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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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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조회수 :
326,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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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1
글자수 :
427,977

작성
11.10.30 14:03
조회
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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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8쪽

봉황대기 25 - 봉황대기(1)

DUMMY

Chapter 25


그 날은 잠들지 못했다. 불 꺼진 방에서 어제의 기억만 곱씹었다. 삭힐 수 없는 화를 한 밤 내내 품었다. 웅크린 맹수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침이 밝았다. 나는 신호라도 된 것 처럼 햇빛을 보고 벌떡 일어섰다.

“가자.”

뭐에 홀린 듯 일어섰다. 그리고 기운차게 걸어가려는데 몸이 휘청거렸다. 그 순간 깨달았다.

‘몸이 무겁다?’

무거운 정도가 아니라 발을 딛는 순간 몸이 휘청였다. 중심이 잡히기는커녕 사시나무처럼 후들거렸다.

“이런 젠장.”

다급히 거울 앞에 서자 눈 밑이 시커멓게 죽어있었다. 얼굴이 창백하고 몸이 참을 수 없이 노곤했다.

“어디까지 바보짓만 되풀이 할 거냐 오태오.”

제 컨디션 하나 관리 못한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나마 살을 데일 것 같은 뜨거운 물로 샤워하자 조금 기운이 솟았다. 즉시 학교로 가자 이미 학교엔 버스가 도착해 있었다.

“어이! 오태오!”

가장 먼저 태경이가 보였다. 다른 팀원 녀석들도 저번처럼 화장실에 틀어박히지 않고 밤 사이 굳은 몸을 풀고 있었다.

“다 왔냐?”

“응. 왠일이야 네가 마지막으로 다 오고.”

“그냥.”

둘러보니 형진이는 온 팀원들의 가방을 점검하고 있었다. 특히 글러브를 세삼하게 살폈다. 강진철은 버스에서 못 다한 숙면 중. 나머지 녀석들은 가볍게 런닝 중이었다.

“자, 봉황대기 출진이다. 가자! 상대는 응암고다.”

“응암고?”

“응암고가 센 곳이당가?”

곳곳에서 의문이 터져나왔다. 상대를 알면 쓸데없이 잡생각만 늘까봐 대회 직전까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별로 대단한 학교는 아니니까 걱정 말고. 우리가 세번째 경기다. 가자!”

“그, 그래. 가자!”

“센 곳이 아니라면 다행이네.”

녀석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버스에 올랐다. 막 출발할 때가 되어서야 한수연과 감독이 도착했다. 하품을 쩍쩍하며 들어오는 꼴이 아주 가관이었다.

“내가 왜 이런 아침 댓바람부터 나와야 하는 거야? 아 피곤해.”

“그러게 말입니다 코치님.”

저 망할 콤비는 여전했다. 그래도 요즘은 어지간하면 별 꼼수 안 부리고 말을 듣기 때문에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감독과 코치까지 탑승하자 버스가 출발했다. 난 버스의 맨 뒷칸에 누워서 눈을 붙였다.

“태오야 자려구?”

“어…… 밤에 잠을 많이 못자서.”

“응암고에 대해서 적지만 조사해온 게 있는데 안 들을래?”

“조사?”

“응. 응암고 에이스와 4번 타자, 감독 정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태경이가 A4용지를 꺼냈다. 뭘 거창하게 저렇게까지 하나. 하지만 녀석의 얼굴은 꽤 진지했다.

“일단 응암고 자체는 전력이 별거 아니야. 10년 전에는 꽤 유명한 강호였는데 지금은 1회전 수준의 약체 학교야.”

“다행이네. 초반부터 강호랑 붙으면 골치 아픈데.”

여전히 눈도 떼지 않고 말했다. 한 번 눈을 감자 접착제라도 붙은 듯이 떨어지질 않았다.

“감독도 그냥 저냥이야. 사라질 기로에 놓인 노장이랄까. 이름 있는 사람은 아니구. 4번 타자는 잘 치고 장타력도 있지만 명문고 중심 타자에 비하면 떨어지고. 문제는 에이스야.”

“에이스?”

“에이스 이전훈 만큼은 주의해야 해. 올해에 상당히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는 투수야.”

“특기가 뭔데?”

내가 알기로 이전훈은 3학년이라고 들었다. 고교 마지막 해니 절박하기도 하고 한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겠지. 하지만 고작 그 정도가 아닌가. 투수는 타고 나는 것이다. 1년쯤 노력한다고 대단히 바뀔 순 없었다.

하지만 태경이의 대답도 대동소이했지만 조금 달랐다.

“제구력. 구질은 직구와 커브, 슬라이더 뿐인데 변화구를 구사하는 능력이 아주 다채롭다고 해. 그리고 그걸 정밀하게 컨트롤 하는 아주 까다로운 투수야.”

“변화구가 다채롭다고?”

제구력이란 곧 안정감이다. 고교 투수가 프로에 가서 형편 없이 무너지거나 난타 당하는 것도 이 제구력의 영향이 컸다. 그런 면에서 이전훈은 대단했다. 제구된 직구를 던지기도 힘든 고등학생이 다채로운 변화구라니.

“변화구의 종류는?”

“커브가 대단해. 위로 크게 솟았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일종의 종(縱) 커브인데 낙차도 좋고 컨트롤도 좋고. 까다롭다는 평이야.”

“슬라이더는?”

“슬라이더는 두 구질이야. 평범하게 가로로 휘는 것과 빠르고 끝에서 살짝 휘는 것. 끝에서 살짝 휘는 슬라이더는 네 컷 페스트볼과 비슷해.”

듣고 정말 감탄했다. 프로도 아니고 고등학생이 그토록 정밀하게 변화구를 컨트롤 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구속까지 빠르면 정말 상대하기 어렵겠군.”

“다행히 공은 그리 안빨라. 128~130km 정도? 가볍게 칠 수 있는 정도지 뭐.”

“그럼 됐어. 투수한테 빠른 직구가 없으면 빛좋은 개살구지. 난 좀 잘란다. 타선은 황금사자기와 똑같이 해. 다만…….”

“다만?”

“형진이는 장타력은 있지만 어떻게 봐도 대호보다 센스가 떨어져. 대호를 5번 타자로 두고 형진이를 6번으로 바꿔. 그 외에는 동일하게.”

더 이상 한 마디도 하기 싫었다. 그 말을 끝으로 정말 죽은 듯이 곯아떨어졌다.



“아으……”

부스럭 거리는 소음에 잠이 깨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덮쳐왔다. 온 힘을 짜내 몸을 일으키려는데 온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뻐근했다.

“뭐야, 왜 이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보다 지쳐있었나보다. 목소리는 쩍쩍 갈라지고 몸 속엔 피가 하나도 없는 듯 공허했다. 몸 상태가 최악이었다.

“여기가 어디야……”

눈을 떠 보니 버스 근처에 수원구장이 보였다. 그리고 버스엔 아무도 없었다.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섰다. 따가운 햇빛에 눈을 가렸다.

“뭐야? 벌써 도착했어?”

타임리프라도 한 줄 알았다. 한 5분 잔 것 같은데 시계는 벌써 정오를 가리키고 버스는 수원 구장에 도착해 있었다.

“옴마야. 죽은 듯이 자드만 일났나 게으름뱅이야.”

태경이와 캐치볼을 하던 성래가 반겼다.

“괜히 잤나. 어째 자기 전보다 기운이 더 없네. 아윽!”

자면서 오른쪽 어깨를 뭉갰는지 뻐근했다.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부위이기 때문에 가방도 오른쪽으로 들지 않는데 중요한 순간에 이런 실수를?

살살 돌려봐도 풀릴 기미가 없었다. 또 온갖 짜증이 치솟았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몸은 피곤에 쩔어 노곤하고. 설상가상으로 어깨까지 아팠다.

“젠장. 지금 몇 번째 경기야?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지금 두번째 경기 거의 끝나 가. 9회쯤 됐을걸?”

“9회라고?”

바로 다음이 아닌가. 난 급하게 태경이와 캐치볼을 해 뻐근한 어깨를 조금 풀었다. 던져도 던져도 통증이 남는 게 어지간히 뭉친 게 아니었다.

“광진고 입장 대기하세요!”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열을 맞춰 섰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고교야구 최대의 메이저 대회, 봉황대기의 시작이었다. 열린 문 사이로 가는 터널이 섬뜩할 정도로 길어보였다.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새가슴 투수 혼자?’

잠에 취한 탓일까.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 형편없이 떨어진 구속과 컨트롤, 이틀간의 정신적인 혹사로 넝마가 되어버린 몸.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이토록 확신이 서지 않는 경기는 처음이었다. 스카우터 루이의 기대, 어머니가 떠난 미국. 교장의 압박과 광주제일고의 홍진성. 그리고 일각이 여삼추로 그라운드를 그려왔던 이 녀석들 까지.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수백번을 되새겨 생각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 태경이가 내 등을 툭 쳤다. 녀석들이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 일단 들어가자. 이 앞에 기다리는 것이 최악의 결과이든, 아니면 최고의 과실이든. 일단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잖아. 그렇게 무거운 발을 떼었다. 어두운 길을 만신창이 같은 몸으로 휘청휘청 걸어갔다.

“자, 시작이다.”


작가의말

드디어 시작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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