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1 휴식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너는 좀 더 차가운 성격의 무림인이라 여겼었는데 의외로군. 설마하니 옛 동료들을 만나고 싶다하니 말이야.”
“나도 사람이다. 114년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동료 정도면 한번 보고 싶을 수도 있지. 더군다나 서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면 말이다······. 후후후후후후.”
“과연 그렇군.”
원륭은 고개를 끄덕여댔다. 하긴 제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114년 전에 함께 뜻을 위해 싸우던 동료들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 뜻은 꺾였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 다른 뜻은 또 살아있지.
의화단 운동은 실패했지만, 중국 정부를 향한 투쟁은 아직도 그들에게 계속되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든, 홍콩에서든, 그들은 각자 싸우고 있었다. 각자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것들을 위해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비록 죽는다 해도······.
그렇게 싸워온 지가 어언 115년 째였다. 의화단 운동이 시작된 해부터 무려 115년······.
원륭은 입을 열었다.
“뭐 언젠가 만나게 되겠지. 당화 너와 진룡 대협 등이 각자 계속해서 싸운다면 말이다······. 뭐 언젠가 이 싸움의 끝은 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죽든, 파천황이 죽든 말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도록 하지. 언젠가는 그 끝이 나게 될 테니까······.”
“그래 왠지 조만간일 듯 하군.”
“······.”
원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원륭은 세 총수에게 구출한 서점 관계자들을 맡기고 다시금 중국 본토로 되돌아왔다.
어느덧 어둠이 어둑어둑 지고 있었다. 그는 약속해두었던 안전가옥으로 향했다.
그곳엔 소형승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고생하십니다.”
“고생은 무슨······. 홍콩까지 다녀온 자네가 더 고생이지. 그래, 일은 잘 끝났나??”
“네, 모두 잘 끝났습니다. 들어가시죠. 갔다 온 이야기를 할 테니까요.”
“아닐세. 난 여기서 듣도록 하지. 보초는 어차피 있어야 하니까 말이야······.”
“정 그러시다면······.”
원륭은 안전가옥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다른 쪽방촌 무림인들이 모두 다 모여 있었다.
불사왕만 빼고 말이다. 원륭은 불사왕의 행방을 묻지 않았다.
지붕 위에서 그의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는 드러누워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겠지.
따분한 걸 싫어하고 제멋대로라 지붕 위에 올라가 잠이나 자고 있겠지만, 그도 남의 얘기를 다 듣고 있다.
일정 경지에 오른 무림인들은 자면서도 온갖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는데, 불사왕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진룡이 입을 열었다.
“어서 오게. 일은 잘 끝났나???”
“네. 서점 관계자들을 그곳 세 총수에게 넘겨주고 왔습니다. 근데 당화가 진룡 대협을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당화가?? 그 당화가??”
“허허허허허허!!!”
상인관과 제갈의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녀는 100년 전에도 빙화라 불릴 정도로 그야말로 얼음 같았네. 얼음 위에 핀 꽃이었지. 혹은 얼음으로 된 꽃. 사람을 잘 죽이진 않았지마는 한 번 죽여야 할 때는 확실하게 죽이는 여자였는데, 그런 여자가 나를 보고 싶다니 무섭군.”
진룡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원륭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그 당시의 당화는 저는 잘 모르니 말입니다······. 저도 20년 넘게 알고 지내긴 했는데 확실히 그런 면이 없지 않게 있긴 하더군요. 제가 그녀의 손자 둘을 죽였을 때도 태연했으니 말입니다.”
“무림 문파나 세가가 대체로 그렇지마는 구성원이라 해도 제 구실을 못하면 사람으로 쳐주지 않지. 아마도 그녀에겐 두 손자가 별로 가치가 없거나 그만한 잘못을 했기에 크게 관심을 주지 않았을 걸세. 그것이야말로 당문의 사람들에겐 가장 큰 벌이지······. 빙화인 그녀가 그렇게 나온다는 건 가문 내에서의 단절을 의미하니까 말이야······. 그녀에게 그런 취급을 받으면 가문 내에서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아마 붕 뜬 신세가 되고 말걸???”
“네. 그녀의 두 손자는 양조위의 연인인 유가령을 납치했다가 당시 저와 엮여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제가 어떻게 하다가 보니 유가령을 납치한 범인들을 쫓게 되었고, 결국 그 흉수가 당화의 두 손자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그녀는 원망하지 않던가???”
“네, 전혀요. 속으론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실을 안 직후에도 매우 담담하기 짝이 없었고, 저와 20년이 넘게 알고 지내는 동안에도 단 한 번도 그걸 가지고 탓하지를 않더군요. 솔직히 제가 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음······. 자네는 문파나 세가 생활은 해본 적이 없으니······. 마교도 그렇지마는, 소속이 있으면 구성원들의 소속감은 더 강해지네. 서로 감싸고 돌려고 하지.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얘길세. 가끔은 같은 소속원이라고 해도 더욱 엄격하게 대하는 경우가 있네. 가문이라든지 문파 내 지위라든가, 세력 등을 놓고 다툼이 발생하기도 하지. 당문은 철저하게 실력 중심의 세가이기에, 아마 잘잘못을 빼놓고 두 손자들이 죽어도 당화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건 아마 그 실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일 걸세.”
“예, 그랬죠. 그 두 놈은 총을 이용한 암기술을 사용을 하더군요······. 전혀 못 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리 대단한 놈들도 아니었습니다.”
“특히나 당화같이 보수적이고 가문을 이끌어나가는 입장이라면 더욱 총 같은 물건을 이용한 무공은 좋게 보지 않겠지. 정통 무림인들에게는 어떤 자부심이 있거든. 무공은 이러해야 한다와 같은 것들 말이야······.”
“네, 당화는 만천화우를 익힌 몸이라 아마도 총 따위에 의지하는 손자들이 탐탁치 않게 보였을 겁니다.”
“그래. 총은 강력한 도구이지만 무공의 영역에서는 그게 좀 달라. 전혀 못써먹을 물건은 아니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병기로서의 위력에 비하면 무림에서는 그 효과가 확실히 더 떨어지지. 총을 이용한 무공은 총의 위력에 너무나도 많은 의지를 하게 되기에 결국 무림인으로서의 능력을 깎아먹게 돼있어. 퇴화를 하게만 되지. 총을 이용한 무공을 발전시키려면 내공이라든가 다른 요소를 점검할 시간에 총의 위력을 올리면 되기에, 사실상 무공이 아닌 것에 가깝게 변질되기는 하네. 결국은 사도(邪道)지.”
“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사천당문은 그 수가 많아. 보통 세가가 그렇지마는 그들은 일개 대가족 수준의 규모가 아니네. 세가 단독으로 사업을 하고, 어느 정도 규모의 전쟁을 벌일 수 있을 정도지. 홍콩이 현재 3대 세력에 의해 나누어졌다고 했나???”
“4대 세력입니다. 그 중에 일화는 칩거한지 오래되었습니다. 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움찔!!!
일화의 이름이 나오자 왠지 듣고 있던 하홍휘가 움찔해버렸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륭과 진룡 등은 계속해서 이야길 했다.
“어찌됐든 당화도 참 고생을 했겠군. 홍콩 토박이도 아닌데 외지인이 이주를 가서 자리를 잡을 정도로 세상 일은 만만치 않으니 말일세. 설령 무림인이라 해도 말이야······.”
“네. 하지만 그녀는 해냈더군요. 대단한 일이죠.”
“대단한 일일세.”
진룡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그때 상인관이 물었다.
“데려간 서점 관계자들은 어찌하겠다던가??”
“다른 이들은 모르겠는데, 창립자이자 점주인 린룽지는 대만으로 이주하겠다 하더군요. 그 외에도 뭔가 정리하는 일들이 있는 것 같은데, 뭐 당화 등에게 잘 도와달라고 얘기해놨습니다. 아마 그들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휘하 그룹의 부하직원들이 잘 처리할 겁니다.”
“그래, 그렇군······.”
“아참, 이번에 데려온 민주화 투사들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보이질 않는군요.”
“그들 역시 이미 개방도들을 시켜 각지로 은신시켰네. 어차피 중국 정부에 찍힌 이상 그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는 없겠지. 전국의 심산유곡엔 예전부터 은거하고 있던 개방도들이 많아. 젊은 시절엔 활약을 하던 이들이 나이가 들어 귀농 어쩌고 하며 은거하는 일들이 있지. 그런 마을에 그들을 숨겼네. 개중엔 민주화 운동을 계속하겠다며 자기 갈 길을 간 자들도 있지만, 어쩔 수 없지······. 응원해주는 수밖에······.”
“네, 그러하겠죠······.”
원륭은 고개를 끄덕여댔다. 공산주의 사회인 중국 땅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거나 아님 중국 정부에 대해 비판을 쏟아내다가 죽거나 갇힌 이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은 겉으론 직업교육소라고 적힌 사실상 감옥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는데, 뭐, 중국 정부에 대항한 자들의 말로가 바로 그렇다. 제갈의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일은 둘 다 처리된 것만 같군. 한동안 모두 쉬기로 하지. 몸에 탁기가 가득 쌓였을 걸세. 그걸 배출하는 시간도 필요하겠지.”
“예.”
원륭을 비롯한 모두가 동의를 하여 원륭은 집밖으로 빠져나왔다. 소형승이 여전히 보초를 서고 있었다.
“얘긴 다 끝났나???”
“예. 다 들으셨죠???”
“음, 특별히 기로 차단막을 친 게 아니니 말일세······. 아무튼 고생했네.”
“고생은요 무슨. 그보다 소 대협도 힘드실 것 같은데 이만 들어가시죠. 나머지 보초는 제가 서겠습니다.”
“됐네. 어차피 이 정도 일쯤에 지칠 내가 아니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바로 교대하겠습니다.”
“알겠네.”
현재 쪽방촌 무림인들 중 가장 무공이 고강한 세 명은 바로 원륭과 소형승, 불사왕인데 불사왕은 불성실한 성격이라 보초를 맡은 적이 없었다.
그는 누가 시키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기 때문에 시켜도 말을 듣지를 않는다.
기본적으로 그가 하는 건 모두 자신이 하고 싶기에 하는 것이다.
물론 그는 뭘 하고 있든 자신의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깨어있든, 자고 있든, 뭔가를 먹을 때라도. 그래서 사실 보초를 굳이 둘 필요는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게 없기에 소형승은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불사왕이 보초를 서지 않기에, 가장 무공이 고강한 나머지 두 사람인 소형승과 원륭이 교대로 보초를 서야만 한다.
소형승은 꼬박 하루가 지나도록 혼자 보초를 서고 있었으나, 홍콩까지 다녀온 원륭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서인지 절대 교대하지 않았다.
사실 그의 무공 수준을 생각해본다면 앞으로도 수십 일간은 잠도 자지 않고 계속해서 경계가 가능하겠지. 식사가 제한당해도 말이다. 소형승이 보초를 서주는 덕분에 원륭은 잠시 잠에 빠졌다.
그도 사람이라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전투를 치르고 드디어 찾아온 휴식에 잠이 쏟아졌던 것이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