없었다.

“퍼스트!”

따악!

그라운드에선 이미 연습 열기가 한창이었다. 내야수는 이명원의 펑고(노크. 야수 근처로 공을 쳐 주는 수비 연습의 일종.)를 받고 있었고 외야수는 운동장을 빠르게 질주했다.

“강진철은?”

유독 강진철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도 요즘엔 부쩍 연습에 자주 참여 했는데 오늘은 그 밉살스런 얼굴이 안 보였다.

“저기 그늘에서 쉬고 있어.”

내가 정말 이 야구부에서 모를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 강진철이었다. 시합에서 치는 안타들을 보면 절대 연습에 소홀한 건 아니었다. 그 절묘한 커팅, 마음 먹은 순간 배트를 휘둘러 안타를 쳐 내는 가공할 컨트롤. 그건 재능 만으로 일궈지는 경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연습에서는 또 거짓말처럼 꾀를 부리곤 했다. 달리는 연습은 거의 죽어도 하지 않았고 배팅 연습도 건성건성. 30분 이상 연습하는 꼴을 못 봤다.

‘오늘은 좀 상태가 이상한데?’

여느 때와 같은 풍경이었지만 묘하게 찌푸려진 얼굴이 신경에 거슬렸다. 언제나 그늘에선 기분 좋게 늘어져 있는 녀석이었는데 말이지.

“그나저나 오늘 대명고 대 서운고 경기에 간다면서? 가서 자료 분석이나 제대로 하고 와. 비디오도 몇 개 찍어 오고.”

“젠장, 난 그 쪽으론 영 잼병인데……. 비디오고 뭐고 너무 어렵단 말이야. 무겁기도 하고.”

“그럼 한수연한테 부탁해 봐? 차도 있는 것 같던데. 그리고 요즘 꽤 친하잖아?”

이건 좀 생각 밖의 답변이었기에 잠시 말 문이 막혔다. 친하다고? 나랑 한수연이? 뭐 그러고 보니 이제 딱히 불편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친하다고 하기에도 좀…….

“부탁해 봐. 차도 있고 솔직히 네가 한수연이랑 친하면 우리는 좋지 뭐.”

그러고 보니 요즘 계속 물자가 부족해 내 사비를 쓰고 있었다. 연습을 하다 보면 공이나 배트는 거의 소모품처럼 소비하게 된다.

금속이 아니라 나무 배트를 쓰는 만큼, 그리고 그 나무 배트가 결코 고급이 아닌 만큼 쉽사리 부러져 버리는 것이다.

“한수연을 한 번 만나 봐야겠군.”

“그래. 이번엔 지원 좀 많이 받아 와!”

마치 자식들을 두고 장터로 떠나는 아버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이 녀석들 때문에 성인도 안 됐는데 폭삭 늙은 기분이야.



최근 한수연의 행보를 읊어보자면 이상할만큼 조용했다. 김지환 사건 이후로는 날 찾는 일도 거의 없었고, 오히려 도움을 줄 때도 많았다.

‘이상하게 화장도 하고 다니고 맥주도 별로 안 마시고.’

솔직히 고분고분해 져서 좋긴 했다. 난 노크도 하지 않고 감독실 문을 벌컥 열어 재꼈다.

“야 한수연!”

“까, 깜짝이야!”

응? 저게 뭐야? 한수연이 막 소포의 포장을 풀고 있었는데, 급하게 감추긴 했지만 분명 글러브였다.

“글러브?”

그 순간 한수연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조차 들지 못하고 글러브를 감췄……다는 건 그냥 내 망상이었다. 들키긴 했지만 애써 감추지 않고 글러브를 내게 건냈다.

“자. 이걸로 빚은 없는 거다?”

“어……. 빨리 샀네?”

한수연이 내민 것은 내가 저번에 쓰던 것보다도 훨씬 좋은 글러브였다. 손 끝으로 느껴지는 가죽의 재질, 그리고 유리창 너머로만 보던 메이커. 이 글러브, 가격이 절대 만만치 않았을 텐데?

“훗. 이 언니가 쓸 땐 좀 쓰지.”

한수연은 그 사건 이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물론 자존심도 세고 당찬 모습은 여전했지만 매사에 짜증을 부리던 그 신경질적인 한수연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울증의 초기 증상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끔 보면 심지어 기특한 짓도 해서 얘가 걔가 맞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뭘 봐 짜샤.”

……아니, 예전의 그 기지배가 맞는 것 같다.

“오늘 할 일 없으면 나랑 같이 경기나 보러 가자구.”

“뭐? 너랑……?”

난 당연히 싫다고 뻗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확실히 차이점이 보였다. 예전에 비해 훨씬 쿨해진 모습이었다.

“그래. 어차피 나도 드라이브 하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지은 한수연의 얼굴은, 믿을 수 없었지만 순간이나마 예뻐 보였다. 그것도 엄청.

내, 내 눈이 삐었나? 그러고 보니 처음 봤다. 고운 턱 선 밑으로 부드럽게 지어진 한수연의 미소를. 예전엔 미움의 상징이었던 금발이 자리잡은 목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으로 보였다.

“어, 어……. 그, 그래.”

왠지 더 이상 보고 있으면 바보 같은 꼴을 보일 것 같아 황급히 감독실을 나왔다. 이상하게 콧잔등에 좋은 향기가 맴도는 것 같았다.



“우와아아악! 야이 미친! 속도 좀 줄여!”

부아아앙!

이 미친 계집애야! 아까 예쁘다니 뭐니 했던 거 다 취소다. 뭐 이런 싸이코 같은 계집이 다 있어!

“존댓말 안 쓰지!”

그 말과 함께 한수연이 기어를 한 단 올렸다. 외제차의 야성적인 엔진이 맹렬하게 질주하며 고속도로를 누볐다. 내 태어나서 오픈카가 이렇게 무서운 건 줄 처음 알았다.

“우와아악! 이러다가 사고 난다니까!”

사방에서 덮쳐오는 바람 덩어리들이 거칠게 몸을 때렸다. 뭔갈 잡고 있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수원까지 삼십 분만에 갈 거냐!”

“응. 그러려구.”

“……….”

되도 않는 선글라스를 머리에 올려 끼고 도로를 질주하는 한수연은 분명 어린 내 눈에도 꽤 멋져 보였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생존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헤엑, 헤엑!”

입을 벌릴 때 마다 들어오는 바람에 배가 빵빵해 질 정도였다. 한 기어 올리고 나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렇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난 이십 분 만에 수원까지 주파하는 진기록을 몸소 달성해 보였다.


작가의말

내일 한 편 더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져서 좀 늦어졌네요 ㅠ
31일까지 완결할 수 있으려나.....

수정은 내일 아침에! 자기 전에 다음편 시작이나 해 놓고 자야겠습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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