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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연재수 :
1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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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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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88,619

작성
22.02.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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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103화

DUMMY

”포기라니.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하다니.“


인상을 찌푸린 강인수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렸다. 강인수로서는 수치스러운 생각이었다. 스스로에게 화까지 났다. 그런 강인수의 눈에 빨간 글씨가 다시금 들어왔다.


[공장 허가 신청 불허不許]


‘형제건설이 이제는 시멘트공장까지 손을 댄다고 하던데요.’

‘그것만은 두고볼 수 없지. 우리 밥그릇 아닙니까.’

‘그럼 어떻게 할까요?’


강인수의 ‘형제건설’이 시멘트공장을 짓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소문은 발 달린 말처럼 순식간에 퍼졌다. 그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으나, 강인수는 머리카락만큼이라도 이 땅에 정의가 남아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저 공고한 성 같은 로비를 타개할 방법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수년 동안이나 이어진 일이야. 이제 와서 우리가 로비를 한다고 해도. 아니,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같은 방식으로 추해지고 싶지는 않아. 광산은 이미 사들였고···. 이제라도 매각한다면 우스운 상황이 될 게 뻔하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모르겠군.’


매일이 난관이었으나, 이번만은 달랐다. 강인수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들이 있는 반면, 이런 방해는 조금 다른 분야였다. 해결에 가까운 방향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톡, 톡, 톡.


강인수가 검지를 세워 가만히 책상을 두드렸다. 강인수는 한참 동안이나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서서 생각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끝을 모르고 이어지던 강인수의 집중이 깨졌다.


똑, 똑.


”들어오세요.“


강인수는 그때서야 자신이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자에 앉았다.


'아직 일이 남은 사람들이 또 있는 건가? 통금 시간 전에 퇴근하라고 했건만.'


“형님.”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은 강인수의 예상에 없던 강태수였다. 강태수를 확인한 강인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아니, 태수 아니냐. 이 늦은 시간에 어떻게.“


지금은 통금 시간을 훨씬 넘긴 새벽이었다. 강인수야 새벽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일이 익숙했지만, 이 시간에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오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그래도 강인수는 반갑게 강태수를 맞았다.


”술을 좀 했나 보구나.“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강태수에게서 지독한 술냄새가 풍겼다. 강인수는 소파에 강태수를 앉히고 물을 내주었다.


”그래,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냐? 그것도 이 야심한 시간에 말이다.“


강태수는 소파에 앉아 맞은편의 형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강인수는 그런 동생에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야?“


강태수는 몇 번 입술을 달싹인 끝에 입을 열었다.


”제가···. 형님께 일어나는 일들마다 속속들이 이야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형님이 걱정하시는 게 싫어서였습니다.“


강인수는 시선을 내렸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태수의 이야기는 천천히 이어졌다. 술기운에도 한마디, 한마디를 골라 하려는 게 눈에 보였다.


”희수가 죽었을 때, 저는 다짐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 누구도 다시는 우리 가족을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말입니다.“


강태수의 이야기는 강인수의 생각보다도, 그리고 강태수 자신의 생각보다도 더 훨씬 더 오래 묵은 것이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강태수의 얼굴이 괴로운 듯 일그러졌다.


”아직도 희수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그 어린 것의 차가운 시신도, 그 느낌도 모조리 기억납니다. 제가 한 가지 분한 것은, 분한 것은···. 희수의 목소리가 점점 더 희미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강태수의 말에 강인수는 눈을 감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막냇동생을 기억해냈다.


‘오라버니들!’


언제나 밝게 웃는 아이였다. 힘겨울 시기일지언정 모두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아이였다. 그렇게 가서는 안 됐을 사랑스러운 동생이었다.

형제들은 일부러 희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떠올리는 일이 너무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강태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층 더 동요가 담긴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 희수를 기억하고, 떠올려야 했습니다. 생각하기가 힘들다는 사실로 미뤄 두는 게 아니라. 희수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내는 것이 아니라."


강인수와 강태수는 여전히 아무도 몰래 강희수의 기일을 챙겨 왔다. 전쟁 중에도, 조촐하게라도 항상 동생을 위해서. 먼저 간 동생을 기리는 것이 그날 하루일 뿐일지라도, 그다음 날에는 전부 잊은 듯 지낸다 하여도.

두 남자의 얼굴이 비슷하게 일그러졌다. 다시 말을 잇는 강태수의 얼굴에 고통이 가득했다.


”도망치는 일은 너무 쉽지 않습니까. 우리를 위해 갔다가 죽은 것과 다름없는 동생의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데, 무엇을 똑바로 해낼 수 있는 것인지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강태수는 강희수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또래였을 여자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렸다. 하지만 통증은 점점 희미해졌고, 흐려졌다. 시간이 지났다는 말로 묻어 버려서는 안 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제가 이 통증을 전부 잊는 순간, 저는 더 이상 사람이라 불릴 수 없겠지요.“


강인수는 그저 강태수의 주먹 쥔 손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 주먹 안에 쥔 것은 강태수의 모든 생각이었다. 누르고 눌러, 쥐고 다시 쥐어 손에 기어코 쥔 감정들이었다.

핏줄이 불거진 그 손목을 보는 순간, 강인수는 순간 깨달았다.


‘시멘트공장 일을 태수가 알게 되었구나.’


침묵은 손쉬운 수단이었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힘을 들이지 않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두 남자는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음에도 종종 선택했다. 서로를 위했으나, 서로를 위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대가는 지금이었다. 강인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강태수는 강인수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기를 기다렸다. 강인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고령교 공사를 하면서 커다란 빚을 떠안았다. 공사비보다도 적자가 컸어. 그때부터 고민한 일이었지. 그러다가 작년 한강 인도교 공사를 하면서 결심한 게 있다.”


강인수는 강태수와 눈을 마주친 채로 말을 이었다. 강태수에게서 풍기는 술냄새는 무거울 정도였지만 강태수의 눈빛은 여전히 흐트러짐 없이 날카로웠다.


“시멘트공장을 만들자.”


강인수는 얼굴에 드러나는 착잡함을 숨기지 않았다.


‘직원들 앞에서라면 이런 말도, 표정도 지을 수 없겠지만···.’


강인수의 얼굴 위로 그의 심란함이 전부 드러났다. 하지만 오히려 속이 홀가분해지는 기분이었다.


“공사의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서는 공사에 필요한 자재들의 값을 줄이는 게 제일 효과적이었어. 그게 인건비를 줄이는 것보다도 확실한 방법이었지.”


수입 자재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질수록 공사 원가는 줏대없이 흔들릴 것이 분명했다. 수입 시멘트의 값이 올라가면 공사 비용도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싸게 수입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은 언제고 비싸게 수입하게 될 거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태수야.”


강인수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강인수가 신용만큼 중요시하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미래를 봐야 해. 현재는 계속 미래가 되는 법이지 않느냐.”


강인수는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강태수의 어깨 위를 응시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멈춰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멈추는 것은 어쩌면 실패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


한강 인도교 공사 후에 강인수는 또 다시 수많은 복구 사업을 도맡았다. 그렇기 때문에 시멘트공장은 더욱 필요했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은 결국 언제고 손을 빠져나가는 법이야.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럴 수가 없는 입장이다.”


강인수는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형제건설’에만 해도 수많은 기술자들이 있었다. 부산에서부터 함께한 사람들과의 신뢰는 이미 탄탄했다.

문제는 현재였다. 서울에서 새로 만난 기술자들과 이제야 신뢰가 쌓이고 있는 참이었다. 그건 강인수가 진심으로 바라던 일이었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은 나날이 늘고 있는데, 멈출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어. 그럴 수는 없어. 그래서는 안 되고.”


강태수는 괴로워하는 형을 보며 박정필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아, 참. 작년에 한강대교 공사를 한 게 ’형제건설‘이던데, 거기 사장이 태수의 형님 맞지? 익숙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었거든.’

‘맞아.’

‘태수의 ’형제상회‘가 생각나던데. 그런데 이번 일은 안됐군.’

‘안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정필.’

‘아, 아직 모르고 있었군. 이거, 내가 괜한 말을 한 게 아닌가 걱정되는데.’

‘형님께 무슨 일이 있기라도 한 거야?’

‘음, 난처한데. 하지만 태수도 곧 알게 될 것 같으니까. ’형제건설‘이 시멘트공장 건설 허가를 신청한 지 꽤 되었어. 결과는 불허. 지금 정부와 기존 시멘트공장들의 유착 관계 때문이지. 정부는 일부러 질질 끌었고.’

‘일부러 말인가?’

‘그래. 그럴수록 사 들인 광산이 방치될 거고, 그럼 유지 비용이 다시 나갈 테니까. 그들로서는 일타이피지. 힘 들이지 않고도 경쟁사의 돈을 나가게 하니까.’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군인이 정부에 적대감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강태수는 그 후로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고 잔만 기울였다. 강태수는 박정필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다시 한 번 복기했다.


‘참, 이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자꾸만 벌어지고 있어.’


이래서는 안 되는 일이라면, 되돌려야 하는 게 아닌가? 그날 밤, 강태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


“광산을 매각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강인수는 간부회의에서 자신의 결정을 밝혔다. 시간이 한참 지나 불허 결정을 받은 참에 광산을 매각하는 줄로만 예상했던 간부들이 강인수의 의견에 반대했다.


“사장님, 이 광산을 매각하지 않는 건 우리로서는 큰 손해입니다. 광산을 사느라 빌린 돈과 이자는 다시 어디서 메운단 말입니까. 지금이라도 다시 매각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 과장의 이야기가 맞습니다, 사장님. 지금이라도 광산을 매각해야 합니다.”

“더 늦었다가는 손실이 더욱 클 겁니다.”


강인수는 한 차례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모두 진심으로 회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강인수는 그래서 더욱 광산을 매각할 수 없었다.

강인수는 평소의 부드러운 표정이 아닌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어지는 강인수의 말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우려하고 계시는지 압니다.”


정부의 눈밖에 나는 것은 아주 큰 문제였다. 아직도 이승만 정권의 힘은 적지 않았다. 광산을 매각하지 않는 것은 정부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일로 보일 터였다. 강인수가 잠시 동안 입을 다문 사이,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사무실 안을 크게 울렸다.

강인수는 결연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린 결정입니다.”


강인수는 지난밤을 회상했다. 강태수가 남긴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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