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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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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조회수 :
326,415
추천수 :
1,751
글자수 :
427,977

작성
11.11.17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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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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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0쪽

봉황대기 35 - 우승이 먼 이유

DUMMY

Chapter 35


약간의 헤프닝이 있었지만 훈련은 여지없이 시작됐다. 다들 날 위해선지 아침의 이야기에 대해 내색하지 않고 있었……을리는 물론 없었다. 이 놈들이 그렇게 섬세한 녀석들이 아니지.

“우웨엑!”

“웨엑! 내, 내 아침이…….”

누렇게 뜬 얼굴로 배팅 머신의 공을 치던 녀석들이 하나둘 씩 주저앉았다. 현재 시각 오후 2시. 끝 모르고 치솟는 기온에 휴식 없는 무식한 강행군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거기! 쉬지 말고 치란 말야! 하위타선 3인방, 너넨 죽었어!”

사실 내 얘기에 대해 입을 열 시간도 없었다. 부실로 들이닥쳐 아침부터 지금까지 들들 볶아 냈으니 말은 고사하고 숨 쉬는 게 고작이었다.

“쉬는 시간은 줘야지 이 악마 같은 자식아…….”

“이 멍청아! 악마한테 그 무슨 실례야! 악마한테 사과해!”

여기저기서 악담이 난무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6시간 가까이 휴식 없이 오로지 공격 훈련만을 시키고 있었다.

타격은 가만히 서서 치는 게 겉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날아오는 공의 반발력을 온 몸을 이용해 쳐 내야 하는 것이 타격이다. 10개 정도는 쉽사리 칠 수 있어도 100, 200단위가 넘어가면 암만 체력이 좋아도 숨이 차고 손이 얼얼해 진다.

“하위타선 3인방은 배팅 100개 추가. 늬들은 주욱었어. 셋이 합쳐 0안타? 오늘 한 번 말라 죽을 때까지 쳐 봐라!”

“살인마-!!”

무슨 소리를 해도 이미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김석곤 이석진 황기철 트리오는 눈물 섞인 땀을 흘리며 방망이를 휘둘렀다.

현재 모든 인력을 풀 가동해 공격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강진철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런닝을, 최대호와 김성래는 내가 던지는 공을 쳤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은 오로지 타격, 타격 타격! 2교대로 돌아가며 공 줍는 체력까지 아껴서 치고 있었다.

"태오야-! 나 혼자 하기엔 너무 많이 날아와!"

물론 공 줍기는 태경이의 몫이었다. 녀석이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전해졌지만 역시나 귓등으로 흘렸다.

“투수, 빨리 던져 줘!”

그나마 성래나 대호는 형편이 나았다. 시합 직후였기 때문에 어깨도 결리고 아무튼 전력으로 던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간다!”

캐치볼이나 쿨 다운한다는 기분으로 부드럽게 공을 뿌렸다. 아직도 타격이 서툰 성래에게는 조금씩 휘어지는 구질을 던졌다. 이를테면 체인지업이나 요 근래 완성한 싱커. 성래는 서툴지만 꾸준히 나아지고 있었다.

따악!

“어라 제법?”

타구가 라인에 딱 붙어 예리하게 뻗었다. 처음에는 휘어지는 공에 맥을 못 췄지만 지금은 제법 폼이 날카롭게 다듬어졌다. 콤펙트하게 친다는 의미를 감각으로 체득한 것이다.

‘1번 타자의 역할은 출루. 장타는 필요 없어. 그런 의미에서 콤펙트한 단타는 성래에게 있어 최고의 안타지.’

타구가 점점 좋은 코스로 날았다. 성래는 이전 시합에서 에러를 포함 유일하게 두 번 출루했다. 그만큼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좋아, 다음 대호!”

성래에게 휘어지는 공을 던졌다면 대호에겐 단연코 직구였다. 저번 시합에서도 그 소심한 성격과 직구에 대한 미숙함에 눌려 제 실력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제 실력이었다면 이전훈을 상대로 안타 두 개는 더 뺏어냈을 테지.

부드럽게 와인드업 해 외곽 쪽으로 던졌다. 살짝 벗어나는 코스였다.

따아악!

하지만 대호의 방망이가 무겁고도 세차게 날았다. 외곽 쪽에 걸친 공이 배트 끝에 잡혔다.

“우왓!”

총알 같은 타구가 운동장 저 멀리까지 뻗어나갔다. 대호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다시 자세를 취했다. 예전에 없던 자신감이 차분하게 녀석의 주위를 감쌌다.

‘이 녀석은 이미 각성했다.’

9회 초, 대호가 날린 그 3점 홈런은 드디어 막혀 있던 댐을 허물어버렸다. 그리고 댐에 막혀있던 재능은 생각보다도 거대했다.

이정도 일 줄은 미처 몰랐다. 폭발하듯이 쏟아져 나온 홍수 같은 재능이 사방으로 끝도 모르고 뻗어나가고 있었다.

따아악!

다시 한 번 타구가 날았다. 이번엔 운동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대형 홈런이었다.

‘완전히 기폭제로 작용했군. 이미 이 녀석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지금의 최대호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공을 던져줄 투수와 칠 배트 뿐. 코치도 감독도 필요 없었다. 번뜩이는 천재의 자질이 녀석에게서 선명하게 보였다.

“이거 정말 제법……?”

감탄한 것은 대호 뿐 만이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그랬다. 어느새 형진이는 변화구에도 당황하지 않게 됐고 김석곤 등은 지친 와중에도 공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이명원은 구슬땀을 흘리며 번트를 연습하고 있었고 2번 타자 명호는 형이 보지 않는 곳에서 머신의 공을 뻥뻥 날리고 있었다.

‘이 녀석들. 정말 그 옛날의 한심했던 녀석들이 맞나?’

다들 어느새 한참 앞으로 나아가 있었다. 언젠가 주전이 될 날만을 꿈꾸며 묵묵히 기다려온 녀석들의 흔적. 그 땀냄새 나는 눈물 자국이 이 녀석들의 등을 떠밀었다.

“으리앗!”

따악!

“우웩!”

따악!

토 하면서도 배트를 놓지 않았다. 이 요령 없고 재능 없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왜 일까. 눈이 부셨다. 고작 한 고비 넘겼을 뿐인데 녀석들의 등이 듬직해져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아직 강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성장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을.

“다음 경기는 재미있어 지겠는데?”



“으으……. 삭신이 다 쑤시네. 이러다가 정말 제 명이 못 죽겠어.”

“엄살 부리지 말어 이 녀석아.”

“엄사알?”

투덜거리던 태경이의 눈이 희번뜩 까뒤집어 졌다. 녀석이 얼굴 근육을 푸들푸들 떨며 말했다.

“너 진짜 죽어 볼래! 일곱 명이 번갈아 가면서 치는데 나 혼자 어떻게 다 받으란 말이야!”

“미, 미안. 그리고 무서우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라.”

구겨진 녀석의 얼굴이 마치 흉신 악귀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이 녀석은 곱상하게 생겨가지고 가끔 보면 섬뜩할 때가 있다.

훈련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다들 그 시간쯤 되면 다 죽어가는 꼴로 골골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꼴도 뭐 비슷했고.

“봉황대기 대진표는 어때? 그저께 경기한 우리가 셋째 날이었으니까 슬슬 오늘쯤 끝났을 텐데.”

이런 정보 수집들은 태경이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태경인 이 학교 저 학교 모르는 놈이 없을 정도로 발이 넓은 녀석이었다.

“어디 보자…….”

녀석이 대진표를 꺼내 들었다. 우리가 경기한 것이 7월 30일, 그리고 오늘이 8월 1일로 1회전의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 상대는 연진공고로 정해졌네. 우와…… 11회 말에 9대8로 끝내기 승리! 제법 화려하게 엎치락 뒷치락 했나보네.”

“다른 정보들은 없어? 투수라던가 타선이라던가.”

“있을걸. 잠깐…… 어? 연진공고 에이스 박태수는 3회 말 타구에 맞아서 손가락 부상. 2선발도 1루 베이스 커버 중에 주자와 부딪혀서 발목 골절로 강판…… 구원 투수가 11회까지 던져서 승리 했다는데?”

그 말에 나와 형진이 모두 혀를 내둘렀다. 그 정도면 정말 대단한 접전이었다.

“화려하게 이긴 뒤라서 기세가 올라 있을까, 아니면 연이은 부상에 힘이 빠져 있을까. 어찌 됐든 희소식 같구만.”

“거기서 이기면 다음 상대는 어디지?”

“음……. 2회전에서 우리 바로 옆 블록이, 우와! 홍해고랑 백상고네? 여기도 접전이 되겠다.”

역시 3회전으로 가면 슬슬 명문과 강호들이 입맛을 다시면서 기다리고 있다. 두 팀 다 1회전 수준의 응암고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강팀이었다.

“3년 전 왕좌에 올랐던 홍해고와 떠오르는 신진 강호 백상고라. 볼거리로군.”

홍해고는 광주제일고에 백일현이 들어오기 전, 전국을 주무르던 최강의 팀이었다. 감히 광주제일고조차 건드리지 못하던 강팀 이었는데 백일현이 들어오면서 상황이 역전되어 버렸다.

고교 최강 투수 백일현의 등장에 황금 세대들의 졸업, 유망주들의 부진. 홍해고의 천하는 한 순간에 끝나 버렸다.

‘최근 부진을 겪고 있는 홍해고와 기세가 오르는 백상고라. 둘이 붙는다면 아무래도 백상고에 무게를 둬야겠군.'

새 감독을 영입한 백상고의 기세가 들불처럼 거셌다. 저번 황금사자기에서 대명고조차 꺾어버리고 올라가질 않았던가.

“광주제일고는?”

“광주제일고는 5회 콜드로 이겼어. 상대 팀은 무명 팀이야. 불쌍하게도 엄청 짓밟혔나 봐. 그리고 정작 에이스 백일현은 나오지도 않았구."

“무서운 녀석들…….”

당장 프로 2군 팀으로 가도 별 손색이 없을 만한 녀석들이 아닌가. 이미 고교 수준을 넘어도 한참 넘은 팀이었다.

“아, 아니 잠깐만. 이 대진표…….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가면…….”

태경이의 당황한 말이 더 흘러나오기 전에 입을 틀어막았다. 녀석이 읍읍, 괴성을 질렀다.

“설마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 멍청한 녀석.”

“그동안 정신 없어서 잊고 있었지! 하지만 이 대진표 대로라면 우승은…….”

“말하지 마라 더 이상. 그리고 녀석들에게도 절대 대진표 보지 말고 그냥 연습이나 열심히 하라고 해.”

“태오야!”

녀석의 부름을 뒤로하고 녹초가 된 다리를 빨리 놀렸다. 몇 걸음 걷지도 못해 숨이 헐떡거려졌다.

한국에서 약소한 신인 팀이 대회에서 절대로 우승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하나, 신생 팀과 명문의 차이는 프로와 아마추어만큼 크다.

둘, 로테이션 가능한 선수의 수와 질이 다르다.

셋. 결승전은 준결승전 다음 날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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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19 보초
    작성일
    11.11.17 23:23
    No. 1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만취in이슬
    작성일
    11.11.18 02:14
    No. 2

    좋은 글 감사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월충전설
    작성일
    11.11.18 09:35
    No. 3

    뭔진 몰라도... 최강이랑 붙었군요. 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4 귄아
    작성일
    11.11.18 12:10
    No. 4

    렙업했네요 ㅋ 잘보고갑니당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9 은깨비
    작성일
    11.11.20 00:20
    No. 5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ㅎㅎ
    대진표는 좀더 쉽게 설명을 해 볼까 합니다. 그림도 없는 글에 괜시리 설명만 어려우면 머리 복잡해 져서...... 간소화를 목적으로 두고 있습니다.

    댓글로 잠깐 설명을 하자면 광진고는 이제 연진공고랑 경기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옆에선 백상고랑 홍해가 싸워서 각각 이기는 사람끼리 경기를 하는 거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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