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3 남은 희망
“구카이라이!!”
“보시라이!! 너 쓰러진 것 아니었나!!”
일지흔과 악무양이 대경실색해서 외쳤다. 그러자 보시라이는 태연하게 와이셔츠의 먼지를 툭툭 털며 얘기한 것이다.
“너희들과 같지. 화경에 이른 무림인들이면 치명적인 상처만 입지 않을 경우 얼마든지 회복해서 싸울 수가 있다. 그 속도는 일류 무림인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지······. 즉, 너희가 회복한 만큼 나도 회복했다는 뜻이다!!”
콰아아아아아!!!
보시라이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솟구쳤다. 그 짧은 시간 쉬면서 보시라이는 다시 한 번 온 몸의 내공을 축기한 것이다.
‘저 내공······. 보아하니 원륭에게 당해 쓰러져 있을 때부터 계속해서 모아왔군······.’
천만홍은 눈살을 찌푸렸다. 축기라는 것은 보통 한순간에 전부 이뤄지지 않는다.
무공의 수준이 낮을수록 내공을 모으는 속도도 오래 걸리며, 과도하게 무리한 속도로 내공을 모으면 전신의 혈맥에 압박이 간다. 자칫 잘못하면 터져 죽는 것이다.
즉 그 말은, 보시라이는 당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반격의 태세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아마 구카이라이나 공안 무림맹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자력으로 탈출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
진흑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전황을 살펴봤다. 남은 공안 무림맹이 아직 200여 명. 거기에 수뇌가 되는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가 건재.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공안 무림맹만이라면 사력을 다해 어찌 쓰러트려볼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가 걸림돌이었다.
아마 세 총수 중 두 명이라면 그 둘을 상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 쓰러진 원륭도 제외하고 남은 여섯 명이서 공안 200명을 상대해야 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 지금도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전황파악은 완료된 것이다. 무공 수준이 뛰어난 무림인일수록 상황파악력이 뛰어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상황은 절망적······. 답이 없었다.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럴 때. 이럴 때 뭔가 변수가 생긴다면!!’
일지흔은 눈을 질끈 감고 생각했다. 저쪽에서 구카이라이라는 변수가 나타난 것처럼, 이쪽도 뭔가 조력자가 나타난다면 해결될 일이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늘에 이뤄주기만을 바라야 하는 것이다. 그때 뭔가 변수가 일어났다. 무언가 희끗, 하고 새빨간 바람이 스쳐지나가더니 구카이라이를 습격했다. 구카이라이는 다급하게 손을 들어 휘둘렀다.
챙!!
“······.”
척!
바닥에 착지한 것은 원륭이었다. 구카이라이의 침에 당해 점혈 당한 줄 알았던 원륭이 다시 한번 일어나 구카이라이를 습격했던 것이다.
비록 습격은 실패했으나, 원륭이 부활하자 동료들은 환호하며 모였다.
“원륭!! 쓰러진 것 아니었소?! 그냥 당한 줄만 알았소!!”
악무양이 외치자 원륭은 피식 하고 웃었다.
“그럴 뻔 했지. 저 여자, 교활하게 경추 신경을 노렸군.”
“경추 신경??”
“아아. 점혈과는 조금 다른 원리다. 점혈은 기가 지나가는 통로를 점하여 기의 소통을 원활하지 않게 하여 몸에 제한을 주지만, 신경을 노리는 것은 기와 상관없는 물리적인 요소다. 비록 방법은 다르지만 그 원리는 비슷하지. 점혈도 당하면 자력으로는 거의 풀 수가 없고, 저 기술도 푸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어마어마한 인내력과 통제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당신은 어떻게 풀었소??”
“나? 참고 풀었지.”
“······.”
그 말에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점혈과 신경 제압은 다르다. 방금 구카이라이가 행한 것은 신경 제압술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통 추간판전위증 환자들이 겪는 고통과 비슷했다.
추간판탈출증, 흔히 디스크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디스크의 탈출이 극심해지면 자기 디스크가 자기 신경을 찔러 극심한 고통과 함께 신체가동의 자유를 빼앗는다.
그 정도는 단순히 고통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정말로 마비가 되어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것까지 이르는 것이다. 원륭이 방금 겪은 것은 전자였다.
침에 의해 마비가 되어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인 몸의 마비는 아니다.
그래서 원륭은 침을, ‘빼버렸다.’ 본래대로라면 극심한 고통 때문에 뺄 수 없는 침을, 억지로 빼버린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사지는 마비되어 있다.
그래서 원륭은 근섬유를 진동시켜 조금씩 침을 밀어냈던 것이다.
스르륵. 그렇지 않더라도 혈마보를 쓰면 순간 무형의 기체 같은 상태가 되기에 그 수법을 쓰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건 아까 한번 썼기 때문에 재사용에 제약이 따랐다.
지속시간은 짧아지고, 소모되는 내공과 혈액양이 증가한다. 그래서 침은 자력으로 밀어내고 혈마보로 구카이라이를 습격한 것인데, 목을 날리려는 순간 그녀가 방어한 것이다.
챙!!
원륭의 수도(手刀)를 구카이라이는 조법(爪法)으로 방어했는데, 그 중에서도 범상치 않은 기색이 엿보여 원륭은 물었다.
“호형권??”
“역시 알아봤군. 그래, 오형권의 그 하나인 호형권이다. 어때, 마음에 드나? 호호호호호호!!!”
“마음에 드냐 안 드냐고 물어도······.”
원륭은 인상을 찌푸렸다. 호형권이라는 것은 인간이 무림의 초기에 다섯 동물의 움직임을 본 따 만든 오형권의 하나로, 이름 그대로 호랑이의 형태를 본 딴 무공이다.
호랑이의 강맹함, 용맹함, 사나움을 그대로 재현한 무공인데 특히 조법과 잘 어울리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그건 권법이지 조법이 아니다. 원륭도 그 점을 지적했다.
“호형권은 조법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내 식으로 개조했지. 즉, 이건 호형조(虎形爪)다. 나의 독문무공이지, 호호호.”
“호형조라······.”
원륭의 눈이 가늘어졌다. 보시라이도 그렇고 구카이라이도 그렇고 각각 정치인에 변호사라기에는 너무나도 강맹한 무림인들이다.
그러자 대체 원륭은 어찌하여 그런 강력한 무공들을 익혔는지 의아해졌던 것이다.
“네놈들, 어찌 그리 강력한 무공들을 익혔지?? 각각 정치와 사업을 하기에도 바쁘지 않나?? 아주 대단한 재능들이로군.”
“뭘!! 정치도 사업도 무공도 결국은 하나의 학문!! 학문의 길은 모두 하나로 통하는 법!! 그 원리만 파악하면 가장 빠른 경로로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긴! 무공 하나만을 파면서도 그 끝을 보지 못한 네놈들이라면 이해할 수 없겠지!!”
“무공 하나만을 팠다라······. 그 말은 틀린 것이 아니로군······.”
보시라이의 말에 원륭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돌연 분노해서 외친 것이다.
“하지만 네놈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무(武)란 그렇게 간단하게 얻어지는 것이 아냐!! 네놈들이 그 정도 이런저런 일을 벌리면서도 그 와중에 그런 무공 경지에 오른 것은 대단하지만 그건 네놈들이 잘나서가 아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지!!”
“하하, 시샘하는 거냐??”
“사실을 말하는 거다!! 무(武)의 신은 구두쇠라 절대 모든 것을 가볍게 주지 않는다!! 아니, 그건 모든 일에 대해서 마찬가지지!! 모든 일을 참고 조금씩 조금씩 진행하다보면 그곳에 드디어 해답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 또한 모든 해답은 아니지!! 해답은 보였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라지고 어느 하나 해답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문제는 나타난다!! 그래서 사람은 겸허한 마음으로 항상 문제에 대한 탐구를 할 수 밖에 없는 거야!!”
“시시한 설교는 잘 들었다. 그게 범재인 네놈들의 한계겠지. 우리는 천재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사상에 경도되어 수십 년간 중국 정부를 상대로 테러행위를 벌이고 있는 네놈들과는 다르단 말이다!!”
“우린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민주화 투사지!!”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게 그거다!!!”
콰앙!!!
보시라이와 원륭이 격돌하며 충격파를 발산했다. 그 둘의 주먹이 정면으로 격돌한 것뿐인데, 거기에서 엄청난 충격파가 발산돼 주변으로 날아간 것이다.
거기에 휩쓸린 공안 무림맹 요원들은 쓰러졌다.
“으악!!”
“으아아아아악!!!”
어마어마한 지진이나 태풍이 다가오면 인간은 제대로 서있지도 못한다. 그저 휩쓸릴 뿐이다.
지금 이 둘의 싸움이 바로 그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용호의 진!!”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소?!”
악무양의 물음에 진흑창이 답했다.
“용호의 진이라고 했다. 용호의 진이란 용과 호랑이가 싸울 때 발생하는 진을 말한다. 지금 이 사태와 같은 것이지. 용호상박이란 말이 있다. 용과 호랑이가 서로 싸운다는 뜻으로, 힘이 강한 두 존재가 서로 치열하게 싸운다는 것이지. 그러나 그 둘의 힘이 길항을 이루면 승부는 쉽게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여파는 주변으로 번져가지. 만약 두 존재의 힘이 거의 대등하다면, 주변에서는 그 싸움에 간섭할 수도 없다. 침범할 수 없지.”
“그런!!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있소?!”
“시험해 보게.”
“······.”
악무양은 잠시 망설였으나 보시라이와 원륭이 싸우고 있는 그 돌풍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돌풍 근처에 다가가자마자 악무양은 그저 튕겨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쾅!!
“으아아아아악!!!”
쿠당탕!!
악무양은 쓰러졌다. 뒤로 튕겨져 나온 악무양을 부축하며, 진흑창은 말을 이었다.
“이제 이 둘의 싸움은 아무도 참견하지 못해. 둘의 싸움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주변에선 간섭할 수 없다. 다만······.”
“다만??”
“둘의 힘과 동급의 힘을 가진 존재라면 저기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
“그럼 당신이나 다른 두 총수가 들어가서 도와주면 되는 것 아니오?!”
“그럼 저놈들은 대체 누가 상대할 거지??”
“!!”
저벅, 저벅, 저벅. 공안 무림맹 요원들이 다가왔다. 그러자 악무양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이다.
“그렇군. 저놈들을 잊고 있었군.”
“너도 이젠 한 사람 몫의 무림인 노릇을 하게 되어 저 놈들 열 명 정도는 해치울 수 있겠지만······. 그 수가 너무 많다. 원륭이 기습으로 반 수 이상을 처리하여 한결 버티기는 쉽게 되었지만, 아직 버티는 것이 고작이다. 역전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
그 말에 악무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싸우면서 알아챈 것인데, 지금 자신의 동료들은 모두 12성의 공력을 쥐어 짜내고 있었다.
보통 무림인은 동급의 적을 상대하더라도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7,8성의 공력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그 편이 몸에 무리도 없고,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수 있다.
10성, 12성의 공력을 사용하면 몸에 무리가 오는 것이다. 무림이란 온갖 암계로 가득 차 있고, 정정당당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암기, 독, 암습, 기습, 다수에 의한 차륜전, 합격진, 이런 무궁무진한 변수들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 섣불리 모든 공력을 다 써버리면 만약의 사태 때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10성 이상의 공력을 쓰는 것은 생사가 달렸을 때. 12성의 공력을 쓰는 것은 뒤가 없을 때를 의미했는데 그것은 진원진기마저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진원진기는 무림인의 생명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그것은 소진한다고 해서 복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한번 사용하면 회복이 쉽지 않고 무조건 한동안 정양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 생사가 달린 대위기에서만 써야하는데 이들은 이미 진원진기마저 조금씩 조금씩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악무양은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 여기서 아마 죽겠군. 진원진기고 뭐고 아낄 때가 아니다.’
콰아앗!! 10성의 공력을 끌어올리며 악무양은 생각했다. 죽으면 진원진기고 뭐고 소용없다.
그래서 악무양은 죽을 각오로 결사항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구카이라이가 씨익 웃더니 갑자기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쐐액!!
마치 섬전과 같은 속도로 빨려들 듯이 돌풍 안으로 사라졌는데, 그 모습을 보고 진흑창은 경악해서 외친 것이다.
“누가 하나 가서 도와줘야 한다!! 이러다 원륭이 당해!!”
원륭의 신위는 방금 익히 보았지만, 그도 사람이라 한계가 있다.
게다가 구카이라이의 신경차단술에 의해 폭주 상태가 풀려버렸고, 폭주 때는 몰랐겠지만 지금 온 몸에 밀려오는 고통과 내공, 혈액의 부족으로 인해 원륭의 상태는 말이 아닐 것이다.
마치 금지약물을 대량으로 사용한 다음 경기가 끝난 후의 로이더 같은 부작용이 몰려오고 있을 터인데, 진흑창은 원륭의 신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대략 그런 상태일 거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그 정도의 무력을 사용했다. 절대 멀쩡할 리가 없다. 공안 무림맹 250여 명을 해치우는 기염.
확실히 그것은 화경의 무림인의 영역을 뛰어넘은 신기(神技)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일 뿐이다. 더 이상의 기적은 없다. 그걸 알고 있기에 진흑창은 뛰어가며 외쳤다.
“내가 들어간다!! 원륭이 쓰러지면 우리 모두에게 이제 남은 희망들은 전혀 없어!! 미안하지만 남은 일곱 명이서 잠시만 저들을 상대하고 있어다오!! 금방 쓰러트리고 나올 테니!!”
“아니. 내가 간다. 그 편이 더욱 적합할 것만 같군.”
“!!”
쐐애액!!!
그때까지 묵묵히 적들을 상대하고 있던 당화가 질풍 같은 신법으로 달려간 뒤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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