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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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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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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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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27,977

작성
11.11.0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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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봉황대기 29 - 봉황대기(5) 부활의 순간

DUMMY

Chapter 29


“너 이새끼 다시 한 번 말해봐!”

“왜, 왜이래?”

이렇게까지 분노한 태경이의 얼굴은 본 적도 없다. 녀석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심하게 흔들렸다.

“내가…… 내가 이 몇 달 동안 어떤 기분으로…….”

녀석의 눈에서 결국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졌다. 차마 그 모습을 바라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내가 철없이 날뛰고 무책임하게 굴어서. 너희들에게 헛된 희망만 품게 해서 미안하다…….”

“그게 무슨……!”

“나도 이기고 싶다. 하지만 알잖아! 우리 타선으로 4점은 무리야. 그리고 그 점수 차를 만든 건 내 어이없는 공이고…….”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경이의 손이 내 멱살을 쥐여 올렸다. 끌려가듯이 일어서서 그대로 밀치자 벽에 거칠게 부딪혔다.

“왜, 왜이래 태경아!”

“진정해 김태경!”

주위에서 만류했지만 이미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녀석은 울부짖듯이 외쳤다.

“내가 이 몇 달 동안 어떤 기분으로 따라갔는지 네가 알아? 토하면서도 뛰고 손이 피범벅이 되면서도 치고! 그런 너희들이 경기에 나가서 처참하게 지는 걸 보면서 우리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네가 알아? 이 고장난 허리, 병신 투수인 나!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녀석은 끝내 흐느끼고 있었다. 그런 녀석의 앞에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경기에도 나가지 못하는 나와 명원이도 있다. 아무 것도 못하는 우리들도 견디고 있다! 그런데 네 모습은 그게 뭐야. 이게 뭐야 오태오! 네가 정말 에이스의 자격이 있기는 한 거냐! 고작 이런 꼴 밖에 못 보인다면 비켜! 내가 내갈 테다!”

“태경아…….”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건 모두 핑계였던 것이다. 느려진 구속, 지쳐버린 몸, 강진철과의 불화. 결국 이런 저런 핑계들만 내세워 현실과 녀석들의 기대에서 도망가고 있었던 것이다.

“4점? 그게 뭐 대순데! 만루 홈런? 투수가 한 번쯤 맞을 수도 있지. 그런데 그깟 홈런 하나로 병신처럼 우물쭈물! 네 눈엔 우리가 고작 그 홈런 하나로 모든 걸 포기해 버릴 정도로 약해 빠진 놈들로만 보였던 거냐?”

“…….”

그랬다. 광진고 야구부가 우승하지 못한다면 패배한다는 것도 녀석들을 믿지 못해서 알려주지 못했다. 1회부터 맞은 만루 홈런이면 녀석들이 쓰러져 버릴 줄 알았다.

“대답해 오태오! 우리는 너한테 단순한 짐이었냐? 나와 팀원들은 단순히 네 뒤에 설 뿐인 벽이었냐? 아니잖아! 우리도 이곳에 야구를 하러 왔다. 네 등 뒤를 지키러 이곳에 왔다. 그리고 네가 맞던 우리가 놓치던 서로 격려해 주고 지켜주는 게 팀이잖아 이 멍청한 자식아! 짐이 아니란 말이다!"

울부짖는 녀석을 보며 내 가슴도 격동했다. 이 한심한 내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미안하다 내가 정말 바보였다. 넌 절대 벽이 아니야. 짐도 아니고.”

“그래! 아니다. 우린 벽이 아니야. 넌 고작 이정도에 쓰러질 새가슴이 아니고! 그러니까 정신 차려. 아니면 내가 나설 테다!”

그 말을 끝내고 태경이는 다시 거세게 뺨을 올려 붙였다.

짜악!

신기했다. 분명 얼얼할 정도로 아팠지만 동시에 시원했다. 그 손에 담긴 녀석의 말없는 말이 그대로 느껴졌다.

“…… 고맙다.”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차 올랐다. 신기했다. 이 전까지의 싸늘한 분위기와 가슴이 텁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태오야! 할 수 있어!”

“우린 네 짐이 아니다. 같이 역전해 보자!”

“아싸라게 거시기 해불자!”

손때 탄 태경이의 글러브를 집었다. 눈이 부셨다. 이 녀석 들의 의지, 그리고 동료라는 것. 녀석들을 보며 난 처음으로 진정 밝게 웃었다.

지금까지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것만 같았다. 방금 전 까지는 이 곳이 터널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눈 앞에 비친 그 작은 빛에 의해 여기는 터널이 되었다. 그리고 빛은 너무나도 가까이에 있었다.

“가자! 광진고!”

“다 깨부수고 오자!”

“가자아아아--!”

4, 5, 6번이 모두 범타로 물러났음에도 그라운드로 나가는 우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다.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왔다. 따뜻했다. 이제 겨울이 끝났다는 걸 알려주는 듯이.




마운드에 올랐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짜증나고 힘들었던 자리였는데도 신기하게 편안했다.

“플레이!”

5번 타자가 타석에 올라왔다. 마운드에 전해지는 위압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커 보였던 타자가 어쩐지 작아 보였다.

‘아니, 내 어깨가 펴진 탓인가?’

허리를 곧게 피고 몸에 힘을 돌렸다. 예민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펌프질 하는 심장의 고동, 그리고 그 곳에서 흘러나가는 뜨거운 피의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졌다.

‘태오야 사인은?’

‘필요 없어.’

머리는 맑아졌지만 동시에 어딘가 몽롱했다. 살짝 취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리를 올렸다. 이전과는 다른 감각이 온 몸에 피어 올랐다. 어깨의 통증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흐아압!”

쐐애액!

송곳처럼 날카로운 직구가 손 끝에서 뻗어나갔다. 터업, 하는 묵직한 소리가 들리며 미트에 꽂혔다. 타자는 내지르던 방망이를 멈춘 채 굳어 있었다.

“스트-라이크!”

‘구속은 얼마냐!’

이전까지의 느낌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볼 끝이 시커멓게 죽어 있던 방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공이었다.

“139km! 올라갔다!”

팀원 녀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아직 좀 더 부족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움츠리고 있었지? 어깨를 이렇게나 안 쓰고 있었던가?’

어깨의 통증이 사라지고 몸의 기운이 차오르니 비로소 느껴졌다. 겁에 질려 움츠리고 있었으니 제대로 된 공이 나올 수가 없었지!

“흐으읍!”

이번엔 진짜였다. 들어올려서 뒤로 당긴 다리를 부채꼴로 펼치며 땅을 짚는다. 그리고 다리에서 올라온 힘을 허리로 돌리고, 그 힘을 어깨로 전달해 마지막 손끝까지!

쐐애애액!

터어업!

달궈진 대기를 가르며 질풍처럼 쏘아진 공이 미트에 꽂혔다. 공 주위로 잔풍이 일고 세찬 힘이 용솟음 쳤다.

타자는 감히 그 공에 배트를 댈 생각조차 못했다. 공을 던지고 맑은 공기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몸에 기운이 넘쳤다. 지금까지 흘러나가던 힘이 모조리 되돌아온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아아! 다 죽었어!”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고 마치 포효하듯이 외쳤다! 전광판엔 최고 구속 144km가 찍혔다. 이제 진짜 시작이었다.

“멋있다 오태오!”

“이제 시작이다!”

투지가 끓어오르다 못해 흘러 넘쳤다. 내 기세에 압도된 탓인지 타자는 겁에 질려 있었다.

“간다!”

쐐애애액!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살아난 볼 끝, 살아난 파워! 이미 응암고 따위로서는 칠 수도 없었다.

부웅!

힘껏 내지른 방망이가 허공만을 갈랐다. 타자는 허망한 표정으로 몇 박자나 빨리 쏘아진 공을 바라보았다.

“스트럭 아웃!”

이번 대회 처음으로 뽑아낸 삼진이었다! 그 삼진과 함께 잃어버렸던 중요한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 자신감이 흘렀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이제부터 다 죽었다!”

공이 완전히 되살아난 이후, 144km를 상회하는 막강한 직구가 펑펑 꽂히자 타자들은 손도 대지 못했다. 5번 과 6번 타자는 모조리 삼구 삼진! 7번에게는 발을 헛디뎌 공이 허벅지를 스쳐 출루를 허용했다.

“앗차차.”

분위기고 몸이고 끝 모르고 달아오르니 제어가 안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8번 타자에겐 초구 한가운데에 직구를 꽂아넣었다.

“스트라이크!”

그리고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시 와인드업 했다. 던지는 공은 오로지 직구! 다른 공은 필요도 없었다. 이 최고의 직구 하나면 충분했다!

“흐읍!”

8번 타자의 방망이가 쇄도하는 공과 맞닿았다. 하지만 기대했던 안타는 없었다.

콰직!

공과 맞닿은 배트가 터지듯이 박살 나며 사방으로 나무 파편을 쏘아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쾌감이었다. 삼진을 잡는 것과 배트를 박살내는 것 만큼 투수에게 짜릿한 순간도 없었다.

“얌전히 삼진이나 당해라!”

8번 타자는 배트가 박살나자 완전히 겁을 먹었다. 새 배트를 들고 왔지만 아까보다 스윙이 어정쩡했다. 배트는 공에 채 스치지도 못했다.

“스트럭 아웃! 체인지!”

“우와아아아아!”

“최고다 오태오!”

비록 4:0으로 뒤진 7회 말 이었지만 그때만큼은 우리 모두 정신 없이 마운드에서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누더기 팀 광진고의 부활과 반격을 알리는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


작가의말

드디어 부활했습니다. 손꼽아 기다려왔던 편을 쓰니까 후련하네요 ㅎㅎ 아참. 그리고 어제 밤11시에 올리고 오늘 오후 1시에 올렸으니 연참은 아니지만 2연참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
3연참은 힘들겠지만 되도록 빠르게 쭉쭉 쓰겠슴다. 이제 다크 태오에서 벗어났으니 좀더 즐겁게 쓸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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