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연재수 :
191 회
조회수 :
334,061
추천수 :
6,818
글자수 :
988,619

작성
22.01.30 09:20
조회
1,284
추천
27
글자
12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82화

DUMMY

잠든 강연우의 고른 숨소리가 집 안에 퍼졌다. 집 안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것이 전부였다. 강연우를 가만히 응시하던 강인수가 입을 열었다.


“철수가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라던 때가 있었소. 철수의 목숨만 붙어 있다면, 다른 건 전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때가 말이오.”


과거형으로 이야기하는 강인수의 목소리는 볼품없이 떨렸다. 강태수가 군인이 되겠다고 이야기하던 날, 동생이 가까스로 분노를 억누르며 했던 말들이 강인수의 귓가에 맴돌았다.


‘형님, 철수는 더 이상 자신이 강철수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강철수가 아니라 김의준이라고요. 철수는 그 인생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선택하려고 애썼습니다. 모든 것들을 잃었지만 동생을 원망하지 않기 위해서요.’


강인수의 안색이 더욱 좋지 않아졌다.


‘원망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태수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철수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애가 선택한 신념이 이 땅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는데, 원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스스로에게 거짓말하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최민영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생각에 잠긴 강인수를 불렀다.


“여보.”


최민영이 안타까운 얼굴로 강인수의 손등을 붙잡았다.


스윽.


강인수가 손바닥을 뒤집어 최민영과 손을 마주 잡았다.


“태수에게서 처음으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소.”


최민영의 손은 따스했다. 강인수는 이 손의 온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었으며, 그리 하고 있었다. 강인수가 한결 정리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철수를, 동생을 살아서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구나.”


강인수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눈빛에는 회한이 담겨 있었다. 강태수는 강철수를 위해 전 재산을 바쳐 월북시켰지만, 전쟁이 일어났고, 그 전쟁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 두었다.

강인수에게는 농사 지을 땅과 가족의 화평을 지키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였다. 그러했던 그의 인생이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뒤바뀌었다.

강인수는 이제 농사 대신에 사업을 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가 고용하는 사람들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더 많아지는 중이었다. 건설 사업의 기반도 이제는 충분했다. 얼마 전에 강태수가 다녀간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때 철수와 엮이게 된다면.’


강인수는 최민영을 품에 끌어안았다. 모든 것을 잃을 미래가 불 보듯 뻔했다. 사실만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다. 현재 강인수가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최민영과 강연우가 전부가 아니었다. 지금의 강인수는 사업가였다.


‘모든 게 무위로 돌아가고 말겠지. 태수는 철수를 월북시키는 데에만 전 재산을 쏟았다. 하지만 그때는 전쟁 전이었어.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인민군이 점령한 땅에서 빠져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고초를 겪었다.’


강인수는 흉터가 가득한 자신의 손을 응시했다.


’하지만···.’


창문 너머로 조금씩 빛이 들었다. 강인수는 얼마 전 부산에 들른 강태수를 떠올렸다. 강태수의 군복은 지난번보다 더 낡았지만 강태수가 내뿜는 기세는 더욱 강인해져 있었다.

자연스레 강태수의 얼굴 위로 강철수의 얼굴이 덧그려졌다. 머릿속에서 강태수의 국군 군복이 인민군의 군복으로 바뀌는 순간, 강인수는 결정을 내렸다.


*


강인수는 오늘 길원상에게 일을 맡기고 최민영과 같은 곳으로 향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최민영 대신 이도범이 길원상의 아내 표혜영의 식당을 돕게 되면서 최민영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나누어 주는 일을 맡았다. 최민영은 사람들에게 해 봤던 일이 있는지 묻고 건설 현장으로 보낼지, 염색 작업 현장으로 보낼지 결정했다.

길원상이 소개해 주었던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조금의 기술이라도 있는 자들이 전부 모여들고 있었다. 덕분에 강인수는 임금 부담을 조금 덜 수 있었다.

강인수는 줄을 선 사람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어, 강 사장님이 웬일로 직접 나오셨습니까? 한동안은 사모님만 뵌 것 같은데,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 네. 요즘 이곳이 많이 바쁘다고 해서 저도 나와 봤습니다. 안사람을 너무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훨씬 많아지기는 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강 사장님을 뵈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말이에요. 좋은 일입니다. 이때에 이렇게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시는 것도 정말 감사합니다.”


오른쪽 팔꿈치 밑으로 손이 없는 남자가 왼손을 내밀어 강인수의 손을 붙잡았다.


“이 선생님 같은 분들이 일도 열심히 해 주시고, 다른 기술자들 또한 소개해 주신 덕분입니다.”


그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강인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며칠 동안 강인수는 꾸준히 최민영과 함께 사람들을 직접 맞았지만 강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강인수는 기뻐할 수도, 그렇다고 슬퍼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렀다. 일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그, 내가 진짜 봤당께요. 지난번에 분명히 봤단 말이여요.”

“그러니까, 누구를 보았다는 이야기요?”


강철수가 강인수를 찾아왔을 때, 강철수에게 빨리 이름을 남기라 재촉했던 남자였다. 남자는 며칠 동안 고민하다 경찰을 찾았다. 경찰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남자와 같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왔으나 전부 별 소득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그러니께. 이름이 잘 생각이 안 나는디, 김···. 김의? 의 뭐였는디.”


시큰둥하던 경찰들이 반응이 남자의 말에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자세히 말해 보시오. 어디서, 언제 보았소?”

“전에 고향에서 전투할 때 봤는디, 인민군들 중에서 것도 아주 높은 사람 같았단 말여. 내가 그 전투에서 요 다리를 절게 됐는데, 그래서 잊을 수가 없었어라. 근데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당께요. 얼마 전에 여기 여, 부산에서 말여요.”


경찰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더니 경찰 하나가 두꺼운 장부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이 남자가 맞소?”


경찰이 꺼내든 것은 김인국과 강철수를 몰래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받아든 남자가 고개를 빼고 실눈을 뜬 채 사진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확인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어, 어! 이 남자여. 이쪽의 젊은 남자. 내가 요 두 눈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당께요.”


경찰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어느새 그들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이 남자를 본 곳이 어디입니까?”


당연한 이야기였다. ‘김의준’에게 걸린 수배의 대가는 어마어마했다.


“그것이 좀 이상한디, 그 우리 강 사장님 가게에서 줄을 섰어라. 사모님이 이름을 적으라고 하니까는 그대로 도망을 가비렀어.”

“강 사장님은 누구요?”


남자는 경찰들에게 강인수와 강인수의 ‘형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만약에 그 남자가 맞으면 나도 포상금 받을 수 있는 게 맞지요?”

“당신이 봤다는 남자가 김의준이 맞다면 말이요.”


경찰들은 즉각 차를 몰고 강인수의 ‘형제’로 향했다.


“이 빨갱이 새끼가 잘도 감히 부산에 숨어들었군. 얼마나 많은 빨갱이가 이렇게 숨어 있는 건지, 전부 축출해 내야겠어.”

“김인국과 김의준이 변절했다는 말이 떠돌던데, 그래서 이 부산에 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변절이 무슨 상관인가. 한 번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지.”

“맞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김인국도 함께 있을지 모르겠군요. 만약 아까 그 남자의 사실이라면, 그래서 그 둘을 잡기만 한다면 우리는 완전 특진 확정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얼른 잡아야지. 언제 또 이런 대어를 낚아 보겠어?”


끼이익.


차가 ‘형제’ 앞에서 거칠게 멈춰 섰다.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경찰들은 사람들을 끝없이 이어진 줄을 바라보다 최민영을 발견하자마자 장부를 적고 있던 남자를 밀쳤다. 지팡이를 놓친 남자가 그대로 넘어졌다.


“윽!”


쿠당탕.


최민영이 서둘러 넘어진 남자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경찰들이 그 사이를 막아섰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이게 무슨!”


휙!


경찰들은 최민영에게 대답 대신 눈앞에 사진 한 장을 들이밀었다.


“보다시피 우리는 경찰이고, 이 사진 속의 남자들을 본 적 있소? 우리가 좀 급해서 말이지.”


눈앞에 바짝 붙은 사진 속의 두 남자 중 하나는 최민영이 아는 사람이었고, 하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넘어진 남자의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넘어진 남자를 일으켰다.


“아이고, 박씨! 괜찮슈?”


최민영은 말없이 경찰들을 노려보았다. 강인수가 우려하던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었다.


‘만약 군인이나 경찰이 찾아와 철수의 행방을 묻는다면 본 적이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라고 둘러대시오.’


“다시 한 번 묻겠소. 본 적이 있소?”


최민영은 강인수의 말대로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최민영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지만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한 번 본 적 있어요. 남자들은 아니고, 이쪽의 젊은 남자만요.”


경찰 중 하나가 눈썹을 들썩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경찰이 사진을 쥐지 않은 손으로 사람들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사진을 보자마자 기억해 낼 수가 있는 거요?”

“이름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도망을 가 버려서, 기억에 남았을 뿐이에요.”

“흐음. 그렇다면 이 남자는 정말 본 적이 없소?”


경찰이 말하는 남자는 김인국이었다. 최민영은 고개를 젓고 다시 입을 열었다.


“본 적 없어요. 대체 왜 이러시는 건가요? 이 남자들이 누구길래 이래요? 경찰이 이렇게 사람들을 다치게 해도 되는 건가요?”


최민영의 말에 경찰들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사람? 대의가 더 중요한 것이오. 이 남자의 이름은 김의준이고, 아주 유명한 빨갱이지. 그런데 이 빨갱이가 얼마 전에 이곳에 다녀갔다는 정보를 받았소.”


말을 끝낸 경찰이 고개를 까딱였다. 다른 차로 뒤따라온 경찰들이 특진을 논하던 경찰의 선두 아래 가게 안으로 들어가 이곳저곳을 헤집었다.


“이게 뭐 하는 거예요!”

“혹시라도 빨갱이를 은신해 주고 있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오. 그러니 확인하는 것뿐이요. 그 빨갱이들을 숨겨 주고 있는 게 아니라면 거리낄 것 없을 것 아니요? 안 그렇소? 우리를 막는다면 숨겨 주고 있다고 생각하겠소.”


막무가내식 논리였다. 경찰들은 가게 안을 헤집고 모든 물건을 바닥으로 던졌다.


“그만해요!”


말리는 최민영 역시 거칠게 밀쳤다.


퍽!


“윽!”

“아이고, 사모님!”


사람들이 넘어진 최민영을 일으켜 부축했다. 그 사이 발 빠른 사람들이 강인수에게 뛰어갔다.


”사장님! 강 사장님! 큰일 났십니더!”

”무슨 일입니까?”

”가게에 경찰들이 와서 웬 빨갱이를 숨겨 준 게 아니냐면서 다 때려부수고 있십니더! 사모님도 막 밀치고! 얼른 가 보셔야 합니더!”


강인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염색하고 있던 천을 내팽개치고 있는 힘껏 내달렸다. 가게 앞에 도착한 강인수가 소리치려 하는 그때, 기억에 묻어 둔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의 행패를 멈추십시오. 당신들이 찾는 것은 나 아닙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격동의 시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3 격동의 시대 시즌1 - 102화 +1 22.02.10 1,155 28 11쪽
102 격동의 시대 시즌1 - 101화 +3 22.02.09 1,151 29 11쪽
101 격동의 시대 시즌1 - 100화 +3 22.02.09 1,082 28 11쪽
100 격동의 시대 시즌1 - 99화 +2 22.02.09 1,143 30 11쪽
99 격동의 시대 시즌1 - 98화 +1 22.02.08 1,111 32 11쪽
98 격동의 시대 시즌1 - 97화 22.02.08 1,114 26 11쪽
97 격동의 시대 시즌1 - 96화 22.02.07 1,122 30 11쪽
96 격동의 시대 시즌1 - 95화 +3 22.02.07 1,164 30 11쪽
95 격동의 시대 시즌1 - 94화 +4 22.02.06 1,146 29 11쪽
94 격동의 시대 시즌1 - 93화 22.02.06 1,177 29 11쪽
93 격동의 시대 시즌1 - 92화 22.02.05 1,160 30 11쪽
92 격동의 시대 시즌1 - 91화 +1 22.02.05 1,211 28 11쪽
91 격동의 시대 시즌1 - 90화 +2 22.02.04 1,172 32 11쪽
90 격동의 시대 시즌1 - 89화 +1 22.02.04 1,204 26 11쪽
89 격동의 시대 시즌1 - 88화 +1 22.02.03 1,191 28 11쪽
88 격동의 시대 시즌1 - 87화 +1 22.02.03 1,237 25 11쪽
87 격동의 시대 시즌1 - 86화 +1 22.02.03 1,134 22 11쪽
86 격동의 시대 시즌1 - 85화 +1 22.01.31 1,326 32 11쪽
85 격동의 시대 시즌1 - 84화 22.01.31 1,293 29 11쪽
84 격동의 시대 시즌1 - 83화 +1 22.01.30 1,255 29 11쪽
» 격동의 시대 시즌1 - 82화 +2 22.01.30 1,285 27 12쪽
82 격동의 시대 시즌1 - 81화 +1 22.01.29 1,266 33 11쪽
81 격동의 시대 시즌1 - 80화 +6 22.01.29 1,344 27 11쪽
80 격동의 시대 시즌1 - 79화 +1 22.01.28 1,293 29 11쪽
79 격동의 시대 시즌1 - 78화 +2 22.01.28 1,299 30 12쪽
78 격동의 시대 시즌1 - 77화 +1 22.01.27 1,327 25 11쪽
77 격동의 시대 시즌1 - 76화 22.01.27 1,251 21 11쪽
76 격동의 시대 시즌1 - 75화 +1 22.01.25 1,471 33 11쪽
75 격동의 시대 시즌1 - 74화 +2 22.01.25 1,453 29 12쪽
74 격동의 시대 시즌1 - 73화 +6 22.01.24 1,465 3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