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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연재수 :
1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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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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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19

작성
22.02.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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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100화

DUMMY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철수라니요?"


강태수의 반응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강인수가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짐작했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강인수는 숨을 크게 들이쉰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태수야, 네가 미국에 가고 난 후에 나는 철수를 찾아 헤맸다. 어떻게 외면할 수 있었겠어. 철수가 이곳에, 이 같은 반경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형 된 도리로서 그럴 수는 없었다."

"형님. 왜 제게 이야기하지 않으신 겁니까?"


강태수는 지금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강태수는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강인수를 보러 왔다. 강인수가 강철수를 찾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강인수는 차분한 얼굴로 대꾸했다.


"네가 유학하는 동안은 다른 곳에 마음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태수 너를 보냈는데, 정작 이 땅에 걱정할 일을 만들어 버린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하지만 말씀하셨어야 했습니다. 저 역시 마땅히 알았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강인수도 강태수가 어떤 마음으로 하는 말인지는 알았다. 하지만 강인수는 생각했다.


‘그때 태수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강인수는 강태수의 손을 잡으며 이야기했다.


“사람들을 사서 철수를 찾았다. 다시 만난 철수는 다리를 심하게 절었어. 고문 후유증이라고 했는데, 치료 시기를 놓친 탓에 완전히 치료할 수는 없다고 하더구나."


그 후에 강인수가 시간을 들이다 뱉은 말은 강태수에게 줄곧 해 주고 싶던 말이었다.


"태수야, 철수는 김의준으로 살던 때를 모두 잊기로 했다.“


강태수는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다. 강태수는 미국에서 수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중에서는 강철수가 목숨을 걸었던 사상도 있었다. 모순적으로 조국을 떠나서야 강태수는 강철수를 움직인 감정들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강태수의 마음속에는 늘 해결할 수 없는 분노가 자리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전쟁을 맞아 더욱 발화했고, 전소하는 것 같다가도 더욱 활활 타올랐다. 가끔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화가 났다.

전쟁이 끝난 직후 군인들만 보면 구걸하려 매달리는 아이들의 텅 빈 눈을 볼 때, 전쟁으로 가난해진 나라의 젊은 장교를 바라보는, 이방인들을 바라보는 푸른 눈의 다른 군인들을 볼 때마다 강태수는 감당할 수 없는 화에 사로잡히는 것만 같았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랬더라면. 하지만 그랬더라면···.’


하지만 그랬더라면 강태수는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고는 했다. 그렇기에 강태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양면성 앞에서는 아무런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강인수는 지난 오 년을 되돌아봤고, 강태수는 앞으로의 오 년을 생각했다. 최악의 수는 강철수가 돌아왔을 때 김의준을 알아보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고뇌하는 강태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강인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태수 네가 전쟁 중에 실종됐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를 평생 찾았을 거다. 그게 형제인 거고, 그게 가족인 거니까.”

“···.”


강인수는 강태수의 반응을 이해했고, 강태수는 강인수의 이야기를 이해했다. 두 형제는 그리하면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눈썹 끝을 문지른 강태수가 입을 열었다.


“철수가 일본으로 떠난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이제 곧 해가 바뀌니, 그때면 햇수로 오 년째구나.”


지금은 1958년 12월이었다. 강태수가 1953년 12월에 떠났으니, 강태수는 만으로 오 년을 꽉 채우고 돌아온 셈이었다.


“철수는 네가 떠난 뒤인 55년에 일본으로 갔다. 내가 그곳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라고 했어. 그게 철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일본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철수를 잊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다.”

“그래야죠.”


강인수는 강태수가 그래야만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화제를 돌릴 참이었다.


“한강 인도교는 보았어? 태수 네 형이 다시 만든 한강 인도교 말이다.”


강태수가 그제야 미미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가 보지 않았습니다. 형님과 함께 다녀오고 싶어서요.”


강인수는 강태수의 대답에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통행금지에 걸릴 시간이 아니었다.


“그럼 지금 다녀오자. 지금 다녀오면 시간이 딱 맞겠다.”


강인수와 강태수는 한강에 도착해서, 넓게 펼쳐진 강과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강태수는 감탄을 숨길 수 없었다.


“이전보다도 훨씬 튼튼해 보입니다.”

“신경을 좀 썼다. 아니, 좀이 아니지. 아주 많이 썼다. 몇 달은 이 일에만 매달렸으니 말이다.”


강인수도 모르게 강인수의 얼굴에 흐뭇함이 떠올랐다. 강태수는 그 모습에 웃고 말았다. 강태수는 이제야 차분히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강태수는 동시에 여러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감탄, 분노, 슬픔, 희망.

슬픔과 희망은 결국 공존하는 것이었고, 강태수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제가 떠나 있던 동안에 참 많은 것들이 변했군요.”

“거의 모든 것들이 변했다고 봐도 될 정도지.”


강인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뒷짐 진 손을 풀어 강태수의 어깨에 둘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태수야.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과업이라고 생각해.”

“···.”


과업. 강인수가 정의 내린 단어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과거를 잊고 싶어 했다. 아픈 상처를 들쑤시면 얻는 것은 덧나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강인수는 나아가려는 사람들을 조금 다르게 보았다.


“어디를 다치면 말이다. 그때부터 그 상처를 봐야 해. 그때부터 면밀히 지켜보며 살펴야 해. 이렇게 하면 덧나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흉터가 남지 않을까. 상처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모양인지 눈에 박히도록 봐야 다음에는 더 빨리 처리할 수 있는 법이야.”


강인수는 지나간 시간 동안 줄곧 생각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괜찮을 수가 없었다. 일제강점기를 겪고, 광복을 겪고, 나아지려는 참에 전쟁을 겪었다. 적어도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무엇 하나를 피부로 견딘 사람들이었다.

강인수는 전쟁이 끝난 뒤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꿈에서도 의심한 사람이었다. 잠에서 깨어 최민영과 강연우를 확인하는 버릇은 지금도 여전했다. 어쩌면 강인수가 그 자신이 정말 죽을 때까지도 버리지 못할 버릇일지도 몰랐다.


“네가 미국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듯이, 나도 이 나라에서 배운 것들이 있다.”


강인수의 얼굴은 어딘가 홀가분해 보였다. 강태수는 그런 형의 얼굴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해방감을 순간 엿보았다.


“그게 무엇입니까, 형님?”

“도전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강인수는 강 너머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사람들은 모두 나를 향해 무모한 짓을 한다고 했다. 뭐, 객관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을 거다.”


강인수는 고령교 복구 사업을 짤막하게 이야기하며 후련한 듯 웃어 보였다.


“이상하게 오기가 생기지 뭐냐. 모두 나를 보고 안 된다고 하니까, 그 말을 뒤집어 보고 싶었어. 나를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이 전부 그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유치한 말일 수도 있겠다만, 내게 안 된다는 사람들을 보자 화가 났거든.”


강인수가 민망한 듯 웃었다. 강인수의 바람처럼 강인수를 향해 삿대질하던 사람들이 그 손으로 본인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만큼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이었다.


“매일 하루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틀을 만들고, 교각을 세우고, 다시 그 위에 사람들을 걷게 하고. 생각보다 이게 적성에 맞기도 하더구나. 그리고,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지 않겠어? 계속 도전해서 성공까지 간다면, 그 모든 일들이 실패가 아니니 말이다. 그저 과정이 되는 것뿐이지.”


도전 정신, 강인수는 몇 번이고 이 말을 가슴속에 새겼다. 성공할 때까지 해낸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었다. 당연히 포기도 있을 수 없는 말이었다. 강인수에게 있어서 포기는 이제 치욕에 가까웠다.

강태수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강인수의 얼굴을 보며 지난 오 년 동안 쉼없이 달려온 것은 강태수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편지로 말씀하지 않으신 것들이 더 있으셨군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형님.”


강인수는 강태수의 등을 다시 두어 번 두드렸다.


“타국에서 고생하는 동생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태수 네가 돌아왔을 때 자랑스러운 형이고 싶었고.”

“형님은 제게 늘 자랑스러운 형님이셨습니다.”


강인수가 강태수의 대답에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그건 정말 다행이구나. 태수 너도 늘 자랑스러운 내 동생이었다. 언제나 자랑스러웠지.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셈입니까?”


강태수는 자신의 마지막 기억 속에서는 처참함 그 자체였던 한강대교와 자신의 형을 번갈아 보았다. 강태수에게 군복을 계속 입도록 강요한 것은 어쩌면 그날의 분노였다.

다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모두 물속으로 수장해 버렸다는 그날의 분노. 그리고 그것은 강태수가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보라던 강인수의 말에 더욱 선명해졌다.


“앞으로도 더 나아가야지. ‘형제’를 줄곧 그랬지만 나에게만큼은 이만큼, 이 정도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다. 더 하려고 해도 더 할 게 없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다하는 최선, 그게 앞으로 내가 우리 ‘형제’를 이끌어갈 방식이다.”


강태수는 형을 보며 생각했다. 때때로 분노는 어떤 일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되돌아보면 강태수를 이룬 팔할은 분노였다. 희수의 죽음에 대한 분노로 야마다를 찾아간 것, 군인이 된 것, 수많은 전투에서 이기고 살아남은 것, 미국에서 지낸 날들까지.

강태수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강인수는 그런 동생의 다부진 주먹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네가 다시 돌아와서 좋다, 태수야. 가족은 한데 모여 살아야 하지 않겠어. 곧 철수도 돌아올 테고. 우리가 같이 살게 되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강인수는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이 가끔씩 그리웠다.

격동의 시대에 휩싸인 형제들은 하나의 선택도 고심해야 했다. 각자의 선택은 예상보다도 훨씬 더 크고, 다른 결과를 불러왔다. 하지만 그것 또한 분명히 형제들이 이겨 내야 하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강인수는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강인수는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했다.


“앞으로는 이 기업인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겠지. 나는 그 한가운데에 있고 싶다, 태수야.”


강인수는 줄곧 그렸던 자신의 꿈을 꺼내 놓았다. 강태수는 그런 형을 보며 다른 결심을 했다. 어느덧 1959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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