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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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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조회수 :
326,393
추천수 :
1,751
글자수 :
427,977

작성
11.11.30 01:14
조회
3,192
추천
20
글자
8쪽

봉황대기 41 - VS 백상고 (1)

DUMMY

Chapter 41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백상고의 인상은 다들 날카로웠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눈이 매섭게 쭉 째졌고 분위기 역시 대동소이했다.

‘뭐 잘못 먹고 나왔나? 아니면 기선 제압을 해 보시겠다 이건가?’

험악한 얼굴이라면 나도 남 부럽지 않거든? 물러서지 않고 눈을 맞추자 찌릿찌릿한 전류가 흘렀다. 내 앞에 서 있는 건 투수 유준성과 4번 타자 양인호였다.

“반갑습니다?”

올라간 말꼬리, 하찮다는 듯 꼬나보는 눈빛. 누가 봐도 시비 거는 태도였다. 이런 내 태도에 우리 팀원들 까지도 “야, 왜그래?”라는 얼굴로 일제히 쳐다봤다.

“아 반가워요. 광진고 에이스 오태오 선수. 작년엔 포수를 잘 만나서 기록 좀 세웠다지요? 이번엔 그 포수가 없어서 유감이네요.”

부드러운 말투 속에 가시가 숨어 있었다. 사각 안경을 고쳐 올리며 유준성이 날카롭게 받아 쳤다. 딴에는 맞는 말이었다. 작년에 내가 고교 3대 투수 안에 들 정도로 최고의 성적을 올린 건 순전히 대수 형의 공이었으니까.

“그쪽만큼은 아니죠. 팀 잘 만나서 좋은 성적 올리시니 참 좋으시겠습니다.”

“그쪽은 고생 좀 하겠네요.

초장부터 시퍼런 기운이 부딪혔다. 유준성은 코웃음을 치며 등을 돌렸고 양인호는 슬쩍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야, 백상고에서 주의해야 할 놈들이 저 둘이냐?”

어느새 곁에 선 태경이가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대답했다. 녀석의 눈이 꽤나 날카롭게 빛났다.

“정확히는 셋이야. 저 네모난 안경 쓴 놈이 백상고 에이스 유준성. 초반부터 제 페이스를 못 내긴 하지만 몸만 풀리면 대단한 투구를 하지. 그 증거로 홍해고를 4회 이후에 2실점으로 틀어막았어.”

아무리 봐도 제구력이 뛰어난 타입의 투수였다. 저 안경, 그리고 저 분위기. 내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강속구 투수나 탈삼진형 투수는 좀더 거칠고 야수성이 풍겼다.

“그리고 저 덩치가 백상고 4번 타자 양인호. 최고로 주의해야 할 타자야.”

“안 그래도 그런 분위기가 풍기더군.”

강자의 여유라는 게 여지없이 뿜어져 나오는 녀석이었다. 유준성이나 양인호나 올해로 3학년. 특히 주목 받는 양인호는 고교 최고의 거포중 하나였다.

“장타율이 7할을 넘어. 일단 치면 기본으로 외야는 넘긴다고 봐야 할 타자야. 홈런 수도 제법 되고. 특히 배트 스피드와 체중을 싣는 기교가 뛰어나다고 하더라구.”

“안 그래도 그래 보이더군. 나와 비슷할 정도로 큰 덩치니 한 타력 하겠지.”

아닌 게 아니라 양인호의 덩치는 나보다도 컸다. 키는 한 189 cm? 커다란 키에 체격도 다부졌다. 굵은 목선과 장대한 기골. 언뜻 봐도 몸 전체에서 심상찮은 파괴력이 흘렀다.

“나머지 한 명은 누구야?”

“나머지는…….”

그때 주최측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 첫 게임이니까 셋팅과 동시에 시작합니다. 20분 여유가 있으니까 각자 수비 연습과 개인 용무를 보도록!”

그러고 보니 배가 살살 아파오는 게 심상치 않았다. 난 형진이를 불러 펑고용 배트를 넘겼다.

“일단 네가 치고 있어. 난 화장실 좀 다녀오마.”

“……똥?”

심각한 얼굴로 물어오는 녀석에게 인상을 팍 썼다. 과묵한 녀석이 그제서야 희미하게 웃었다.



언제나 느끼는 부분이지만 경기 전의 가슴은 좀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떨려온다. 침은 바짝바짝 마르고 진정되지 않는 거친 숨이 흐른다.

“후우…… 고작 똥 싸면서 뱉기엔 멋있는 대사인데.”

다행히도 속은 진정됐다. 깔끔하게 뒷 처리를 하고 벨트를 채웠다. 물을 내리고 밖으로 나서려는데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진고 에이스 오태오. 넌 폄하했지만 타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봐도 물건이야. 직구 평균 143km에 130km 후반의 커터. 아무래도 치기 힘들겠어.”

누구 목소리지? 워낙 굵어서 처음엔 감독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약간 앳된 기가 목소리에 남아 있었다.

“인호, 너무 높게 평가하는 거 아니야? 성적을 봐, 위기 관리능력이 형편 없잖아.”

이건 유준성의 목소리였다. 아, 이제서야 알았다. 저 굵직한 목소리는 4번 타자 양인호였다.

‘백상고 올스타가 모여서 내 뒷담이라니 영광스럽구먼.’

그런데 좀 상황이 애매하게 됐다. 여기서 나가자니 민망할 것 같고, 그렇다고 안 나갈 수도 없고. 한 마디로 난감했다.

“제구력도 좋은 편이네? 그럼 역시 작전대로 치는 건 이 체인지업인가?”

이번엔 또랑또랑한 목소리였다. 이건 들어본 적 없는데? 에이스 유준성도 아니고 4번 양인호도 아니었다.

“약점이라면 역시 이 밋밋한 체인지업이지. 구속도 느리고 던지는 패턴도 연구해 왔으니 공략은 쉽겠어.”

양인호의 말을 끝으로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화장실을 나선 것이리라. 일분 정도가 지나서야 난 냄새 나는 화장실에서 뛰쳐나왔다.

“뭐야? 내 체인지업을 노린다고? 게다가 패턴을 조사해 와?”

이건 월척이었다. 상대팀의 정보를, 그것도 이런 고급 정보를 앉은 자리에서 얻다니! 기운이 솟았다. 적들이 체인지업을 노린다면 그 패턴에 맞춰 다른 공을 던지면 될 일!

“좋아. 출발이 아주 좋아. 순풍이 불어주고 있어.”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벤치로 돌아가려는 그 순간이었다. 우연일까,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보였다. 자연스레 시선이 돌아갔다.

‘주심?’

프로텍터를 착용한 주심이었다. 그리고 그 곁에 선 남자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온 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매서운 눈 속에 담긴 교활한 자국. 저 사람은 분명 백상고 감독 한철도였다.

‘왜 시합 전에 백상고 감독이 주심을 만나고 있지?’

으슥한 배경에서 접선하는 두 남자라니, 어떻게 봐도 수상했다. 하지만 막상 들려오는 대화는 별 것 없었다. 그냥 평범한 안부 인사였다. 영화처럼 돈 봉투가 오가는 장면도 없었고.

‘과민반응인가?’

장소가 좀 걸린다 쳐도 감독과 주심이 만날 일은 제법 많았다. 비가 올 경우의 콜드 게임 이라거나 명단표 확인이라거나.

의심이 지워지자 별 일도 아니었다. 가볍게 머리를 흔들곤 벤치로 달려갔다.



“플레이!”

심판의 구령과 함께, 그렇게 3회전은 막을 올렸다. 광진고의 상징인 검은 표범, 백상고의 상징인 하얀 이리. 흑과 백의 맹수가 바야흐로 맞붙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벤치에 둥글게 모였다. 떨리는 숨결이 서로에게 전해졌다.

“그 동안 잘 참아줬다.”

내 말에 어깨에 준 힘이 강해졌다. 예전 같지 않은 악력이었다. 그 비리비리한 것들이 언제 이렇게까지 성장했던가. 이제는 듬직하기까지 했다.

“모두 하나씩 부족한 우리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단 한번이라도, 최고가 될 수 있는 열쇠가 눈 앞에 있다.”

마주 본 녀석들의 눈에서 독기가 흘렀다. 지금까지 쭉 참아왔다. 몇 달간을 참아왔다. 새벽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고된 강행군. 토하고 또 토하면서도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

“길게 할 말은 없다. 가자, 이제 마음껏 날뛸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인 것은, 작게 으르렁거린 듯한 한 마디였다.

“모조리 물어뜯어버려.”

다른 격려의 말도, 기운찬 파이팅도 없었다. 눈에서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며 양 진영은 팽팽하게 대치했다.

마운드에 오른 유준성, 타석으로 향하는 성래와 명호. 모두가 지켜보는 와중에 경기는 조용히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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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봉황대기 45 - VS 백상고 (5) 더이상 못 참아 +7 11.12.10 2,890 14 11쪽
45 봉황대기 44 - VS 백상고 (4) 의문 그리고 또 의문 +10 11.12.07 3,017 17 11쪽
44 봉황대기 43 - VS 백상고 (3) 이질감 +9 11.12.05 3,111 17 13쪽
43 봉황대기 42 - VS 백상고 (2) 깨어나는 광진 +11 11.12.02 3,099 17 14쪽
» 봉황대기 41 - VS 백상고 (1) +7 11.11.30 3,193 20 8쪽
41 봉황대기 40 - 그냥 가! +11 11.11.26 3,100 18 14쪽
40 봉황대기 39 - 쌍둥이의 이야기 +9 11.11.26 3,080 16 11쪽
39 봉황대기 38 - 다음 상대는! +5 11.11.25 3,108 19 11쪽
38 봉황대기 37 -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 +6 11.11.22 3,342 16 15쪽
37 봉황대기 36 - 코피? +14 11.11.20 3,616 1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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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봉황대기 24 - 출진전야 +8 11.10.26 4,299 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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