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45번의 핵실험
‘흐음, 이건 좀 색다른데. 꿀과 요거트 조합이라. 이런 빙수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군······.’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에도 빠오빙(刨冰)이라고 해서 빙수가 있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빙수의 기원도 기원 전 3천 여 년 전 중국에서 얼음에 꿀과 과일즙을 넣어 섞어 먹은 것이 최초라고 한다.
심지어 원륭은 몰랐지만 한국에도 중국과 같이 팥빙수가 있고, 그 외 중국에도 팥이 없이 그냥 색소를 뿌려 무지개 색으로 만든 빙수라든지 뭐 여러 가지가 있기는 했는데 꿀에 요거트 조합은 처음 먹어보는 것이다.
사실 충분히 있을 법한 조합이기는 했는데 팥빙수와는 달리 좀 더 끈적끈적한 자연산 벌꿀의 감미에, 그걸 너무 달지 않게 요거트의 산미가 조절해주어 아주 조합이 좋았다.
원륭은 시원한 빙수를 마치 마시듯 흘려 넣고 자리에서 일어선 뒤, 그리고 그는 거리를 걸었다. 저벅, 저벅, 저벅. 날씨가 너무 좋았다.
선선한 밤공기가 기분 좋게 폐에 흘러들어왔으며, 아무래도 개발이 덜 된 탓인지 공기에선 거의 매연이 느껴지지 않았다. 개발이 낙후된 것은 반대로 이런 장점도 있는 것이다.
중국의 위구르 지역 차별이 가져온 결과였다.
‘오히려 이게 더 나을지도······.’
원륭은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며 걸었다. 북경이나 상해 등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하늘을 수놓는 은하수가 가득 펼쳐져 있었다.
잔뜩 부른 배를 기분 좋게 쓰다듬으면서, 원륭은 사람들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그가 대충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나가는 건 아니었다.
슈슉!!
눈에 보이지도 않을 놀라운 속도로 원륭의 손이 휘둘러졌다. 그리고 회수된 손톱 끝엔 미세하게 피가 묻어져 있던 것이다. 그래. 원륭은 지금 지나가는 사람들의 피를 수집하고 있었다.
예리하게 손질된 손톱을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한 속도로 순식간에 찔러대자, 손톱은 마치 바늘처럼 사람들의 피부를 파고 들어가 피를 묻혀왔다.
그리고 원륭은 그 피를 통해 기억을 읽고 있었다.
‘음······.’
원륭은 신음했다.
‘미안하오, 위구르의 사람들. 여러분들에게는 죄가 없는 걸 알지만 이대로 가면 분명 이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는 재앙이 닥쳐올 거요. 내가 그것을 막아야 하오.’
운남성 쿤밍역에서 희생자들의 기억을 살펴본 결과, 범인은 분명 신강 위구르 지역의 인간이었다. 그 특유의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의 얼굴은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뿐이면 혹시 인피면구나 변장을 통해 신강 위구르 지역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수작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의심했겠지만, 문제는 남은 마공의 잔재들이었다.
신강 위구르 지역은 본래 마교의 근거지였다. 명나라를 건국하는데 도움을 주고도 주원장에게 토사구팽된 마교의 인간들이 이를 갈며 멀리 천산산맥 너머 신강 위구르 지역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그러다 그들은 보통 한 10년을 주기로 힘을 길러 중원에 다시 쳐들어왔는데, 이것이 바로 명나라 수백 년 역사동안 반복된 마교의 침공사건이었다.
그리고 관은 대부분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선언하니 결국 마교의 중원 진출은 구파 일방 등 정파 무림인들이 주축이 되어 무림맹을 만들고 막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교는 중원인들이라면 모두 증오해 사파고 뭐고 남김없이 죽여 버렸기 때문에 그때만큼은 사파도 정파와 합심해 중원 무림맹을 결성하고 마교에 대항하곤 했는데, 뭐 이미 지나간 일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마교 대 중원 무림인들이 아니라, 신강 위구르 자치구 대 중국 정부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전쟁은 진행 중이었다. 원륭은 생각했다.
‘전쟁은 변했다. 그러나 전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분명 겉으로 보기에는 그 전쟁의 양상이나 모습은 달라졌으나, 실은 그 본질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수백 년이 흘러도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뭐,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자들이 있으니······.’
원륭은 생각했다. 가령 팔레스타인이라든지 이스라엘 그 쪽은 아직도 분쟁이 계속되었는데, 수천 년 전 잃어버린 조상들의 땅을 찾겠다고 난리치는 이스라엘에 못주겠다고 난리치는 팔레스타인에 아주 혼란과 파괴, 증오만이 가득했다.
‘이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바로 그곳이겠지.’
그 외에도 끊임없이 내전이 이어지는 아프리카라든가,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 그 외 기타 수많은 분쟁지역들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어째서 싸우는 것일까······. 그리고 언제까지 싸우려는 것이고······.’
원륭은 쓸쓸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물론 압제를 가하는 나라나 사람들이 있기에 사람들은 그에 투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천 년이 지나도 인류는 변하지 않고 있으니 마음이 착잡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인류는 이대로 영원히 변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 아니, 앞으로도 이대로 계속 싸울 것인가??’
어떻게 보면 파천황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그는 두 가지 신공을 모두 손에 넣어 일종의 전략적 억지력인, 그야말로 ‘인간 핵무기’가 되려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을 손에 넣어 아무도 감히 투쟁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데, 일단 그 의도는 둘째 치고 과정이 너무나도 옳지 않았기에 원륭은 그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몰래 개인의 기억들을 수집하며 쿤밍역 테러를 일으킨 범인들을 찾는 원륭 역시 옳은 것인가. 원륭 역시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빨리 범인을 찾아내지 않으면 신강 위구르 지역에 가해지는 탄압은 더욱 더 심해지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신강 위구르 지역과 이곳 사람들에게 하는 가하는 폭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 절대적으로 막아야만 했다.
그래서 원륭은 평상시에는 절대 하지도 않던 개인의 기억을 흡수해 이를 통해 범인을 찾는 수단까지 쓰고 있었다. 시간이 없는 것이다.
‘나와라, 나와라! 나와라!!’
그러나 아무리 사람들의 피를 흡수해 거기에 담긴 기억을 엿보아 봐도, 범인들의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본래 원륭은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서도 가장 발전한 지역인 우루무치 지역의 상인들을 뒤져보면 대충 단서가 나올 줄 알았다.
상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람을 만나는 자들 중의 하나라 이들의 기억을 뒤지면 그중 분명 하나는 단서가 나올 줄 알았던 것이다.
시장에서 가만히 장사를 하기만 해도 하루 스쳐가는 사람들의 수가 한 둘이 아닐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쿤밍역에서 본 범인들의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원륭은 우루무치 시에서 범인들을 찾는 건 포기했다.
‘하긴, 탄압이 강한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서도 그 중심인 우루무치 시에는 공안은 물론이고 중국 정부의 감시가 많이 깔려 테러범들이 평소에 많이 나돌아 다니지 않겠지. 그럼 좀 더 깊이 들어가 볼까.’
그날 하루는 자고, 원륭은 다시 길을 나섰다. 그가 도착한 곳은 바로 청해성 해북 티베트족 자치구 서해진이었다.
이곳의 명칭은 공식적으로 청해성 국영 221공장이지만, 실제론 다른 이름으로 불려왔다.
이른바 ‘원자폭탄 실험도시’라고 불리운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원륭은 원자폭탄 실험도시, 서해진에 도착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이곳이 바로 중국 최초의 핵실험 장소중 하나인가······.’
원륭은 묘한 눈으로 가늘게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1964년, 모택동은 중국 최초의 핵실험 중 하나를 이곳에서 진행했다. 하필 이곳인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중국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이며, 무엇보다 소수민족인 티베트족 자치구이기 때문이다.
모택동은 비슷한 시기에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서도 핵실험을 했는데, 하필 고비사막이라든지 그런 델 다 놔두고 모두 사람 사는 곳 근처에서 핵실험을 한 이유는 따로 있지 않았다.
소수민족들을 탄압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 결과 거듭되는 핵실험으로 티베트 자치구와 신강 위구르 자치구는 출생률이 줄고, 사람들의 불치병 및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졌다.
그야말로 죽음의 지역들이 되가고 있었던 것이다.
휘이잉~!
황량한 바람이 원륭의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이젠 핵실험을 한 지도 꽤 오래되어서 중국 정부는 이미 1995년 이곳이 원폭실험지로서의 역할을 마쳤다고 한때 폐쇄를 발표했으나, 9년 전인 2005년 돌연 이곳을 국가 애국주의 모범기지로 지정하여 애국심을 고취하는 공간으로 활용해왔다.
그 결과 사방은 모택동 및 중국 정부가 어떻게 이 지역을 핵 실험장으로 활용했는지, 또한 이를 통해 개발한 핵폭탄이 어떻게 중국의 국가안보와 대외적인 이미지에 이바지했는지 선전하는 관광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 놀랍게도 중국은 핵실험장을 관광지로 써먹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들의 핵실험으로 인해 티베트인들이 각종 불치병에 시달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아냐, 너흰. 인간들이 아냐.’
원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령 원륭도 최근 사람들의 기억을 훔쳐보는 짓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아무 일도 아니었다.
원륭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 테러범들의 모습만을 조사한 뒤,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금방 바로 잊어버렸던 것이다.
애초에 기억을 조사한 사람들의 수가 너무나 많아 그들의 기억을 머릿속에 모조리 다 담고 있는 것은 무리였다.
피를 흡수당했다고 해도 모기가 물고 간 것보다 더 적을 정도였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자 기억은 머릿속에서 전부 사라진 뒤였던 것이다. 아무튼 원륭은 사방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아무 것도 없군. 그저 흉한 모택동과 중국 정부의 업적을 선전하는 서커스장 같은 곳일 뿐이다. 근데······. 이런 곳을 잘도 관광지로 개발할 생각을 했군.’
원륭은 피식 웃었다. 심지어 잔류 방사선 량도 장난이 아닌 것이다. 괜히 현지 주민들이 불치병에 시달리는 게 아니었는데, 원륭이 그걸 알면서도 찾아오고 멀쩡한 이유는 혈귀이기 때문이었다.
혈귀는 재생력이 강하고, 각종 암이나 질병에도 강하다. 스스로 음식을 통해 영양분을 흡수할 수 없다 뿐이지 그것만 제외하면 인간의 상위종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여러 면에서 강력했는데 그 중에는 방사능에 대한 저항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원륭도 입 안에서 뭔가 씁쓸한 납 맛 같은 것을 느꼈다.
‘방사능 양이 많은 곳에 가면 입 안에 납 맛 같은 게 느껴진다더니 진짜였군. 진짜로 혀가 쓸 정도다. 이만 봐도 되겠군.’
원륭은 즉시 티베트 자치구 핵 실험장에서 벗어났다. 굳이 있어봤자 좋을 것도 없었던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걸 관광지로 만들었지만, 그런 멍청한 중국 정부와는 다르게 방사능에 노출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 이곳은 현재 텅 빈 상태였다.
온통 을씨년스러운 모택동 동상만이 관광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이곳저곳에 널린 모택동 동상에 침을 한번 뱉고는 원륭은 그저 미련 없이 떠났다.
퉷!!
그가 향한 곳은 다시 신강 위구르 자치구였다. 티베트 자치구의 핵 실험장은 그가 한번 쯤 둘러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기에 잠시 들린 것이었다.
원륭의 직감은 분명 범인들이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 있다고 소리친 것이다.
원륭도 지금까지 사람들을 많이 죽였지마는, 그들은 전부 중국 정부에 부역하는 인민해방군, 공안, 공안 무림맹 요원들뿐이었다. 혹은 홍콩 밤거리의 범죄자들??
그 외에는 먼저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양아치들뿐인 것이다.
하지만 그 테러범들은 갑자기 기차역에 나타나 무고한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을 향해 칼을 휘둘러 죽여 버렸고, 그들을 잡기 위해 중국 공안이 현재 나선 상태였다.
반드시 범인들을 찾아내 처리해야만 했다. 신강 위구르 지역에 무슨 불똥들이 튀기 전에.
원륭은 다시 신강 위구르 지역에 도착한 후, 이번엔 우루무치 시로 향하지 않고 내륙 깊이 들어갔다. 바로 신강 위구르 지역에서 핵실험이 일어난 곳이었다.
이곳은 로프노르(羅布泊湖), 혹은 뤄부포라고 불리우는 곳으로, 말하자면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어느 소금호수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곳은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분지이자 한때 소금호수였던 곳으로, 타림 강과 수러 강이 만나 합류했던 역사적인 후기 시대의 빙하, 타림호의 마지막 잔재이다.
1928년까지만 해도 그 면적이 무려 3,100제곱km에 달했지만, 점차 가속화되는 사막화로 인해 이젠 극도로 좁아진 것이다.
거기다 1964년 10월 16일 최초로 중국 정부가 핵실험을 진행한 이후, 무려 45번에 걸쳐 핵실험을 진행함으로 인해 이곳 환경도 엉망이 되어있었다.
바람이 불때마다 방사능 가득한 모래폭풍이 휘날리고, 이 폭풍은 신강 위구르 지역 전체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방사능을 뿌렸던 것이다.
“씹······.”
원륭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흘러나왔다. 무려 45번. 중국 정부는 신강 위구르 인들이 자신들에게 순종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무려 45번의 핵실험을 진행해버렸다.
그것도 사람들 사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곳 옛 소금호수 터에 핵을 계속 쏘아버렸는데 어떻게 그런 만행을 저질렀는지 실로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까득!!
원륭의 이가 갈렸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