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무림기

19-1 1500년의 역사

“이번에야 말로 해치웠나?!”

“아니, 저걸 봐!! 놈의 몸이 재생된다!!!”

파천황의 검게 타버린 몸이 갈라지며 재생이 시작됐다. 바로 타버린 딱지가 갈라져 새살이 돋아나왔으며, 새로 나온 살들은 전보다 더욱 윤기가 있고 탱탱해보였다.

파천황이 소생의 조짐을 보이는 순간부터 소림 육승들은 이미 말없이 일제히 달려들고 있었다. 그 순간 파천황의 몸에서 어마어마하게 강한 한기가 방출되었다.

기겁한 소림 육승은 달려들다가 순간 제 자리에서 멈췄다.

끼익!!!

어마어마한 보법의 속도로 인해 그들의 몸에 걸린 가속도나 관성 역시 엄청난 상태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제동을 하는 것만 봐도 그들의 수준을 알만 했다.

그때 파천황이 천천히 일어났다.

꾸드득. 꾸드드드드득.

얼어붙은 그의 몸에서 얼음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 자신은 전혀 아무런 타격조차 없는지 그런 불쾌한 소리를 내며 일어나는 것이었다.

파천황은 태연히 말했다.

“하아, 여기에도 걸리지 않는군. 역시 소림 육승이라고나 할까. 정말 지겨운 놈들이다, 너희들.”

꾸득, 꾸득, 꾸드득.

파천황이 목을 꺾자 다시 그 불쾌한 소리들이 났다. 그러자 금령이 싸늘하게 말했다.

“흥!! 멋으로 우리가 소림 무승들의 수좌가 됐는 줄 아느냐!! 목령 방장이 없다지만 네놈은 충분히 우리가 해치울 수가 있다!!”

“그래, 과연 그렇군······. 정말 그 목령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만약 그 자가 건재했다면 네놈들은 정말로 나를 쓰러트렸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떤가?! 지금 목령은 없잖아!! 네놈들은 나를 쓰러트릴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하하하하하하!!”

“크으윽!!”

소림 육승이 신음했다. 과연 파천황의 말 대로였다.

과거 목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그래서 자신들과 함께 음양오행진을 짜거나 거기에 쪽방촌 무림인들이 합세했다면 정말로 파천황을 쓰러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령은 파천황을 쓰러트려도 다른 공안이나 인민해방군, 홍위병 등은 막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며, 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파천황에게 소림사를 건드리지 말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파천황은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목령을 비웃으며 소림사를 불태웠으며, 승려들을 죽이고 이를 능욕했다. 화령이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이 개자식!! 목령 방장이 그렇게 죽음으로 부탁하며 말을 했거늘 그 하나마저 들어주지 않다니!! 네놈은 악귀다!! 악마다!! 사마외도다!!”

“큭큭, 맘대로 생각을 해라. 애초에 그가 나와 약속을 했나?? 소림사를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며 멋대로 자살한 것은 바로 그다. 솔직히 말해서 매우 거슬린다는 말이지, 그렇게 나오면······. 자기 맘대로 자살하면서 부탁을 해오는데 그 어찌 거슬리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런 건 폭력이다 폭력!! 강압이고 또한 강제이지!! 승려라는 놈들이 남에게 그런 걸 부탁해?! 그것이 승려가 할 수 있는 태도이냐!!”

“그러면 애초에 소림사를 불태운다고 협박을 하지 말았어야지!! 네놈의 강압에 못 이겨 목령 방장을 비롯해 우리가 바로 그 쪽방촌 무림인들에 잠시나마 맞선 것이 아니냐!! 그때의 생각만하면 아직까지도 그들에게 미안하고 또한 죄스럽다!! 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내 오늘 너의 목을 베어 그들을 비롯해 목령 방장 및 죽은 소림사 승려들에게 사죄하리라!!”

“후후, 소림사의 역사는 이미 그 끝을 다해가고 있었다. 애초에 국공내전 도중 군벌들의 사이에 끼어 이득을 보려다 그 대가로 절이 한번 불타고 소림사의 세력이 줄은 것은 전부 네놈들의 탓이지 않나?? 아마 그때 방장도 바로 그 목령이지 않나?? 네놈들이 국공내전 당시 피해를 보지 않았다면 어쩌면 지금쯤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놈들은 세상의 정세를 오판하여 큰 잘못을 저질렀고, 그때의 나비효과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승려의 이름을 하고 세속에 끼어들 때부터 네놈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어!! 승려면 승려답게 불경이나 외고 절이나 하고 있었어야지!! 구파일방의 수장인 척 하면서 수없이 긴 시간을 강호에 군림하며 온갖 세속의 명리를 탐한 네놈들 소림사의 죄다!!”

“그래, 그 말은 부정하지 않겠다. 목령 방장 역시 국공내전 당시의 그 잘못된 선택을 평생토록 후회했었지······. 기껏해야 군벌 싸움에 불과한데 일개 사찰의 승려인 자신들이 나섰다고 말이야······. 하지만 후회는 후회고 사람은 나아가야 한다!! 내 오늘 너를 죽이고 지옥에 떨어지며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리라!!”

“오오!!!”

화령의 외침에 다른 소림 육승들이 모두 화답했다. 그러나 파천황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흰 그럴 수 없다.”

“왜지?!”

“저 자를 봐라. 벌써 죽어가고 있군.”

“?!”

소림 육승들은 수령을 살폈다. 수령은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고, 이를 딱딱 거리고 있었다. 그의 안색이 극도로 창백해져 가고 있었으며, 마치 몸은 시체처럼 푸르딩딩 해졌다.

소림 육승은 그의 주변에 모여 공력을 전달하며 그를 되살리려 했다.

그러나 곧 그들은 자신들의 몸에도 그런 똑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 이 무슨 변고가?!”

“이런 해괴한 일이!!”

자신들의 몸 안에서 엄청난 양의 한기가 발생하고 있었다. 수령과 월령을 제외하고는 딱히 엄청난 음공을 익힌 적도 없는데 대체 왜 이런단 말인가?? 그러나 곧 해답은 파천황이 가르쳐줬다.

“네놈들은 지금 내공의 침식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침식 현상?!”

“그래. 네놈들도 알다시피 상대보다 내공의 질이나 양에서 우월하면 온갖 짓들을 다 할 수가 있지. 상대와 내가기공의 대결을 할 때 상대보다 더욱 뛰어나다면, 상대의 방어를 부수고 심맥에 침투해 내공을 태워 없애거나 심지어 조종할 수도 있다. 사실 점혈이란 것도 그런 조종의 일종이지. 나의 내공으로 상대의 혈도를 막고 재우거나 고통을 느끼게 하거나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드니 말이다······. 나의 한빙신공이 가지는 최고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내공의 침식현상!! 이 현상은 상대의 단전에 침투해 강제로 한기를 발생하게 만들고, 상대의 내공에 기생해 계속해서 차가운 내공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당한 자는 그 자신의 내공에 얼어붙어 죽어가는 것이다. 하하!! 참으로 웃기지 않나!! 음공을 익히지도 않았는데 그 자신의 차가운 한기에 얼어붙어 죽어가다니!! 이렇게 웃긴 일이 있나!! 하하하하하하!!”

“······.”

토령이 잠시 파천황을 노려보다가 침착하게 말했다. 땅의 무공을 익힌 그는 일행 중에서도 가장 침착하고 냉정한 데가 있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믿을 수 없군. 네놈의 한빙신공에 그러한 효능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듣지 못했다. 그건 거짓이 아닌가??”

“후후, 안타깝지만 그건 사실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현재 네놈들의 몸에 일어나고 있는 괴현상을 대체 뭐로 설명할 거지? 후후!! 나는 일찍이 그것을 빙폭탄(氷爆彈)이라고 이름 붙였지. 아님 한빙폭탄(寒氷爆彈)이라고 말이야. 상대의 몸을 스스로의 내공을 에너지원 삼아 죽여 버리는 그 엄청난 효과가 아직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뭔지를 아나?? 바로 그때까지 살아남은 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하!! 어지간한 적들은 나의 빙공 몇 번에 그저 얼어 꼼짝도 못하고 갇혀 있다가 죽기 때문이지!! 반대로 말하면 네놈들은 나의 그런 한빙폭탄을 당할 정도로 오래 버텼다는 뜻이 된다!! 칭찬해주지!! 네놈들, 나의 한빙폭탄에 당한 자는 문화대혁명 당시 쪽방촌 무림인의 일원 중 하나이던 어느 꼬마 이후로 오래간만이구나!! 하하!!”

“뭐야?! 이런 무시무시한 마공에 당한 자가 또 하나 있다고?!”

“하하!! 그래!! 당시 일천한 무공을 지니고 있던 그 놈은 나의 한기에 적중된 뒤 살아남기 위해 혈귀가 되었지!! 네놈들도 혈귀가 될 수 있나?! 그렇다면 아마 살아날지도 모르지, 하하!!”

“혈귀라니······.”

“그런 저주받은 존재가······.”

“큭!!”

소림 육승은 저마다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유서 깊은 소림사 내에서도 가장 강한 고수들 중 하나라, 혈귀의 존재에 대한 내용은 모두 한번 쯤 들어본 적 있었다.

혈귀. 사람의 피와 내공을 빨며 살고 다시 다른 사람을 혈귀로 만들 수 있다는 저주받은 생물.

하지만 아무리 살아남아 복수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해도 그런 존재가 되어야 살 수 있다니······.

일령이 분개하며 소리쳤다.

“흥!! 그렇게 될 바에는 그냥 죽고 말겠다!! 그런 저주받은 존재가 되어 영원토록 복수를 성공할 때까지 피를 빨 바에야!!”

“그래, 그것들이 바로 너희들의 한계지, 후후!! 그 꼬마, 원륭이란 놈은 나에 대한 적개심이 아주 대단했다. 그래서 그 놈은 스스로 저주받은 존재가 되어서까지 나를 처치하려고 했지, 후훗!! 정말 대단하지 않나?? 그 정도의 적개심! 그 정도의 집념!! 아아!! 가능만 했다면 놈을 공안 무림맹으로 데려오고 싶었는데!!”

파천황은 껄껄 웃더니 이내 날카로운 표정과 함께 소림 육승을 노려봤다.

“네놈들은 틀렸어!! 그런 쪽방촌 무림인들과 같은 집념이 없어!! 그놈들은 무려 의화단 운동시절부터 나를 쫓아온 놈들이다!! 수십 년을 넘게 투쟁하고 있는데 온갖 핑계를 대며 혈귀가 되는 것조차 꺼려하다니 네놈들은 정말로 틀렸군!!”

“······.”

과연 소림 육승은 반박하지 못했다. 복수를 위해 스스로를 버려야 하는가. 버린다면 대체 어디까지 버려야 하는가. 모두?? 전부?? 그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불가능하다. 아무리 복수를 하고 싶다고 해도 불문에 든 몸으로 혈귀가 되는 건 정말 불가능해!!’

질끈!! 소림 육승들이 눈을 감았다. 파천황은 그런 그들을 비웃었다.

“하하!! 무릇 괴물을 잡으려 하면 네 자신들도 괴물이 되어야 하는 법이다!! 네놈들이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희들을 들여다보지!! 그런 고생조차 하지 않고 감히 나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하였느냐!! 이런 멍청한 놈들!! 네놈들은 나에 대한 복수를 할 자격이 없어!! 나는 현경의 경지를 뚫기 위해 배신을 하여 가족과도 같은 나의 형제, 자매, 일문을 모조리 몰살시켰다!! 그리하여 도달한 현경의 경지인데 그런 어설픈 각오로 감히 나에 대항하려 해?! 하하!! 하하하하하하!!”

웃고 있는 파천황에게 월령이 말했다.

“흥, 그런 식으로 무림지존이 되어봤자 사람들은 너를 인정하지 않는다! 너는 그저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괴물일 뿐이다! 네 말대로라면 너는 그저 배신자일 뿐이지! 그런 배신자가 하는 소리 따위 귀담아 들을 것 같나!!”

“하하,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네놈들이 제 아무리 나를 배신자니 뭐니 비난해봤자 역사는 승자의 것으로 기록되고, 너희들은 거기 그저 패배자로 이름 남게 되겠지!! 패배자가 짖는 개소리 따위!! 나는 역사에 승자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길이 남아 때로 너희들을 추억하며 너희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어주마!! 하하하하하하!!”

콰아아아아아!!

파천황은 어기비행술을 발동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말만이 뒤늦게 그 자리에 울려퍼졌다.

“오늘은 나도 소모가 심하니 그만 이쯤에서 가지!!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야!! 네놈들도 혈귀가 되든 자력으로 그 한기를 물리치든 어디 마음껏 해봐라!! 하지만 고작 화경의 무림인들이 현경의 무림인이 뿌린 한빙지기의 독을 해소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지!! 너희들에겐 불가능해!! 그게 가능했다면 너희들은 이미 현경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네놈들 가운데 양공을 익힌 자도 얼마 없지 않나?! 하하하하하하!!”

슈와아아아앙!!

파천황의 잔영이 마치 별똥별처럼 여운을 남기며 사라졌다. 그때부터 소림 육승들은 긴급히 한빙신공의 빙결 현상을 막기 위한 노력에 들어갔다.

“이거 막을 수 있나?! 대체 어떻게 막지!!”

“우리 둘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너희들은······.”

“음······.”

화령의 말에 다른 소림 육승들이 신음했다. 화령이 말한 둘은 자기 자신과 바로 일령.

일령의 무공과 자신의 무공은 소림 육승의 음양오행공 중에서도 가장 양기가 강한 것이라, 그 둘이라면 가능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일령과 화령이 수령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잠시 참게.”

“크아!! 크아아아아악!!”

쿵!!

수령이 쓰러졌다. 그러자 화령과 일령이 심각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정말 예상대론가······.”

“뭔가?? 대체 무슨 일인가?!”

“지금 수령의 내공 그 자체가 파천황의 한빙신공이 되어, 우리들을 격렬하게 거부하고 있네. 수령의 단전과 온 몸 자체가 우리를 적대하고 있어. 이래선 양기를 불어넣든 아니든 수령은 죽네. 그리고 자네들마저······.”

쿵!!

일령과 화령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소림 육승의 투쟁이, 아니, 소림사 1500년의 역사가 여기에서 끊길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