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마주친 시선
와직, 와직, 콰지직!!
그렇게 헐크G가 스테이크를 씹어 먹으며 무수한 뼈들의 산을 늘려갈 동안, 원륭은 비틀거리며 어느 지하 저장고로 향했다.
“큭!!”
결국 한계에 와있었다. 오늘 하루 동료들을 이끌고 홍콩에서 대련, 중경, 다시 홍콩으로 돌아다녔다. 게다가 마하에 가까운 속도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느라 극도로 지쳐있었던 것이다.
지금 원륭도 극도로 지쳐 아까 헐크G가 스테이크의 산을 쌓으며 먹고 있는 동안 허기가 동했지만, 진짜 먹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바로 피다. 바로 피.
원륭이 스테이크를 먹는 헐크G에게 순간 집중했던 건 단지 그의 먹성 때문이 아니었다.
생고기를 가져와 헐크G가 순간 삼매진화로 굽는 순간, 핏물이 빠져나와 증발하며 어마어마한 허기를 자극했다.
혈귀는 인간과 똑같이 식사를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영양소를 얻는 것은 피이다.
식사를 할 수도 있고 맛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먹는 척을 하는 것일 뿐, 진짜 식사는 흡혈을 하는 것이다. 원륭은 지하 저장고 문을 열었다.
드르륵.
이곳은 이 지하경기장의 혈액보관실로, 혹시나 모를 각 그룹 조직원들 및 원륭 일행의 수혈에 필요할까봐 필요한 양의 혈액을 상당분 비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의 관리자가 바로 원륭인 것이다. 원륭이 이곳을 관리하는 이유는 다른 것에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식사’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구룡성채에 살던 시절에는 널린 게 범죄자라 얼마든지 쉽게 흡혈을 할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일단 모두들 같은 협력자들이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피를 빨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오히려 원륭이 먼저 사마외도로 몰려 무림공적과 같이 사냥당하겠지······.
아무리 오랜 세월을 같이 보냈더라도 인간의 피를 빠는 혈귀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을 리 없다. 그것이 진실이다. 바로 사실이고.
인간의 피를 빠는 혈귀와, 그런 혈귀를 두려워하는 인간은 공존할 수 없다.
20년의 세월을 같이 보냈으니 이젠 이해해 줄 거라고?? 천만의 소리. 그리 쉬운 문제였으면 지금도 혈귀가 인간의 생활에 흠뻑 녹아들어있었겠지······.
대부분의 혈귀들은 처음 인간과 함께 생활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외모, 그리고 흡혈을 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언젠간 발각되면서 그 혈귀의 인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냥당하거나, 혹은 인간의 마을을 떠나 멀리 외딴 곳으로 들어가든가.
그렇게 야생돌물의 피를 빤다거나 혹은 가끔씩 인간의 마을에 들어가 사냥을 하는 것인데, 이것을 옛날 사람들은 호랑이나 귀신이 물어간다고 하여 두려워했던 것이다.
차라리 호랑이라면 더 간단했겠지. 그런 건 사냥을 하면 되니깐······.
아무튼 원륭은 지친 몸으로 저장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미 쓰러지기 직전인 몸이 쇼크로 인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인간으로 치면 출혈과다에 해당하는 상황.
의식이 몽롱해지고, 시야가 줄어들어간다. 원륭은 들어가자마자 거칠게 혈액팩 하나를 꺼낸 뒤, 그대로 뜯고 마셨다.
꿀꺽, 꿀꺽, 꿀꺽!!!
“하아아!!!”
원륭의 주위로 붉은빛 광채가 맴돌기 시작했다. 괴사하기 직전의 육체에 생기가 돌아오며, 혈기가 넘쳐 주변에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오오오!!!”
콰아아!!!
타고 오르는 혈기를 참지 못하고, 원륭은 미친 듯 발산해버렸다. 원륭이 급한데 곧바로 이곳 저장고로 오지 않고 모두의 동태를 확인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혈기의 분출을 참지 못하고 발산해버릴 경우, 예민한 자라면 이것을 눈치 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헐크G는 식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고, 악무양 등은 자고 있으며 나머지 무림인들은 모두 운기조식을 하느라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상황에서는 귀신이 업어가도 모른다.
그렇게 원륭은 마음껏 안심을 하고 ‘식사’에 들어갔다.
주륵, 주륵, 주르르르르륵!!!!!!
혈액팩 속에 담긴 혈액이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간다. 원륭이 이렇게 대량의 혈액을 섭취한 것도 실로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이렇다 할 크나큰 전투가 없어, 소모가 없자 무려 20년 동안 대량의 혈액을 소모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통상적으로 사흘에 한번 상당한 양의 혈액을 마시면 될 뿐이었는데, 이렇게 소모가 심하니 엄청난 양의 혈액을 들이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혈액팩 속의 혈액은 그저 단순한 일반인들의 혈액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세 총수의 조직원들이 헌혈한 혈액인데, 그들도 미약하지만 내공을 가지고 있고 무림인이기 때문에 이들의 내공이 원륭이 혈액을 빨면서 같이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흡수된 혈액들은 원륭의 몸 안에서 시너지를 이루며 같이 섞여 들어갔다.
정상적이라면 이미 주화입마가 오고도 남았을 잡다한 내공의 조합이었지만, 원륭의 신체는 이미 그런데 익숙해있어 전혀 타격도 오지 않았다.
혈귀의 신체는 다양한 혈액을 흡수하고도 충돌이나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젠 아예 원륭은 손도 대지 않고 혈액팩을 따서 흡수해버렸다.
쐐애액!!!
혈액팩이 자동으로 뜯어져 혈액이 기화해버리더니, 원륭의 몸 안으로 흡수돼간다.
아까 전 소모가 극심한 수준일 때는 그것이 불가능했으나, 이제 어느 정도 혈액과 내공이 보충돼가자 흡성대법, 그리고 흡혈대법을 동시에 시전해 수많은 혈액팩으로부터 혈액과 내공을 얻는 것이다.
슈와아아아악!!!!!!
원륭은 이제 두 팔을 벌리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지만, 그의 주변에 붉은빛 기운이 계속해서 감돌고 있었다. 모두 기화된 혈액팩의 혈액들이다.
흡수한 혈액은 더 많은 혈액을 불러일으키고, 더 많은 혈액은 다시 더 많은 혈액을 흡수한다. 피의 공명현상.
사실 원륭은 아까도 보시라이와 500명의 공안과 싸울 때 이 같은 수법을 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료가 보고 있기에 이 같은 대법을 시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말인즉슨, 원륭이 아직도 힘을 남기고 싸우고 있다는 소리······. 치열한 전투를 거친 것 같지만, 원륭은 아직도 자신의 모든 힘을 전부 다 발휘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파천황을 비롯해 강호육을 상대하기 위해 원륭은 20년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절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고. 드디어 체력을 복구한 원륭은 만족스러운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러나 원륭이 미처 눈치 채지 못한 게 있었다. 모든 생물이 다 그렇지만 생물의 식사시간은 가장 예민해지는 시기이기 하면서도, 또한 동시에 가장 무방비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원륭도 처음 혈액팩을 딸 때는 매우 신경이 곤두서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으나, 점점 더 배가 부르고 기운이 복구가 되자 자신도 모르게 느긋이 방심을 하고 서서 혈액을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원륭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 자는 조용히 원륭이 혈액을 흡수하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더니, 원륭이 흡수를 다하자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원륭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음 날, 모두는 쌩쌩한 표정으로 식당에서 만났다. 이미 가정부들이 식사를 다 차려놓고 퇴장한 후라, 주변엔 으레 그렇듯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는 편하게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다들 멀쩡히 잤나?? 특별히 부상은 없고??”
“음······. 여기저기 결리고 쑤시는 데는 있지만 이 정도면 멀쩡하오······. 당신은 괜찮소?? 어제 발산한 내공이 어마어마한 터라 심맥이 쑤시고 결릴 터인데.”
“뭐, 괜찮다. 이런 싸움은 한두 번 해보는 게 아니니까······.”
“괴물이군······.”
한 마디 내뱉고 식사에 열중하는 악무양의 말에 원륭은 움찔했지만, 그저 웃으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괴물이란 말에 움찔하는 것은 원륭이 찔리기 때문일까. 사실상 괴물은 맞으니까.
중국 정부와 공산당, 공안 무림맹을 잡으려다 괴물이 되어버렸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돼버린 걸까······. 괴물을 잡으려다 괴물이 돼버린 이야기라······. 사실 흔한 얘기다.
이렇게 타락한 자들의 이야긴 의외로 무수할 정도로 많으니까. 압제를 펼치는 독재자를 타도하려고 일어섰는데, 정권을 잡고 보니 도리어 독재자가 되는 자는 상당히 많다.
오히려 예전 독재자보다 더욱 지독한 압제를 펼치는 자들도 많은 것이다.
자신이 지독한 투쟁을 통해 독재자를 몰아낸 전적이 있으므로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오히려 무지막지한 압제와 폭력, 그리고 공포 정치로 국민들을 사전에 누른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역사. 대체 언제쯤 인류는 평안해질 수 있을 것인가······.
원륭은 그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왜 그래?? 음식이 맛이라도 없나??”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실제로 맛이 없기도 하다. 지금 차려진 음식들은 모두 엄청난 수준의 요리사들이 만든 음식이지만, 원륭의 성에는 차지 않는다.
어제 대량의 혈액을 흡수한 뒤이므로, 앞에 음식이 있어도 별로 땡기지 않는 것이다.
마치 최고급 음식을 먹고 난 뒤에 눈앞에 차려진 불량식품 같다고 해야할까나······.
그래도 원륭은 마지못해 음식을 깨작깨작 먹는 척 하며 입을 열었다. 식사를 하기는 하여야 한다. 그래야 의심을 사지를 않으니까.
원륭은 토사물처럼 느껴지는 치커리 샐러드를 한입 베어문 뒤 인상을 찌푸리며 헐크G의 말에 답했다.
“갑자기 이홍지가 생각이 나서 말이야.”
“이홍지?? 아, 법륜공의 창시자였던 그 자 말인가?? 그 자가 왜??”
“그 자는 인간이 수준에 미달한 상태라 영원히 부처가 되지 못하고 소수의 인간만이 깨달음을 얻어 이 세계에서 탈출하며, 나머지 자들은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 속에 괴로워해야 한다고 했지. 요즘 드는 생각이 그게 진짠가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만약 그렇다 치면, 신이나 부처라는 자들은 진짜 악취미가 아닐까??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에 인간을 가둬다 두고, 그저 운 좋게 몇 놈이 빠져나오면 그 자는 살려주고 나머지 놈들은 계속해서 고통을 받게 만드니 말이야······. 실로 악취미라고 볼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 자의 법륜공이든 불교든 기독교든 결국 원인은 모두 다 같잖아?? 인간이 고통을 받는 이유는 그 자가 과거에 저지른 원죄, 즉 업보란 말이지. 기독교에서 환생론을 인정하는지 안하는진 모르겠는데, 뭐 아무튼 그런 원죄론에 따르면 그럴싸하단 말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마음이 안 들어. 결국 업보가 존재하든 아니든 우리는 그것을 기억 못하지 않나?? 기억도 못하는 죄를 원죄니, 업보니 하고 떠들어봤자 공감이 안 간단 말이지······. 마치 타인의 죄로 대신해서 내가 잡혀 들어가 감옥에 복역하는 느낌인데, 영 기분이 좋지 않아. 만약 그런 게 존재한다면 나는 그런 걸 모두 깨부숴버리겠어.”
“어이, 인과율을 부정하겠단 말이야?? 그런 건 정말 무식한 발언이라고!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헐크G가 미친 듯이 웃었다. 헐크G도 딱히 인과율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과율. 카르마. 카르마 시스템. 아카식 레코드라고도 불리우는 이것은 인간의 세계를 지배하는 어떤 법칙이라고 알려져 있다.
정말 그런 게 존재하는진 모르겠지만, 정말 존재한다면 그것을 깨부순다는 건 불가능한 것이다. 무공을 수련한다는 것은 단순히 강해진다는 것만이 아니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종교나 철학적 사색과 고민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화경에 이르는 자조차 거의 없다고 봐야지······. 악무양이 화경의 벽을 돌파하는데 그토록 오래 시간이 걸린 건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악무양이 화경의 벽을 돌파한 것도 상당한 우연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아무튼 내공이나 수련 자체는 상당한 수준으로 쌓았고 악무양 자신이 운 좋게 약간의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일행 중 마지막으로 화경의 벽을 돌파할 수 있었다.
어쨌든 헐크G는 웃으며 포크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을 이었다.
“카르마 시스템. 집단무의식이라고도 하지. 엄청 멀리 떨어진 인간의 생활모습이나 양식, 심지어 꿈에 나타난 현상마저도 비슷한 사실······. 단순히 인간이 같은 종이기 때문에 공유하는 경험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묘한 사실들에, 인간은 집단무의식설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말이야, 인과율을 부순다는 것은, 즉 인간의 무의식, 아카식 레코드를 부순다는 뜻이야.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그런 건 인간을 몰살하거나 모두의 사상을 깨부수는 것과 같은 뜻이야. 세계적인 대예언자, 종교인들도 그런 건 불가능했지. 자신이 부처나 예수라 하는 자조차 말이야······. 그런 건 불가능해. 어불성설이지.”
“나도 알아. 그냥 해본 말이지. 70억 인류의 사상을 어떻게 내가 통제하거나, 파괴하겠나?? 그런 건 불가능한 일이야. 자네의 말이 맞지.”
“그런데 그런 얘기는 왜 하는 거야? 후후.”
“글쎄······. 조금 지쳤는지도 모르지······. 후훗.”
원륭도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천만홍이 입을 열었다.
“원륭 말할 게 있는데 괜찮겠소??”
“뭐지? 말해봐.”
“혈액 저장고의 혈액팩들이 사라졌소. 재고에 표시된 양과 실제 보유량이 다른데 어떻게 된 거요?? 혈액 저장고의 담당은 당신이 아니오??”
쿠궁!! 원륭의 얼굴이 순간 정색했다. 그리고 원륭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천만홍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천만홍 역시도 원륭의 눈을 그대로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세차게 마주쳤다.
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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