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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연재수 :
191 회
조회수 :
33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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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8
글자수 :
988,619

작성
22.02.04 21:20
조회
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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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글자
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90화

DUMMY

”으음.”


강태수가 숨을 깊게 내쉬었다. 강인수는 전쟁 중에 잠깐씩 이어 왔던 고철 장사를 서울에서도 지속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강태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건 일종의 전쟁 특수였지만, 지금도 상황이 나쁘지는 않다.’


나라 재건에 힘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조금만 움직여도 폐허인 곳들이 많았다.


‘운이 좋으면 비교적 쓸 만한 자재들도 구할 수 있고.’


고민을 마친 강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강태수의 말에 강인수의 안색이 밝아졌다. 긴장하며 지켜보던 최민영도 마찬가지였다. 강인수의 계획은 생각보다도 더욱 자세했다. 세 사람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 다음 날, 강태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벤자민이 강인수의 집을 찾아왔다.


“마음에 들어서 혹시나 싶어 사 두었던 집인데, 이렇게 쓸모 있게 되어 다행이군요.”

“집이 정말 예뻐요.”


벤자민의 말에 최민영이 대답했다. 최민영의 말대로 집은 전에 강태수가 살던 규모와 비슷하면서도, 훨씬 더 양옥에 가까웠다. 벤자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이 집을 살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습니다.”

“정말요?”


벤자민의 말에 강인수 역시 의문이 들었다. 집은 완벽하게 관리돼 있었고, 넓은 마당의 나무와 꽃들은 싱싱했으며 가지런했다. 벤자민이 마당을 한 번 둘러보고 비밀을 이야기하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실 태수가 조경하는 걸 좋아합니다. 전에 살던 집도 전부 태수가 꾸몄었어요.”


강인수는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면 태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도, 원하는 것도 쉽게 터놓는 편이 아니지. 이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군.’


벤자민은 한 폭의 그림처럼 잘 꾸며진 마당의 나무와 꽃들을 보며 감탄했다. 그 모습에 강인수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태수가 조경을 좋아합니까?”

“네, 집에 들를 때마다 나무를 가꾸고 있었을 정도입니다. 조경에 집중할 때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던 말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이번에도 무궁화를 심었네요.”


벤자민이 기억을 회상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태수의 집에서 무궁화를 처음 봤습니다. 마당의 한 면이 전부 무궁화였는데, 아름다웠어요.”


강인수는 알지 못하는 동생의 모습이었다.


‘사람을 시켜 한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강인수는 군복을 입지 않고, 평범한 옷을 입은 채 나무를 가꾸는 강태수의 모습을 매끄럽게 상상할 수 없었다.


‘형님, 이렇게 나무를 가꾸다 보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마음을 비울 수···.’


강인수의 상상 속 강태수의 모습은 벤자민의 말로 인해 흩어졌다.


“사실 태수가 쌀장사를 하던 때에 머물던 집을 다시 선물해 주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폭격으로 사라졌더군요. 내색은 안 했어도 태수가 그 집을 정말 좋아했습니다만, 아쉬운 일입니다.”


벤자민의 얼굴에서 진정으로 아쉬워하는 기색이 묻어났다. 그 표정을 본 강인수가 잠시 나무들을 응시했다. 나무들은 정갈한 모습으로 정리돼 있었다.

높이가 크게 차이 나는 것도 없이 일정했으며, 잎에서는 윤기가 흘렀다. 오후가 되어 새벽보다는 봉오리가 오므라든 무궁화 역시 그러했다.

언뜻 봤을 때도 정돈된 느낌이었으나 자세히 보니 더욱 공들여 가꾼 티가 났다.

강인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강인수는 벤자민으로부터 그동안 벤자민이 해 온 일을 전해 들었다.


“지금 원조 사업을 비롯해서 모든 사업은 정부의 눈에 들어야만 가능한 상태입니다.”


지난밤에 강태수가 흘러가듯이 했던 이야기였다.


‘현재 나라의 모든 게 정부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형님께서는 크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형수님도요.’


벤자민의 말이 이어졌다.


“태수가 전쟁 전에 쌀 원조 사업을 성공적으로 했었다는 걸 집중적으로 피력했습니다. 더불어 강 사장님이 태수의 친형이라는 것과, 부산에서 형제모직공장을 운영한 것, 고아들을 돌보고 상이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주었던 것도 함께 이야기했고요.”

“그럼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겁니까?”


강인수가 묻자 벤자민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예, 당연합니다. 인가는 전부 났고, 사모님께서 원하신다면 다시 부산에서처럼 고아원을 여셔도 됩니다.”


벤자민의 말의 최민영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게 정말인가요?”

“예, 우리 미국도 전쟁고아들을 돌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도 상당 부분이 해결될 겁니다.”


최민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민영은 돌보던 아이들을 부산에 두고 와야 한다는 점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 최민영이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내내 울기만 했다.

조금 더 어린 아이들은 울며 최민영을 붙잡았지만,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들은 최민영을 붙잡지도 못하고 울 뿐이었다. 강인수도 최민영이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최민영의 눈에 빠르게 눈물이 맺혔다.

강인수가 최민영의 손을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것이 옳은 결정이지요. 어른들이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원해서 일어난 전쟁도 아니니 말입니다.”

“강 사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고아원으로 쓸 만한 건물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전에 태수가 이야기한 곳이 있긴 한데, 확인해 보니 그곳도 폭격으로 망가졌습니다.”


벤자민은 강철수가 만들었던 고아원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강인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수가 고아원을 이야기했다는 말입니까?”

“아, 모르셨군요. 부산에서 강 사장님과 사모님이 돌보셨던 아이들 중 삼분의 일 정도가 태수가 부탁한 아이들이었습니다. 태수가 부여로 돌아가기 전에요. 마침 미스터 길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서, 제가 대신 말을 전해 줬었습니다. 사모님과 함께 일하던 도범 학생이 그중 나이가 제일 많았고요.”

“도범이가요?”


최민영이 놀라 대꾸했다. 강인수와 눈을 마주친 후에는 고개를 저었다. 알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럼 아이들도 모르고 있다는 뜻인가?’


강인수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또다시 처음 듣는 강태수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궤가 약간 달랐다. 동생의 기호를 모르는 것과, 동생이 하는 일을 모르는 것은 같은 선상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강인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태수가 오면 물어봐야겠군.’


상황을 파악한 벤자민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태수가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편이 아니긴 하죠. 저 역시 태수에 대해 모르는 게 많습니다. 하지만 태수를 믿는 건 태수가 보여 주는 행동들 때문입니다.”


벤자민의 입가에는 스스로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은근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가끔은 그 부분이 조금 서운하고, 섭섭하기도 하지만 항상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과로 보여 주니까요.”


강인수는 그 이후로도 벤자민과 여러 대화를 나누었지만 신경은 온통 강태수에게 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낮에 일이 있다고 했을 때도 어디를 다녀온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


벤자민을 배웅하며 강인수가 입을 열었다.


“혹시 오늘 태수가 무슨 연유로 집을 비울 거라는 이야기를 했습니까?”

“아뇨, 일이 있다고만 하더군요.”


벤자민이 웃으며 강인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별일 없을 겁니다. 그럼 며칠 후에 다시 들르겠습니다. 그때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도록 하죠.”

“예, 그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들르기 전에 미리 연락을 넣겠습니다.”

“살펴 가세요.”


저녁이 지나고, 밤이 되어도 강태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후에 내내 소파에 앉아 자리를 지키던 강인수가 일어났다.


성큼, 성큼.


강인수는 빠른 걸음으로 문을 지나서 곧장 마당으로 향했다. 부드러운 잔디가 푹신하게 발에 밟혔다. 풀내음이 예민해진 강인수의 신경을 붙잡은 채 서서히 함께 내려왔다.

그제야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이파리들이 보였다. 새벽에는 피어 있다가 밤이 되면 봉오리를 닫는 무궁화가 달빛 아래에서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최민영이 창 너머로 강인수를 바라보았다.

강인수는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무궁화는 질 예정이었다.


‘몇 번 폈다가 완전히 진다면 그때는.’


계절은 다시 바뀔 테고, 그렇다는 것은 다시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을 터라는 뜻이었다.


끼익.


조용한 정적을 깨고 대문이 열렸다. 손에 짐을 가득 든 강태수가 마당에 나와 있는 강인수를 발견하고 답지 않게 당황해 버벅거렸다.


“형님, 바람이 찬데 왜 나와 계십니까. 주무시지 않고요.”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강인수는 강태수의 손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늦었는데, 어딜 다녀온 것이냐?”


강태수는 대답을 망설이며 강인수에게 다가왔다. 강태수는 직접 짐을 풀어 안에 든 것을 보여 주었다. 작은 묘목과 외국어로 적힌 여러 상자가 있었다.


“무궁화가 지면 심심할 테니, 그 옆에 심으려 합니다. 좋은 묘목을 구하는 데 꽤 걸렸습니다. 동백나무는 겨울에도···.”


강인수가 상상할 수 없던 모습이었다. 군복을 입지 않고, 강인수에게 무슨 나무인지 설명해 주는 강태수의 얼굴은 무언가에 순수하게 몰두한 청년 그 자체였다.

한참을 잊고 지낸 표정이었다. 강인수는 그런 동생의 얼굴을 보자마자 결심했다.

응원해야겠다. 동생이 무슨 결정을 하든.


*


“오늘 벤자민 중령이 다녀갔다.”

“예, 알고 있습니다.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리고 고아원 이야기를 하던데, 그건 무슨 이야기인지 알고 싶구나.”


한순간 고민한 강태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철수가 돌보던 아이들입니다.”

“!”


강태수의 대답은 강인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철수라니?”


강태수가 창밖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확히는 김의준이겠군요. 철수를 월북시키기 위해 준비하던 때에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몽양 선생과 김인국 선생이 비밀리에 함께 아이들을 돌보던 곳이라고 하더군요.”

“철수까지 셋이 함께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어린 탓에 정확히 그들을 알지 못했지만, 조금 나이가 있는 아이들은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철수에게 아이들을 돌보아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후우.”


강인수의 한숨과 함께 침묵이 맴돌았다. 강인수는 혼란스러웠다.


‘아이들이 이념이라는 것을 알 리는 없지만···. 그래,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그저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일 뿐이다.’


마침내 생각을 정리한 강인수가 거칠게 마른세수를 한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태수야, 미국에 가거라.”


이번에는 강태수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이어진 형의 말은 더욱 그러했다.


”네가 원한다면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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