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 하얀 재가 되어버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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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멍청한 자식!!!”
쾅!!!
원륭의 주먹이 강호육을 갈겼다. 강호육은 그걸 피하지 않았다. 강호육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주륵!!!
“호오, 상당한 공격력이로군······.”
강호육은 자신의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한번 스윽, 닦아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윽고 그의 손과 입가에 묻은 피가 저절로 증발해 사라져 버렸다. 강호육이 가진 열기를 버티지 못한 결과였다. 당연한 일이다.
열양진경을 익힌 강호육의 몸은 일반인들의 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우니까.
“그동안 실력을 많이 더 올렸군. 흐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네놈 때문에 다잡은 파천황을 놓치지 않았나!! 이젠 어떻게 할 셈이지!!!”
“상관없다. 어차피 파천황은 다 죽은 목숨이다.”
“뭐라고?! ?!?!?!”
원륭 뿐만 아니라 듣고 있던 이들이 모두 다 놀랐다.
“대체 무슨 소리지??”
“우리 정도 무림인쯤 되면 어지간한 상처는 순식간에 다 나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적은 아니다. 저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건 파천황 역시 한계에 다다랐다는 말이지······. 파천황은 한동안 어딘가에 숨어 집중해 정양에 들어갈 것이다. 그동안에 찾아내기만 하면 나의 승리, 아니 대만의 승리다.”
“······그리 죽여 버릴 거라면 지금 죽여 버려도 되지 않았나??”
“······. 사실 너희들에게 당하게 두고는 싶지 않았거든.”
“뭐라고???”
“썩어도 현경의 무인, 고금제일인 중의 하나였다. 그 무력은 최강이겠지. 비록 너희들의 합공에 의해 궁지에 몰렸다지만, 그리 죽게 놔두고 싶지는 않았다. 이러저러해도 결국 파천황은 나의 대적이거든. 놈을 죽이는 것은 나다.”
“고작 그런 이유로??”
부들부들부들, 원륭이 몸을 떨었다. 아니, 그것은 원륭만이 아니었다. 진룡, 불사왕, 상관인, 제갈의, 당화 등 모인 이들 중에서도 가장 그 원한이 깊은 자들이 모두 몸을 떨고 있었다.
분노로 인한 결과다. 그런 이들을 보고 강호육이 말을 했다.
“뭐야? 열 받나?? 그럼 언제든지 덤벼라. 나는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허나 파천황과 같은 결과가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야······. 나는 파천황과는 또 다르거든······.”
그건 허세가 아니라 진짜였다. 강호육의 열양진경은 파괴력만 보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공이다. 원륭이 돌아섰다.
휙!!!
“뭐야, 상대하지 않는 건가??”
“나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목숨을 거는 바보가 아니다. 네놈은 언젠가 내 손으로 처리하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목을 닦고 기다려라. 허나 만약 그게 두렵다면, 지금 나를 처리하는 게 좋을 거야······.”
“!!!!!!”
강호육은 움찔 놀랐다. 그가 놀란 것은 원륭의 눈빛 때문이었다. 단순히 매섭다고 하기엔 그 눈빛은 너무나도 진한 살기를 가득 담고 있었다.
붉게 물든 눈은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들겠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일까??’
강호육은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허나 그렇게 하기에는 원륭의 눈빛은 너무나도 묘한 빛을 가득 담고 있었다. 강호육은 직감적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이놈들은 어차피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놈들이다. 그럴 바엔 그냥 놔두는 게 더욱 낫겠지······.’
강호육은 결심을 굳혔다. 그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너희들은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 그것보다 나의 제안은 아직도 철회되지 않았다. 언제든지 내게 말만 해라. 그럼 나와 함께 신세계로 갈 수 있는 티켓을 주마.”
“그냥 좇까. 내가 줄 수 있는 건 너의 지옥행 티켓 뿐이다. 언젠가 너는 파천황과 함께 사이좋게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고 나락으로 떨어질 거다. 그때 너희 둘을 비웃어주지.”
“······.”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사라지는 원륭을 보고 강호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른 무림인들도 모두 강호육을 노려보며 사라졌다. 허나 강호육은 홀로 파천황이 사라져버린 땅굴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리고 홍콩은 얼음과 화염에 휩싸여 서서히 파괴되고 있었다. 이미 홍콩은 끝났다.
강호육은 어느새 홍콩 외곽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그는 조금 전 파천황이 뚫고 도망간 땅굴을 통해 나와 있었다. 강호육이 입가를 비틀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파천황이 도망치는 건 강호육조차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일이었다. 만약 알았다면 강호육조차도 절대 도망가게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도 120년을 넘게 기다린 순간이니까.
‘후우, 오랜 세월을 기다렸는데 나답지 않은 실수를 했군.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 넌 이미 죽은 목숨이니까. 기다려라, 파천황!!! 죽음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하하하하하하!!!”
강호육이 크게 웃었다. 그의 웃음에 반응해 수면이 크게 용솟음쳤다.
파천황의 최후는 어떨까. 그리고 강호육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날 밤, 강호육은 다시 대만 본토로 돌아가 있었다. 대만에 있는 강씨 세가의 본가.
그곳에 강호육은 앉아있었다. 아니, 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강순.
강호육의 조부이자, 전전대 열양진경의 수호자이다.
“한빙신공은 되찾았느냐, 호육아······.”
“죄송합니다 할아버님. 저의 실수로 그만 파천황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파천황이 한빙신공을 훔쳐간 지도 어언 120년······. 많은 세월이 지났다······. 나는 이미 늙어 죽어가고 있고, 열양진경의 불은 꺼져가고 있다. 이걸 보아라, 호육아······.”
“!!”
강호육은 깜짝 놀랐다. 조부 강순의 손에서 일어난 불꽃이 빠르게 꺼져가고 있었다.
“할아버님!!!”
“나는 괜찮다, 호육아. 한번 태어난 생명은 언젠가 모두 그 한계가 있는 법······. 허나 아쉽구나, 호육아. 내 평생에 가장 큰 한인 도둑맞은 한빙신공을 되찾는 날이 곧 올 거라 진심으로 믿고 있었거늘!!! 쿨럭쿨럭쿨럭쿨럭쿨럭!!”
“!!!!!!”
강순이 피를 토하고 있었다. 강호육은 깜짝 놀라 곧 내공을 주입하였다.
열양진경의 양기가 투입되자 강순은 조금 생기가 되살아나는 듯 했다. 허나 잠깐뿐이었다.
“명심하거라, 호육아. 한빙신공은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내 목숨은 상관이 없다. 곧 언젠가 나는 반드시 죽는다. 허나 네가 한빙신공을 되찾기만 한다면, 그리고 음양혼돈공을 복원하기만 한다면 세상은 네 위주로 다시 재편성이 될 것이다. 네가 원하든, 아님 원치 않든 말이다······.”
“저는 반드시 한빙신공을 되찾고 말 것입니다. 맹세하겠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반드시 한빙신공을 되찾고 말 것이라고······.”
“그래, 나는 믿는다 호육아. 너라면 언젠가 반드시 한빙신공을 되찾을 것이라는 것을······.”
“······.”
강호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허나 그의 눈엔 굳은 결심이 가득 서려있었다.
강호육이 진정 진심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
“·········.”
“··················.”
한편 홍콩 지하경기장은 초상집이었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둘러앉은 사람들의 중심에는 일지흔과 궁요의 시체가 담긴 관이 놓여있었다.
악무양이 통곡하며 외쳤다.
“크흑!!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왜 하필 제일 약한 내가 아니라 왜 하필 나보다 강한 이 둘이 왜!!”
“······.”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누가 입을 열었다. 그는 바로 원륭이었다.
“애도하지마라.”
“뭐라고??? 그게 지금 할 소리요?!?”
악무양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의 눈엔 분노가 가득했다. 악무양은 원륭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다.
“애도 하지마라니!!! 그게 지금 할 소린가!!! 당신이 떠나고 나서도 우리들은 함께 수련을 했어!!! 그런데 감히 애도를 하라마라 해!!! 그러고도 과연 당신이 사람인가!!!”
쾅!!!
악무양의 주먹이 원륭의 볼을 갈겼다. 원륭은 한 발짝 주춤하며 뒤로 물러나더니, 이내 태연하게 말했다.
“묵직하군. 예전보다 더욱 묵직해졌어. 그래봤자 일지흔이나 궁요의 검기나 궁기엔 못 미치지만.”
“!!”
악무양은 말을 잃었다. 그도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막상 그 둘보다 못 미친다는 소릴 들으니 아주 기분이 그냥 좋지가 않았다.
자신의 실력이 평가절하 당해서가 아니라, 아까 자신이 말했던 대로 자신보다 실력이 더 강한 두 명이 어이없이 죽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 역시 내가 죽었어야······. 내가 죽어버렸어야!!!”
“응석부리지마!!!”
“!!”
원륭의 사자후에 악무양이 깜짝 놀랐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원륭이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을 동정하지마라! 그 두 사람은 최선을 다해 평생을 수련하다 죽었고, 또한 투쟁하다 죽었다!!! 나 역시 그 둘을 평생 본 것은 아니지마는 그 둘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그런데 죽었다고 해서 그들을 동정해?!? 웃기지마라!!! 네가 죽지 않은 것은 너의 운이기도 하지만 운도 실력이다!!! 그 둘은 운이 없어서 죽었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의 실력을 넘는 최강최악의 상대와 싸우고 또한 죽었다!! 무림인으로서 이보다도 더한 보람은 없고 이보다도 더한 축복은 없다!! 그런 상대를 너를 모욕할 셈인가!!”
원륭이 일갈하였으나 악무양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미친 듯이 울었다.
“모르겠소. 난 그저 사람은 살아있어야 행복할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하오. 죽으면 아무것도 누릴 수가 없소. 그냥 끝나는 것이오. 무림인의 삶이라고??? 그들이 이미 죽어 우리들과 함께 할 수가 없고 우리들이 이겨도 우리들이 이룬 세상을 함께 누릴 수가 없는데 대체 죽어 무림인의 행복을 이룬 것이 무슨 소용이라는 말이오!!! 흐하하하하하!!!”
악무양은 미친 듯이 울고, 또한 웃었다. 그는 반쯤 실성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던 진흑창이 아픈 몸을 추스르며 말했다. 그는 아까 파천황의 냉기에 당해 온 전신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그 자신의 강대한 내공을 통해 한빙신공의 음기를 억누르고는 있지만, 정양하는데 한참 세월이 걸릴 것이다. 어쩜 예전 수준을 전부 되찾지도 못할지도 모르지. 허나 그는 말했다.
“악무양, 네 말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허나 그 두 사람이 개죽음을 당한 것은 아니다. 둘은 원륭의 말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고, 최선을 다해 싸우다 죽었다. 그를 애도해라, 무양. 그게 그저 그 두 사람을 기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게 우리들의 길······.”
“크흑!! 크흐흐흐흐흑!!!”
악무양을 시작으로 태사향, 헐크G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들이 일지흔과 궁요를 안지는 거의 30년이 지난 상황이었기에, 그 정이 각별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바로 싸우기에는 그들의 정신이나 육체, 모든 것이 지쳐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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