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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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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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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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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27,977

작성
11.12.1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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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봉황대기 45 - VS 백상고 (5) 더이상 못 참아

DUMMY

Chapter 45


유준성은 제법 여유로운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초반에 2점을 빼앗기긴 했지만 막강한 화력으로 즉시 역전. 투수로써 힘이 불끈 솟는 상황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평소대로 받고 평소대로 처리하면 이긴다!”

“백상고 파이팅!”

게다가 3학년의 노련함까지 보여주며 팀을 휘어잡고 있었다. 반면에 타석에 나선 김석곤은 긴장하는 게 여기까지 보일 정도였다.

“저놈 저거 왜 저렇게 떨어?”

“글쎄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김석곤과 하위 타선 일동은 일각이 여삼추로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고 한다. 단 하나의 안타조차 치지 못했던 것이 어지간히 수치스러웠던 것이다.

8번 이석진 9번 황기철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든 이번 시합에 1안타! 녀석들의 소박한 목표였다.

“플레이!”

심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준성이 와인드업 했다. 순식간에 몸을 앞으로 던지며 채찍 같은 팔에서 공이 쏘아졌다.

쐐애액!

녀석이 자랑하는 투심이 스트라이크 존 하단에 꽂혔다. 김석곤은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풀 스윙을 했지만 스치지도 않았다.

“우왓!”

게다가 어찌나 힘을 주셨는지 스윙의 여파로 다리를 꼬며 타석에 풀썩 주저앉았다.

“…….”

“…….”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솔직히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항상 풀 스윙을 할 정도로 기운 넘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스윙이 너무 조잡했다.

“뭐 하는 거야 김석곤! 겨드랑이 붙이고 짧게 잡아서 쳐! 장타 의식하지 말고 팀 배팅으로 가란 말이야.”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다음 공 역시 스트라이크 존에 꽂히는 투심 이었지만 또다시 힘찬 스윙이 그 위를 갈랐다.

“글렀다 저건. 못 치겠어.”

유준성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와인드업 했다. 이미 만만한 상대에게 볼을 필요 없었다. 채찍 같은 팔에서 쏘아진 꿈틀거리는 투심이 존 하단에 내리꽂혔다!

하지만 김석곤은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았다. 공이 던져지는 순간 배트를 양 손으로 쥐고 침착하게 공에 맞췄다.

투웅!

“버, 번트!”

그때만큼은 튼실하기로 이름 높은 백상고 내야도 주춤했다. 난 무조건 풀 스윙이다! 를 외치며 붕붕 휘두르던 김석곤의, 그것도 투 스트라이크에서의 번트는 그만큼 의외였던 것이다.

"잡아!”

농락당했다고 생각했을까, 좀 화가 치민 유준성이 소리치자 3루수가 맹렬하게 대쉬했다. 베이스엔 1루수 양인호가 지키고 있는 상태! 3루수는 줍자 마자 다이렉트로 송구했다.

“어? 김석곤 숙여!”

코스를 벗어난 공이 김석곤의 머리통에 맞았다. 타자 헬멧에 맞은 공이 파울 라인 너머로 튕겼다.

“찬스다. 2루로 달려!”

그 한마디에 김석곤은 불 붙은 야생마처럼 내달렸다. 어찌나 기세가 흉흉했는지 백상고 2루수가 슬쩍 길을 비켰다.

쿠우웅!

이건 슬라이딩도 아니었고 그냥 덮치기였다. 흙범벅이 된 김석곤이 일어서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이게 바로 나다!”

그러자 같은 하위타선 트리오 이석진 황기철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손을 들어올렸다. 거기에 동조하자, 마치 삼류 야구만화에 나오는 어설픈 감동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최고다 김석곤…… 너 임마!"

"하위타선의 자존심!"

'그만해라…….'

홈런이나 장타도 아니고 번트 안타 하나로 눈물까지 글썽대니 보는 내가 다 부끄러웠다. 아무튼 김석곤은 2루에 안착했고 타석엔 이석진이 섰다.

“차하압!”

기운차게 소리치며 날 바라봤지만 안타깝게도 사인은 번트였다.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귓볼을 만지자 이석진은 잔뜩 풀이 죽어버렸다.

“저 자식이 꼭 저렇게 티를 내고 있어. 들켜서 병살이라도 당하면 어쩔 거야?”

“설마 1, 3루 병살을 당하겠냐. 실수해도 선행 주자가 잡히는 것 정도겠지.”

그런 걱정도 기우였다. 유준성은 이석진이 만만했는지 매서운 공을 펑펑 던져댔다. 이석진으로써는 반가운 상황이었다. 1-2의 배팅 카운트에서 존으로 들어오는 투심에 살짝 배트를 갔다 대자 공이 3루 쪽으로 굴렀다.

“침착하게 1루로 송구해.”

“아웃!”

1루수 양인호가 안정적으로 잡고 베이스를 밟자 이석진이 헤실헤실 웃으며 벤치로 들어왔다. 다음은 황기철이었다.

“잘해, 긴장하지 말고!”

“으, 응. 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황기철은 굳게 다짐하며 나섰지만 녀석에게는 무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황기철도 그걸 알고 있었다. 녀석은 처음부터 안타를 칠 생각이 없었다.

따악!

높에 뜬 공이 외야로 날았다. 백상고 외야수가 여유롭게 처리하며 김석곤이 홈으로 들어왔다.

“첫 번째 득점!”

석곤이가 들어오고 성래가 타석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하지만 유준성은 오히려 호전적인 기세를 피워 올렸다.

“차합!”

매서운 투심에 강력한 파워 커브. 성래는 끈질기게 버텼지만 존 근처에서 떨어지는 포크에만은 무리였다. 성래는 분한 얼굴로 물러서며 2회 초가 끝이 났다.

"하위타선 멋졌다! 그리고 이제 동점이다. 이번에 잘 틀어막고 다음 회에 역전하자!"

어깨를 붕붕 돌리며 나서자 녀석들이 환호했다. 한창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지금껏 단 하나의 안타도 치지 못했던 하위타선에서의 첫 안타와 득점! 이런 불타오르는 전개에서 에이스인 내가 물을 끼얹을 순 없었다.

'백상고는 벌써 준비 끝인가?'

또다시 동점이 되자 백상고도 제법 몸이 달았는지 경쟁적으로 타석에 섰다. 마운드에 오르자 타석에 선 8번 타자가 투구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미 스피디한 전개가 되고 있어. 여기서 괜히 꾸물거리다가는 오히려 분위기가 죽지. 한 번 맞춰 주는 게 좋겠다.’

이게 내 생각이었고 형진이의 생각도 같았다. 배터리 간에 눈빛이 통하자 그 뒤로는 속전 속결이었다.

“차합!”

아무래도 오늘은 직구 보다는 커터! 날카로운 커터가 연이어 날았다. 8번 타자는 두 번 다 헛스윙. 그리고 마지막 체인지 업이 대미를 장식하며 존 안으로 들어갔다.

“합!”

짧은 기합성, 타자의 콤팩트한 스윙이 일점에 힘을 모아 체인지 업을 후려쳤다.

“뭐, 뭐야? 성래 잡아!”

체인지 업만큼 맞았을 때 장타가 나오기 쉬운 구질도 없다. 워낙에 크고 좋은 타구였지만 질풍처럼 내달린 성래가 외야 뒷 편에서 달려오며 공을 잡고 2루로 송구했다. 타자는 1루에서 멈췄다.

“이 빌어먹을 것들이 날 농락하나? 아니 아까는 거들떠도 안 보더니 갑자기 왜?”

하지만 형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우연이라는 뜻이었다. 9번 타자가 타석에 서자 8번 타자가 제법 크게 리드(주자가 베이스에서 떨어져 다음 베이스로 달리기 위해 몇 걸음 나오는 동작)했다.

‘뭐야? 도루인가?’

백상고는 도루로도 유명했다. 전략적인 방망이와 발을 아주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학교였던 것이다.

“웃차!”

기습적으로 1루에 견제구를 넣어 봤지만 타자는 능숙했다.

그 한 동작으로도 충분히 알았다. 고작 이런 견제로 잡힐 만한 어설픈 놈이 아니었다.

그리고 견제구 한 번을 보자 주자가 더 크게 리드 했다. 이번엔 정말 잡힐 듯한 거리였다. 순간 오기가 치솟아 다시 한번 견제구를 던졌다.

“보크, 보크!”

“뭐?”

공을 던지는 순간 심판이 팔을 휘저으며 보크를 선언했다. 1루 주자가 희희낙락하며 2루로 걸어갔다.

“아니 이게 왜 보크입니까!”

“투수판을 밟은 상태에서 발을 1루로 다 향하지 않고 견제했으므로 보크다!”

“그게 무슨!”

울컥 해서 소리치려는데 형진이의 손이 입을 틀어막았다.

“태오야 제발! 여기서 심판이랑 싸우다가 퇴장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구!”

“……젠장!”

아무리 봐도 억지였다. 제법 많은 종류가 있지만 보크는 일단 타자를 우롱하는 행위다. 설명이 어렵긴 한데 간단히 말하면, 투구 하는 척 하다 몸도 다 안 돌리고 슬쩍 1루로 던지면 보크가 선언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건 아니야. 왼 발이 정확히 1루를 향했는데 이게 어떻게 보크야!’

“에잇 젠장!”

울화가 치밀었다. 손에 잡힌 체인지 업을 존 하단의 볼 코스로 찔러 넣었다. 제길, 제구가 되질 않았다. 너무 어설픈 코스로 공이 들어갔다!

“흐읍!”

하지만 배트가 움직였다. 분명 볼로 빠지는 체인지 업 이었는데도 타자가 정확히 공을 당겨 쳤다. 내야에 바운드 된 공이 3루로 뻗었다.

“잡아 강진철!”

녀석이 특유의 긴 팔을 뻗어 옆으로 빠지려는 공을 낚아 챘다. 2루에 있던 주자는 그대로 묶여 움직이지 않았고 타자만이 1루로 돌진했다.

“늦는다!”

강진철이 아무리 송구가 좋다지만 타구를 잡느라 한 바퀴를 돈 상태였다. 제대로 된 타이밍이 나올 수가 없었다.

“세이프!”

“썩을! 무사 1, 2루잖아!”

그리고 이건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아니 1회 까지는 그렇게 줘도 안 치더만 이번엔 볼 코스로 한참 빠지는 체인지 업을 쳐?

“설마! 이것 또한 작전이었나.”

그러니까 한마디로 백상고는 2중 작전을 짰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 백상고 감독 한철도를 바라보니 무미건조하게 웃고 있었다.

“백상고는 정말 체인지 업을 공략해 왔어. 그리고 괜히 안 치는 척 하다가 들통 나니까 즉시 작전을 바꾼 거야."

대체 어디까지 농락할 셈이냐. 내가 정말 10년 동안 야구를 해 왔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사람을 엿 먹이는 경기는 처음이었다. 속이 끊어질 것처럼 아파왔다.

"후우...... 진정하자. 아직 게임 중이야. 열 받았으면 그대로 갚아주면 돼."

내가 투수판을 밟자 타자들이 리드를 크게 벌렸다. 치는 순간 달리려는 수작이었다. 땀방울이 흘러내려 언더 셔츠를 적셨다. 전략적으로 덤벼온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정도 일 줄이야…….

“그리고 다시 1번 타자라.”

머리 속이 복잡했지만 다시 숨을 들이쉬고 온 몸에서 힘을 끌어올렸다. 아직 초반,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다. 난 오태오다!

“차합!”

체중을 한껏 실은 묵직한 직구가 날았다. 스트라이크 낮은 곳의 예리한 코스! 하지만 타자는 치지 않았다. 칠 생각도 없었다. 또다시 심판이 팔을 들어올렸다.

“보크!”

뭐……?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다리가 덜덜 떨리고 정신이 흐려졌다.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답답한 가슴,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서 영혼의 조각들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하하하!”

주자가 크게 웃으며 다시 원 베이스씩 진루했다. 무사 2,3루. 팔이 굳어졌지만 난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글러브를 빼 집어 던지고 심판에게로 걸어갔다.

“태, 태오야!”

이글이글 타오르는 내 가슴만큼이나 눈에서 죽일듯한 안광이 쏟아졌다. 난 소리 없이 포효하며 심판의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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