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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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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작성
22.02.0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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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글자
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97화

DUMMY

1955년 5월, 고령교는 완공되었으나 완공이 끝이 아니었다. 정부는 강인수에게 24개월이라는 시간을 주었다. 계약 기간보다 두 달을 넘기고 완공에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생각보다도 컸다.


“계약 금액이 5,478만 환···. 적자가 6,500만 환.”


강인수가 장부를 확인하며 이마를 짚었다. 이 년 동안 강인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고생 끝에서 강인수를 기다린 것은 커다란 적자였다.

이 년 동안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했는데, 계약 금액보다도 더 큰 빚을 얻은 상황이었다. 빚쟁이들은 최민영이 운영하는 고아원에까지 가서 행패를 부리고는 했다.


‘너무 무리한 것이었나? 내가 할 수 없는 일인 건가?’


완공된 고령교 앞에서 강인수는 수없이 고민했다. 강인수는 완공 후에도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 강인수 자신이 몇 번이고 절망했던 곳을 찾았다. 이 행위는 강인수에게 있어 일종의 의식이었다.


쏴아아.


강인수의 모든 것을 쓸어갔던 낙동강의 급류는 여전히 가팔랐다. 물살에는 멈춤이 없었다.


‘시체를 찾는 일조차 도전이 되겠군.’


강인수는 전신을 할퀴는 물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최민영과 강연우의 얼굴이 떠올랐고, 눈을 뜨면 그의 목을 조르는 빚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강인수에게 무모하다고 손가락질했다. 그때마다 그를 붙잡은 것은 가족이었다.


바스락.


강인수는 품 안에서 낡은 봉투들을 꺼냈다. 언제나 품에 간직하고 있는 강태수와 강철수의 편지였다. 동생들이 처음으로 보내 준 편지였다. 외울 만큼 읽었으나, 그것은 강인수를 다시 한 번 이끄는 동력이었다.


[인수 형님께. 형님, 저는 미국에 잘 도착했습니다. 벤자민과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형님, 이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가 언제고 넘어야 할 산입니다. 지금 이 생각을 한다는 것은 지나치도록 무모한 일이지만, 저는 생각합니다. 큰 꿈은 큰 곳으로 데려다준다고 말입니다.]


“큰 꿈은 큰 곳으로 데려다준다···.”


강인수의 중얼거림은 물살을 타고 고령교 어딘가에 스며들었다. 강인수가 고령교 공사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강태수의 말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었다.

강인수가 기억하는 강태수는 머물러 있지 않는 존재였다. 끊임없이 나아가고, 막힌 길이라면 온몸으로 들이박아 길을 만들어 버리는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에게 지나치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형제건설’이 자리를 잡았을 때,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 해 보고 싶었다. 자랑스러운 남편, 자랑스러운 아빠, 자랑스러운 형제가 되기 위해서.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고 있습니다. 최대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 연우는 얼마나 컸는지 궁금하군요. 고국에 돌아갔을 때, 이 삼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몸 건강히 지내십시오. 먼 타지에서, 태수 올림.]


바람은 강태수의 다짐이 적힌 편지를 인정사정없이 구겼다. 강인수는 편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품 안에 단단히 강태수의 편지를 넣고 나서 강인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물비린내가 허파를 가득 채웠다. 지난 이 년 동안 지독하게 맡은 냄새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강인수 자신에게서까지 나는 냄새가 아닐까 의심하고는 했던 물비린내였다. 그렇게 의심할 때마다, 강인수는 오히려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 있다는 감각은 어쩌면 번뇌에서 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강인수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을 생각하는 것을 그만하기로 했다.

읽지 않았지만 눈을 감으면 다시 읽을 수 있었다.


[형님, 그 많은 공포는 전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어디로 가서, 어디로 돌아오는 걸까요? 일본에서 저는 이 생각을 자주 합니다. 자신들의 전쟁으로 폭격을 맞았던 사람들이 우리의 전쟁으로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저는 생각하고는 합니다. 이 많던 공포는 전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그때 강인수는 아주 오래 고민한 다음에 한 글자 한 글자 답신을 적었다.


[공포와 삶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그게 무엇이든 무서워하게 될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살아가겠지. 나는 이제 실패가 공포스럽다.]


강인수는 그때 인정했다. 강인수는 이제 두려운 것이 너무도 많았다. 찰나의 실패는 훗날의 발목을 잡을 것이었으며, 최후의 실패는 그를 재기할 수 없게 만들 수도 있었다.

강인수의 이름은 고령교와 영원히 묶여 기억될 것이었지만, 강인수는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바랐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굶주림이 공포스러울 것이고, 당장의 내일이 두려울 테지. 하지만 죽는다고 그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철수야. 단지 멈추는 것뿐이지 않겠느냐.]


마지막 줄을 적을 때 강인수는 숨이 막혔다. 하지만 손은 그를 이끌었다.


[나는 이 공포와 함께 살아가겠다. 이것을 양분 삼아 기어코 발을 디디고 살겠다. 그리하면 언젠가는 이 공포가 나를 두려워하겠지.]


“그러니 지금은 나아가야 한다.”


강인수의 눈빛이 햇빛을 받아 부서지는 물결보다 밝게 빛났다.


*


강인수는 고령교 공사에서 처절한 실패를 얻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추억이 담긴 집을 잃었고, 언젠가는 다시 불러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가족처럼 지내던 ‘형제모직공장’의 기술자 대부분을 해고해야 했다. 그에 따라 공장은 거의 멈춘 것과 다름없었다.

길원상은 가끔 전화로 부산의 일을 전해 주었다.


‘다행히 아직 우리 모직공장을 찾아주는 고객들이 있습니다. 다른 공장들보다도 품질이 우수하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리겠다는 사람들도 꽤 있고요. 생산하는 양이 줄어서 얻기가 어려우니 저마다 더 높은 값을 쳐주고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이야기였다. 미혼인 여성들은 길원상이 디자인한 드레스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하나하나 치수를 재고 만드는 수제 옷이라는 것이 사치하고자 하는 이들의 만족을 더욱 이끌어 주고 있었다. 악화로 생산이 줄었다는 사실이 만들어 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군.’


강인수는 모직공장에서 얻은 수익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강인수는 고령교 공사에서 장비가 인력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먼저 장비 문제부터 해결해야겠어.’


강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도 결국은 무엇을 남기는 법이었다. 강인수는 자신의 신념대로 끝끝내 신용을 지켰다. 신용은 강인수가 목숨보다도 지키고 싶었던 것이었다.


‘실패에 가가운 막대한 적자를 끌어안고도 공사를 완수했다. 다들 내뺐을 일이야. 하지만 나는 완공했어. 그러니 정부가 우리 ’형제‘를 버리는 일은 없겠지. 없어야 해.’


실패라는 단어를 되새김질할 때마다 입안이 쓴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강인수는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고쳐먹자고 다짐했다.


‘남들은 이것을 실패라고 부를지 몰라도, 나만은 그렇게 칭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그저 시련일 뿐이야. 남들도 한 번은 겪는 그런 시련. 더욱더 단단해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강인수의 눈빛이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내 목숨이 붙어 있는 이상,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전쟁 때도 공장을 세웠던 게 나 강인수다. 우선 장비 문제부터 해결하자.’


그렇게 강인수는 일 년 동안이나 장비 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

힘이 들 때마다 수없이 몇 번이고 다시 생각했다. 이것은 시련일 뿐이라고. 그런 다짐 덕분이었는지, 강인수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1957년, 정부는 한국전쟁 때 폭파한 한강 인도교 공사를 발주하기로 했다.


“음, 이번 공사는 ‘주흥토건’에 맡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러한 내무장관의 의견은 재무장관의 의견과 달랐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주흥토건’ 대신 ‘홍화공작소’에 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공사 승인권은 재무장관에게 있었기에, ‘주흥토건’과 ‘홍화공작소’는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치열한 경쟁이 무려 일 년 이상 계속되자, 정부는 결국 한강 인도교 공사를 경쟁 입찰에 부치기로 했다.


“그냥 입찰을 받읍시다. 일 년이나 됐어요. 끝나지 않을 문제에 가까워 보이는데. 안 그렇습니까?”

“큼,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한강 인도교 공사가 입찰 경쟁에 나왔다는 소식에 강인수 역시 뛰어들었다.


“입찰 금액을 얼마로 하면 되겠습니까?”


강인수는 동업자들과 고민의 고민 끝에 가격을 내놓았다.


“이게 적절한 금액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해 보는 겁니다.”


강인수는 설령 입찰받지 못하더라도, 정비를 더욱 다지며 다른 공사를 수주해 볼 셈이었다.


“강 사장님, ‘홍화공작소’가 단돈 천 원에 응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강인수는 헛웃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원. 우리는 졌군요. 시내에서 한강까지 택시 요금이 사천 원인데, 천 원이라니.”

“예, 사장님. 기부 공사라고 하더군요.”


강인수는 쓴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강인수뿐만 아니라 응찰했던 수많은 경쟁 업체들이 같은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군요. 이번에는 포기하도록 합시다. 다른 일은 좀 없습니까? 지방에라도 말입니다.”

“아, 안 그래도 제가 알아봐 둔 곳들이 좀 있는데······”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입찰서를 뜯은 내무장관의 공식 발언 때문이었다.


“터무니없는 금액을 적어 낸 것을 보니 ‘홍화공작소’는 입찰 의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정부는 기부 공사는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두 번째로 낮은 응찰 가격을 제시했던 ‘형제건설’이 자동 낙찰된 것이었다.


“강 사장님! 강 사장님!”

“무슨 일입니까? 무슨 큰일이라도 났어요?”

“우리가 따냈습니다!”

“뭘 말입니까?”


예상에도 없던 상황이었던 탓에 강인수는 동업자 정지석의 신난 모습을 보고도 짐작할 수 없었다.


“한강 인도교 공사 말입니다! 우리 ‘형제건설’이 낙찰받았습니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예! 정말입니다!”


‘주흥토건’과 ‘홍화공작소’의 싸움 덕택에 강인수의 ‘형제건설’이 어부지리로 공사를 따낸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순전한 운만은 아니었다.


“글쎄. 그 ‘형제건설’이 믿을 수 있는 곳이 맞습니까? 그곳도 응찰 가격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던 것 같아서 말입니다.”

“예, 알아봤는데 몇 년 전에 고령교 공사를 맡은 건설이 ‘형제건설’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기한을 두 달 정도 넘기긴 했지만, 워낙 불가능에 가까웠던 공사였기 때문에 그 정도만 해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긴 했습니다.”


강인수가 견딘 시련이, 강인수에게 빛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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