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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격동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창작공장
작품등록일 :
2021.11.22 10:37
최근연재일 :
2022.03.23 10:50
연재수 :
1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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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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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88,619

작성
22.02.0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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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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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11쪽

격동의 시대 시즌1 - 91화

DUMMY

강태수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강인수를 바라보았다. 반면에 강인수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해 보였다. 그 모습이 더욱 강태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강인수는 동생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이제 보니 놀랍도록 강인수 자신과 닮은 얼굴이었다.


‘태수와 철수가 똑 닮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민영 씨가 나와 태수가 닮았다고 할 때도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의 볼을 매만진 강인수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릴 때부터 철수와 너는 아주 닮은꼴이었지. 철수가 네가 자라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왔지 않느냐.”

“그랬었죠.”

“태수 네가 하는 거라면 뭐든 따라 하려고 하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한데.”


두 형제의 입가에 그리움이 담긴 미소가 피어났다. 이제는 돌아갈 수도, 비슷하게 살 수도 없지만 돌이켜 볼 수 있는 기억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턱.


강인수가 강태수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태수야, 이제라도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걸 해라.”

“형님.”


목이 메었지만, 강인수는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


“내가 나 살기 바쁘다고, 네가 어떤 마음일지 헤아리지 못했다.”


강인수는 자신의 말에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동생의 손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강태수는 훌륭한 군인이었다. 그 말은 결국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강인수는 강태수 덕에 전쟁에 직접적으로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다.

강태수는 아니었다. 언제나 죽음이 근처에 있었고, 그가 아끼던 부대원들이 수없이 죽었다. 강태수는 참상의 제일 근처에서 정면으로 겪어야 했다. 강태수는 남들 앞에서는 단 한 번도 내색하지도, 티를 내지도 않았다. 그게 가족 앞이라면 더욱 그랬다. 누군가를 걱정하게 만드는 건 강태수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태수야. 이 알량한 말로 네가 보내 온 날들을 전부 위로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고맙다. 죽지 않아서, 죽지 않고, 잊지 않고 나를 찾아줘서.”


강인수는 강태수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인수 역시 강태수의 성격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피부로 와 닿은 것은 처음이었다.


‘모든 말에는 할 수 있는 때가 있는 법이다.’


강인수는 속으로 말을 고르고, 골라 하나씩 꺼내 보였다. 강태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는 것에 가까웠다. 강인수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후우, 그러니 네가 원하는 걸 해라. 그게 언제가 됐든, 정말 네가 원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 진정으로 고민해 보는 것도 좋겠어. 세상이 이렇게 바뀌고, 바뀌고 있지 않느냐.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하거든 보내 주마. 그게 벤자민 중령과 함께 가는 게 아니더라도 말이다.”


강태수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듯이 일그러졌지만, 강태수는 끝내 울음을 참았다. 강인수가 동생의 등을 끌어안았다. 형제는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를 위로했다.


*


날이 밝자마자 강태수는 벤자민을 찾았다.


“어, 태수.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형님께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벤자민.”


벤자민이 웃으며 습관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태수가 마당을 가꾸는 걸 좋아한다는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어.”

“하아.”


벤자민의 태연한 대꾸에 강태수가 마른세수를 했다.


“고아원 이야기는 미안해. 이야기를 한 줄로만 알았어.”

“아니야, 그건 결국 해야 하는 이야기였어. 시기를 따진다고 내가 계속 미룬 탓이지.”


강인수가 부산으로 향하던 중 통비분자로 몰려 고문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후에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후우.”


강태수가 한숨을 내쉬자 벤자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폭격 때문에 아쉽게 됐어. 그 고아원도, 태수의 옛날 집도.”

“돌이킬 수 없는 것들 대신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지.”


간밤에 강인수와 대화를 나누면서 강태수는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


그것은 어떻게 보면 간단했다. 강태수는 평생 동안 성공을 바라왔으니까. 그 누구도 강태수 자신과 가족을 얕볼 수 없을 정도의 공고한 성공.


‘하지만 그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성공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전쟁은 죽지 않은 사람들의 인생을 원점으로 돌려놓거나, 진창으로 처박았다.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고민하는 강태수에게 벤자민이 영어로 적힌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스윽.


“이게 뭐야?”

“태수가 요청했던 것들. 보면 알 거야.”


사락.


강태수는 한 글자, 한 글자 집중해서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광복이 찾아왔던 때, 일본은 패전과 함께 대한민국에 거대한 기업을 남겨 놓고 철수했다.


“일본이 남겨 놓은 적산은 대한민국의 해방 이후 우리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정부의 주요 재원이었어.”

“그래, 미군정과 한국 정부는 이런 적산을 사람들에게 불하해 주고, 그 수입으로 국가 재정의 주 수입원으로 썼지.”

“맞아.”


강태수의 말에 벤자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상당한 기업을 국가 소유로 가지고 있었다.


“우리 미국이 한국에 원조하는 대신, 한국의 경제 구조를 바꾸도록 요구할 예정이라고 들었어.”

“뭐?”


강태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미국의 원조는 한국 정부의 운영에 아주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에 원조하는 대신 한국의 경제구조를 바꿀 것을 요구할 예정이었다.


“그게 무슨 이야기야, 벤자민.”

“태수와 태수의 형에게는 훨씬 더 좋은 일이야.”


강태수는 벤자민의 턱짓을 따라 다시 서류를 읽었다.


[미국은 대한민국 정부가 기업을 국유화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상당 부분을 사기업으로 전환할 것을 요청할 예정에 있다.]


더불어 1948년의 헌법은 일본이 남기고 간 기업의 국유화를 주장했다. 이것은 대부분의 국민들에게서 지지를 받았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는 정치제도 못지않게 어떤 경제정책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했다. 해방 직후의 한국 사회에는 막대한 일본 기업과 일본인 소유의 토지가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한국인 지주들도 땅들을 적지 않은 가지고 있었다.


‘홍 판서가 그러했지.’


해방 직후 여론은 일본인의 토지는 농민에게 무상분배를 하고, 한국인 대지주의 토지는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하는 것이 좋다는 것에 치우쳐 있었다. 강인수에게 다시 소작을 하거나 땅을 내놓으라고 하던 홍 판서 역시 유상몰수 대상자였다.

1948년의 헌법은 이런 여론을 반영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여기에 맞게 토지분배가 이뤄졌다. 그리해서 당시 열 명 중 여섯 명 이상의 소작농들이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토지 소유권은 소수의 대지주에게 있었지만 1948년에는 대다수의 대한민국 농민들이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이들은 신생 대한민국의 국민이 됨과 동시에 당당한 토지의 소유자가 되었다. 이런 농민들에게 한국전쟁 발발 이후 국가가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겠다는 것은 이미 가진 것을 나라에서 빼앗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국민들이 공산주의를 외면한 이유 중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한 원인이었다.


사락.


[일본이 남기고 간 기업의 국유화를 주장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이것을 통해 국가가 막강한 경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의 생각은 다르다.]


강태수가 다시 종이를 넘겼다.


[경제는 근본적으로 국가주도가 아니라 시장에 맡겨 놓아야 한다. 따라서 미국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사기업 육성의 방향으로 고칠 것을 요구할 것이다.]

[주요 지하자원이나 수자원을 민간에게 넘길 수 있도록 할 것이며, 기업이 국제무역을 함에 있어서 국가의 통제를 제한하는 바를 검토할 것이고, 국방산업을 제외하고는 사기업을 국영기업으로 바꿀 수 없도록 할 것이다.]


강태수가 서류를 다 읽자 벤자민이 물었다.


“좋지 않은 내용은 아니지? 오히려 이게 한국의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줄 거야. 만약에라도 ‘형제’가 다른 사업을 확장하게 된다고 해도 이득이 있을 거고.”


확실히 기업에 있어서 나쁠 것은 없는 내용들이었다. 강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변수는 없는 건가? 만약 그 사이 어떠한 일로 인해 정권이 바뀐다면?’


강태수는 그렇게 묻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헌법 개정이 이뤄지겠네. 내년쯤인가?”

“그렇지. 이제 1953년도 얼마 남지 않았잖아.”


강태수가 고개를 돌려 달력을 확인했다. 1953년 10월 달력이었다.


‘앞으로 두 달.’


벤자민이 떠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이자 강태수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강태수는 강인수와 인사를 나눈 후에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강태수는 그동안 바쁘게 움직이며 차분히 생각했다.


‘형님 말대로 형님과 함께 다시 사업을 꾸려 나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안정을 보정할 수는 없어진다.’


강태수가 군인이 된 이유는 강태수의 가족을, 강인수와 자신의 미래를 지킬 수 있는 제일 확실한 방법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전쟁 때문에 더 단단해졌다.


‘여전히 군부는 국가가 존재하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쭉 국가와 명맥을 함께하겠지. 물론 ’살아남는다면‘이라는 전제가 붙겠지만.’


때맞춰 미군은 유능한 군인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며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에게 유학을 제안했다. 강태수는 이미 벤자민에게 전달받은 바였다. 공문을 확인한 백도후가 강태수를 찾아왔다.


“중대장님, 혹시 이것 보셨습니까?”


전쟁 중 노획한 무기들을 정리해 둔 서류를 보던 강태수가 흘깃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혹시 미국에 가실 예정입니까?”


백도후의 물음에 강태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강태수는 백도후의 얼굴에서 조급함을 발견했다.


“다들 중대장님이 미국에 가실 거라고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중대장님을 위한 게 아니냐면서 말입니다.”


탁.


강태수가 만년필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백 상사.”

“예, 중대장님.”

“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나?”


백도후는 강태수의 물음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대답이었다.


“그럼 질문을 바꿔 보지.”


강태수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였다. 강태수는 능력 있는 상관이었고,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군인이었다. 그와 반대로, 사람으로서의 강태수를 아는 자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백도후는 근 몇 년 동안 강태수와 함께 생활한 것뿐만 아니라 생사를 함께했다. 같이 보낸 시간 역시 어떻게 보면 벤자민보다 많을 터였다. 백도후는 강태수가 본 군인들 중 어쩌면 제일 인간적인 군인이었다.


‘백 상사에게도 기회라면 기회일 수도 있겠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백도후에게 다가간 강태수가 입을 열었다.


“백 상사, 나와 함께 미국에 가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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