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3 모든 것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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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선인들이 음양혼돈공을 만들어 이 세계를 창조하고 조율한 뒤, 그들은 선계로 떠나버렸습니다. 그 뒤에 음양혼돈공은 둘로 쪼개져 존재하게 됐지요. 두 신공을 지키고 있던 강씨 가문에서도 음양혼돈공을 복원할 기재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암살공이 있었습니다.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암살공은 한빙신공 또는 열양진경에 대적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세계의 균형을 위해 누군가가 만들었겠지요. 그렇게 이 세상은 두 신공을 가진 강씨 세가와, 암살공을 가진 살문에 의해 균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120년 전의 어느 날, 살문의 일원이었던 어느 청년이 돌연 강씨 세가가 지키고 있던 한빙신공을 훔친 후 그것을 습득합니다. 그 당시 강씨 세가는 국공내전 중 국민당을 지지하고 있었는데, 대장정을 끝내고 세력이 급상승한 공산당에게 국민당은 패했지요. 결국 장개석을 비롯한 국민당 당원들은 중국의 수많은 보물들을 싣고 대만으로 떠났습니다. 그 중에 일반 문화재로 위장한 강씨 세가의 비급들이 있었지요. 겉보기엔 누가 봐도 고문서니 말입니다.”
“자넨 그것들을 어떻게 안 건가??”
원륭은 소형승의 물음에 답했다.
“살문의 원혼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살문의 원혼들이지요. 파천황에게 당한 살문의 일원들은 원혼들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대만 강씨 세가에도 초대받기도 했구요. 그 일은 다 아시죠??”
“으음, 전에 들은 적이 있네. 가까스로 탈출했다고 그랬지······.”
“네, 진룡 대협의 말씀대로입니다. 너도 잘 알고 있겠지, 강호육?? 네가 나를 추적했으니 말이다.”
“음, 그때는 잘 빠져나갔지······.”
강호육이 미간을 찌푸려댔다. 그 말 대로였다.
과거 강호육과 그의 조부는 원륭을 대표로 쪽방촌 무림인들을 회유하여 파천황과 공안 무림맹 요원들과의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다 실패한 적이 있었다.
그때 생각이 나자 강호육이 더욱 얼굴을 찡그려댔다.
“다른 건 몰라도 너희 그 혈귀의 혈운화라는 건 굉장히 짜증나더군. 솔직히 말해 그것은 거의 신공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 어째서 그런 신법만이 신공의 영역에 든 거지??”
“클클!!! 혈운화는 혈귀 최후, 최강의 신법이다. 강력한 것이 당연하지!!!”
“그렇다고 해도······.”
끼어든 불사왕의 말에 강호육은 인상을 풀지 않았다. 그때 원륭이 말을 계속했다.
“아무튼 저는 살문의 원혼들과 또한 강씨 세가에서 들은 말들로 대략의 전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살문의 원혼들에게서 암살공에 대한 대책도 들을 수 있었지요.”
“암살공에 대한 대책을 들었다고?!”
그때까지 묵묵히 있던 파천황이 크게 말했다. 그러자 원륭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파천황을 쳐다보았다.
“그래. 그들은 네놈에게 당하고 오직 복수만을 위해 100년 넘게 구천을 떠돌던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암살공의 비밀 따위 지킬 줄 알았더냐. 천만의 말이다······. 그들은 내가 먼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암살공의 비밀을 털어놓았지.”
“개소리!!! 암살공은 살문의 비책이자 또한 지켜야 할 신공이다!!! 그런 무공을 외부인에게 그냥 누출해!!!”
소리치는 파천황에게 원륭은 크게 외쳤다.
“미친놈!!! 그게 네가 할 소리이냐!!! 애초에 살문을 배반하고 유구한 세월 동안 내려온 살문의 명맥을 끝내버린 것은 네가 아니냐!!! 그것 때문에 강호의 균형이 모두 깨졌다!!! 한빙신공을 가진 네놈과 열양진경을 가진 강호육은 미친 듯이 대립하게 됐고, 그 사이에서 중재나 또한 견제를 가해야만 할 살황을 비롯한 살문의 일원들은 사라졌지!!! 그 죄를 아느냐!!!”
쩌렁쩌렁쩌렁!!!
원륭의 일갈이 사방으로 퍼졌다. 허나 파천황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후후!! 살문이든 강씨 세가든 모두 과거의 고리타분한 사명에만 잡혀 미래로는 나아가지 못하는 집단이었다!!! 퇴물집단이었지!!! 그것이 나의 행동으로 인해 변화하게 된 것이다!! 진보하게 된 것이지!!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놓고 미친 듯이 싸웠다!! 아주 치열하게 싸웠지!! 그 결과 어떻게 됐지?? 무림은 다시 살아났고 무림인들은 늘어났다!!! 국가의 체계적인 관리 하에서 육성된 무림인은 중국과 대만을 가리지 않고 늘어나 무림을 다시 활발하게 했다!!! 그것이 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멍청한 놈!!!”
원륭은 일갈했다.
“무림이든 뭐든 내 알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림이 국가의 수족 노릇을 하며 국가의 개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단 것이다!!! 무림인이 언제부터 국가의 개나 다름없었나!!! 그런 건 부랄 없는 동창의 환관들이나 그리 했었지!!! 무림이란 본래 자유로운 것이다!!! 무림인 또한 그리 자유로운 것이다!!! 그런 걸 무시하고 무림인들을 국가의 개로 만든 시점부터 네놈은 무림을 뿌리 깊이 썩게 만든 거야!!!”
“······.”
그 말에는 파천황조차 할 말이 없었다. 파천황은 이내 한 마디 했다.
“그래,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 그건 나의 잘못······. 하지만 나는 음양혼돈공을 손에 넣어 이 썩은 세상을 정화하고 싶었······.”
써걱!!!
그러나 파천황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원륭의 낙일검이 파천황의 목을 갈랐다.
원륭은 낙일검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드디어 이 목을 잘랐구나······.”
“흐흐흐흐흐흑!!!”
사휘령이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렸다. 대체 얼마 만에 쓰러트린 파천황인 것인가.
진룡과 상인관, 제갈의와 불사왕의 경우에는 실로 120년 만에 쓰러트린 강적이었다.
진룡은 한동안 허탈한 감정으로 파천황의 시체를 쳐다보고 있다가, 이내 한마디를 했다.
“죽였군. 이제 드디어 죽였어······.”
“······.”
다른 쪽방촌 무림인들도 모두 허무한 시선으로 파천황의 잘린 목을 쳐다보았다.
“이런 게 복수인 것인가. 너무나도 애타게 기다려왔던 순간인데 아무 것도 실감나지가 않는군······.”
제갈의의 말에 상인관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동감일세. 이런 게 바로 복수인 거겠지. 바로 복수의 허무함인 것이고.”
“······.”
유일하게 이 자리에 모인 자들 중, 불사왕만이 히죽거렸다.
“흐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 아무튼 죽은 것이 아닌가???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것은 좀 한스럽지만······. 아무래도 좋지!!!”
퍽!!!
불사왕이 죽은 파천황의 머리를 발로 차 날렸다. 진룡이 그런 불사왕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불사왕,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이미 죽은 자인데 참······.”
“이미 죽은 자니까 그러지!!! 그럼 산 자를 상대로 이렇게 할까!!! 죽으면 그냥 고깃덩어리야 고깃덩어리!!! 자네도 죽으면 얄짤이 없어!! 하하하하하하!!!”
“그것 참 어련하시겠소······.”
진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불사왕하고는 오래 얘기해봤자 답이 없었다.
피와 대마초에 절은 뇌를 가진 이 자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원륭은 자리에 있는 자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진룡, 불사왕, 제갈의, 상인관, 하홍휘, 소형승, 사휘령, 당화, 천만홍, 진흑창, 헐크G, 태사향, 악무양, 압둘라힘 쿠르단, 이스칸다얼 아이하이티, 투르군 토툰야즈, 오르혼 카간, 그리고 강호육.
쪽방촌 무림인과 홍콩 무림인, 그리고 마교인들과 더불어 강호육까지 있었다.
원륭은 말했다.
“모두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 자네도 고생 많았네.”
“어찌보면 더 고생이 많았지.”
“······.”
제갈의와 상인관의 말에 원륭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응답했다. 원륭은 홍콩 무림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수고했다.”
“흥, 결국 좋은 건 혼자 독차지하는군. 나쁜 자식······.”
진흑창이 툴툴 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천만홍이 웃으며 말했다.
“이해하시오. 파천황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싶었을 텐데 당신에게 뺏기어 심통이 났을 거요.”
“후후. 파천황의 목은 하나니······. 정 그렇다면 잘린 목이라도 도륙하든가. 당화. 너도 수고했다.”
“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건 따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솔직히 네가 스승으로 모시는 진룡은 나와 같은 항렬이 아닌가?? 나와 진룡은 같이 의화단에서 활동했고 나이도 비슷한데 왜 내겐 반말인 것이지??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다.”
“뭐, 지금 와서 따지기엔 좀 그렇잖아. 아니면, 내게 존댓말을 듣고 싶은 것이냐??”
“흥,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
“그럼 말하지 말라고.”
“······.”
당화와 원륭이 둘 다 피식 웃었다. 원륭은 태사향과 헐크G를 쳐다보았다.
“둘 다 고생 많았다. 솔직히 홍콩 무림인들 중에선 너희와 가장 마음을 터놓았던 것 같군······.”
“우리도 동감이다, 원륭. 함께 싸워서 기뻤다.”
“······.”
태사향에 이어 헐크G는 말없이 손을 꽉 쥐었다.
“기회가 있으면 또 보자, 원륭.”
“그래.”
꽈악. 원륭이 강하게 헐크G의 손에 힘을 주었다. 원륭은 그리고 나서 악무양에게 말했다.
“도망칠 줄 알았는데 용케 왔구나, 무양.”
“흥, 나도 어린 애가 아니오. 그보다 궁요와 일지흔이 죽었는데 나만 도망갈 수는 없었소. 그 둘이 있었더라면······.”
주륵!! 악무양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원륭은 악무양을 다독이며 말했다.
“그 둘도 우리들의 승리를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무양. 우리들도 언젠가 그들을 만나러 갈 터이니, 먼저 갔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자.”
“흐흐흐흐흐흑!!!”
눈물을 흘리는 악무양을 뒤로 하고, 원륭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마교인들이 원륭을 쳐다보고 있었다.
“네놈들도 수고했다.”
“흥, 네놈에게서 그딴 소리를 듣고자 우리가 온 것이 아니다. 우린 그냥 파천황을 처리하기 위해 온 것 뿐이다.”
“피차일반이다.”
찌릿!!!
마교 교주 압둘라힘 쿠르단과 원륭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눈에선 전기가 흐르는 듯 했다.
“이제부터 어찌할 셈이냐.”
“네가 뭔 상관이지??”
“······.”
원륭은 쿠르단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너희들이 앞으로도 계속 죄 없는 민간인에 대한 테러를 계속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너희들을 죽여 버리겠다. 너희들이 과거 진룡 대협의 소속이었던 마교인이라고 해도 말이야.”
“난 신경 쓸 것 없네, 원륭. 저들이 옳지 않다고 여긴다면 자네 마음대로 하게.”
“라고 하시는데??”
“변절자의 말 따위 신경 쓸 생각은 없다. 진룡이 뭐라 하든 우리 역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놈들을 처리할 뿐이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
쿠르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홍콩자유협객연맹의 무림인들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홍콩자유협객연맹과 마교인들은 그 하나하나의 실력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수가 너무 차이가 난다.
연맹의 무림인들은 열 넷인데 반해, 마교인들은 고작 네 명이었다.
솔직히 말해, 홍콩 무림인이든 쪽방촌 무림인이든 그들 조직만으로 마교인들을 처리할 수가 있었고, 홍콩 무림인들 중에서도 세 총수만으로도 상당히 해볼 만 했다.
쪽방촌 무림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중에서 세, 네 명만으로도 마교인들을 상대할 수가 있다. 그들 중 누구라고 해도 말이다. 원륭은 일단 마교인들은 놔두기로 했다.
“너는 어찌할 셈이지? 강호육??”
“······.”
강호육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쓰러져 있는 파천황의 시체에 꽂혔다.
파천황이 가지고 있을 한빙신공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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