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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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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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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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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977

작성
11.11.11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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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봉황대기 31 - 봉황대기(7) 스타의 자질

DUMMY

Chapter 31


“에이이이잇!”

날아오는 커브, 궁지에 몰린 팀. 그 상황에서 드디어 명호의 배트가 용트림하며 날았다.

처음으로 본 이명호의 진짜 스윙은 진정 대단한 것이었다. 녀석이 배트를 휘두르는 순간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며 주위가 요동쳤다.

따아아악!

“쳤다! 안타다!”

“장타다, 믿기 힘들 정도로 뻗는 군.”

형진이의 말 그대로였다. 스트라이크 존 아래로 깊숙이 떨어지는 커브를 저렇게까지 멀리 보내기란 지난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계점까지 당겨 친 커브는 그야말로 쭉쭉 뻗었다. 무섭게 날아가던 공이 펜스 하단에 맞고 그라운드로 떨어졌다.

“달려! 초대형 안타다, 무조건 홈으로 들어와.”

성래는 이미 치는 순간 스타트를 끊었다. 발 아래에서 모래폭풍을 일으키며 질주한 성래는 채 상대가 볼을 잡기도 전에 3루를 찍고 홈으론 내달렸다. 안타의 주인공 명호 역시 빠른 속도로 돌았다.

“중계 빨리! 3루로 중계해!”

이전훈의 다급한 음성이 울렸다. 하지만 명호도 발이라면 누구 못지 않았다.

“홈인!”

그때 성래가 홈을 밟았다. 황금사자기 봉황대기를 통틀어 광진고의 첫 득점이었다. 응암고는 애초부터 3루로 공을 돌려 막으려고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명호가 3루에 안착했다.

“3루타. 좋아, 바로 이 기세다!”

“완봉까지 날아갔군. 완전히 열 받겠어 이전훈.”

그 말대로 이전훈은 급기야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노히트 노런, 그 대기록이 눈앞에 있었는데 9회에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지다니.

“으아아아아아!”

문자 그대로 포효하며 이전훈은 공을 쥐었다. 그 기세만큼은 분명 살벌했지만 타석에 들어선 난 코웃음을 쳤다. 이성을 잃은 투수 따위 두렵지도 않았다.

‘제구력으로 승부하던 투수가 평정심을 잃으면 웃음거리도 못 되지.’

이전훈의 커브가 성난 파도처럼 다가왔지만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한참 빠진 코스였다.

“볼!”

‘이전훈이 흔들린다.’

지금이 바로 최대의 찬스였다. 투수가 흔들릴 때야말로 대량실점이 나온다. 특히 저 녀석처럼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투수가 흔들리면 끝장이다.

“치잇!”

녀석의 슬라이더가 날아와 존 근처에서 휘었다. 하지만 예전 같은 날카로움이 없었다.

“볼!”

심판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전훈의 얼굴에 다시 분노가 도졌다. 포수가 필사적으로 외쳤지만 이미 녀석은 걷잡을 수 없는 불이 붙어버렸다. 급기야 포수의 사인조차 무시한 채 이전훈이 전력으로 직구를 던졋다!

“기다렸다 이 직구!”

쐐액 하며 곧은 직구가 만만한 코스로 들어왔다. 바로 이걸 기다리고 있었다.

따아악!

가볍게 휘두른 것 같지만 실상 배트에 실린 힘은 묵직했다. 그 배트 끝에 걸리자 타구가 크게 뻗었다. 볼 것도 없이 안타! 좌중간을 커다랗게 양분한 타구가 잔디 위를 굴렀다.

“나이스 태오! 흐름에 탔다!”

녀석들에게 주먹을 들어 보였다. 안타 뒤의 쾌감이 뒤늦게 밀려왔다. 손에 남는 그 짜릿한 감각을 느끼며 다이아몬드를 돌았다. 그 사이 명호는 설설 뛰어 홈인했고 난 2루에 멈춰 섰다.

‘생각했던 것 보다 커다란 타구였어. 그냥 부드럽게 당겨 쳤는데 어떻게 이렇게 크게 맞앗지?'

내려다 본 손에는 아직까지도 그 감각이 남아있었다. 실은 이전훈의 직구는 처음 봤을 때 부터 노리고 있었다. 분명 날카로운 코스를 노리고 오지만 실상은 130km이하의 느린 볼에 무엇보다 각도가 없었다.

‘나보다 10cm는 작은 이전훈에게 위협적인 각도가 나올 리 없지. 그 동안 변화구로 속여왔지만 역시 그랬어.’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큰 투수는 확실히 위협적이다. 릴리스 포인트(공을 놓는 지점.)도 보다 앞에 나와 있고 무엇보다 공을 던질 때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려온다.

‘각도 있는 공은 플라이가 나오기 쉽지만 저렇게 똑바로 들어오는 직구는 장타를 맞기 쉽지. 결국 이 장타는 그것 때문이군.'

어찌 되었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무사 2루 그리고 타석에는 대망의 4번 타자. 하지만 이전훈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강진철은 지금까지 무려 3삼진이었던 것이다.

“만만한 4번 타자 등장이군. 쉬어 갈 수 있어 다행이겠어."

이전훈의 입에서 뒤틀린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걸 뒤에서 듣고 있는 나는 기가 막혔다.

‘너 속고 있어 임마.’

강진철의 저 태평한 얼굴 속에 얼마나 교활한 여우가 숨어 있는데 그런 말을.

이전훈은 강진철에게 즉시 초구를 던졌다. 안심한 탓일까. 지금까지 보다 공 끝도 살아 있고 제구도 잘 된 직구였다.

“스트라이크!”

멋들어진 코스로 공이 들어오자 심판이 즉시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강진철의 배트가 또다시 미동도 않자 이전훈의 기세는 더욱 올라갔다. 다시 날카로운 커터가 강진철에게 날았다. 녀석이 1회에서 놓친 그 커터였다.

“쳇.”

녀석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그리고 부드럽게 휘둘러진 녀석의 배트는 더없이 깔끔한 궤적을 그리며 공을 후려쳤다.

따악, 타격음이 올리며 공이 중견수 앞으로 떨어졌다.

“야! 좀 더 세게 칠 수 있었잖아!’

“시끄러. 어쨌든 안타는 쳤잖아.”

타구가 정말 딱 안타가 될 정도로만 뻗었다.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가장 이상적이고 깔끔한 안타여서 나도 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3루에서 멈춰 섰다.

‘저놈 자식……. 노렸구나.’

눈치가 빠른 녀석이었다. 사실 이번에 강진철은 득점이 아니라 그냥 루를 채워주기만 해도 되었다. 작전의 핵심은 강진철이 아니라 최대호 였으니까.

그 말을 듣기라도 한 양 대호가 얼굴에 수줍음을 띄며 타석으로 들어섰다. 헌데 묘하게도 부끄럼을 타는 녀석의 모습이 어쩐지 무척 당당해 보였다.

“녀석이야말로 최고의 원석이다. 자질만이라면 아마 강진철도 뛰어넘을 거야.”

이번 시합, 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처음엔 그저 우연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잠깐, 내가 잠깐 눈을 돌린 사이에 대호는 놀랄 만큼 성장해 있었다.

무엇보다 이 경기, 한 타석이 지날 때 마다 늘어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풀 카운트가 되도록 버티고 파울 홈런도 몇 개나 쳤지. 분명해. 녀석의 안을 꽉 눌러막고 있던 댐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거야.’

왜 저만한 녀석이 저토록 소심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혹시 천성일 수도 있지.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그 약한 가슴을 뛰어넘고 날아오를 때였다.

“전훈아, 힘 내서 가자! 이제 9회야. 아웃 카운트 세 개면 경기는 끝이다.”

포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전훈이 심호흡했다. 갈 데 없이 달아오르던 기세가 진정됐다.

터업!

다시 안정을 찾은 이전훈의 직구가 매섭게 날아와 꽂혔다. 스트라이크였다. 그때 대호의 눈이 나를 향했다. 녀석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다.’

대호 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배트를 고쳐쥐고 이전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둘 사이에서 찌릿한 전류가 흘렀다.

기백과 경험, 패기와 투지가 저 둘 사이에서 맞붙고 있었다.

“흐읍!”

위기 상황에서야 말로 투수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전훈은 그런 점에서 좋은 투수였다. 한계점에 몰리자 공이 한 층 더 묵직해졌다. 표독스럽기까지 한 직구가 멋진 아웃 코스로 들어왔다.

“스트라이크!”

또 다시 주심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발이 얼어붙었다.

“대호야 제발, 쳐줘!”

“할 수 있다 최대호!”

찌는 듯한 태양 아래, 응원과 압박의 기류 속에서 녀석은 혼자 고요하게 서 있었다. 이전훈이 다시 슬라이더를 뿌린 상황에서도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안돼 쳐야 돼!”

슬라이더가 미묘한 곳을 찌르고 들어왔다. 저건 무조건 커트해 내야 하는 공이다! 하지만 대호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이전훈의 입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운명의 공이 미트에 안착했다.

“스트라이크다!”

“무슨 소리 볼이다!”

양 진영에서 악다구니에 가까운 아우성이 오고갔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던 심판이 소심하게 고개를 저었다.

“볼!”

“휴우…… 다행이다.”

당장이라도 대호가 치면 달려나가야 하는데 몸에 힘이 쪽 빠지는 기분이었다.

‘네 뒤는 하위타선이다. 알잖아 대호야. 네가 못 치면 광진은 끝이다. 더 이상 저 공을 때려낼 타자가 없어…….’

나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빌었다. 무교인 나에게도 가끔 이름 모를 신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만큼 절박했다.

“마지막이다!”

이전훈이 힘찬 기합과 함께 공을 뿌렸다. 녀석의 공이 하늘로 날았다.

그때 잠시 대호가 날 바라보았다. 그때 분명이 보였다. 이 급박한 상황, 물러설 수 없는 승부의 장에서 녀석이 웃고 있었다.


‘이전훈이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커브를 던질 확률은 90%를 넘어. 그 확률에 걸어보자, 커브 킬러.’

‘저, 정말 커브를 던질까? 혹시라도 다른 공이 온다면…….’


그 말에 미처 대답을 해 주지 못한 채 그라운드로 나왔다. 그리고 눈을 돌린 대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전훈의 공이 날아오르는 새처럼 떠오르다 땅 밑으로 쑤욱 떨어져내렸다.

누군가는 승리를 확신하고 누군가는 절망에 낙담하였을 그 짧은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살며시 미소 짓던 대호의 방망이가 빛살처럼 날았다. 배트의 정 중앙엔 볼이 걸려 있었다.

콰아앙!

마치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그라운드를 메웠다. 녀석이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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